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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앞마당 수도를 만들었다.
ⓒ 전희식
드디어 며칠 지나면 어머님이 이곳으로 오십니다. 두 달여 집짓기가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어제 밤늦게 형님과 전화로 집짓기 마지막 점검을 했습니다. 완강하던 형님도 내 고집을 꺾지 못하고 이제야 동의를 하는 눈치였습니다.

겨울이나 지내고 내년 봄에 모시라는 말도, 곧 어머니 생신이고 설인데 시골로 갔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와야 할 것 아니냐는 큰 형수의 만류도 제 뜻을 바꿀 만 하지는 못합니다. 한겨울 추위에 산골에서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쩔 것이냐는 여동생의 말처럼 이곳은 마음의 준비만으로는 부족한 것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귀도 멀고 똥오줌도 잘 못 가리는 어머니가 계실 곳은 결코 서울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더구나 사시사철 두 평 남짓한 방에서만 지내면서 밥도 받아먹고 똥오줌도 방에서 해결하게 하는 것은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편할지 모르지만 여든 여섯 노쇠한 어머니의 남은 인생을 가두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BRI@저는 어머니에게 파란 하늘도 보여 드리고 바위와 나무, 비나 눈, 구름도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어머니가 철따라 피고 지는 꽃도 보고 시시각각 달라지는 계곡의 바람결도 느끼고 크고 작은 산새들이 처마 밑까지 와서 노닥거리는 것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옛날의 강렬했던 기억들 속에 자주 빠지시는 우리 어머니는 제가 지금도 굶고, 쫓겨 다니고, 어디 갇혀 있는 줄로 알 때가 많습니다. 자나 깨나 제 걱정입니다. 그래서 제가 건강하게 잘 지내고 많은 사람들과 사이좋게 어울려 사는 모습을 항상 볼 수 있게 해드려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고 이 때문에 어머니와 같이 살 집짓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내 손으로 집을 짓기로 하다

▲ 못을 하나하나 펴서 재활용해 쓴다.
ⓒ 전희식
시골의 버려진 집을 하나 구해서 고치고 있습니다. 십여 년 넘게 비어 있던 집이다 보니 집 한쪽이 완전히 주저앉았고 기둥은 여러 개가 썩어 있었습니다. 아홉 자 세 칸 홑집으로 열 평이 채 못 되는 이 집은 6·25 직전에 지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열 한 남매가 자랐다고 합니다.

무너진 지붕을 일으켜 세우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서까래는 성했습니다. 옆 고을에서 농사짓는 후배 둘을 불렀습니다. 중학생인 아들은 새참용 라면을 냄비에 끓이고 우리는 자동차 고칠 때 쓰는 쟈키로 집을 들어 올렸습니다. 삿뽀드(집지을 때 쓰는 임시 철제기둥)를 세워가면서 조금씩 지붕을 들어 올리는데 아찔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이때는 날카로운 고함을 질러가며 셋이서 한 몸이 되어 일을 했습니다.

실한 도리목을 갈아 넣고 기둥을 세우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습니다. 막걸리가 댓 병이나 비워졌고 '어이~쌰!'하는 외침이 울려 퍼졌습니다. 우리는 세상이야기도 나누고 농사이야기, 건강이야기, 자식 키우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노동의 힘듦은 노동량에만 비례하는 게 아니고 노동의 내용과 과정에 좌우된다는 진리를 확인하는 하루였습니다. 이런 식이었습니다.

저의 집짓기는 노동이 돈이나 결과물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노동 그 자체에서 의미를 찾을 때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깨우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럿이 함께 짓는 집

두 달여 동안 집 고치는 일에 참여한 사람들이 연인원 백사람은 될 것입니다. 두 평 조금 넘는 단칸방에서 아홉이서 자기도 했습니다. 열한 명이 왔던 날인데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인 전주에서 온 두 명은 밤에 되돌아가야 했던 날입니다.

몸을 움직일 수도 없이 꼭 끼어 잤지만 잠은 달콤했고 아침은 찬란했습니다. 대안학교 학생들이 네 명이나 와서 한 주 동안 생태집짓기 체험도 했었고 <길동무>(www.gildongmu.org)의 '보따리학교'도 열렸습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자기가 먹을 것과 침구를 가져와야 했습니다. 그들이 가져오는 과일과 반찬, 그리고 곡차로 먹을거리가 항상 넘쳤습니다.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반찬이나 과일은 싸 드렸습니다. 고되게 일을 하면서도 우리는 술보다 차를 더 즐겼습니다. 황차나 보이차를 마실 때의 맑디맑은 기운은 술로 돋우는 탁한 취흥과는 비교가 안 되었습니다.

병약하신 제 어머니가 사시게 될 이 집이 좋은 기운으로 넘치고 터가 밝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문짝 하나 만들고 손잡이를 달 때도 어머니의 신체조건을 생각하면서 판단했습니다.

