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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인간인가> 표지
ⓒ 돌베게
<이것이 인간인가> 서평을 쓰려고 했다. 맙소사. 웬일인지, 글이 잘 써지질 않아 모니터 앞에서 하릴없이 이것저것 다른 푸념들을 늘어놓다가 금세 지워버리곤 했다. 읽을 당시에도 책장이 잘 넘어가지는 않았었다. '지독한 책'으로 분류되는, 독자를 꽤 괴롭히는, '바람직한 여가 선용'과는 아주 거리가 있는 힘든 독서였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인간인가>는 홀로코스트 생존기다. 다른 곳도 아니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10개월간 강제노역에 시달리다가 기적적인 확률로 살아남은 생존자의 회고록이다. 저자 프레모 레비는 러시아 수용소와 아우슈비츠 수용소와의 차이점을 묻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대답한 바 있다.

"아우슈비츠는 1944년 8월의 단 하루 동안 2만4000명의 포로가 사망한 초유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정적을 제거하거나 겁을 준다는 오래된 목적과 함께, 한 인종과 문화를 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제거해버리겠다는 현대적이고도 무시무시한 목표가 자리잡고 있었다. 대략 1941년부터 그 수용소는 거대한 죽음의 장치가 되어버렸다." (286쪽)

"지친 짐승에 불과할 뿐이다"

@BRI@프레모 레비는 이탈리아 화학자 출신으로 아우슈비츠에서 다른 국가에서 온 유대인들과 뒤섞여 숙소를 쓰게 된다. 인간의 노동력을 정점으로 끌어내고, 인간을 소모품으로 만들어버리는 아우슈비츠의 악랄함 속에서 이들은 생존 투쟁을 하게 된다.

그저께 잠깐 시청했던 자연 다큐멘터리 '동물극장'에서 어미를 잃은 새끼 여우들은 같은 종족임에도 다른 여우들로 인해 영역에서 쫓겨났었다. 어미는 힘든 산고를 견디지 못해 죽었고, 아빠 여우는 사냥을 하러 나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그걸 보면서, 동물들의 세계에서 경쟁이란 목숨을 내놓고 하는 원초적이고 잔인한 투쟁이란 생각을 했었다. 유대인을 노동의 과정에서 '소모'시키고 그걸 통해 '절멸'시키려는 나치의 의도는, 유대인들에게서 문명의 모든 혜택을 앗아간 채, 이들을 극단적인 수용소에 가둠으로써 '동물의 왕국' 진행하듯이 진행된다.

고된 노동으로 동료들이 가스실로 끌려갈 때(가스실은 갇혀 있던 이들에게는 '소문'에 불과했다), 하루하루 살아남기에 지친 이들은 "우리는 그저 지친 짐승에 불과할 뿐이다"(62쪽)라고 되뇐다.

수용소의 동료 슈타인라우프는 이런 극한 상황 속에서 정성들여 몸을 닦는다. 저자에게 그것은 '절멸이 의례를 반복하는 기계적인 습관'일 따름이지만, 슈타인라우프에게 '청결'은 최소한의 인간성을 지켜가며 살아남기 위한 '자신에 대한 존중'이다.

"우리는 최소한 문명의 골격, 골조, 틀만이라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 그 능력이란 바로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58쪽

성실하고도 인간적인 이치, 파시즘

철저한 보안으로, 명령을 내리는 핵심자가 누구인지는 알아낼 수 없다. 분노의 적절한 방향을 찾지 못한 채, 이들이 미워하게 되는 것은, 바로 자기의 하룻밤 침상의 폭에 침입하는 동료 수용자다. 허약하고 서툴러서 자신에게 노동의 짐을 떠넘기는 '폭탄' 같은 동료 수용자다. 생존 경쟁에 지친 이들은 차라리 '그들이 죽기를' 바란다.

참혹하다. 본래 피차별자는 차별자에 의해 분리되고, 소통이 단절되는 경향이 있다. 흑인 노예제나 여성에 대한 차별에서도 마찬가지로 등장했던 이런 강제된 분리와 내부에서의 잘못된 경쟁은, 서로 벗어날 수 없는 억압에 희생되는 '동료'임에도 서로 간에 적대심을 키우게 만든다.

