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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3불 정책' 폐지 논란이 일면서 교육과 대입이 다시 한 번 한국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이에 연봉 18억원의 스타강사로 일했던 사교육 현장전문가 이범씨가 표류해온 대입 제도를 비판적으로 돌아보고 대안을 찾기 위한 문답식 글을 보내왔습니다. <편집자주>
▲ 2004년 9월 15일 광주 전남대 용봉홀에서 열린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한 2008학년도 이후 대학입학제도 개선 방안' 공청회에서 참교육학부모회 소속 학부모들이 교육부에 항의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2008 대입제도의 표류

- 3불 정책 논란을 계기로 대학입시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2004년 10월 정부가 발표한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의 골자는 무엇이었는가?
"정부안의 골자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학생부(내신성적이 기록돼 있음)로 대학 가게 하겠다는 것, 둘째는 내신성적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절대평가요소(수·우·미·양·가)를 없애고 학생부에 상대평가적 요소만을 기재하겠다는 것, 셋째는 수능 점수를 없애고 성적표에 영역별(과목별) 등급만 기재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정부안은 결국 실패했다."

- 정부의 대입제도 개선안에 대한 사교육계의 반응은 어땠는가?
"당시부터 입시전문가들 사이에선 '전국 고교 간 학력격차를 반영하지 못하는 내신성적만으로는 변별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상위권 대학들에서 다른 대안을 모색할 것'이라는 견해가 많았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 가능성이 제시됐는데, 이 세 가지 가능성이 나중에 그대로 현실로 나타났다.

첫 번째로 논술고사에 대한 별도의 규제가 없기 때문에 논술고사의 비중과 변별력을 강화해 대응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었다. 이러한 예상은 2005년 서울대를 필두로 여러 대학들이 줄줄이 논술 강화를 발표하면서 현실이 됐다.

두 번째로 수능 등급을 다시 점수화해 활용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었다. 정부 개선안에 '수능 등급을 자격기준으로 활용하는 것을 적극 권장한다'는 문구가 있었을 뿐, 수능 등급을 그 밖의 용도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언론에서 '상위 4% 내에 들어 1등급을 받는 사람이 2만명이 넘기 때문에 수능이 변별력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전혀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였다. 2005학년도 수능부터 이미 수능에서 총점 개념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즉 학생들이 받아보는 것은 '종합 등급'이 아니라 '영역별 등급'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수능 통계를 보면 언어·수리·외국어(국·영·수) 3개 영역에서 동시에 1등급을 받는 학생은 수험생의 1% 내외이고, 탐구과목까지 합쳐서 모두 일곱 과목에서 동시에 1등급을 받는 학생은 0.1% 내외이다. 따라서 등급을 다시 점수화해 변별력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

이런 예상은 2005년 하반기에서 2006년 상반기 사이 각 대학에서 '수능 등급을 점수화해 정시 전형에 반영하겠다'고 발표하고 2007년에 연·고대 등에서 정원의 일부를 아예 수능만으로 선발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역시 그대로 현실이 됐다.

세 번째로 대학들이 '내신 실질반영비율'을 한 자릿수 퍼센트(%)로 낮춰놓은 상황에서 이를 쉽사리 끌어올리지 않으리라는 예상이 있었다. 이것도 그대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 그러한 사교육계의 예상과 별도로, 내신성적을 철저히 챙겨주는 학원이 증가하지 않았는가?
"사교육계에는 다양한 분파가 존재하며 분파에 따라 서로 다른 계산과 반응을 나타낸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수능·논술 전문가는 위와 같은 예상을 하며 관망세로 돌입했지만(결과적으로 이들의 예상이 대체로 맞았다), 내신에 강한 학원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절호의 기회를 최대한 활용했다. 실제로 2005년 이후 내신성적을 철저히 챙겨주는 중소규모 학원이 전국적으로 급증했고 학원을 다니는 고교생 비율이 높아졌음이 실증적인 통계로 드러난다."

