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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통합) 이광선(앞줄 왼쪽 네번째) 총회장 등 개신교 목회자들이 지난해 12월 20일 서울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사립학교법 재개정을 위한 삭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프랑스에 죠세프 푸세라는 정치인이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에서 왕정복고에 이르는 변혁기에 철저히 권력에 빌붙은 인물로 배신과 변절, 음모와 협잡의 화신이었다.

지롱드파 의원이던 푸세는 자코뱅이 권력을 잡자 자코뱅으로 변신했고, 테르미도르 반동 때 자코뱅이 실각하자 로베스피에르 처단에 협력했다. 또한 통령정부가 들어서자 경찰장관이 되었고 나폴레옹이 권력을 잡자 2인자 역할도 맡았으며, 루이왕정이 복고되자 충성을 맹세하고 나폴레옹 백일천하에서는 다시 나폴레옹에 빌붙었다. 다시 왕정복고가 이뤄지자 또 다시 왕정에 충성을 맹서해 오른란트 공작이 되는 인물이다.

죠세프 푸세는 나폴레옹 암살 기도 사건이 왕당파 소행임이 밝혀졌는데도, 자코뱅을 몰락시키려는 나폴레옹의 마음을 읽고 자신이 과거에 몸담았던 자코뱅의 등에 칼을 꽂는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실행한 사람이다.

한국 기독교를 생각하면 죠세프 푸세가 생각난다. 100년 전 전파돼 새로운 정신가치를 심어주고 쓰러져 가는 왕조와 희망을 잃은 백성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기독교가 언제부터인지 초심을 잃었다.

언제부터일까? 신사참배부터일 것이다. 제국주의의 강압에 의한 신사참배였다고 하지만 역사적, 신앙적 과오를 범한 것은 사실이다. 이 엄연한 사실에 대해 그 후 어떤 방법으로든 정리하고 넘어갔어야 했는데 기독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사참배의 정당성을 강변했다. 기독교의 배신과 변절은 이때 시작된다.

신사참배 문제가 나오면 기독교는 '조자룡이 헌 창 쓰듯' 주기철 목사 순교를 들먹인다. 그러나 주기철 목사가 순교한 것은 그분의 개인신앙 때문이지 기독교를 대표해서가 아니었다. 기독교는 오히려 일제에 항거하는 주기철 목사에 대해 파면을 결의했다.

신사참배 가결에 적극 가담한 홍택기 목사 같은 이는 '우리도 교회를 지키며, 흩어지는 양떼를 돌보느라고 고생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베드로는 '참 나쁜 제자' 아닌가?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부활 후 베드로에게 '내 양떼를 먹이라'고 세 번이나 말씀하셨는데, 베드로는 양떼를 돌보라는 스승의 말씀을 안 듣고 순교하였으니 스승의 말씀을 거역한 '나쁜 제자' 아닌가?

민중과 함께한 예수, 권력에 빌붙은 한국 개신교

@BRI@어쨌건 신사참배로 일제에 협력한 기독교는 그 후 권력의 향배를 쫓는 해바라기가 되었다. 미군이 진주하자 미국에게, 이승만 정권 때는 이승만에게,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자 군사정권에 추파를 던진 기독교는 유신이 선포되자 '유신은 신명기 28장의 축복이 임한 것'이라고 아부했다.

그 후에도 광주의 살육을 딛고 집권한 전두환 정권을 위한 조찬기도회를 시작했고 1987년 대선에서는 노태우 후보를, 1992년 대선에서는 '장로 대통령' 운운하며 김영삼 후보를 지지하며 계속 세속의 권력 주위를 맴돌았다.

도대체 기독교란 무엇인가? 기독교, 즉 그리스도교는 한자로 基督敎라 쓴다. 그럼 그리스도 교란 무엇인가? 예수를 구세주로 믿고 그분 말씀을 진리로 믿고 따르고 실천하는 종교를 그리스도교, 즉 기독교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라 하면 개신교를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언젠가 고쳐져야 할 문제이다. 개신교는 기독교의 일부 종파이지, 기독교 전체를 대표하는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시고 그 시대에 어떤 활동을 하셨는가를 생각한다면 한국 기독교, 즉 개신교는 권력지향적 해바라기 근성을 버려야 한다.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예수께서 활동하시던 시대에도 세상은 복잡해서, 로마의 식민지이던 유대에도 여러 계급이 있었다. 사회 지도층이라 할 수 있는 바리새, 그리스철학의 영향을 받은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사두개, 무장독립단체 열심당, 왕당파 헤롯당 등이 예수를 배척하기도 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바리새나 사두개파 등 당시 기득권 세력이나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계급 주위를 맴돌며 세속권력의 끄나풀을 잡아 교세확장을 하려 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오히려 기득권 계급을 책망하며 훈계하셨고, 때로는 그들과 대치하며 가난하고 배척받고 소외받는 민중의 편에 서셨다.

유다는 후회하며 자살했는데... 한국 개신교는?

예수께서는 결국 제자 가롯 유다의 배신으로 체포돼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유다는 스승을 은돈 30량에 팔아먹은 걸 후회하면서 자살했다.

가롯 유다는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며 자살이라도 했지만 개신교는 뭘 잘못했는지, 뭘 후회하고 회개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장로 대통령' 운운하며 잠꼬대 같은 소리나 늘어놓았다.

어디 그뿐인가.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는 사학 비리를 해결하고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실시하려는 사학법을 반대하는 반사회적 행태를 보이고 있으니, 오늘날 한국의 개신교는 가롯 유다만도 못한 것 아닌가.

프랑스 법철학자 쟈크 엘룰은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는 왕정에서는 왕당파가 되고 공화정에서는 공화파가 된다. 그리고 거기에는 항상 반박할 수 없는 신학적 논증들이 뒤따른다. 또 히틀러가 권좌에 올랐을 때, 독일교회는 히틀러화했다. 교회는 공산주의 체제하의 나라들에서 공산주의자가 되기도 했다. 그뿐인가. 그때마다 자리 잡은 권력이 선하고 정당한 것임을 증명하기 위한 신학적 추론의 발전이 있었다."

한국 개신교가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마이클 오 기자는 캐나다에 사는 교포입니다. 기독교(개신교)가 사회정의 실현에 관심을 두기 바라는 뜻에서 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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