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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핵과학자 협회에서 '최후의 심판' 시계를 자정 5분전으로 당기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국제사회의 저명한 과학자들과 전직 관료들이 참여하고 있는 핵과학자 협회(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가 인류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나섰다.

이들은 17일 워싱턴과 런던에서 동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 등 핵강대국의 지속적인 핵위협과 북한·이란 등 일부 국가들의 핵무장 시도로 인류사회의 위험이 증대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기후 변화와 함께 인간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새로운 과학기술의 오용도 인류사회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경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이 단체는 '최후의 심판 시계'(Doomsday Clock)의 분침을 2분 앞당겨, 인류 종말을 의미하는 자정까지 불과 5분밖에 남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는 1947년 처음 이 시계가 작동된 이후 5번째로 인류사회의 종말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써, 특히 냉전 해체 이후에는 자정에 가장 근접해 있다.

1945년 창립된 이 단체에는 18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스티븐 호킹 캠브리지대 물리학 교수 등 명망가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냉전 끝났어도 핵전쟁 가능성은 남았다

@BRI@핵과학자 협회가 이처럼 경종을 울리고 나선 데에는 우선 핵문제가 크게 작용했다. 이 단체는 우선 냉전시대 미소간의 핵전쟁 공포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대표적으로 미국과 러시아는 우발적인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핵사용 준비태세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경보 즉시 발사'(launch on warning)라고 불리는 이 태세에 따라 발사 준비를 갖추고 있는 핵미사일은 무려 양국 각각 1천개가 넘는다.

특히 지휘통제 시스템 및 정보시스템의 오작동과 정책결정자의 오판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에, 지구 종말을 가져올 수 있는 대규모의 핵전쟁의 위험성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이 단체의 결론이다.

또한 최근 들어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고, 이란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라늄 농축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것 역시 인류 사회의 핵 위협 증대의 중대한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 지난해 10월 15일 오전(한국시간) 열린 유엔 안보리에서 각국 대사들이 북한의 핵실험을 국제사회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 군사조치가 배제됐으나 강력한 경제적 외교적 제재 를 내용으로 한 대북 제재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고 있다. 왼쪽 맨 위가 북한의 박길연 대사로 만장 일치로 대북 제재안이 통과되는 모습을 보고 있다.
ⓒ 연합뉴스 성연재
1차 핵시대로 일컬어지는 핵무기의 공포는 주로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핵강대국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면, 2차 핵시대는 이러한 위협이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핵기술과 정보통신의 발달로 핵무기를 제조·확보하기가 과거보다 쉬워졌다는 점이 주된 요인으로 지적되었다. 파키스탄의 A.Q 칸이 북한·리비아·이란에 핵기술을 판매한 것이 이러한 예에 해당된다.

화석연료 사용 증가로 인한 기후 변화 역시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꼽혔다. 기후 변화에 따른 경고는 이전부터 곳곳에서 나왔지만, 핵과학자 협회가 이 문제를 핵무기 다음으로 인류사회의 생존을 위협하는 최대 요인이라고 지적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아버지 부시가 밀어낸 분침, 아들 부시가 당겼다

이처럼 인류사회의 종말을 경고하는 과학자들의 눈을 가장 찌푸리게 한 인물은 역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다.

조지워싱턴대 국가안보문서보관소 소장인 토마스 블래톤은 "아버지 부시의 정책은 최후의 심판으로부터 분침을 멀리 하게 했는데, 아들 부시의 정책은 분침을 자정에 가깝게 만들었다"고 혹평했다.

특히 부시 행정부가 2002년 핵태세검토보고서(NPR)를 통해 비핵국가에 대해 핵선제 공격 가능성을 열어 두고, 지하시설 파괴용 벙커버스터 핵무기를 개발하기로 하는 등 핵패권주의를 강화하고 나선 것은 인류사회의 염원과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제위기감시그룹 공동의장인 토마스 피커링은 "외교는 우리의 최우선적인 보루여야 한다"며 부시 행정부의 성실한 외교를 촉구했다. 미국 스스로가 안보정책에 있어서 핵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포괄핵실험금지조약(CTBT) 인준 등 모범을 보임으로써 다른 국가들의 핵군축 및 핵폐기를 적극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럴 때에만 북한과 이란의 핵포기를 유도할 수 있는 도덕적·현실적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 테러와의 국제 분쟁에 관해 백악관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는 부시 미 대통령과 외교안보팀.(자료사진)
ⓒ 백악관 홈페이지
때마침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독일 베를린에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을 만나 장시간에 걸친 양자 대화를 가졌다. 북미간의 직접대화를 거부해온 부시 행정부가 베이징도 아닌 베를린에서, 그것도 6자회담 일정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회담에 임한 것은 분명 긍정적인 신호이다.

