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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24일자 성한용 칼럼
ⓒ 인터넷한겨레 화면 캡쳐
10여일, 가깝게는 항일투쟁의 현장이요 멀게는 조선과 고구려의 영토였던 만주 일대를 돌아보고 오니 몇 가지 이슈가 제기돼 있었다. 그 중 가장 흥미를 끈 게 민족문학작가회의의 명칭 변경 문제였다. 아직도 민족 문제가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현장을 확인한 터였기 때문이다. 젊은 작가들은 벌써 윤동주를 잊었을까?

그 다음으로 눈에 띈 게 <한겨레> 1월24일자 성한용 칼럼 '노 대통령과 그의 비서들'이었다. 성 기자의 청와대 비판에 대해 청와대 홍보수석의 반론이 있었고, 그에 대해 재반박하는 글이었다. 나는 이미 <오마이뉴스> 1월13일자에 개헌 의제를 외면하는 <한겨레>의 태도를 비판한 바 있기에 성 기자의 글에서 다음 부분을 다시 따지지 않을 수 없다.

"개헌에 대한 태도를 문제 삼고 있는데, <한겨레>는 첫날 사설에서 '개헌론,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 있다'고 썼다. 그리고 이틀 뒤 '개헌론 접는 게 순리다'라고 썼다. 부정적인 여론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지금은 '계도지' 시대가 아니다. 다른 신문 사정은 알바 아니지만, <한겨레>에 국민 계도를 기대했다면 그건 노 대통령의 착각이다."

앞서도 지적했지만, '여론'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게 아니다. 긴 호흡에서 맥락을 살펴야지 달랑 한번 조사해서 그걸 움직일 수 없는 민심이라고 믿는다는 것은 어리석다. 특히 사이비언론이 정략적인 의도에서 왜곡보도를 반복한 결과 국민들의 머릿속에 형성된 의견의 합집합을 두고, 부정적인 여론을 감안해야 한다며 이틀 만에 중요한 의제를 접는다는 건 무책임하다. <한겨레>이기에 더욱 그렇고, 성한용 선임기자가 그리 해석한다는 건 실망이다.

제안에 타당성이 있으면 당연히 의제로 삼아야

24일의 성한용 칼럼 바로 아래에는 김기창 고려대 교수의 ''주류 언론'의 담론 죽이기'라는 기고가 함께 실렸다. 담론을 죽이는 건 '주류 언론'만일까? <한겨레>는 자기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의 티만 보는 건 아닐까?

역시 <한겨레> 1월19일자 신기섭 논설위원의 '다시 문제는 언론이다'를 보아도 그렇다.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지만 문제를 조목조목 따지고 평가하는 공론 마당은 없다. 그래서 다시 문제는 언론이다"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문제의 언론에 <한겨레>는 해당되지 않는가? <한겨레>는 공론 마당에서 주요 의제를 조목조목 따지고 평가하고 있는가?

@BRI@모처럼 의미 있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1월28일 <연합뉴스>와 미디어리서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22.1%가 연임제 개헌이 현직 대통령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헌법규정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조사에선 노 대통령이 차기 대선에 재출마할 수 없다는 헌법규정을 공지한 상태에서 연내 개헌 찬반 여부를 물었을 경우 반대 51.0%, 찬성 42.4%였다고 한다.

최근 <조선일보>와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도 20·30대 젊은 층 지지가 늘면서 '현 정권 개헌 추진'의 전체 지지도는 27.1%에서 33.5%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개헌이 의제가 되고 충분한 토론이 전개된다면 여론지형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그런데도 '주류 언론'은 의제를 왜곡하고, <한겨레>마저 '공론 마당'을 접음으로써 국가의 중대사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성한용 기자는 "지금은 '계도지' 시대가 아니다. 다른 신문 사정은 알바 아니지만, <한겨레>에 국민 계도를 기대했다면 그건 노 대통령의 착각"이라고 했다.

이번 '개헌' 논란은 '계도지'의 문제가 아니라 언론의 '의제 설정 기능'의 문제다. 내가 대통령이나 청와대의 속은 모르겠지만, 대통령이 <한겨레>에 국민 계도를 기대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슨 근거로 그리 판단하는지 모를 일이다.

착각하고 있는 건 성한용 기자다. <한겨레>가 중차대한 국가 과제를 어설픈 '부정적 여론 감안' 논리로 '공론장' 기능을 포기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엉뚱하게 '계도지' 운운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제안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제안에 타당성이 있으면 당연히 의제로 삼아야 한다. 여론도 변화가 확인되지 않은가? 51.0 대 42.4. 이래도 포기해야 하는가? 다시 문제는 <한겨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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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등 역임,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 리버럴아츠 미디어연구회 회장, MBC 저널리즘스쿨 강사,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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