▲ 2008학년도에 내신성적 중심 대입제도를 도입한다고 발표된 후 처음으로 중간고사가 치러지던 2005년 5월 3일, 서울 동작구의 한 학원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학원 인근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학생들이 다음날 시험 준비를 위해 다시 학원으로 돌아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덕련

선발 과정 공정성 고민 없이 '내신 강화'만 주장하면 외면 받을 것

- 그렇다면 정부의 대입안이 실패한 원인은 학생들이 내신성적을 챙기기 위해 3년 내내 학원에 의존해 사교육이 오히려 증가했다는 점, 그리고 정부안에 대한 대학 측의 대응을 미리 예상하고 정책을 정교하게 보완하지 못했다는 점, 이렇게 두 가지로 요약되는가?
"그렇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되는 점은, 정책이 실패한 원인이 무엇인지 따져보는 것만큼이나 정책 자체에 어떤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연재글 1회(관련기사 참조)에서 밝힌 것처럼 내신 중심 대입안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전국 고교 간 학력격차를 반영하지 않아도 비합리적이고, 고교 간 학력격차를 반영해서 고교등급제를 실시한다면 연좌제로서 위헌 혐의가 있기 때문이다.

내신 중심으로 학생을 선발하게 하는 순간, 이러한 치명적인 딜레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또한 내신 중심 대입제도는 학생들을 '3년 내내 수험생'으로 전락시키고, 1학년 때 내신성적이 낮은 학생을 좌절시킨다는 문제점을 고려해야 한다."

- 그렇다면 내신을 전혀 대입에 반영하지 말란 이야기인가?
"그렇지는 않다. 내신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학업적 성실성' 측면에서 뛰어난 학생이라고 볼 수 있고, 이런 요소를 적절한 수준으로 반영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 실제로 내신성적은 1980년대부터 꾸준히 반영돼 왔고, 많은 나라들에서 내신성적을 나름대로 주요 전형 요소로 삼고 있지 않은가.

내가 보기에 차라리 2004년에 정부가 '정원의 절반은 내신성적만으로 선발하라, 나머지 절반은 내신과 수능, 논술, 특기내용 등 가운데 자율적으로 고려해 선발하라'는 식으로 현실적인 안을 내놓았다면, 이 정도로 엉망진창인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 교원단체를 포함해 진보진영에서는 '내신 중심 대입제도'를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는데.
"내신중심 대입제도로 획일화하는 것이 진보적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떠한 의미에서건 선발이라는 과정이 존재한다면, 선발 기준에서 공정성이 확보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내신성적만으로 그러한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공정한 선발과정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내신 강화'만 주장하면, 오히려 국민들의 외면을 받고 상황을 더욱 꼬이게 만들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기여입학제와 고교등급제에 대해서는 반대가 많지만, 본고사에 대해서는 오히려 찬성이 더 많다. 이러한 반응이 오로지 일부 보수언론의 왜곡이나 대학들의 흑색선전 때문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실제로 왜곡과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것은 사실이고, 이에 대해서는 이미 부분적으로 연재글 1회에서 반박했다).

내가 보기에 이러한 여론조사 결과의 이면에는 '내신 중심 대입제도'에 대한 피로감과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 해외 사례를 봐도 미국이나 영국 등은 말할 나위도 없고, 대학이 실질적으로 평준화돼 있는 프랑스나 독일에서조차 대학 진학 여부를 내신성적으로 결정하지 않으며 공인기관에서 출제하는 바칼로레아나 아비투어 같은 시험으로 판가름한다.

이런 점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나는 '내신중심 선발 전형'이 일정 비율로 확보돼야 한다고 보지만, '내신중심 대입제도로 획일화'하는 것은 진보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고 본다."

- 그렇다면 본고사 도입에 찬성하는가?
"물론 그건 아니다. 과거 본고사가 시행되던 시절(1970년대 이전, 그리고 1990년대 중반 3년)과 비교했을 때, 지금은 엄청나게 사교육이 발달돼 있기 때문이다. 본고사처럼 고난이도 시험이 도입된다면 엄청난 사교육비 증가로 직결될 것이고, 이것은 국민경제를 파탄으로 이끌 블랙홀이 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대학별 본고사는 OECD 국가 중 일본에서만 실시되는 제도로, 이미 교육비 지출 비중이 일본의 2배나 되는 우리나라 여건에서는 최악의 제도다. 내신성적의 한계와 문제점은 수능과 논술 등으로 보완해야 한다. 본고사 도입은 절대 반대다."

수능=특목고에 대한 혜택?... 수능 가치 재평가해야

▲ 2005년 5월 7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열린 '입시경쟁 교육에 희생된 학생들을 위한 촛불 추모제'에 참가한 학생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연·고대 등에서 일부 학생을 수능만으로 선발하는 것이 특목고에 대한 특혜라는 주장이 있다.
"특목고가 수능 전문 학원이라면 '특혜'라는 지적이 맞다. 그러나 실제로 특목고가 수능 전문 학원인가? 특목고가 수능 전문 학원화하는 것을 막고 싶다면, 특목고의 교과과정 운영을 적절히 감독해서 제어해야 한다.

