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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지난해 아리랑 위성 2호(다목적 실용위성)가 성공적으로 발사됐고, 내년에는 우리 땅(고흥 외나로도 우주센터)에서 우리 발사체(실용 인공위성 발사체 KSLV1)로 우리 위성(과학기술위성 2호)을 발사하게 된다.

또한 2004년 12월 만들어진 휴보(HUBO)는 한국의 로봇 기술을 세계에 알리고 있으며, 해외에서 한국은 'IT강국 코리아'로 통한다.

반면 올해 서울대 수시모집 미등록자 중 이공계 비율은 69%(90명)에 달했다. 사회과학대, 인문대, 법과대에서 거의 전원이 등록한 것과 대조적으로 공과대의 경우 모집정원 546명 가운데 60명이 미등록했고 자연과학대, 농업생명과학대의 미등록자도 상당수다. 이는 2005년(66명, 전체의 56%), 2006년(78명, 67%)에 비해 더 늘어난 수치다.

미국 랜드(RAND)연구소는 세계 기술발전 추세와 전망을 분석, 국가별 과학기술 역량을 평가해 한국이 2020년 미국, 캐나다, 독일 등과 함께 과학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공계 기피라는 사회 풍조 속에서 이 같은 놀라운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뜨거운 열정이 있기에 아름다운, 이공계를 지키는 수많은 연구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 휴보(HUBO).
ⓒ 최미화
41개 모터로 몸을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휴보(HUBO)는 얼마 전 가수 김장훈의 콘서트에서 춤을 선보이며 더 이상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humanoid) 로봇이 상상 속의 존재가 아님을 확인해줬다.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얼굴을 한 '알버트 휴보(Albert HUBO)'는 웃고 찡그리는 등의 다양한 얼굴 표정을 지을 수 있다. 미국 < ABC >사의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고, 2005년 APEC 정상회담 기간 중 부시 미국 대통령과 악수도 나눈 세계적인 유명 인사이다.

'HUBO FX-1’은 무게 100kg의 사람을 태우고 시속 1.5m로 걸을 수 있다. 로봇의 실용화가 멀지 않았음을 피부로 느끼게 해 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한국의 로봇기술을 세계에 알리고 있는 연구 현장, 한국과학기술원(KAIST) 휴보랩(HUBO Lab)을 찾아갔다.

"처음에는 막막한 느낌이 엄청 많이 들었죠. 국가에 펀드를 요청하면 아무도 승낙을 안 해 줬거든요. 펀드가 조금 있다고 해도 외부 교수님들이 반대했죠. 여기저기에서 돈 끌어다 놨는데 그 돈 아깝게 휴머노이드 로봇 하려고 하느냐, 일본에서 '아시모' 만드는 데 15년 걸렸는데 언제 따라가려고 그러느냐."

▲ 김정엽 박사와 알버트 휴보.
ⓒ 최미화
휴보 랩의 초창기 멤버인 김정엽(32) 박사는 연구가 시작될 무렵을 이렇게 회상한다.

"지금이야 연구원들이 많지만 처음에는 3명이서 시작했어요. 하루에 24시간씩 몇 달째, 풀타임으로 연구했고 휴일은 아예 없었죠. 초기에는 돈이 없어서 조금 더 싼 부품을 사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녔고, 새 로봇을 만들기 위해 이전 로봇의 부품을 빼서 재활용해야 할 때도 있었어요.

언제 이 녀석이 걸어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을까, 일본이라는 로봇강대국을 제치고 더 앞서 나가는 날이 오기는 할까. 정말 맨땅에 헤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 때 오준호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세상에 멋있어 보이는 일은 없다, 98%가 3D(Difficult, Dirty, Dangerous), 즉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일이고 2% 정도가 논문을 쓰는 것, 그 나머지가 해외에 공개하는 것이다."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일은 아니었지만, 우리 기술로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로 힘든 과정을 이겨낸 지금, 20여명으로 늘어난 휴보팀원들은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작년부터 세계적인 관심을 받으면서 요즘에는 98%의 힘들었던 작업이 나머지 2%의 영광으로 승화됐다는 것을 느낍니다. 국가의 로봇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했다는 게 뿌듯하고 그것에 자부심을 느끼죠."

