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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간 협약에 따라 고용허가제로 입국해 국내 적응 교육을 받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 고기복
초·중학교 시절 우리 마을에는 부모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사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렇다고 그들의 부모가 돌아가신 것도 아니었다. 부모는 목돈을 마련해 보겠다고 한참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두고 일본으로 떠난 것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고깃배를 타고 일본으로 밀입국해 일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내 친구들 중에도 대부분의 동창들이 대학 진학을 할 때, 진학을 포기했던 몇몇은 일본에 건너가 인생역전을 꿈꾸며 2~3년간 일하다 돌아온 친구들이 있다. 그들이 일본에서 했던 일은 먼저 건너간 동향 사람들을 따라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는 것이었고, 비오는 날이면 동향 어른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금의환향을 꿈꿨다고 한다.

젊었던 그들에게 멍에가 있었다면 가끔씩 있는 '불법체류자' 단속 정도였는데, 제주에서 건너간 사람들은 단속을 피하는 요령을 잘 알고, 서로 가르쳐서 단속에 걸리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듯 내가 학창시절이었을 때는 '불법체류자'라는 말은 해외에 나가 있는 우리 국민들을 지칭하던 말이었는데, 이제는 국내에 들어 온 이주노동자를 가리키는 말이 된 지 오래다.

우리 사회에 이미 20만 명에 이르는 미등록이주노동자, 불법체류자가 있으니 말이다. 그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높아진 우리 경제의 위상과 노동력 부족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시선은 아직까지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동력 부족을 이유로 정부간 협약에 의해 노동력을 수입해 놓고 그들을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하고 점검하는 데는 소홀하다는 것은, 지난해 노동부가 국회 환경노동위에 제출한 자료가 말해준다.

작년의 경우 1월부터 8월까지 외국인 다수고용사업장 647개 업체의 노동관계법 준수여부 점검 결과 무려 81.1%에 이르는 524개 업체가 임금체불 등의 근로기준법을 위반했으며, 위반 건수도 1397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필요해서 불러놓고, 홀대하는 건 무슨 이유?

▲ 손이 잘려나갔지만 보호받지 못한 이주노동자.
ⓒ 고기복
이처럼 노동력 부족을 이유로 들어온 이주노동자에 대한 보호 장치의 미흡과 관련공무원들의 제도 운영상의 무책임과 무관심은 불법체류자가 양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럼에도 정부는 미등록이주노동자를 위한 해법을 찾음에 있어서 가시적 성과만 바라며 전시행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6일 법무부는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주상복합건물 화재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한 몽골 '의인' 4명에 대해 특별체류를 허락했다. 목숨을 걸고 사람의 생명을 구한 타파씨 등 몽골인에 대해 법무부가 '특별 체류'를 허락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가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온 국민의 관심을 받는 몽골 의인에게는 특별한 혜택을 주면서, 왜 다른 미등록자에게는 그리 가혹한가 하는 것이다.

법무부는 몽골 의인 4명의 특별체류 허가 사유로, 한국에 특별한 공헌을 한 사실이 인정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묵묵히 건설현장에서 혹은 우리 국민들이 일하기 꺼려하는 3D업종에서 일한 수많은 미등록이주노동자들에게도 같은 법적용을 할 수는 없는가?

물론 강명득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장에 의하면,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자진 출국을 유도한 뒤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합법적으로 다시 입국할 수 있도록 하되, 현재 고용허가제에 따라 인력송출 양해각서(MOU)가 체결된 9개 나라 출신 이주노동자들을 우선 대상으로 삼을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작년 8월부터 시민사회단체 대표들과의 불법체류자 사면합법화를 위한 논의에서 반복되어온 출입국의 입장으로 전혀 새로운 것이 없다. 한마디로 오랫동안 반복해 왔던 주장을 시의적절하게 공포한 기만적 행위요, 그 기만적 행위에 시민단체가 춤을 추는 판국이다.

그것은 국내에서 합법화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일단 한 번 돌아가면 들어올 수 있는 기회를 고용허가제를 통해 주겠다는 것으로 재입국비자를 내주겠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합법화가 아니라,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이후 비등해진 '이주노동자 인권을 보호하라'는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기만전술이자, 생색일 뿐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숱하게 있어온 미등록자에 대한 선별적 합법화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출입국은 이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매번 시민사회단체의 합법화 요구가 있을 때마다 '더 이상의 합법화는 없다'고 못을 박았던 것이다.

법무부 출입국은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를 계기로 이주노동자 인권보호를 위한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번 몽골 의인들의 특별체류 허가가 숱한 인권침해를 당해온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특별체류를 허가하는 첫 단추가 되길 바라며, 더불어 사는 세상의 초석이 될 수 있도록 전향적인 정책 실시를 기대한다.

태그:#이주노동자, #불법체류자,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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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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