상대를 이기면 자신이 좀 더 나은 조건에서 생존할 수 있으리란 것이 '최선의 선택'이 되곤 한다. 이런 무의미한 경쟁은 결국 어떤 체계도 바꿀 수 없음에도. 물론 이는 그들에게 가해지는 억압이 극심한 탓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 한 번 우리는 받침대 더미 밑에 선다. 미샤와 갈리치아 인이 무쇠 받침대를 들어 우리 어깨 위에 거칠게 올려놓는다. 그들의 자리는 제일 편한 곳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열성을 과시한다. 꾸물거리는 동료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주의를 주고 견디기 힘든 속도로 일을 시킨다. 그래서 나는 몹시 화가 난다. 물론 나는 특권층이 비특권층을 억압하는 것이 세상사의 일반적인 이치임을 잘 알고 있다. 수용소의 사회구조를 지탱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인간적인 이치였다."(62-63쪽)

▲ 프레모 레비
ⓒ 돌베게
인간적인 이치. 사람을 인간이 아닌 동물이게 하는 어떤 비인간적인, '인간적인 이치.' 프레모 레비는 파시즘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좀 더 교묘하게 일상화되어 우리 곁에 숨어 있다고. 나치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저지른 범죄의 악랄함은, 바로 이러한 '인간적인 이치'를 이용한 '인간성 말살'에 있었다.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로 이송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독일인은 '그저 직무에 성실히 임했을 뿐'이었다.

힘든 독서를 마치고, 표지 뒷면 책날개의 저자 소개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흑백 사진 밑으로는 이런 소개가 쓰여 있었다.

"파시즘에 저항하는 지하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당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고, 1945년 토리노로 살아 돌아왔고, 1977년까지 니스 공장에서 관리자로 일하며 작품들을 발표했다. 1987년 토리노의 자택에서 돌연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아우슈비츠가 대학이었다'고 말하고, '문체가 우스웠다'고 말할 만큼 절실한 경험을 했으며, 그것을 기록하기 위해 살아남았다는 그가, 어째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이해되지 않았다. '인간적인 이치'로 가장한 파시즘이 아우슈비츠가 아닌 곳에서도 끊임없이 재생됨을 목격했기 때문일까. '이제 다 알았다'며 그의 증언을 들으려 하지 않는, 현대인들의 세련된 무관심 때문이었을까.

또 다른 유대인의 증언, 거다 러너 <왜 여성사인가>

그리고 사실, 서평을 쓰기 힘들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요코 이야기> 사태와 관련하여, '전시에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라는 관점에서, 민족적 상처를 이유로 또다른 역사적 폭력인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을 '침묵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는 요지의 기사를 한 달여 전에 <오마이뉴스>에 쓴 적이 있다. 그 글로 인해 악플 백여개와 쪽지 몇 통 등 사이버 테러를 한바탕 치렀다.

이 얘기만 나오면 아직도 글 쓰고 싶은 의욕이 떨어진다. 아마도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확신이 흔들리고, 글을 쓸 힘이 없어진다는 게 가장 큰 상처였던 것 같다.

▲ 거다 러너 <왜 여성사인가> 표지
ⓒ 푸른역사
그럼에도, 민족사와 여성사가 교차되는 그 지점을 끈질기게 찾고 싶어서 거다 러너의 <왜 여성사인가>를 찾아 읽었다. 이 여자는 어머니를 아우슈비츠에서 잃었으며 자신은 미국으로 도피해 빈곤한 생활을 하다가 여성사학자가 된 유대인이다.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중산 가정 출신인 거다 러너는 '홀로코스트'나 '아우슈비츠'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는 '유대인 여성에게 초점을 맞추는 일이 불가능했다'고 털어놓았다. "파시즘을 경험한 나로서는 민족주의는 모두 충돌과 전쟁을 야기할 뿐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오히려 거다 러너는 방향을 급선회하여 '여성사'에 초점을 맞춘다.