실제로 외국어고는 제2외국어에, 과학고는 실험교육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즉 교과과정 운영이 일반고에 비해 특별히 수능에 최적화돼 있다고 보기 어렵다. 참고로 나는 특히 외국어고 설립 취지에 맞게 제2외국어의 교과비중을 지금보다 대폭 높여야 하며, 심지어 제3외국어를 도입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 일반고에서 수능을 대비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불리하지 않은가? 난이도가 들쭉날쭉한 점 등 수능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데.
"7차교육과정 이후(2005학년도 대입 이후) 수능 범위에서 고등학교 1학년 때 배우는 내용은 제외된다. 그 범위는 고등학교 2, 3학년 때 배우는 내용으로 제한된다(유일한 예외가 있는데, 사회탐구 선택과목인 '국사'는 고 1 때부터 배운다).

그런데 일반고의 고 2, 3 때 배우는 내용은 대체로 수능 과목과 겹친다. 그리고 도입 초창기에는 학교가 수능에 적응하지 못해 사교육 수요를 키웠지만, 수능이 10여년 동안 치러지고 수능 유형과 난이도가 안정화되면서 학교도 수능에 나름대로 적응했다(다만 일부 과목에서 지나치게 쉽게 출제돼, 한 문제만 틀려도 3등급이 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부분적으로 보완할 필요는 있다). 게다가 EBS, 곰TV, 강남구청 등에서 다양한 무료강의 콘텐츠가 공급되고 있기에 사교육비를 억제하는 데에도 비교적 유리하다.

내가 보기에 지금 여건에서 '한 큐'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차선을 찾아내려는 정신이 중요하고,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수능시험의 가치를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 현실적으로 수능 중심 선발제도가 특목고생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틀림없지 않은가? 특목고 문제가 심각한 현실에서, 대입제도가 특목고생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면 문제가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특목고가 초중등학생들의 사교육비를 급증시킨 주범이고 건전한 학습문화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점을 나도 매우 우려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안은 외고 입시에서 일정 수준의 외국어 능력이 검증된 학생들을 대상으로 추첨제를 도입하는 등의 방식이어야지, 정부안처럼 외고 입시에서 내신 비중을 강화한다든지 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대응이다. 외고 입시에서 내신 비중을 강화하면, 대입에서와 마찬가지로 내신성적 스트레스와 내신 대비 사교육 증가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에 대입에서 추첨제를 도입할 힘은 없지만, 특목고 입시에서 일정 수준의 외국어 능력이 검증된 학생을 대상으로 추첨제를 도입할 정도의 힘은 있다고 본다. 아울러 일반고의 교육환경을 대폭 개선하고, 일반고에서도 원하는 학생들에게 더 깊이 있는 외국어교육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 등이 대안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목고 문제에 대해서는 연재 제3회에서 자세히 논하기로 하자."

수능중심 전형과 내신중심 전형을 공존시켜야

- 그렇다면 수능 중심 선발을 용인하자는 것인가? 내신 중심 선발이 더 늘어야 하지 않나?
"수능 중심 선발도 용인하는 한편, 내신만으로 선발하는 비율도 지금보다 높여야 한다. 서울대는 그나마 정원의 3분의 1 가량을 내신 중심으로 선발(지역균형선발)하겠다고 발표했다(지역균형선발에서도 논술과 구술면접시험을 보지만, 이 때문에 합격 여부가 바뀌는 비율은 열 명 중 한 명 꼴밖에 안 된다). 그 밖의 상위권 사립대의 경우 내신 중심으로 선발하는 전형의 정원 비율이 10% 내외밖에 안 되는 등 지나치게 낮다.

수능 중심 선발과 관련해 또 하나 고려해야 할 점은 비평준화 지역 학생이나 검정고시생에 대한 배려다. 수능 중심 전형이 발표되자마자 '특목고 특혜' 시비부터 터져 나오는 것은 전형적인 대도시 중심 사고방식이다.

아직도 전국적으로 20%가 넘는 중소도시 학생들이 비평준화 지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비평준화 지역의 상위권 고등학교 학생들은 어쩌란 말인가? 이들이 상대적으로 목소리도 작고 중앙 언론의 관심대상에서 벗어나 있어서 그렇지, 수능 중심 선발 같은 '탈출구'가 없다면 이미 1, 2학년 내신성적에서 좌절을 맛본 이들의 절망감과 박탈감은 심각한 수준에 달할 것이다.