재래식 부엌을 입식으로 고쳤는데 알고 있는 온갖 지식을 다 사용하였습니다. 부엌 위로는 천정을 만들었고 연기를 빼 내는 장치를 하고 수도를 놓았습니다.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며 시공 방법을 찾아내는 재미가 컸습니다. 해 봐야만 맛 볼 수 있는 재미들입니다.

한번은 곱게 생긴 부인이 전북대 교수인 남편과 초등학생 남매를 데리고 왔습니다. 힘들게 일하면서도 이렇게 신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이들도 어른 한 사람 몫을 톡톡히 해 낼 수 있는 것이 시골일이고 생태집짓기입니다. 아이들의 자긍심과 어른의 대견함은 최대치가 됩니다.

밤이 깊도록 얘기도 나눴습니다. 마침 전남 곡성에서 온 생태평화운동을 하는 후배가 나노공학을 전공하는 이 교수에게 듣기에 따라서는 자존심 상할 얘기들도 했습니다.

생명공학과 로봇, 그리고 나노공학이 위험한 질주를 하고 있다면서 브레이크 역할을 내부자가 해야 한다는 약간 압박이 되는 얘기도 했는데 워낙 사심 없이 진솔하게 하는 얘기라서인지 우리가 처음 만났는데도 이 분은 고깝게 생각하지 않고 아주 잘 들어 주었습니다.

일본의 핵 물리학자 다카기 진자부로를 소개하자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그분의 저서를 꼼꼼히 받아 적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미국의 세계적인 컴퓨터 과학 기술자인 빌죠이(Bill Joy)가 쓴 '왜 우리에게 미래가 필요 없는가?'(Why the future doesn't need us)라는 논문을 찾아서 보내 주었습니다.

마음이 편한 집을 짓자

▲ 아침마다 꽝꽝 언다. 보통 영하 10도를 오르내린다. 장갑을 빨래통에 넣어 뒀다가 얼어버린 모습.
ⓒ 전희식
집을 지으면서 저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몸은 좀 불편하더라도 마음은 아주 편한 집을 짓는다는 것입니다. 살면서 양심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는 집이 그 핵심입니다.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집, 에너지를 적게 쓰는 집, 자연과 순환하는 집, 생활의 편리를 지나치게 쫒지 않는 집…, 이런 것입니다.

그래서 뒷간을 본채에서 30미터쯤 떨어진 마당 구석에 재래식으로 두었고 보일러는 안 놓고 세탁기와 냉장고는 아예 들이지 않는 것으로 집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자다가 오줌 누러 가려면 총총한 별도 봐야 하고 얼어붙는 겨울바람도 쐬어야 합니다. 손빨래를 하면서 세탁물 하나하나에 얽힌 내력들을 되새겨 보는 것은 삶에 대한 성찰이 되고 있습니다.

재미있고 즐겁게 집을 짓는다는 것도 중요한 원칙이었습니다. 여럿이 한데 어울리면서 지으려고 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목표중심의 삶이 고단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집짓는 과정을 중요시한 것입니다.

제일 강조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버려진 것들을 주워 모아서 다시 되살려내겠다는 원칙입니다. 그래서 쓰레기장과 고물상을 돌면서 필요한 것들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일을 서두르거나 일정을 빠듯하게 세워가지고는 할 수 없는 것이 이것입니다. 기다려야 하고 느긋해야 합니다.

한때는 멋진 전시장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체통 있는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도 했었겠지요. 몇 개의 시장을 거쳤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의 손때를 묻히다가 이제 무덤으로 가는 길목, 최후의 시장인 고물상에 놓이게 된 가구나 건축자재용품들은 예사롭지 않은 감흥을 불러일으킵니다.

부엌 고치는 일을 하다가 갑자기 배관작업을 멈춰야 했습니다. 제가 주워 올 싱크대가 구형 조그만 것이 될지 신형의 수도관 내장형이 될지 알 수 없었기에 수도관의 높이를 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굴뚝과 연기를 빼낼 팬을 못 구해서 부엌 벽 그을음을 지우는 황토 물미장만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공사기간이 크게 늘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만 조급하게 먹지 않으면 일의 진척은 큰 차이가 안 나고 일에 대한 만족도는 훨씬 커집니다.

돌과 나무, 황토, 모래는 트럭을 몰고 다니면서 틈틈이 주워 왔습니다. 가스레인지를 하나 주웠는데 도시가스용이었나 봅니다. 시커먼 그을음이 어찌 나는지 냄비나 주전자를 설거지할 때 애를 먹었습니다. 노즐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두 달여 만에 해결이 되었습니다.

고물상에 들렀더니 내가 오기를 태초부터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이름 있는 회사의 멀쩡한 가스레인지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만원짜리 한 장으로 바꾸었습니다.