"나는 중세에 일어난 일련의 반유대주의적 참사에서 유대인들이 보여준 영웅적 행위와 저항, 항쟁의 무수한 예를 알고 있다. 그 참사는 서유럽 유대공동체의 3분의 2를 파괴하고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에서 유대인들을 완전히 추방하는 15세기 홀로코스트를 낳았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성사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역사를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유대교 회당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남자 아이였고 탈무드를 공부했다면, 유대인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자 아이였고 유대 학문의 생명줄, 즉 딸무드와 미슈나, 미드라시를 접할 수 없었다. 나는 다만 성적 제약들을 주입받고 철저한 침묵을 세뇌당했을 뿐이었다. 과거는 부정되었고 목소리는 차단되었으며, 여성 영웅은 없었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담보로 유지된 민족의 순혈성

거다 러너와 프레모 레비는 유대인이고 같은 '민족'이다. 그들은 모두 홀로코스트가 벌어지는 참혹한 동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이다. 그러나 거다 러너는 '저항적 민족주의' 등으로 회귀하거나 유대인의 종교적 의식을 '민족적 정체성'이라는 이름으로 유지해 나가는 데에는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프레모 레비에게서는 엿보이지 않았던 면모, 즉 유대인 내부의 페니스 파시즘을 정면으로 거론하고 비판한다.

거다 러너에 따르자면, 여성은 지난 5000여년 동안 역사에서 배제되어 왔으며, 문자와 문화 전통을 이룩하는 상징계에 참여하지 못했다. 여성이 공적 영역에 침입하기 시작한 건 불과 200여년도 되지 않았을 뿐이다.

순혈주의와 민족적 정체성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담보로 유지된다. 가족의 큰 테두리 밖으로 튀어나가 급진적 성애를 주장한 근대의 여성들은 참혹하게 전시되고 처형되었다. 민족의 테두리 밖으로 튀어나가 민족 외의 남자와 성교하거나, 그의 아이를 배는 것은 여성에게는 용서받을 수 없는 변절이자 '매춘'이었다. 그리하여 가부장제의 주변부에서 '가혹하게 처형당하고' 발이 묶인 여성들을 통해, 어느 종족의 혈통과 문화적 전통은 유구히 보장되어왔다.

거다 러너는 홀로코스트, 즉 독일인이 유대인에게 가한 끔찍한 참상의 앞에 남성사가 여성에게 가해온 참상을 먼저 놓고 있다. 거다 러너가 유대인이 당한 참상이나, 스스로 유대인으로서 미국에서 맞닥뜨리는 포비아와 테러의 위협을 눈감아버리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연구실 방문 앞에 나치 표식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기도 했으며, 한동안 '독일어 발음이 혐오스러웠다'고도 말한다. 거다 러너는 그럼에도, 파시즘에 접근할 때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이 아닌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선택한다. 그가 유대인들의 역사를 인용할 때에는 마치 외부자가 된 듯한 인상을 준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유대인 여성이라는 것은 '이중 억압'이었으며, 그것은 유대인 내부에서도, 외부에서도 마찬가지인 '배제된 존재'였다.

"물론 여성만이 역사 기록에서 '잊혀진' 유일한 집단은 아닙니다. 지배 엘리트들은 어느 곳에서나 선택적으로 망각했고, 노예와 프롤레타리아, 식민지인과 같은 하층계급의 성원들을 역사의 가장자리로 밀어냈습니다. 해방 투쟁을 전개한 이후, 각 집단의 성원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재구성하고 새롭게 규정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여성들은 가장 오랫동안 종속적 지위에 처해 있었고, 다른 어떤 집단보다 해방운동을 펼치는 데 오랜 시간을 소요한 유일한 집단입니다. 더욱이 종속 계급 혹은 특권 계급 내에서도 여성의 위치는 해당 집단의 남성의 위치와는 언제나 본질적으로 달랐습니다.

(...) 모든 여성들은 자신들의 역사가 남성의 관찰 렌즈를 통해 굴절되고, 남성 중심적인 가치체계를 통해 또 한 번 굴절된 채로 전해진다는 점을 공유합니다. (...) 여성들에게 20세기까지 진행된 모든 역사는 진실로 전사(前史)였습니다."


