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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은 과거와 현재가 혼재되어 있는 듯했습니다. 아직 교통 체계에 대한 개념이 자리잡지 못한 듯했습니다.
ⓒ 이승숙
마음이 있으면 거리는 문제가 안 된다

‘도시는 선이다’라고 누가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도시는 약속이다’라는 말을 보태고 싶다. 도시는 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그 도로 위로는 서로 약속 하에 차들이 달린다. 멈출 곳에서는 멈추고 가야할 때는 간다. 서로 약속된 믿음 아래 차들은 선 위로 달리는 것이다.

한 집에 한 대씩 차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는 교통질서도 가히 선진국 수준이다. 가야할 곳에서 가고 멈춰야 할 곳에서는 멈춘다. 그렇게 서로 약속된 믿음 아래에서 차와 사람은 조화롭게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 가보니 아직은 서로 약속에 익숙한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중국은 과거와 현재가 서로 뒤섞여 있었다.

새벽 12시가 다 된 시간에 출입국사무소를 빠져 나오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중국에 살고 있는 내 외사촌 오라비였다. 오라비는 그가 살고 있는 염성에서 연운항까지 장장 몇 시간을 달려왔다. 먼 거리를 달려온 외사촌에게 고맙다는 치사를 했더니 외사촌이 그러는 거였다.

“괜찮다. 마음이 있으면 거리가 무슨 상관이겠니? 이 정도 거리는 중국에서는 이웃 마을 놀러 다니는 기분으로 간다. 나도 저녁밥 먹고 이웃집 나들이 한 기분으로 나섰으니까 마음 안 써도 괜찮다.”

중국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 걸까? 외사촌은 중국 사람처럼 말하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거리로 치자면 거의 대전 정도까지 거리일 것 같은데 그 정도 거리를 이웃 마을 나들이 한 셈 치다니 새삼 중국 땅덩어리가 넓긴 넓구나 싶었다.

밖에는 차가 한 대 기다리고 있었다. 외사촌의 중국 지인이 차를 빌려준 거였다. 머리를 며칠씩 감지 못했는지 부수수한 머릿결을 한 기사가 얼른 차에서 나오며 차문을 열어 주었다. 그에게서는 담배 냄새가 났다. 나중에 알았지만 중국의 남자들은 담배를 엄청 많이 피웠다. 만나면 담배를 나누는 게 첫인사였다.

▲ 장쑤성은 몇 시간을 달려도 평지였습니다. 길 또한 쭉쭉 뻗어 있었습니다. 땅이 여유로워서 그런지 왕복 6차선의 도로일 경우 길 가엔 화단이 있고 그리고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길이 나있었습니다.
ⓒ 이승숙
역주행을 해도 서로 잘 피해서 가네

차는 연운항 시가지를 빠져나와서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늦은 밤이라서 그런지 고속도로에는 차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왕복 4차선인 도로를 한참 달렸지만 오가는 차는 거의 없었다.

한 10분쯤 달렸나? 연신 표지판을 보며 운전하던 기사가 뭐가 잘못 됐는지 길 가에다 차를 세우는 거였다. 길을 잘못 들었단다. 그러면서 차를 돌려야겠다고 했다.

한국에서라면 길을 잘못 들어섰을 경우 다음 나들목까지 가서 빠져나온 다음에 바른 길로 재진입을 하는데 그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고속도로 위에서 그냥 차를 돌리는 거였다. 그리고 역주행을 하기 시작했다. 한밤중이라서 그런지 다니는 차들은 거의 없었지만 역주행이라니 참 희한했다. 그래서 물어봤더니 중국에서는 이렇게 역주행하는 경우도 있단다. 먼 거리가 아니고 짧은 거리일 경우 역주행해서 빠져 나오기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역주행을 하며 달리는데 저 앞에서 우리 쪽으로 달려오는 차의 불빛이 보였다. 그러자 기사가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달려오던 그 차가 옆 차선으로 옮겨가며 지나가는 거였다. 역주행을 하는 사람도 또 그걸 보는 사람도 아무렇지 않은 듯이 여겼다.

중국엔 우리와는 다른 약속이 있었던 거였다. 역주행을 해도 서로 알아서 잘 피해가는 약속이 있었던 거였다. 차가 많이 다니지 않다보니 그런 예외의 약속도 지켜지는 모양이었다.

늦은 밤까지 일을 하는 그 기사에게 미안해서 이런 저런 질문을 했다. 그 사람은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는 딸이 있다고 하였다. 초등학생을 둔 아버지라면 나이가 마흔 정도는 될 것 같았는데 예상 밖으로 그 사람 나이는 삼십대 중반 밖에 되지 않았다.

중국 남자들은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결혼을 일찍 한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군대를 갔다 오고 기반을 잡기까지 시간이 있지만 중국은 군대를 가지 않으니 대학 졸업과 함께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 하였다. 가만히 속으로 셈해 보니 우리나라보다 3년 정도는 빠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차창 밖으로 본 거리의 풍경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승숙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작은 선물들

마침 내 가방에는 껌이 들어 있었다. 그 껌은 인삼 껌이었다. 껌을 하나 나눠주었더니 기사가 한국 인삼 껌이냐고 했다. 우리는 잠시 동안 한국 인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중국 사람들은 한국 물건에 대해서 큰 호감을 갖고 있는 듯했다. 이번 여행길은 초행길이라서 미리 준비하지 못했지만 다음에 또 중국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간단한 문구류와 담배, 그리고 사탕 같은 과자류를 좀 사가지고 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별로 비싸지 않은 문구류들, 이를테면 볼펜이라든가 지우개 같은 것은 어린 학생들을 만나서 이야기 나눌 때 요긴하게 나눠줄 수 있는 선물이 될 것 같았다.

담배의 경우는 남자들과 이야기를 틀 때 아주 좋은 매개체가 될 거 같았다. 외사촌의 중국 지인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가 많았는데 그 때 보니까 그들은 계속 담배를 서로 나누었다. 만약 그런 자리가 있다면 한국 담배를 선물로 주면 한국 물건에 대한 홍보도 될 것 같았다.

고속도로를 역주행하기까지 하면서 우리는 며칠간 머물 염성을 향해 나아갔다. 어두운 창 밖을 보니 계속 평평한 들판이 이어졌다. 밤이라서 그런지 불빛도 별로 없었다.

여기가 어디쯤일까. 이 지점은 내가 일고 있는 중국 역사 속의 어디를 차지하고 있는 걸까. 드넓은 들판을 달리면서 여기도 초패왕 항우의 영토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글로만 대하던 중국을 이제 날이 밝으면 직접 밟고 다닐 수 있게 되다니, 나는 행복한 마음으로 염성의 불빛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 30일부터 2월 5일까지 중국 장쑤성을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책으로만 봐왔던 중국을 직접 내 눈으로 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중국을 다녀오고 나니 새로운 생각들이 듭니다.
세상은 참 넓구나란 생각도 들었고 그리고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똑같다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 내 나이가 결코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는 아직 늦지않은 나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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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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