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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태기 한겨레신문 사장. 편집국장 임명안이 부결됨에 따라 13일 오전 임원회의에서 사임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겨레가 다시 한 번 기로에 섰다. 편집국장 전격 경질은 거꾸로 정태기 사장의 퇴진으로 귀결됐다. 어제 실시된 편집국장 지명자에 대한 임명동의 투표가 부결됨에 따라 정태기 사장은 13일 오전 임원회의에서 사임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정 사장은 편집국장을 전격 경질하고 새 편집국장 후보자를 지명한 지난 5일 월례회의에서 이번 새 편집국장 후보에 대한 임명동의 여부가 자신에 대한 신임투표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그 결과에 따라 거취를 결정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곽병찬 편집국장 내정자에 대한 임명동의 투표는 무효표 5표가 그 향배를 갈랐다. 편집국 재적 인원 197명 가운데 150명이 투표(76.1%)한 가운데 찬성 73표, 반대 72표로 찬성이 1표 더 많았지만, 무효표 5표가 나와 결국 과반을 얻는 데 실패했다.

낮은 투표율과 무효표 5표는 정 사장의 사의 표명과 번복, 그리고 편집국장 전격 경질로 불거진 한겨레 사태에 대한 한겨레 기자들의 복잡한 심사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실상 사장에 대한 신임 투표의 성격을 가진 이번 편집국장 임명동의 투표의 투표율이 70%대에 머문 것은 이례적이다. 오귀환 편집국장 임명동의 투표때는 82%의 투표율을 보였었다. 그만큼 이번 사태에 대한 냉소적 기류가 짙었다는 이야기다. 젊은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투표과정 그 자체에 대해 인정할 수 없다며 투표하지 않은 숫자도 상당수였다는 후문이다.

편집국장 임명동의 투표 부결... 세대교체론 나올까?

임명동의 여부를 가른 5표의 무효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기자들의 복잡한 심경의 단적인 의사표현으로 읽어도 무방할 듯싶다. 임기 중에 벌써 두 차례나 편집국장을 바꾼 사장의 처사에 대한 반감이 컸지만, 그렇다고 사장 퇴진으로 이어질 불신임을 선택할 수도 없는 곤혹스런 처지가 결국 무효표로 나타났다는 해석이다. 곽병찬 편집국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 찬반 표수가 1표 차이로 나타난 것 역시 마찬가지다.

찬반표의 향배는 앞으로 한겨레의 새 경영진 선출에도 주요 변수가 될 듯하다. 젊은 기자들 사이에서는 반대표가 많았던 반면 고참 기자들일수록 사태수습 쪽에 방점을 두고 찬성한 경향이 많았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는 차후 새 사장 선임 과정에서 세대교체론이 나올 수 있는 배경이 될 수도 있다. 정 사장에 대한 불신임은 사실상 정 사장 체제에 대한 불신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태기 사장 선임 때에도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당시 구조조정을 주도한 40대의 양상우 비상경영위원장이 세대교체론을 주장하면서 후보로 나선 바 있다.

한겨레 창간 멤버로 13년 만에 '초빙사장'으로 한겨레에 복귀한 정태기 사장의 도중하차는 한겨레가 경영 타개책의 일환으로 도입한 사장의 권한집중화가 결국 실패로 귀착됐다는 점에서도 시사하는바 적지 않다. 한겨레는 2004년, 2005년 구조조정 과정에서 책임 있는 경영을 위해서는 사장의 권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사장의 임기를 3년으로 하고, 편집국장 직선제를 편집국장 임명동의제로 바꾸었다. 사장과 뜻이 맞는 편집국장 인선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기도 했다. 물론 편집국장의 임기를 3년으로 하고 중간평가제와 함께 편집국장 경질 때 편집국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등 여러 가지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임기중 2번의 편집국장 경질... 사장권한집중화 결국 실패

그러나 이 같은 안전장치는 정태기 사장이 두 차례나 편집국장을 임기 도중에 바꾸면서 그 취지가 무색하게 됐다. 편집국장이 사의를 표하는 식으로 사실상 편집국장을 경질했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이 직접 한겨레를 떠나있던 현 편집국장을 전격 발탁했음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명분도 없이 7개월도 채 되지 않아 경질한 것이 정태기 사장으로서는 결정적인 패착이 됐다.

편집국장 전격 경질에 대한 한겨레 내부의 거센 반발 기류는 지난 9일 발표된 한겨레기자협회의 성명에서 잘 나타나있다. 한겨레 기자협회는 이 성명에서 "대표이사는 임기가 시작된 뒤 2년 동안 무려 세 번째 편집국장을 지명했다. 특히 대표이사 스스로 외부에서 영입한 오귀환 편집국장은 임기 7개월도 안 돼 느닷없이 교체됐다"면서 "무엇보다 2년 동안 편집국장을 세 번째 바꾸는 것은 인사권자인 대표이사의 인사 실패를 자인하는 것에 다름 아닌데도 대표이사는 권한만 행사할 뿐 이번 일련의 사태에 대해 한 번도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겨레기자협회는 "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한겨레 조직 전체를 위해 과연 무엇을 해야 할 지 깊이 성찰하기를 바란다"면서 사실상 그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겨레는 이번 파동으로 다시 한 번 진통을 겪게 됐다. 일부는 예견됐던 일이었던 만큼 편집국 자체의 동요는 그다지 크지 않을 수 있다. 위기가 새로운 출발을 위한 기회일 수 있다는 점에서 각오를 새롭게 다잡자는 이야기도 들린다. 하지만 세대간, 직종간 균열이 파열음을 낼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한겨레 구성원들은 어려운 선택을 했다. 한겨레기자협회의 성명처럼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경구를 가슴에 새"기며 "훌륭한 사장이나 국장보다 앞서는 것은 바른 제도와 기풍임을 거듭 확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앞으로가 문제다. 한겨레의 다음 선택은 한겨레의 향후 진로에서 중대한 기로가 될 것이기 분명하기 때문이다.

태그:#미디어워치, #백병규,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한겨레, #정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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