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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현덕 경인TV 임시 공동대표가 지난해 10월31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다른 임시 공동대표인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이 `미국 스파이`라고 증언해 파문이 일었다. 신현덕 공동대표(왼쪽)와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이 국감장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공익적 민영방송'이란 말이 새롭다. 방송사의 형태가 민간 자본에 의한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이긴 해도, 구조만은 공영적 성격을 띤다는 의미이다. 실현된다면, 공기(公器)인 전파를 빌려 쓰는 다른 여러 방송에게도 타산지석이 될 만한 구조이다. 이 실험을 그간 희망조합이 일궈왔다.

그들은 우선 동양제철화학으로부터 경인지역 지상파TV 사업권을 빼앗았다. 방송을 운영하기에 부적절한 기업이라는 명목으로 말이다. 그들은 무려 2년 넘게 월급 한 푼 받지 않으며 후과를 담당했다. 그리고 기업 이윤 상당액을 복지 사업을 위해 기부해온 영안모자라는 기업과, 암울했던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도 올곧은 소리를 내왔던 CBS를 앞세워 경인TV 사업자 선정이라는 결과물을 도출했다.

그런데 지금 예기치 못한 난관이 발생했다. 영안모자의 백성학 회장과 CBS 사이에 '미국 정보기관원 활동 의혹'을 놓고 벌어진 논란 때문이다.

내용은 이렇다. 영안모자 백 회장이 여러 해 동안 국내 정세자료를 모아 미국 정보기관에 보냈다는 주장이다. 이를테면 '미국 스파이'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 점을 CBS가 줄기차게 이슈화해왔다. 이에 백 회장은 강력하게 부인하며 '장사만 해왔다'며 반박했다.

그러나 CBS는 수차례의 폭로를 통해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애썼다. 이러한 '과거 동업자의 이전투구'의 시시비비는 현재 검찰의 몫으로 넘어간 상태이다. 이 와중에 방송위원회는 사업자에게 줘야 할 허가추천을 보류해버렸다. 그리고 20일 최종 결론을 내린다고 하는데 도처에 난제들이 복병처럼 숨어있어 귀추가 불투명하다.

희망조합에 '호시우보'의 자세를 주문한다

이런 와중에 희망조합 구성원이 속해있는 경인TV측 '사원 일동'은 사실상 백 회장 편에 서서 CBS를 공격하고 있다(실제 희망조합 이름의 성명이 나온 것은 보지 못했다. 지금 희망조합은 방송위원회에서 '조속한 재허가 추천'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 신현덕 경인TV 임시 공동대표는 지난해 10월31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다른 임시 공동대표인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이 `미국 스파이`라고 증언해 파문이 일었다.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과 신현덕 임시공동대표가 국감장에 나란히 앉아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CBS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경인TV는 CBS가 경인TV의 실질적 헤게모니인 보도와 경영권을 노렸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사실 여부와는 무관하게 개국 전부터 회자된 소문이다. 문제제기나 진상규명을 요구하려 했다면 진작 하는 것이 옳았다. 적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경인TV 구성원의 원성, 그 본질은 '다 된 밥에 재 뿌린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그도 그럴 것이 허가와 개국이 목전에 다가왔는데 이 와중에 동업자였던 CBS가 이런 식으로 어깃장을 놓고 있으니 얼마나 야속하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적의감이 드는 대상이 자신의 사주를 지칭해 '미국 정보기관원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면, 또 '다른 방송은 빨갱이 방송이다. 한나라당 집권하면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면, 일단 진위 여부를 가리는 작업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결과물을 납득하게끔 대중 앞에 공개하는 것이 온당치 않을까.

실로 불행한 가정(假定)이다만, 이 역할과 발언을 실제 백 회장이 담당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특정 정당에 대한 편향적 입장을 가졌으면서도 외세에 민족혼을 파는 사람에게 지상파 방송을 넘겨준다는 논리인데, 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CBS의 '야심'이 만만(滿滿)한 것과는 별개로, 온 양심적 세력이 쌍수를 들어 허가추천을 막아야 할 사안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동양제철화학의 사주가 희망조합에 의해 퇴출됐을 당시, 자본가들은 똑똑히 인식했다. '공공의 것인 전파는 누구에게나 임대할 수 없는 것'으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희망조합의 새 파트너는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공익적 민영방송의 정신을 상징할 존재로서 말이다.

실제 백 회장은 그 기대를 한 몸에 받아왔다. 하지만 지금 중대 기로에 섰다. 사실 공익적 민영방송은 희망조합이 주축이 된 방송사가 개국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방송사가 존재하는 한, 영원한 숙제가 될는지 모른다.

때문에 이 상황을 바라보는 희망조합의 감회는 실로 착잡할 것이다. 그러나 좌절, 분노, 조급함은 이 시점에서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냉철함만이 필요할 뿐이다. 물론 고충이 심할 줄 안다. 그러나 '공익적 민영방송'이라는 큰 바다로 가는 길에 험로가 없을 수 있겠나. 그래서 호시우보(虎視牛步, 호랑이처럼 냉철하게 보되 소처럼 걸어라)의 자세를 주문하고 싶다.

백 회장 의혹, '그때 가서 생각할 일' 인가?

하지만 근자에 '경인TV 사원 일동'이라는 명의로 주요 신문 지면을 통해 표면화되는 '백성학 구하기' 투쟁과 캠페인은 많은 의문을 남긴다. 여기서 희망조합은 '경인TV 사원 일동'에 자동적으로 묻힌 종속변수인가, 아니면 별도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 주체인가 말이다. 혹여 전자라면 백 회장에게 완전히 예속된 진영논리에 매몰됐다는 평가를 지우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희망조합이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백 회장에 대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에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밝혔다. 희망조합 차원에서 사주인 백 회장을 축출하겠다는 의지인지 정확한 본의를 파악하기 힘들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문제가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냐 하는 점이다.

경인TV가 최근에 낸 선언문에 CBS의 역사를 칭송하는 대목이 있다. '한국 교회의 양심을 대변했고 암울한 시대에 언론의 정도를 지킨 보기 드문 언론'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CBS의 역사도 반추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수 년 전 사장이 모 정당 대표에 '축 총선 승리'라는 화환을 보내고 대통령에게 '충성 편지' 쓴 일이 단초가 돼서, 노조원이 1년에서 딱 100일 모자란 265일 간 파업을 벌인 사실 말이다. 구조조정에 대응하기 위한 것도 아니요,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것도 아닌 '지상파 방송 사장의 부적절한 자질'을 문제 삼아 9개월 가까이 급여를 마다하며 투쟁한 사안이다. 지사적인 결의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열매는 달았다. CBS는 그 뒤로 기독교계의 몇몇 헤게모니 세력과 결별한 공적 조직이 됐다. 그 귀한 전통을 희망조합이라고 계승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이런 상상, 떠올릴 필요가 있나 싶다만 해 본다. 혹시 경인TV가 특정 정당의 나팔수 노릇하며 혹세무민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니, 그 이전에 희망조합 구성원들이 음험한 세력들로부터 사내 '빨갱이' 척결이란 명분으로 '팽'당하면 어떻게 될까. '속았다'며 땅을 치는 상황은 누구의 불행이라 이야기할 수 있을까. 희망조합의 투쟁에 '원시안(遠視眼)'적 혜안을 주문하는 것은 이 상상을 기우로 묶어두고자 하는 진심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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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라디오와 FM, KBS1라디오에서 뉴스 브리핑을 담당하는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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