▲ HUBO FX-1.
ⓒ 최미화
실제 미국, 일본과 같은 경우 단기간에 높은 이윤을 남기지는 못하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유망하다고 판단되는 연구에는 국가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미래 국가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기초 및 장기적 과학기술 에 대한 투자가 미흡한 실정이다(아래 상자 기사 참조). 단기에 성과를 요구하는 사회경제적 수요 때문에 세계적 수준의 과학기술 역량을 육성할 수 있는 장기적 연구개발에는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산·학·연 협력기반도 취약하다.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 중 기술이전예산은 미국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2002년 기준). 한국과학문화재단의 '국가과기정책보고서 : 참여정부의 과학기술기본계획 2003~2007'은 지역대학의 연구개발 역량이 미흡하고 지방대학과 현지 산업 부분 간의 실질적인 산학협력 체제 구축이 미비하다고 평가했다.

휴보 랩이 처음 연구를 시작했을 때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이공계의 많은 연구진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미래 유망 기술 선점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한국도 신기술분야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투자를 확충해야 하지 않을까.

"2%의 결과만으로 판단하지 말아주세요"

▲ 오준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왼쪽)와 연구원이 실험에 몰두하고 있다.
ⓒ 최미화
지난 연말 '아시모(ASIMO)의 굴욕'이라는 동영상이 누리꾼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이 동영상은 일본 혼다사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시모'가 이벤트 행사장에서 계단 오르기 시연을 하던 중 넘어지는 모습을 담은 것이었다. 이를 접한 일부 누리꾼은 "역시 made in 쪽바리", "샘통이다" 같은 비하성 댓글을 달기도 했다.

"굴욕이라니요. 저는 동병상련이랄까 연민이 느껴지던데요. 우리도 '계단 오르기'를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은 성공률이 70~80% 밖에 안 됩니다. 10번 시도하면 3번은 넘어질 수 있다는 거죠.

'아시모'가 넘어지는 것을 보면서, '내가 정말 쉽지 않은 일을 하고 있구나'하는 안도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98%의 힘든 작업은 보지 않고 2%만으로 우리를 판단합니다. 조금이나마 '로봇 작업이 어렵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한 번의 시연을 위해 밤을 새며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아주셨으면 해요."


로봇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결과중심주의가 팽배해 있는 분위기에서, 아리랑 위성 2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하기까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연구원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으며 전쟁 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과정 자체의 중요성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대중에게 '성공이냐 실패냐'하는 잣대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이공계 대학생 장학금 제도와 박사 후 연구원 해외 연수 등 제도적 지원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섣부른 비교나 결과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작은 실수가 생겨도 격려하고 성과보다 과정을 배려해 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이들은 말한다.

로봇으로 가득 찬 곳에서 퍼져가는 아름다운 사람 냄새

▲ 젊음과 열정으로 가득찬 이들이 있기에 이공계의 미래는 밝다.
ⓒ 최미화
로봇들이 관중들의 환호를 받을 때, 무대 뒤의 김정엽 박사는 어떤 느낌일까.

"로봇 시연을 할 때마다 아이들이 많은 것을 보고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도 나중에 저런 것을 만들어야지'하는 생각을 하면 더 좋고요. 아이들이 '로봇 좋아요'라며 즐거워할 때면 정말 뿌듯합니다.

남을 행복하게 해 주는 거잖아요.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우리 휴보 랩 학생들이 다 그런 것을 느끼더라고요. 그런 게 연구의 원동력이 되는지, 한 번씩 그러고 나면 다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과학영재'라 불리우며 학창 시절을 보내고 돈 잘 버는 직업이 던지는 수많은 유혹을 받았을 한국과학기술원의 휴보 랩 팀원들은 말한다.

"의대요? 이공계 기피 현상이요? 글쎄요, 인생의 목표를 돈에 귀결시키고 싶진 않았어요.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 이루고자 하는 바를 끝까지 밀고 나갔으면 좋겠어요."

한국의 로봇 기술을 세계에 알리고 있는 휴보 랩. 그곳은 분명 로봇과 기계들로 꽉 차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곳에선 아름다운 사람 냄새가 났다. 어쩌면 그 기운으로 사람 닮은 로봇이 성공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래 유망 원천기술 분야의 국가별 정부투자 비교


적용환율 : 1달러=1200원, 100엔=1000원,
1파운드=1900원, 1유로=1300원
자료 :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2003

태그:#이공계 기피, #이공계, #휴보, #알버트 휴보, #아리랑 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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