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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ck_key의 글 목록이다. 지난 1월 10일만 해도 벌써 몇개를 올렸는지 눈으로 직접 보시라.
ⓒ 네이버 화면 캡쳐
네티즌들은 인터넷 댓글 게시판에서 저마다 다양한 개성을 발산하곤 한다.

그런데 정체가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은 '댓글 게시판의 네티즌'이 인기의 상징이라는 '팬'과 '안티'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고, 개성이 드러난 그의 댓글이 '성지'로 지정돼 많은 이들이 '순례'까지 하고 있다면 당신은 믿을 수 있을까?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사실이다. 이따금씩 날카롭게 핵심을 찌르는 유머와 독특한 패턴의 댓글로 산발적인 웃음을 유발하는 네티즌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그의 경우는 더욱 특별하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

"레딩FC의 구단주, 기술이사, 감독에게..."

▲ 바로 이 글이다. 첫 글은 이미 '성지 중에 성지'가 돼 열렬한 호응을 얻고 있다.
ⓒ 네이버 화면 캡쳐
▲ 보다 업그레이드된 최신 글
ⓒ 네이버 화면 캡쳐
'그'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jack_key'라는 아이디를 쓴다. 그의 팬임을 자처하는 네티즌들은 그를 '잭키사마'라고도 부른다. 'jack_key'가 도대체 누구길래 '사마'라는 존칭까지 얻게 된 것일까?

'jack_key'는 축구팬, 그 중에서도 설기현과 그의 소속팀 레딩FC의 열성팬(?)으로 보인다. 네이버의 뉴스 댓글 게시판 개편 이후, 2006년 5월 6일 오후 6시에 첫 댓글을 단 이후, 2007년 1월 11일 0시 50분 현재, 912개의 댓글을 단 열성적인 네티즌이다. 초반에는 연예면 기사에서 다소 핀트에 어긋난 댓글을 달다가 욕도 먹고 비판도 들었던, 딱히 언급할 이유도 없던 네티즌이었다.

그런 그가 본격적으로 '사마' 반열에 오를 역사적 과업을 시작한 때는 2006년 7월 31일 오후 9시 28분이었다. 그는 <마이데일리>의 2006년 7월 31일자 기사 "[사커에세이] 설기현 입단 레딩 '환상에서 깨어나라'"라는 기사에 '레딩FC관계자분에게~~'라는 제목의 댓글을 단 이후 지금까지 같은 형식의 댓글을 800여개 이상 올렸다.

특징이 있다면, 요즘 들어서는 자신이 추천하는 '추천선수명단'에 해당 선수의 국적과 나이, 포지션까지 세밀하게 기록한다는 것과 그가 늘 편지를 전하는 대상이 레딩FC의 구단주, 기술이사, 감독 등 반드시 셋 중 하나로 규정돼 있다는 것이다.

이 댓글의 내용을 본 사람이라면 바로 알 수 있듯이, 그의 '추천선수명단'은 현실적으로 레딩FC가 영입할 수 없거나 가능성이 희박한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레딩FC의 구단주, 감독, 기술이사가 과연 한국 포털 사이트 뉴스 댓글 게시판까지 와서 볼 수 있을까란 점에서, 그저 가벼운 '유머'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갖기는 어렵다.

그의 '팬(?)'임을 자처하는 네티즌은 주로 800개가 넘는 같은 댓글을 지침 없이 꾸준히 올리고 있는 그의 지구력에, 그리고 늘 끝부분을 장식하는 '~~^^'이라는 이모티콘에 주목한다. 한 마디로 "한 우물을 파도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파올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온갖 '악플'만이 판을 치는 포털사이트 댓글 게시판 현실에 조금이나마 훈훈함을 준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후 그의 '팬'들은 그래서 뒤늦게 그의 다른 댓글들을 감상하며, "성지순례하러 왔다"는 식의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고 2006년 7월 31일 오후 9시 28분에 올린 '첫 댓글'은 조회수 4615, 추천 209개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가 왜 인기를 누리는지 잘 모르는 네티즌이라 하더라도, 800여 개의 댓글 흔적을 보는 순간 바로 그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지난 해 11월 28일, 그의 '팬'을 자처하고 나선 이들은 포털사이트에 그의 팬 카페까지 만들어 그를 응원하고 나섰다.

11일 현재 팬 카페 회원수는 288명. 하지만 jack_key의 '안티'들도 이에 질세라 안티 카페를 조직해 '개념을 탑재하길 바란다'는 식의 비난을 집중시키고 있다.

jack_key에게도 '아류'는 있다

▲ 프로야구 기사에 출몰한 '아류' wpzpfm1의 글, 그가 편지를 보내는 대상은 LG 트윈스 팀이다.
ⓒ 네이버 화면 캡쳐
▲ wpzpfm1의 글 목록, jack_key의 LG 트윈스 버전이다.
ⓒ 네이버 화면 캡쳐
인기인에게 '아류'는 숙명이다. 인기가수 나훈아에게 너훈아가 있듯이 jack_key에게도 '아류'는 있다.

