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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와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반기를 든 남미의 좌파 지도자 우고 차베스 대통령. 그가 이끄는 베네수엘라 혁명이 21세기적 방식으로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10년 앞서 신자유주의를 경험한 그들에게서 우린 과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진보 싱크탱크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에서 심층 분석한 베네수엘라 혁명의 현주소를 기획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 우리보다 앞서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경험한 베네수엘라는 차베스 대통령과 민중의 힘으로 빈곤의 그늘에서 차츰 벗어나고 있다.
ⓒ 임승수
"소련과 공산주의이래 미국에 대한 가장 큰 위협!"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이끄는 베네수엘라 혁명에 대한 미 국방부의 평가다.(2005년 10월 미 국방부 보고서 '베네수엘라에 대한 비대칭적 전쟁 독트린') 베네수엘라의 1년 국방예산은 미국의 0.3% 수준에 불과하다. 펜타곤의 극단적 경계감은 무엇 때문일까?

미국이 베네수엘라 혁명을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는 것은 우선 외형적으로는 석유자원과 남미 좌파 도미노 현상 때문이다. 이에 더하여 부시 정권을 한층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시간이 경과할수록 공고해지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민중 권력이다.

아무리 차베스의 반미·반신자유주의가 강경하다 해도 그것이 차베스 혼자만의 권력,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거한 노선이라면 미국은 한결 여유로울 것이다. 이미 냉전시대 동서진영간 대결에서도 승리를 구가한 미국이 아닌가.

그러나 권력의 실체가 개인이나 특정 정당이 아닌 하부로부터 형성된 민중 권력이라면 사정이 한참 달라진다. 멀리는 1960∼1975년의 베트남전, 가깝게는 2003년 3월에 시작된 이라크전에서 입증되었듯이 미국을 한없는 수렁에 빠뜨린 상대는 언제나 강대국, 군사강국이 아니라 약소국가의 민중적 항쟁이었다.

외부의 시선이 차베스의 거침없는 반미 행보와 집권 2기 플랜에 집중되는 동안, 수면 하에서 조용히 번지고 있는 베네수엘라 풀뿌리 민주주의의 독창적 실험, '주민자치위원회'를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혁명적 경험

▲ 식당에 모여 있는 의학도들. 이들은 전액 무료로 공부하며 장학금을 받는다.
ⓒ 임승수

@BRI@2002년 발생한 반차베스 쿠데타, 2003년 자본가 총파업 그리고 2004년 대통령 소환 투표 등 일련의 반혁명 기도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가장 주목받은 조직이 볼리바리안 써클이었다면 차베스 집권 1기의 마지막 해인 2006년 급부상하여 광범하게 확대된 조직이 바로 주민의 자율적 참여와 의사결정 조직인 주민자치위원회(영문으로 Communal Council, 스페인어로 Consejos Comunales, 약자로 CCs)다.

주민자치위원회는 어떤 조직인가? 주민자치위원회법 2조에 의하면 '다양한 공동체 조직들과 사회적 그룹, 시민들 사이에서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공동체의 필요와 열망에 부응하는 공공 정책과 프로젝트를 조직된 민중이 직접 관리할 수 있는, 참여적이고 통합적인 존재'로 정의된다. 압축하면 공동체에 필요한 정책을 민중이 직접 결정하고 관리하기 위한 기구 또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집권 후 차베스는 가난과 질병, 무지를 추방하기 위한 여러 미션들을 벌였다. 특이한 것은 각 미션의 채택과 운용을 주민 자신이 결정하게 만든 점이다. 정부에서 공무원을 파견하여 일방적인 복지 혜택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주민들끼리 토지위원회, 의료위원회, 교육위원회 등을 만들어 자체적 계획과 목표를 세우면 이를 국가에서 지원하고 보조하는 식으로 민생 현안을 풀어나간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국민을 신뢰하는 차베스의 독특한 신념과 함께 집권 초기 개혁에 대한 거부감과 타성에 젖은 관료주의를 넘기 위한 목적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나 명확한 점은 이를 통해 민중이 혁명을 스스로를 위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자치를 통해 생활을 변화시키는 경험은 나아가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정치와 권력에 대한 민중의 광범한 참여로 이어졌다. 민중에게 권력을 줌으로써 참여를 유발하고, 참여가 확대됨으로써 다시 민주주의와 민중 권력이 강화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가난을 몰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민중 권력

차베스 집권 중반기를 넘어 사회 개혁에 가속도가 붙고 국민들의 기대치가 높아질수록 각종 위원회와 미션도 그에 비례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한 공동체 안에 수많은 자치 위원회들과 정책 프로그램이 얽히고 부딪치는 복잡한 양상이 벌어졌다. 일련의 반혁명 공세를 이겨내고 정치적 안정기에 들어선 2005년부터는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수많은 미션과 자치적 기구를 질서정연하고 효율적으로 정비할 필요성이 생겨났다.

