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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카운티에서 강도와 성폭행 혐의로 30년형을 선고받고 10년을 복역했던 사람이 무죄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2일 댈러스 카운티 지방 검사실은 1982년에 발생한 집단 강간 사건의 범인으로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제임스 커티스 자일스를 잘못 기소했다고 인정하고, 그에 관한 기록을 바로잡는 데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BRI@1982년에 발생한 사건, 30년형을 선고받고 교도소 생활 10년, 1993년에 가석방되어 2013년까지 가석방 기간. '성 범죄자'로 등록….

28살 청춘의 인생을 범죄자로 굴절시킨 사건의 발단은 범인과 같은 이름이라는 사소한 이유였다. 그는 줄곧 무죄를 주장했으나 항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긴 시간이 흐른 후에야 DNA 검사 결과에 의해 결백이 밝혀진 것이다.

'불운'과 '실수'가 겹쳐 일어난 이 사건은 '해프닝'이라고 치부하기에 그 대가가 너무 가혹했다. 그러나 이런 기막힌 일을 경험한 것은 그 혼자가 아니다. 그는 지난 5년간 댈러스 카운티에서 DNA 검사로 인해 무죄가 증명된 열세 번째 사람이다.

제임스 커티스 자일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 텍사스 공공 안전국의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아직도 '성 범죄자'로 등록되어 있는 제임스 커티스 자일스의 기록을 열람할 수 있다.
ⓒ TDPS

사건의 재구성

1982년 8월 1일, 댈러스의 주택가에 있던 한 아파트에 세 명의 괴한이 침입했다. 마약까지 복용하고 강도행각을 벌이던 이들은 집안에 있던 18살 여성을 집단으로 성폭행했다.

피해 여성은 경찰 조사에서 범인 중 한 명의 얼굴을 기억해냈다. 이웃에서 얼굴을 마주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은 스탠리 게이 브라이언트. 사건 직후 달라스에서 도망쳤지만 인디애나주에서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6개월 후 두 번째 범인이 체포되었다. 달라스에 인접한 던컨빌에 살던 건설 노동자인 제임스 커티스 자일스. 피해자에게 제시된 여섯 명의 용의자 사진에서 그가 지목된 것이다.

그가 용의선상에 오른 이유는 당시 사건을 수사 중이던 경찰이 제보를 통해 제임스 자일스와 마이클 브라운 그리고, 스턴이라는 이름을 가진 세 명을 범인으로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자일스는 체포 당시 살인미수 혐의로 집행 유예 중인 전과자였다. 그리고 피해자는 마지막 세 번째 범인을 기억하지 못했다.

이미 사망한 진범... 동명이인의 비극

▲ ABC방송에서 보도한 뉴스 화면. 제임스 커티스 자일스와 제임스 얼 자일스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 ABC
그러나 최근의 DNA 검사 결과, 두 번째 범인은 제임스 커티스 자일스(James Curtis Giles)가 아닌 제임스 얼 자일스(James Earl Giles)였다.

중간 이름만 다르고 성과 이름이 똑같은 다른 사람이 진범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범인인 제임스 얼 자일스는 사건 당시 피해자의 집 길 건너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사건으로 체포되거나 기소되지 않았다. 그가 1990년대에 저지른 강도와 폭행 사건으로 인해 감옥에서 복역하다 2000년에 암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기억하지 못한 세 번째 범인은 제임스 얼 자일스의 친구였던 마이클 안토니 브라운으로 드러났다. 이 역시 최근의 DNA 검사가 밝혀낸 사실이다. 그리고 그 또한 다른 강간 사건으로 인해 체포되어 이미 1985년에 교도소에서 사망했다.

두 명 모두 흑인이었지만 제임스 커티스 자일스는 28세에 금니를 하고 있었고, 제임스 얼 자일스는 18세에 흰 이를 하고 있었다. 비록 성과 이름이 같았지만, 나이나 체격 심지어는 이까지도 전혀 달랐다.

제임스 커티스 자일스는 사건 당시에 현장에서 25마일이나 떨어진 자신의 집에서 아내와 함께 잠자고 있었다고 진술했고 그가 범인이라는 물증도 없었다.

피해자는 경찰에서 진술할 때만 해도 범인이 어리고 작은 체구였다고 했지만, 법정에서는 "그가 진범이 확실하다"(I was absolutely positive that it was him)며 제임스 커티스 자일스를 지목했다. 그는 경찰이 제시한 여섯 명의 용의자 가운데 유일한 흑인이었다. 결국, 배심원단은 그의 유죄를 인정하며 30년형을 내렸다.

감춰진 진실

이 사건은 겉으로 보기에 합법적인 절차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배심원단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인디애나주에서 다른 사건으로 체포된 첫 번째 범인 스탠리 브라이언트가 달라스에서 발생한 강도 강간 사건의 범인을 자백했다는 사실이다.

브라이언트는 댈러스에서 재판이 진행되기 전인 1983년 5월 인디애나 경찰의 심문에서 댈러스 사건은 마이클과 제임스라는 10대가 저질렀으며, 그들의 생김새는 물론 심지어는 마이클의 집 전화번호까지 알려주었다.

