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미FTA는 노무현 정부의 3차 서민·중산층 말살정책이다. 1차는 무분별한 규제완화에 의한 신용카드와 대부업 활성화 정책에 의한 말살이다. 눈뜬 장님들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죽었고 많은 서민들이 영원히 재기할 수 없을 만큼 치명타를 입었다.

2차는 지금도 진행 중인 잘못된 부동산 정책에 의한 서민·중산층 삶의 붕괴이다. 향후 부동산 거품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삶의 희망을 잃게 될 것이다.

필자는 한미FTA 협상 초기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적이 있었다. 처음 미국의 협상 시한에 맞춰 금년 3월말까지 타결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정말 농담으로만 알았다. 설사 통상관료들이 그 정도로 무모할 수는 있겠지만, 한국의 양식이 그 정도는 용납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관심을 끊고 지내왔다. 그런데 실제로 협상이 타결되었다는 소식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가 그 누구보다 경악하는 이유는 필자가 그동안 미국식 제도개혁을 주창해 왔기 때문이다. 많은 FTA반대론자들이 미국화를 걱정하지만 필자는 미국의 선진적 제도의 의미를 연구해 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미국화'가 아니다

앞서 1차 서민·중산층 말살정책으로 규정한 신용카드업이나 고리사채에 대해서는 미국의 공정채권추심법과 채무자에게 관대한 개인파산제와 개인회생제, 그리고 상당한 금액의 재산과 임금의 압류제외 제도를 도입하여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음을 밝혔다.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된 일은 아니었지만 올바른 해결책을 의도적으로 외면했다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누구보다 반대하던 관료들, 언론, 정치인들이 갑자기 미국식 제도를 받아들여야 한다며 한미FTA 체결에 쌍장구를 치고 나선데 대해 어찌 경악하지 않을 수 있으랴.

2차 서민·중산층 말살정책인 부동산정책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식 보유세제, 후분양제, 주택담보대출제도를 통해 부동산시장의 안정을 조기에 정착시킬 수 있음을 확신했으나 노무현 정부는 지금까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런 미국식 정책조차 시장원리에 어긋난다며 반대하던 세력들이 모두 한미FTA 체결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이전 필자는 재벌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해배상제,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와 공정거래법 관련 사소 활성화 등 모두 미국식 기업규제 제도의 도입을 주장했었다. 노동시장과 관련해서도 미국식 차별금지를 엄격히 적용하라고 요구했다. 미국식으로 규제완화를 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미국식 규제를 도입하라는 것이 주장의 근거였다.

그런데 모두 우리의 소득수준이 낮아서 또는 미국만 있는 제도니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력히 주장하던 그들이 갑자기 미국식 제도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나선 것이다.

물론 그들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미국식 제도에는 이처럼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고, 서민·중산층을 위한 제도는 빠져있다. 필자를 두렵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미국화가 아니다. 그들은 미국식 제도 중에서 재벌이나 관료, 자본이 싫어할 제도는 모두 제외한 채 오직 경제적 약자들에게만 치열한 경쟁을 요구하는 그야말로 천민자본주의적 미국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의도적 서민·중산층 말살정책

누가 한미FTA 졸속 체결을 주장하는지 똑똑히 보라. 재벌과 투기꾼을 옹호하고, 복지의 확충에 반대하며, 공정한 경쟁을 위한 제도개혁에 반대하던 그들이 모두 나섰다. 한국에 양극화는 없다며 성장률 지상주의를 외치던 그들이 모두 나섰다.

이제 명확하지 않은가?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고통을 받을 때 미국식 해결책을 외면하던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한미FTA를 강력히 밀어붙이는 것은 명확히 의도적 행위임에 틀림없다. 한미FTA를 체결하기 전에 미국식 통상절차법과 무역조정지원법을 제정하라는 요구도 거절했다. 이것은 민주정부의 기본적 절차를 무시하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필자는 지금이라도 노무현 정부에서 앞서 제기한 미국식 개혁제도를 발벗고나서 추진한다면, 한미FTA를 추진하는 진정성을 믿을 용의가 있다. 제도개혁 없는 개방과 무조건적인 개방의 차이는 매우 크기 때문에 제대로 된 개혁만 수반된다면 한미FTA를 통해 커다란 수확을 올릴 수 있다고 필자는 확신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토록 철저하게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미국식 제도는 외면하면서 미국과의 통상 확대만을 주장하는 노무현 정부의 진정성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한미FTA 협정이 발효된다면 우리는 지도자의 무지와 만용이 빚을 참극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