바로 이를 위해 주민자치위원회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주민자치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그 전까지 지역에 존재해 왔던 특정 임무들 띤 개별적인 위원회들이 주민자치위원회 산하의 기능적 단위로 통합되었다. 이에 따라 주민자치위원회는 현재 풀뿌리 단위에서 사실상 주민의 생활 일체와 관련한 일을 결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 단위가 되었다. 법률과 정부의 재정적 뒷받침에 의해 집행 토대까지 확보한 명실상부한 자치 권력기구가 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주민총회가 최고 의사결정체가 되어 주민들은 자기 지역의 주택, 주민, 수입, 인프라,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사회적 계획을 세우고 우선 순위를 정한다. 주민총회에서 결정된 제안은 관련 기관에 보내지고, 정부는 이를 토대로 주민은행과 협동은행을 통해 기금을 지원한다. 주민자치위원회가 제안한 각 프로젝트별로 1만5300달러까지 재정지원이 가능하다.

차베스는 '가난을 끝장내는 유일한 방법은 민중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이라고 종종 말해왔는데 주민자치위원회는 그의 신념을 잘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주민자치위원회가 공동체의 실질적 의사결정기구, 권력기구로 서고 여기에 모든 주민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여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자 각 지역마다 주민자치위원회를 자발적으로 결성하는 움직임이 들불처럼 일었다. 2005년부터 실험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하던 주민자치위원회는 2006년 4월 10일 관련 법률안의 통과로 더욱 가속이 붙어 2006년 11월에는 이미 전국에 1만2000여개의 주민자치위원회가 속속 만들어졌다.

실행을 통한 학습 전략

▲ 주민자치위원회는 사실상 주민의 생활 일체와 관련한 일을 결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험장이 되고 있다.
ⓒ 임승수
베네수엘라의 새로운 풀뿌리 자치 권력인 주민자치위원회는 초기에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혁명의 지도그룹은 혁명 초창기부터 지역 단위의 자치조직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브라질 포르투 알레크레의 참여예산제도나 인도 캘커타의 풀뿌리 참여민주주의의 경험을 모델링 했다.

이를 통해 차베스 정부는 2001년 '지역공공계획위원회(Local Public Planning Council, CLPP)'라는 형태로 실험을 해본다. 지역대표를 선출하여 지역정부 예산 검토와 승인에 참여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CLPP의 실험은 실패로 끝난다.

주된 이유는 수십만 주민이 한 명의 대표를 뽑는 등 단위가 너무 커 주민 참여율이 떨어지고, 대개의 경우 기존 정당이나 관료들이 내세운 후보가 지역대표가 되는 등 대의민주주의 일반이 지니는 폐단이 그대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마치 한국에서 지자체 도입 이후 실질적인 주민 대표가 선출되기보다 지역 유지가 지자체를 독식하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는 가운데 일군의 지역 활동가들과 볼리바리안 서클 회원들은 스쿠레 지역의 지역정부에서 해법을 찾는다. 그 아이디어는 의외로 간단했다. 민중이 그들의 권력을 피부로 체감하고 운용하기 쉽도록 '지역공간을 좁힌다'는 개념이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의해 현재 주민자치위원회는 도시에서는 200∼400가구, 농촌에서는 약 20가구, 그리고 원주민은 10가구 단위로 조직된다. 베네수엘라 평균 가구 당 인구수가 5명 정도라고 할 때 하나의 주민자치위원회를 구성하는 주민의 수가 최대 2000명을 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좁혀진 단위에서 모든 가구, 모든 주민이 참여하고 명망가나 정치 건달, 지역 유지가 아닌 실제로 지역 공동체를 위해 일할 사람들을 상임위원으로 선출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오랜 동안 통치의 대상으로만 살아오면서 자치 권력의 필요성을 체험하지 못한 주민들을 설득하는 과정도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주민자치위원회는 정부의 행정 절차에 따라 일률 건설되는 것이 아니다. 철저히 주민 자신의 필요성과 권리 인식에 근거해 자율적으로 만드는 조직이다. 공동체마다 추진팀이 구성되면 최소 3개월에서 6개월간 가가호호 방문을 하며 주민들과 대화를 통해 주민자치위원회 구성에 동의를 얻고 참여를 유도한다.

44년간 같은 지역에 살면서 단 한 번도 공동체 참여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카라카스의 한 택시 운전사는 이렇게 말한다, "지역에서 처음에는 냉담했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의 사고가 바뀌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자기 지역 주민자치위원회의 상임위원을 맡고 있다. 가구별 접촉은 주민자치위원회의 민주성과 참여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신자유주의 경제적 삶 속에서 서로 유리된 공동체를 복원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차베스 정도의 지지도라면 주민자치위원회를 단번에 정책적으로 시행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할 법도 하다. 그러나 차베스는 이런 위로부터의 일방적인 개혁을 선택하지 않는다. 주민들 자신의 요구와 결의에 의해 끈기 있고 긴 호흡으로 자치 권력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차베스 정권의 특성을 잘 설명해 준다.

차베스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시행하고 실험하여 해법이 만들어지면 전면적으로 확산하는 일명 '실행을 통한 학습' 방식에 익숙한 인물이다. 그 자신이 실패와 시행착오(1992년 쿠데타와 1993년 선거 보이콧 전술)를 거쳐 1997년에 이르러서야 선거 집권 전략을 세우고 신자유주의 정국을 정면 돌파한 이력을 지녔다.