예를 들어 비평준화 지역 가운데에는 연합고사도 보지 않고 중학교 내신성적만으로 고등학교 입학이 결정되는 지역이 꽤 있다. 이런 지역에서 중학교 때 공부를 잘 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상위권 고등학교에 진입하게 되고, 여기서 내신성적에서 좌절을 맛본다. 이들을 도대체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

- 글 앞부분에서는 내신중심 대입제도로 획일화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뒷부분에서는 수능중심 선발을 용인하자고 하는 등 전체적으로 보수언론이나 대학들의 주장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을 논한다면 이야기가 이렇게 복잡해지지 않을 것이다. 단기적인 대책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오해할 소지가 있는 것뿐이다. 정리해 보자. 일단 내신 중심 대입제도로 획일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실현 가능하지도 않다.

그렇다면 당면한 이른바 내신·수능·논술이라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트라이앵글'의 결정적인 문제는, 여러 가지 전형 요소를 합산할수록 부담감과 사교육비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대입 전형요소가 복합적일수록, 사교육비를 지출할 여력이 있고 정보력 있는 계층에 유리해진다. 즉 트라이앵글의 주된 문제는 '합산' 문제라는 점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여러 전형요소를 합산하는 대신 한 가지 전형요소만으로 선발하는 것이 단기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단기적으로 '수능+내신+논술' 식으로 세 가지를 합산해 선발하는 비율을 줄이고, 수능'만'으로 선발하는 전형을 용인하는 한편 내신'만'으로 선발하는 비율을 늘리자는 것이다.

즉 대학들에 대한 요구의 핵심은 그저 '내신 반영비율을 높여라'가 아니다. 그랬다간 트라이앵글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보다는 '내신중심 선발 전형의 정원 비율을 높여라'라고 요구해야 한다. '합산해서 한 줄로 세우기'가 아니라 '여러 기준으로 여러 줄 세우기'로 분산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단기적인 대책이다.

그리고 내신중심 선발 전형에서는 고교등급제를 은밀하게 실시하는 것을 철저히 막아야 한다. 여러 사립대에서 실질적으로 고교등급제를 실시하다가 두 차례에 걸쳐 적발됐는데, 앞으로도 연·고대 등을 중심으로 이런 시도를 계속할 가능성이 있다.

즉 내신중심 전형을 서울대처럼 전체 정원비율의 3분의 1 이상으로 높이되, 그 전형에서는 고교등급제 도입을 철저히 막자는 것이다. 사실 이것도 지금의 세력관계에서는 실현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대책이다. 중장기적인 대책은 이후 연재분에서 논하기로 하자."

▲ 참교육학부모회는 지난해 11월 21일 서울대 정문 앞에서 '본고사형 논술'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김현수

논술, 또 다른 본고사인가

- 최근 입학처장들이 교육부에 '논술 가이드라인'을 완화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교육부의 '논술 가이드라인'은 무엇인가?
"현재 본고사는 금지돼 있지만 논술은 허용되고 있다. 그런데 본고사와 논술의 경계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자, 교육부가 2005년에 '논술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다음 네 가지 유형을 금지했다.

첫째, 객관식이나 단답형 문제는 안 된다. 둘째, 특정 과목의 암기된 지식을 묻는 문제는 안 된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구체적으로 '노동 3권이 무엇인지 쓰시오'라는 식의 질문은 안 된다고 예시했다. 셋째, 수학과 과학에서 풀이과정과 정답을 요구하는 문제는 안 된다. 넷째, 외국어 제시문은 안 된다.