선택적 망각을 그만두고 전부를 기억하라

거다 러너가 제안하는 방법은 '선택적 망각을 그만두고 전부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는 이를 통해서만 성차별주의, 계급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반유대주의가 자라나는 왜곡된 절반의 역사와 싸울 수 있다고 말한다. '선택적 망각'에 전략적 민족주의가 겹쳐서 떠오르는 것은 우연일까.

<요코 이야기에 쏟아지는 비난, 한국은 전쟁 강간에서 자유로운가>에 대한 댓글 반론 중에는 <기자는 논점을 흐리지 말라>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다. 볼록렌즈를 통해 초점을 하나로 모아서 종이를 태우듯이, 한국은 유독 '민족'을 통해서 격렬한 분노를 응집시키고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동력을 재생시킨다. 상대국을 '축구'로 '정복'하기도 한다.

<저열한 민족주의 시각 경계한다. 그러나...>라는 댓글에서는 '저항적 민족주의'를 거론했다. 그러나 어느 편이든, 민족적 정체성은 여성에게 불편한 관계로 다가오는 측면이 있다. 물론 이것은 대항적 범주인 민족을 또 다른 대항적 범주인 여성으로 모두 치환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거다 러너에 따르면, 이것은 서로 '다른 범주'이다. 그리고 서로간의 선후관계나 우열을 매기지 않을 때에 연대가 가능하다.

'그남들의 스펙트럼과는 다른 문제다'라고 표명한다면, '역사 의식 없는 편협한 꼴통 페미'라는 답이 날아온다. 사실 인류 절반인 여성의 역사를 망각한 편협함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페미니즘을 쉽게 공격하는 모든 종류의 반-페미니즘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럽게 본심을 고백하자면, 나는 논점을 '제대로' 흐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 논점을 흐리는 데에 있어서 '여성'이라는 또 하나의 피억압층은 뚜렷한 열쇠임을 인지하고 있다. '어머니 대지'나 '순결한 누이'로 눈물을 머금게 하는 민족의 '젖줄', 그래서 여성이 대항적 민족주의의 입장에 설 때, 더욱 강렬한 최루탄이 된다.

<요코 이야기>를 거부할 수 있었던 것은 재미동포 '소녀'와 '소녀의 어머니'였다. 이에 대항하는 일본군 성노예 소설을 창작할 수 있는 것도 '여성 작가'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민족적 테두리' 내에서 이들은 왜곡되어 소비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여성'이라는 또 하나의 타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남성적 섹슈얼리티로 '보복'의 형태를 띠었던, 요코에 대한 자국의 가해를 부정한다면, 한국 여성들의 이야기는 완전해지지 못한다.

다시 <요코 이야기>로 돌아온다. 나는 아직도 이 책과, 이 책을 소비하는 한국 사회의 단순한 패턴이 무섭도록 괴로우므로. 그러나 더욱 괴로운 것은, <국제적 자매애>를 거론하며 민족적 차이를 무화하기에는, 여성들 간의 현실적 토양이 그남들의 절반의 지배적 역사에 뿌리깊게 깃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전망을 이야기할 만큼의 여성사적 축적이 부족하다는 예감 때문이다.

단지 '금서는 안 된다', 어느 전략상의 이유로도 '선택적 망각'은 안된다라는 선에서만, 완강히 요코를 변호해본다. 요코를 비난할 수 있다면, 그리고 설혹 그의 아버지의 행적과 그에 대한 의도적 왜곡이 요코의 소설에 드러난다 하더라도, 비난의 주체는 한국 남성이 아니라 한국 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것은 일단 수많은 한국 여성들이 요코를 읽고 나서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중억압을 다루기 위해, 누구를 찾아가 만나야 하고, 무엇을 기록해야 하는 걸까. 괴로운 기록들을 연달아 읽으며, 몇 번이고 입을 닫고 싶었다. 그러나 부끄러운 흔적이나마 지우지 않고 남기는 것은, 이에 대한 메아리만이라도 충실히 새겨지길 원하기 때문이리라. 자살한 프레모 레비, 언젠가 만나서 자매애 사이의 차이에 대해 묻고 싶은 거다 러너, 성별이 다른 두 유대인과 그들을 가로지른 파시즘을, 앞으로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알라딘 개인서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돌베개(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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