주민자치위원회 경우에도 지역공공계획위원회 형태의 실험과 실패(2002∼2004)→ 소규모 단위의 재실험과 해법(2005 말)→ 법적 재정적 정부 지원구조 확립(2006.4.10)→ 전면 확산(2006.4.10 ∼) 경로를 밟은 '실행을 통한 학습' 방식의 전형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 민주주의에서 '바이 더 피플'의 중요성

▲ 아이들이 아파도 이제는 병원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 임승수
1863년 링컨 대통령이 게티스버그 연설에서 사용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표현은 오늘날까지도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명료하고 집약적인 설명 또는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국민과 국가(정부)간의 가장 바람직한 관계에 대한 정의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이 간결 명료한 정의는 실제로는 좀처럼 현실에서 구현되지 못한다. 많은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하여(for the people)'라는 수사를 남발하지만 기실 그들이 위하는 대상은 자신을 포함한 소수 지배 엘리트 세력이었다. 국민은 오직 선거 때만 주권을 확인할 뿐(of the people) 나머지 기간 내내 정치 엘리트들의 통치 대상에 불과하다.

20세기 국가 사회주의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을 위한다는 사회주의 혁명은 낡은 권력을 해체하는 데만 성공했을 뿐 참여를 통해 권력을 국민에게 돌리는 과정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국민은 당과 관료기구라는 새로운 권력 아래로 일방적으로 편입되었다.

어떤 좋은 명분을 내걸어도 '국민에 의해(by the people)' 결정되고 통제될 수 없는 국가기구는, 잘해봐야 온정적인 훈육주임 이상이 되지 못한다. '어차피 자치도 권력도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노동도 갖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라면 사회주의가 뭔 대수냐' 이것이 동구 사회주의를 순식간에 무너뜨린 그 나라 국민들의 솔직한 속마음이었을 것이다.

지난 시기의 경험에서 볼 때 금세기 민주주의의 최고 과제는 국민에 의한 직접적인 권력 행사와 자치, 직접적 정치 참여와 궁극적 정치 지배다. 21세기 국가는 이러한 정신을 원칙으로 삼고 조직적으로 반영하는 기구여야 한다.

'국민을 위하여'를 제대로 실현시킬 방법도 차베스가 선험적으로 입증했듯이 권력을 국민에게 그것도 최하부 풀뿌리 단위에까지 철저하게 돌려주는 것, 즉 '국민에 의하여'를 실현하는 것이다. 허울뿐인 '포 더 피플(for the people)'을 넘어 '바이 더 피플(by the people)' 즉 국민 직접정치로 나아가야 할 시대다.

최초로 국가기구의 지원을 받는 민중권력이 될 것인가

베네수엘라가 한국보다 경제력이 뒤처지는 저개발국이고 정치 후진국이라는 선입견은 잠시 접어두고 베네수엘라의 풀뿌리 민주주의 실험을 지켜보자. 독립전쟁으로 스페인 식민지배에서 벗어나면서부터 의회정치를 도입해 200년이 가까워 오고 1958년에 군사독재를 청산한 뒤로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나라다.

민주주의의 발전이 소득수준이나 경제력이 높은 나라에서만 이루어진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선진적인가? 고작해야 부시 같은 자를 두 번씩이나 대통령으로 뽑아주고, 정부가 거짓으로 점철된 일방적 침략전쟁에 몇 년을 몰두해도 국민 차원에서 이를 견제할 아무 수단도 갖지 못한 것이 알량한 미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다.

물론 국민의 자치와 직접적인 권력 행사에 대한 요구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며 이상이 높은 만큼 그 성사는 쉽지 않다. 폭압적 국가기구나 외세, 구지배 세력에 의해 번번이 좌절되면서도 이러한 요구는 파리 코뮌으로, 소비에트로, 우리나라 해방공간에서는 인민위원회라는 형태로 지역과 시기에 관계없이 끊임없이 출현했다.

꺾이지 않는 민중들의 이상적 요구가 지금 베네수엘라에서는 '주민자치위원회'라는 형태로 실험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과거 역사적 경험들과 달리 국가기구와의 충돌 속에서가 아니라 정부가 적극적인 후견자로 나섰다는 차이가 있다.

"(국민에게) 권력을 주라, 선거가 있게 하라, 그러면 국민들이 스스로 만들어 나갈 것이다, 이러한 정치를 당신은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이를 포퓰리즘이라고 한다면 나는 기꺼이 포퓰리스트가 되겠다"라는 차베스의 소신이 집권 2기에도 변함이 없다면, 우리는 풀뿌리 민중권력이 집권세력과의 행복한 동행을 통해 나라 전체의 권력기구와 정치 체제를 근본에서부터 바꾸는 역사상 첫 사례를 베네수엘라에서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정희용 기자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미디어센터장입니다.

 


태그:#베네수엘라, #주민자치위원회, #차베스, #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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