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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촉발한 '무능 공무원 퇴출제'에 대한 찬반 논란이 거센 가운데, 한 6급 국가공무원이 <오마이뉴스>로 익명의 기고 글을 보내왔다. 퇴출 방법에 대한 이견은 있지만 최상의 행정 서비스를 누릴 국민들의 권리를 위해 퇴출제에 '찬성'한다는 주장이다. 반대 측 기고도 환영한다. <편집자주>
▲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서 11일 '공무원 퇴출제'에 대해 전국 19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과반수가 '무능·태만 공무원'에 대한 의무 퇴출계획에 찬성했다.
ⓒ 리얼미터

최근 사회 이슈 가운데 한 가지는 서울시가 추진 중인 '무능공무원 퇴출제'다. 이 이슈는 이제 중앙부처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필자의 생각을 먼저 밝히면 필자는 서울시의 '무능공무원 퇴출제'로 불거진 공무원 사회의 이른바 '철밥통 깨기'를 지지한다. 아울러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진정한 '철밥통 깨기'가 이뤄지길 바란다.

그런 측면에서 서울시가 추진한 공무원 퇴출제는 찬성하지만, 방법은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그에 대응하는 공무원노조는 '그들만의 단결'로 더욱더 국민들에게 외면 받을 길로 접어들었다.

'나만 죽을 수 없다'는 발상에 따른 '퇴출제'는 동의 못해

"돌이켜보면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는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오륙도'와 '사오정'을 넘어 '이태백'에 이르기까지 실업과 관련된 자조적 상징어들이 속속 등장했다. 언제 그만두어야 할지 모르는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보다 훨씬 적은 봉급을 받는 비정규직 종사자들은 오늘도 정규직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그런데 유독 공무원만은 파면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을 받지 않으면 정년이 보장되는 안락한 삶을 살고 있다."

'무능공무원 퇴출제'를 지지하는 홍성걸 국민대 교수가 <세계일보>(3월 12일)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이처럼 일반 기업에서 불고 있는 평생직장 파괴는 종종 공무원 조직의 철밥통도 깨져야 한다는 논리적 기반으로 활용된다. 즉 국민들은 이미 직업 안정성을 잃은 힘든 노동현실에서 살고 있는데 공무원만 아무런 걱정 없이 편하게 사느냐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런 논리로 강요하는 공직사회 철밥통 깨기는 바람직하지 않다. IMF 이후 한국 사회에서 약화된 노동자들의 처지, 그것도 무척 반노동자적인 그 처지를 공무원들도 함께 느껴야 한다는 주장과도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그런 주장은 '나만 죽을 수 없다'는 반공동체적 발상에 근거한다. 그 발상은 궁극적으로 연대가 필요한 노동자들 사이의 이간과 분열까지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공무원 사회의 '철밥통 깨기'는 다른 각도에서 제기돼야 한다.

언제까지 국민들이 '그들만의 편안함'을 봐 줘야 하나

공무원 사회에서 철밥통 깨기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제야말로 공무원들이 국민들에게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과거 독재정권 시대에 공무원들은 독재 권력에 직접 편승하지 않았더라도 그 권력의 부산물인 권위주의 의식에 길들여졌다. 그 결과 크고 작은 부정부패가 나타나고, 행정서비스에서 불손함도 적지 않게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가 성장한 요즘시대에도 공무원만이 국가를 운영한다는 정책 독점 형태로 나타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직업 공무원제의 미명 아래 '그들만의 편안함'을 탄탄히 누리고 있다. 굳이 큰 노력과 성과 없이도 먹고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정년은 철저히 보장되고, 임금체불 걱정도 없고, 적당히 제자리만 지키고 있어도(무사안일) 몇 년에 한 번씩 승진도 이뤄지며(연공서열) 그만큼 임금도 인상된다. 이런 환경에서 굳이 공무원들이 의식과 관행의 변화를 꾀할 이유를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언제까지 국민들이 '그들만의 편안함'을 봐 줄 이유는 없다. 국민에겐 당연히 공무원들에게 최상의 행정서비스를 - 민원뿐만 아니라 각종 정책추진까지 - 요구하고 그것을 누릴 권리가 있다. 혹자는 공직자의 직업윤리를 강조해 이런 의식과 관행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 '도덕'은 '편안'을 눌러 앉힐 만큼 절실하지도 강하지도 않다.

이 지점에서 바로 공무원 사회의 그 편안함은 이제 그만 사라져야 하고, 그 의식과 관행에 제동을 거는 브레이크로 '철밥통'을 없애는 제도가 필요하다. 아울러 그동안 무사안일을 유지해온 승진 제도 등 계급제의 잔재를 없애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서울시의 '퇴출 공무원제', 대상과 방법이 문제다

▲ 오세훈 서울시장.
ⓒ 오마이뉴스 남소연
'실·국별로 불성실 공무원 명단을 3%씩 작성해 4월 정기인사에 적용한다. 불성실 공무원을 타 부서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현장시정추진단에 배치한다. 그곳에서 6개월 동안 근무한 후에도 타 부서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직위해제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면직 처리한다.'

서울시의 퇴출 공무원제와 관련한 언론 보도는 이 정도로 요약된다. 그밖에도 풍문처럼 떠도는 얘기들이 있으나, 무능력자가 아닌 이런저런 공무원이 대상이 됐다는 식으로 대부분 퇴출공무원 제도를 조롱하는 내용이 많다.