이 중 입학처장들의 주된 요구는 셋째 기준을 완화해 달라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자연계열(이과) 논술에서는 서울대를 필두로 여러 대학들이 수리·과학 논술을 도입하고 있고, 여기서 세 번째 기준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 수학이나 과학 소재 문제를 출제할 때 풀이과정과 정답을 요구하는 문제를 피해가면서 출제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한가?
"물론이다. 예를 들어 서울대 예시문제와 모의고사 문제들에서 '카세그레인식 망원경 문제'나 '개미-코끼리 문제' 등은 다양하고 창의적인 답안이 나올 수 있다. 일부 외국 문제를 표절한 혐의가 있는 등의 문제점이 엿보이지만, 어쨌든 문제 '유형'만 보면 다양한 답을 유도해 창의력을 평가하겠다는 의도에 부합한다. 실제로 서울대가 제시한 평가기준에서 창의력이 40%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결국 가이드라인의 세 번째 규정을 완화해 달라는 것은 수학·과학 본고사를 도입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 이미 일부 문제엔 본고사적인 요소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런 문제들이 섞여있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서울대 예시문제와 모의고사 문제들 가운데 타원 문제나 은하 문제 등에선 사실 다양한 답안이 나오기 어렵다. 사교육계에서는 이런 문제를 우스갯소리 삼아 '소몰이 문제'라고 부른다. 즉 출제자가 미리 특정한 답안의 방향을 설정하고, 학생들을 그 방향으로 몰아가면서 출제자가 의도한 답안이 나오는지 여부에 따라 점수를 주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로는 서울대가 스스로 가장 중시하겠다고 표방한 창의력이라는 요소를 평가하기 어렵다. 즉 문제 유형과 평가 기준이 서로 모순된다. '논술 가이드라인'은 아슬아슬하게 피해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본고사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고 본다. 이를 어떤 방식으로 규제할지가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대학 측도 더 깊이 고민하고 연구해야 한다."

- 일각에서는 수학이나 과학 실력이 좋은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세 번째 가이드라인을 완화하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논술고사에는 규제가 있지만 구술·면접고사에는 아무런 규제가 없고, 이미 본고사와 다름없는 문제들이 많이 출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대 자연계열의 경우 특기자전형 구술면접에서는 수학 및 과학과목들 가운데 한 과목을 선택해 치르고, 정시전형 구술면접에서는 수학 필수에 과학 과목 가운데 한 과목을 추가해서 두 과목을 치르게 돼있다.

그런데 이 문제들은 수준이 아주 높고(특히 특기자전형 구술면접은 고교 수준을 거의 벗어나 있다), 풀이과정과 정답을 요구하는 본고사적 유형들이다. 어떤 문제는 AP 미적분학 책에 나와 있는 문제를 그대로 내는 등 아주 가관이다. 고려대 이과 심층면접 문제들도 수학 본고사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 논술에까지 이런 문제들을 도입하겠다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내가 보기엔 심층면접보다 논술이 채점하기 편하니까 그런 게 아닐까 싶다."

- 구술면접 문제의 난이도나 출제범위가 정상적인 고교 교과과정에서 벗어난다면 이것도 규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대학교수들도 답답할 것이다. 특히 상위권 대학의 자연대·공대 교수들의 고민이 많다. 이들은 이공계 기피현상과 의학계열 쏠림현상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구술면접이나 논술 가이드라인 관련 논란엔 현실적으로 이과 최상위권 학생들이 대부분 의학계열로 진학하는 현실에서, 과학고 출신을 더 많이 유치해 대응하려는 의도가 개입돼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이 문제는 이공계열 기피 문제, 특목고 문제, 고교 교육과정 문제, 그리고 교육부가 장기적인 도입과제로 상정하고 있는 AP제도(Advanced Placement, 대학과목 선수수업제도) 등과 결부해 좀 더 깊이 논의해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차후 연재 제5회에서 공교육 문제를 다룰 때 더 깊이 있게 논의하기로 하자."

- 인문계열(문과) 논술의 경우 논란의 여지가 없는가?
"문과 논술은 상대적으로 본고사 논란에서는 자유로운 편이다. 하지만 문과 논술이건, 이과 논술이건 간에 현실적으로 학교에서 대비해주기 어렵고 이 때문에 사교육 수요가 커진다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논술고사는 우리나라 학교의 교과운영을 선진화하는 데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단순히 '사교육비 부담을 가중시키므로 없애야 한다'고 치부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이 또한 연재 제5회에서 다시 논하겠다."

태그:#대입, #내신, #논술, #학생부,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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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yibohm@hanmail.net) 기자는 메가스터디 창립멤버로서 기획이사이자 연봉 18억원을 받는 스타강사로 활동하던 중, 2003년 말 은퇴를 선언하고 2004년부터 4년째 무료 인터넷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곰TV/곰스쿨닷컴과 EBS를 통해 수능 과학탐구 및 자연계열 논술 강의를 하고 있고, 곰TV를 운영하는 그레텍(주)의 교육사업총괄이사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이범, 공부에 反하다>(2006)가 있습니다. '이범의 한국 교육 발가벗기기'는 3불정책(1회), 트라이앵글(2회), 특목고(3회), 사교육(4회), 공교육(5회), 대안(6회) 등 모두 6회 연재됩니다. 이 목차는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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