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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비례대표)이 <깊은 긍정>(지식의숲)을 냈을 때 기자는 정치인들의 그저 그런 책쯤으로 여겼다. 선거를 앞두고 쏟아지는, 자화자찬 일색인 홍보용 자서전 말이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랐다. 국회나 의정활동에 관한 이야기는 많지 않고, 재선과는 무관해 보이는 책과 관계, 그가 그려온 삶의 궤적 등 '사적인' 이야기들이 많았다. 적어도 정치인의 책이라고 샛눈 뜨고 볼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기자는 지난 9일 장 의원을 만나 책에 미처 담지 못한 국회의원 장향숙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비례대표)
ⓒ 여의도통신 한승호 기자
- 책 중에서 특히 '관계'를 고민하고, 탐색하는 부분이 좋았다. 소유의 경험이 없어서 관계 맺기부터 시작해야 했다든가, 관심과 무관심은 연장선에 놓여있다든가 하는. 우린 돌고래 등어리에 살고 있는 거라는 상상은 정말이지 사랑스러웠다(웃음).
"원래는 더 철저히 책 이야기만 하고 싶었다. 출판사에서 살아왔던 이야기도 넣어야 된다고 하도 성화길래 좀 넣었다. 청소년에게 나의 책에 관한 경험을 들려주고 싶었다. 나는 책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책은 의식을 확대하고, 나와의 내적인 대화를 통해 나를 키운다. 상상력도 만들어준다.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다, TV다 해서 책을 잘 보지 않는다. 자연히 자신과 소통할 기회도 적다. 알고 있는 정보는 많지만 그 정보가 자신에게 얼마나 유익할 지는 의문이다. 종이에 배어있는 책의 냄새와 사색의 깊이를 전해주고 싶었다."

- 지난해 4월부터 책을 썼다고 했는데 어려운 점도 많았겠다.
"너무 바빠 책에 많은 신경을 쓰지 못했다. 보좌진들이 다른 의원보다 세 배 정도는 스케줄이 많다고 불평할 정도니까(웃음). 집필 작업 대부분을 밤에 했다. 곁에서 돕던 비서가 고생이 많았다."

- 어느덧 임기도 1년 남짓 남았다.
"개인적으로는 행복하지 않았다. 부담이 너무 컸다. 의정활동 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오해받는 일도 있었다. 의정활동에 외부 활동까지 하려면 시간을 아무리 쪼개도 부족하다. 다른 분들은 무슨 재주가 있어 하시는지 몰라도 난 힘들더라(웃음)."

-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밖에서 장애인인권운동 할 때는 내가 원하는 100%를 주장하면 됐다. 국회 들어와 보니 예산이며 국정 운영 전반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도 못하는 게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됐다.

특히 예산 필요한 법안은 너무 어렵다. 법이 통과될 가능성과 안될 가능성은 반반이라고 하면 50%의 확률에서 60, 70%로 끌어올리기가 힘들다. 동료 의원들과 정부에 일일이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장차법)도 행정부 쪽에선 반대 주장이 강했다. 재정경제부나 기획예산처 모두 반대였다. 관련 부처만 11개다 보니 협의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장애인단체에선 단체대로 국회 운영이나 정책 입안 메커니즘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들이 정한 시한 내에 해달라고 하니 심리적 부담이 더 컸다. 청운의 꿈을 품고 왔는데 현실은 만만치 않으니 더 힘들었다."

ⓒ 장향숙의원실 제공
- 그럼에도 일련의 성과는 있지 않나? 한계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낼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장차법 개정이나 장애인복지법 개정안 통과도 큰 성과다. 힘이라면, 용단을 내려야 할 때 용단을 내리는 거다(웃음). 장차법 제정추진연대가 당 원내대표 면담할 때 "그럼 내가 법을 내겠다" 이런 식으로 말해서 기정사실화해버린다."

- 장애인의 달 특집을 진행하면서 계속 나왔던 이야기가 장애인 당사자의 정치세력화였다. 장애인 정치인이 나오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나?
"장애인계 스스로 혁신해야 한다. 정화원도 했고, 장향숙도 했으니 나도 시켜달라는 건 위험한 요구다. 단체장이라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면서 누구에게 줄서기를 하고, 그래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비민주적인 장애인단체 개혁이 우선이다. 조직이 개혁되고 변해야 장애인 대중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지도자를 길러낼 수 있다.

나도 장애여성인권운동 활동을 높이 평가받아 국회로 들어왔다. 장애남성과 다른 여성의 경험을 고민하고, 성인지적 관점에서 장애 문제를 바라봤기 때문에 여성단체쪽에서 적극적으로 나를 추천했던 거다.

장애인 대표로서 국회에 진출하고 의미있는 활동을 하기 위해선 대중으로부터 힘받고, 성과를 대중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그런 지도자가 나타난다면 정치권에서는 자연스레 관심을 가질 것이다."

- 지난달 30일 유엔본부에서 열린 장애인권리에 관한 협약 서명식에 다녀왔다. 감회가 남달랐겠다.
"한국 장애여성계에선 장애인권리협약에 장애여성에 관한 별도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했다. EU나 일본 등 이른바 선진국 여성들은 반대였다. 오히려 별도 조항이 장애여성의 권한을 위축시키고, 차별을 강화한다고 했다.

선진국 상황에선 그럴 수도 있지만, 우리 같은 개발도상국과 제3세계에선 우리의 경험이 더 중요하고, 따라서 별도 조항 신설이 매우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별도 조항이 있어야 각국에서 국내법을 마련할 때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나중에는 EU의 NGO 여성들이 힘을 합쳐주어서 별도의 조항으로 신설됐다. 장애여성의 교육과 임신, 출산, 육아 등을 규정한 조항이다. 더불어 장애아동 조항도 마련됐다. 굉장히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가장 우선적으로 최순영 의원의 장애인교육지원법 통과시켜야지(웃음). 대선도 있고, 선거도 있어서 정치적 소용돌이는 계속되리라 본다. 나는 끝까지 법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으려 한다. (다음 책은 안내냐고 묻자) 한번 생각해 보겠다(웃음). 다음 책을 내면 좀더 수준있게 만들겠다."

덧붙이는 글 | - 송민성 기자 ichae1982@ytongsin.com
- 입법전문 정치주간지 <여의도통신> 7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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