언론보도로만 판단하자면 서울시가 이번 퇴출 공무원제도를 도입하면서 두 가지 점에서 잘못했다고 본다.

첫째는 하위직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제도 안착과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선 간부급, 후 하위직' 퇴출이 적절하지 않나 싶다.

공무원 사회의 낡은 의식과 관행을 고쳐나가자면 그 의식과 관행이 집약된 곳을 수술해야 한다. 그렇게 집약된 곳이 바로 간부다. 간부 한 명이 문제면 그 간부가 관리하는 조직은 변화할 수 없다. 이번 퇴출제로 하위직 공무원들을 몇 명 퇴출한다고 하더라도 과장이나 실·국장이 바뀌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설령 오세훈 시장의 임기 3년 동안 그 변화가 아무리 크더라도 임기가 끝나면 과거로 회귀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관행과 문화를 용인하거나 부활하는 데 간부들은 일등 공신으로 처신할 것이다.

이는 이번 제도 시행 과정에서 제비뽑기로 대상자를 뽑았다가 징계를 당한 부서장을 통해 간접 확인한 바 있다. 그 정도의 리더십을 지닌 간부가 한 부서를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 서울시 간부 역량의 단면을 보여준 셈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경향신문>(3월 16일)이 보도한 "고위 공직자에게는 정년보장을 위해 산하 공사·공단에 파견을 보내거나 재취업 등의 편의를 주고 있"는 점과 "이번 퇴출에서 4급 이상 고위 공무원은 포함시키지 않기로 했다"는 점이 사실이라면 서울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둘째, 3%를 퇴출하는 과정의 문제다. (이 문제의 근원은 공무원 사회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평가제도에 있을 것이다. 이러한 운영의 허상은 기회가 되면 따로 밝히겠다.) 이번에 서울시는 3%의 대상을 선별하는 전권을 실·국장들에게 줬다.

이로 인한 문제는 이미 여러 언론에서 보도됐다. 바른 말을 해 간부들에게 밉보인 직원들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든지, 실·국장들에게 줄서기 문화가 횡행할 것이라든지 하는 점이다. 이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이로 인해 공정성 시비마저 불거지고, 더욱이 그 실·국장이 무능한 사람이라면 제도의 신뢰성은 더 회복되기 어렵다.

따라서 이 같은 제도를 보완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공무원 평가제도야 여전히 연공서열이니 무시하더라도, 최소한 직원들의 다면평가를 실·국장이 선별하는 과정부터 도입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서울시의 이번 계획에 다면평가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적용하는 단계에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서울시청의 한 구성원인 노조의 의견을 듣는 것도 중요한 절차다. 물론 이 절차에는 노조 역시 일정하게 자기반성부터 해야 그 자격조건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 전공노 대구경북본부는 19일 오전 대구시청 앞에서 공무원 퇴출제 반대 회견을 열었다.
ⓒ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대구경북본부

공무원 노조, 먼저 말보다 진정성을

"인력 구조조정이나 개편은 조직 내부의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야만 성공할 수 있다. (중략) 부서에 강제 할당된 3% 정기적 퇴출제도는 일은 잘하나 상급자와 인맥관리(학연, 지연, 혈연)를 잘 못하는 대다수 성실한 공무원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준다."

서울시의 '퇴출 공무원제'에 대해 서울시 노조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그 반대의 목소리를 가만히 듣다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서울시 노조는 방법상의 문제점에 집중한다. 정작 오세훈 시장이 "우리의 피와 땀을 좀먹고 있는 극소수의 부적격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이를 거부한다면 퇴출시키"겠다고 한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서울시 노조의 입장을 찾아볼 수 없다.

서울시 노조에서 오 시장이 말한 그 필요성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동의한다면, 노조는 진작 그런 부적격한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한 자기노력을 했어야 했다. 동의하지 않는다면, 노조는 국민에 대한 행정서비스를 외면하는 꼴이다. 어느 조직에나 있기 마련인 '부적격한 사람'을 서울시에만 없다고 말할 배짱은 없을 것이다.

서울시 노조는 우선 오세훈 시장이 언급한 그 필요성에 동의하는지 여부부터 밝혀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동의한다면 오 시장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퇴출할 공무원을 선별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만일 오 시장이 그런 테이블을 거부한다면 노조가 먼저 그 퇴출 공무원을 선별하는 방법을 대안으로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노조가 진정으로 공직사회의 변화와 필요성을 느낀다면 "일은 잘하나 상급자와 인맥관리를 잘 못하는 대다수 성실한 공무원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제도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서울시 노조가 지녀야 할 진정성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서울시 노조는 '불안한 3%'를 보듬기 위해 최상의 행정 서비스를 받아야 할 국민의 권리마저 가려버리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는 공공부문 노동운동이 깊게 고민해야 할 대목을 너무 쉽게 외면했기 때문일 터이다.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단지 노동자들의 이익만 주장할 수는 없다. 노동자의 이익이 곧 공공의 이익에도 부합해야 한다. 물론 그것이 쉽지는 않지만, 불행하게도 서울시 노조는 이제 그 답을 진정으로 찾아야 할 처지다. 이를 외면하면 할수록 서울시 노조뿐만 아니라 전국의 공무원 노조까지 국민들에게 고립되는 상황을 면치 못할 것이다.

태그:#공무원 퇴출제, #철밥통, #서울시,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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