그의 팬 카페의 공지글에는 늘 '현재 잭키님 짭퉁 목록(주의합시다!)'라는 글이 있다. jack_key의 아이디를 빙자하거나, 살짝 변형시켜 그를 사칭하며, 같은 글을 올리는 '얼굴 없는 유저'들을 선별하기 위한 팬들의 자발적인 노력이다.

우리의 시대는 바야흐로 불법복제에 민감한 시절이다. 그만큼 팬들의 이런 자발적인 노력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어설픈 아류들과는 쉽게 비교할 수 없는 아류가 나타났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 'wpzpfm1'를 당당히 드러내고 jack_key의 글 형식을 그대로 베껴 야구기사에 적용시키고 있다.

지난 시즌 프로야구 정규리그 꼴지의 멍에를 쓴 LG 트윈스를 대상으로, 김재박 신임 감독과 구단주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물론 그가 생각하는 '추천선수명단'도 사실상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가깝다. 그의 경우 '복제'에도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형식의 확산을 노리고 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더 재미있는 것은, 농구 기사에서도 jack_key의 아류가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 역시 jack_key의 글 형식을 그대로 베낀 가운데, '추천선수명단'에 과거의 외국인 선수나 현재 명성을 떨치고 있는 NBA의 특급 선수들을 총망라시켰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그는 jack_key의 전형적인 틀에서 한 차원 높은 진화를 추구한다는 소식이다. 특정 팀의 감독, 구단주의 범위를 벗어나 체육관 청소담당자 등에게까지 댓글 게시판을 통해 편지를 보내고 있다. jack_key의 명성이 더 탄탄해질수록 아류들의 출몰 빈도 역시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jack_key, 왜 주목받나?

▲ 유명 검색어의 상징, '검색어 자동완성' 반열까지 오른 jack_key
ⓒ 네이버 화면 캡쳐
댓글 게시판에는 '튀어서' 자신이 단 댓글의 조회수를 높이려는 네티즌들이 많다. 슬픈 소식을 다룬 기사에서 헛소리를 일삼아 분노를 유발하는 이들도 있으며 글을 읽지도 않고 스스로 판단해 댓글을 써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도 있다.

그에 비하면 jack_key는 순수하다. "할 일 없는 사람 아니냐"는 차원에서 그의 '안티'를 형성하는 일부 네티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재미삼아' 그의 팬을 자처한다.

네티즌들이 얼마나 많이 검색을 했는지 'jack_key'는 '검색어 자동완성 기능'의 수혜자로도 등극했을 정도다. 결코 아무나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jack_key의 '레딩을 향한 편지'는 분명 헛소리지만, 앞서 이야기한 대로 요즘 같은 세상에 이렇게 꾸준하게 한 우물만 파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점, 이렇게 순수하게 남을 웃길 수 있는 사람이 쉽지는 않다는 점 등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언론은 대개 이런 일을 '사소한 일' 쯤으로 치부하면서 그 이면의 이슈성을 무시하는 일면이 있다. jack_key의 명성은 하늘을 찌르고 있지만 그 어느 기자도 그를 공식적으로 이야기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일부 기자들이 여전히 일삼고 있는 부실한 낚시성 기사나 지나친 홍보 기사보다는 훨씬 신선하고 순수하다는 생각이 든다.

jack_key를 통해 우리는 댓글 게시판에서도 이제 장인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 실명제를 유발할 정도로 게시판을 더럽히는 유저들이 오죽 많았으면 이런 사례가 호응을 얻을까 하는 점도 생각해 볼 일이다.

막상 보면 별로 웃긴 댓글은 아니지만 이런 댓글이 하루에도 몇 개씩 반복해서 꾸준히 올라온다 생각하면 의외의 재미가 느껴질 수도 있다.

웃음이 부재된 세상, 결국 네티즌은 이런 사소함 속에서라도 웃음을 찾고 싶은 것이다. 웃음을 빼앗아간 정치인들은 지금이라도 jack_key의 고결한 장인 정신을 본받아 당장이라도 그 웃음을 우리에게 돌려줘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1. 이 기사는 <한겨레신문 필진네트워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 그에 대한 특별한 감정은 전혀 없습니다. 그를 둘러싼 모습들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일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이 글은 '인터넷판 올드 앤 뉴'라고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태그:#JACK_KEY, #잭키, #잭키사마, #댓글,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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