그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 법정에서 증언하는 것까지 동의했지만 댈러스 카운티 법정은 그를 부르지 않았다. 댈러스 경찰국에서 이 중대한 진술을 제임스 커티스 자일스의 변호인에게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디애나 경찰국의 자료에는 스탠리 브라이언트에 대한 심문이 달라스 경찰국 캐롤 호베이 형사와 이 사건의 주임인 마이크 오코너 검사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댈러스 지역의 일간지인 <댈러스모닝뉴스>에 따르면, 캐롤 호베이 형사는 이미 일선에서 은퇴했고, 마이크 오코너 검사는 80년대 중반에 검사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을 뿐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

'무죄 프로젝트'의 반전

▲ 2001년 텍사스 공공 안전국에 등록된 제임스 커티스 자일스의 사진.
ⓒ TDPS
제임스 커티스 자일스는 여러 차례에 걸쳐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항소했지만 매번 기각되었다. 1990년대 초반에는 검찰을 설득해 사건의 재조사를 시작했지만, 피해자가 완강하게 반대하고 DNA 검사가 정확하지 못해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묻힐 것 같던 사건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 것은 6년 전, 자일스가 억울함을 토로하는 탄원서를 뉴욕의 '무죄 프로젝트'에 보내면서부터다. 무고한 시민의 구명운동을 벌이는 이 프로젝트에 소속된 변호사 바네사 포킨은 이 사건의 본질을 잘못된 신원확인 문제로 판단하고 '틀린 제임스 자일스 사건'이라고 이름 붙였다.

계속된 조사 끝에 달라스 카운티 검찰의 협조로 2003년 8월에는 스탠리 브라이언트의 증언까지 넘겨받게 되었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향상된 DNA 기술의 결과로 사건 증거물에서 DNA 증거를 채취할 수 있었다.

3년 동안 시도한 끝에 증거물에서 진범인 제임스 얼 자일스의 정액을 찾아냈다. 그러나 정액을 채취한 침낭이 '파티용'이었다는 이유로 검찰은 검사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댈러스 지방 검사실은 증거 보존 명령에도 불구하고 3년 전에 달라스 경찰국이 문제의 침낭을 파기했다는 것을 알아냈고, 마침내 제임스 커티스 자일스의 무죄를 선언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제임스 커티스 자일스의 범죄 기록을 정리하기 위한 심리 기일이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2주 안에 이루어질 전망이다.

그는 현재 댈러스에서 180마일 떨어진 러프킨이라는 도시에서 보석(保釋)에 관한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는 이 사건이 완전히 종결될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의 변호인이 밝혔다.

그리고 그 이후

이 사건으로 인해 댈러스 카운티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2001년 텍사스 주법이 DNA 검사를 허용한 이래 댈러스 카운티에서만 354명의 수감자가 DNA 재검사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작년 11월 선거를 통해 댈러스 카운티 역사상 최초의 흑인 지방검사로 선출된 크렉 와킨스는 텍사스 '무죄 프로젝트'가 이 사건들을 재검토하는 데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재검사 요청의 대부분은 크렉 와킨스의 전임 지방검사였던 빌 힐에 의해 거부되었던 것들이다.

크렉 와킨스 지방검사는 지난달에 텍사스 무죄 프로젝트의 임원들을 만나 변호사들과 법대 학생들이 재검사를 위해 광범위한 서류들을 검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자원봉사에 참여할 학생들은 주로 포트워스에 위치한 텍사스 웨슬리안 대학교의 법대생들이며, 그들이 선택한 사건들은 지방검사실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무죄 프로젝트의 전문가들이 그들의 조사를 지도할 예정이다.

1989년 이후 미국 내에서 DNA 재검사로 인해 결과가 뒤바뀐 사건은 190건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가운데 댈러스 카운티에서 재판의 결과가 번복된 사건은 모두 13건으로 미국 내 다른 어느 카운티보다 가장 많은 숫자이다.

2001년 4월 이후 댈러스 카운티에 접수된 DNA 검사를 요청한 사람은 354명으로 중복된 수를 모두 합하면 434건이다. 32명의 검사가 이미 진행되었으며 이 가운데 13명은 무죄, 9명은 유죄, 5명은 불확실한 결과가 나왔고 나머지 5명은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제임스 커티스 자일스 사건에도 깊이 간여한 전국 '무죄 프로젝트'의 공동 디렉터를 맡고 있는 배리 쉑은 "만약 생물학적인 증거가 있고, DNA 검사가 이루어진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면서 "그동안 늘 그래 왔다"고 덧붙였다.

범죄자를 잡아 가두는 일이 주목적인 검사가 오히려 풀어주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 댈러스의 현실이다.

이러한 댈러스 지방 검사실의 태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잘못을 덮어둠으로써 정의를 왜곡하는 것보다는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것이 정의를 바로세우는 길이라는 것이 DNA 검사에 뛰어든 사람들의 한결같은 소견이다.

"검사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누구든지 잘못 기소된 사람을 풀어주는 일에 헌신하겠다."

크렉 와킨스 지방 검사의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국 텍사스주 달라스의 한인 주간지 <코넷>의 제휴기사입니다. <코넷>의 인터넷판인 '코넷닷컴'(www.thekonet.com)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제임스 커티스 자일스, #성폭행, #댈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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