그러나 미국 재무부와 국무부는 미국이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묶여있는 북한 자산 가운데, 불법자금과 합법자금을 구분해 합법자금의 동결을 해제할 것이라는 언론 보도를 일축했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금융제재 문제와 관련해 비타협주의를 고수할 것이라는 점을 예고하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핵과학자협회가 최후의 심판 시계의 분침을 2분 앞당긴 이유 가운데 하나로 북핵 문제를 들고 있는 만큼, 이 문제의 조속하고 평화적인 해결은 이 시계의 분침을 다시 뒤로 돌일 수 있게 할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21세기 초엽 세계 평화를 가장 위협한 인물로 기록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러한 부시가 인류사회에 이러한 공헌이라도 남기고 임기를 마무리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2분~17분... 최후의 심판 시계, 어떻게 변해왔나

'최후의 심판 시계'는 1947년 핵과학자협회가 협회보를 발간하면서 처음 선보인 것이다. 단체의 설립자 가운데 한 사람인 에우진 로빈노비치는 "이 시계는 국제정치의 변동보다는 핵시대에 인류사회의 생존이 얼마나 큰 위협에 노출되고 있는지, 그리고 왜 우리가 핵무기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와 제도를 바꿔야 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947년 첫선을 보일 때, 이 시계의 분침은 자정 7분 전에 맞춰졌다. 시계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자정은 인류사회에 대한 최후의 심판, 즉 종말을 의미한다. 이후 이 시계는 모두 18차례에 걸쳐 시간의 조정되었다. 그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 핵폭탄 폭발 장면
ⓒ 미국과학자협회
1949년 자정 3분전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하고, 이에 흥분한 해리 트루만 미국 대통령이 소련에 대한 핵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핵무기 증강에 나서겠다고 발표한 때이다.

1953년 자정 2분전 1952년 10월 미국이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수소폭탄을 실험하고, 9개월후 소련도 미국의 뒤를 따른 시점이다. 핵과학자협회는 시계의 분침을 1분 앞당기면서 이렇게 가다가는 인류의 종말이 멀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1960년 자정 7분전 미소간의 핵군비경쟁이 잠시 주춤하고 전세계적으로 반핵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시계의 분침이 5분 늦춰졌다.

1963년 자정 12분전 미국과 소련이 대기권 핵실험을 금지한 '부분 핵실험 금지 조약'에 서명한 직후이다.

1968년 자정 7분전 세계 곳곳에서 분쟁이 발생하고 중국과 프랑스가 핵실험에 성공하면서 분침은 또 다시 5분 당겨졌다.

1969년 자정 10분전 핵확산금지조약(NPT)이 탄생하면서 3분 늦춰졌다.

1972년 자정 12분전 미국과 소련이 전략무기제한협정(SALT)과 탄도미사일방어조약(ABM)에 서명하면서 2분 더 늦춰졌다.

1974년 자정 9분전 인도가 핵실험에 성공하고 미국과 소련이 다탄두 핵미사일의 개발·배치에 나서면서 자정에 3분 가까워졌다.

1980년 자정 7분전 미소간의 핵군축 협상이 중단되고 양국이 안보전략에서 핵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면서 2분 더 당겨졌다.

1981년 자정 4분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카터 행정부의 강력 반발, 레이건 행정부의 등장 등 신냉전이 조성되면서 최후의 심판 시계의 분침은 3분 더 당겨졌다. 특히 레이건은 소련과의 군축 협상을 중단하고 냉전을 종식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소련을 이기는 것이라고 천명했다.

1984년 자정 3분전 미소간의 신냉전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로써, 레이건 행정부가 스타워즈, 즉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을 본격화하고 소련이 핵무기 성능 향상에 박차를 가했다.

1988년 자정 6분전 고르바초프의 등장,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반핵운동의 확산 등으로 미소간의 핵군축협상이 성과를 거둔 시기이다. 특히 두 나라는 중거리핵미사일폐기협정(INF)에 서명했는데, 이는 핵군축 역사의 이정표로 기록되었다. 이에 힘입어 분침이 3분 늦춰졌다.

1990년 자정 10분전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상징되는 동유럽의 붕괴와 소련의 불간섭 선언으로 냉전이 해체된 시기이다.

1991년 자정 17분전 냉전 해체 이후 미국과 소련이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에 나선 시점이다. 핵과학자협회는 "수만개의 핵무기가 국가안보를 보장한다는 환상이 결국 사라지게 되었다"며, 시계의 분침을 자정에서 가장 먼 17분 이전으로 맞췄다.

1995년 자정 14분전 미국 등 핵보유국이 핵감축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으면서 '핵무기 없는 시대'에 대한 인류사회의 열망이 식어가던 시기이다.

1998년 자정 9분전 인도와 파키스탄이 잇따라 핵실험을 강행한 때이다. 또한 미국과 소련이 핵감축에 임하지 않고, 15분 이내에 발사될 수 있는 핵미사일 수를 여전히 7천개씩 유지하면서 분침은 다시 5분 앞당겨졌다.

2002년 자정 7분전 9.11 테러 이후 핵테러의 위험성이 증대되고, 미국이 새로운 핵무기 개발 및 MD 구축에 박차를 가하면서 또 다시 2분 당겨졌다.

2007년 자정 5분전 미국과 러시아 등 핵보유국의 핵군축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고 이란이 우라늄 농축 활동을 고수하면서 최후의 심판 시계는 냉전 해체 이후 자정에 가장 가까운 밤 11시 55분을 가리키고 있다.

태그:#최후의 심판 시계, #최후의 심판, #인류 멸망, #핵과학자 협회, #핵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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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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