케이비에스 인기 프로그램인 '6시 내 고향'에 집짓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텔레비전을 보고서는 집 구경을 옵니다. 주로 일흔이 넘은 노인네들인데 이 분들 덕에 이 마을의 역사와 수풀만 무성한 골짜기마다 누구누구네 몇 집이 살던 터였는지 속속들이 알게 됩니다.

무엇보다 우리 어머니가 그 프로그램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공공매체가 갖는 신인도가 덩달아 제 신용도를 높였습니다. 막내인 제가 하는 일은 항상 미덥잖아하고 또 무슨 재를 저지러나 하는 형님들과 누님의 태도가 한결 누그러졌다는 것입니다.

소박한 효심만으로 부모를 모실 수는 없다

제 집짓기가 저의 일방적인 작심만으로 추진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어머니가 저랑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귀를 잡수셔서 다른 사람 말은 잘 못 알아들어도 제가 하는 말은 잘 알아듣는 게 신기합니다.

명절에 형님 댁에 가면 다른 형제나 조카들은 어머니 방에서 5분 이상 머물지를 않습니다. 말이 안 들리고 엉뚱한 소리만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고집 부리고 하니 같이 있으려고 안 합니다. 건성으로 인사하고 쓸데도 없는 용돈이나 쥐어주고 나오지만 저는 꼭 어머니 방에서 잠을 잡니다.

밤 내내 내 몸을 만지고 쓰다듬느라 어머니나 저나 토막잠을 자지만 어머니가 하는 고향동네 지리산 빨치산 얘기, 아버지랑 일본 가서 살던 이야기 등 구수한 경상도 토박이말과 속담들을 듣는 재미가 좋아서 줄곧 녹음도 하고 녹화도 했는데 양이 상당합니다.

다음날 떠나 올 때는 베개 속에서 꼬깃꼬깃한 돈들을 꺼내 제 용돈으로 줍니다. 저는 이것을 농담 삼아 어머니와 하룻밤 자 주고 받는 화대라고 자랑합니다.

두 달 집짓기를 하면서 새로 배우고 깨우치는 것들이 많습니다. 제게 알 수 없는 선한 기운이 넘치면서 몸과 마음이 아주 좋은 쪽으로 급속하게 변해 가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주로 새벽녘에 신비하고 인상 깊은 체험들을 하곤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어머니가 자식에게 베푸는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큰 기관을 운영하는 절친한 분과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최근 하게 된 제 생각을 말했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부모 모시는 분들이 부모를 모시고 와서 며칠이고 행사에 참석할 수 있도록 건물 안에 병들고 늙으신 어른들을 돌보는 시설을 하고 전문 간병인을 배치하면 좋겠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 내키는 대로 장식을 했다. 큰 물고기를 만들었다. 오른쪽 끝이 지느러미다. 머리가 크고 눈이 큰, 그래서 지혜로운 물고기다. 생명의 근원인 물 세상이 우리집 이고 태초의 생명체인 물고기를 만들었다.
ⓒ 전희식
소박한 효심만으로 늙은 어머니를 모실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늙어가면서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를 잘 알고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유경씨가 쓴 <마흔에서 아흔까지>라는 책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 것이라는 말을 듣고 민주언론운동을 하는 친구는 심각한 고백을 제게 했습니다. 치매이신 어머니를 20년째 모신다면서 자기가 이토록 불효막심하고 인간성이 더러운 놈이라는 것을 절감하는 과정이었다고 했습니다. 늘 회한과 속죄를 안고 산다고 했습니다.

어느 선배는 향 치료를 할 수 있을 거라면서 강화 사자발쑥을 권했습니다. 그렇잖아도 저는 어머니와 공부하고 즐기면서 창조적으로 살 생각입니다. 향 치료뿐 아니고 피라미드 등 꼴 치료와 색깔 치료를 직접 할 생각입니다. 음악치료를 위해 황병기와 소지로 음반을 다시 챙기고 있습니다. 각종 명상음악을 모으고 있습니다.

제가 매일 하고 있는 새벽 풍욕도 어머니에게 맞을지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내일은 아는 사람이 원장으로 있는 노인전문병원에 하루 노인 돌보기 자원봉사 가는 날입니다. 몸 불편한 어르신들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 익히는 날입니다. 방금 '노인이 말하지 않는 것들'이라는 노인 심리 책이 도착했습니다.

오늘은 방에 문풍지를 달고 여닫이 문 안쪽으로 유리로 만든 미닫이문을 이중으로 다는 날입니다. 바깥문을 활짝 열어놓고도 따뜻하게 바깥 구경을 어머니가 할 수 있도록 제가 고안한 미닫이 문입니다.

글 읽기를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돋보기를 준비하고 어머니 전용 동화를 제가 쓸 생각입니다. 인터넷이야 워낙 산골이라 안 되지만 집에 컴퓨터와 프린트는 들여 놓을 계획입니다. 제가 쓴 동화를 큰 글자로 인쇄해서 보여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녹색평론> 2007년 1-2월 호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집짓기, #재활용품, #고물, #쓰레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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