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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의 '성희롱성' 발언을 진화해보겠다는 기특한 생각으로 강 대표를 변호했던 김영선 의원의 발언은 확실히 요점을 빗나갔다.

김 의원은 "당대표가 나이 어린 기자들 앞에서 편하게 얘기한 게 아니냐?"고 변명을 했다. 과연 이건 용납될 수 있는 발언인가?

어린 기자들 앞에서 편하게 한 것 아니냐고?

▲ 김영선 의원(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김 의원의 발언을 접하니 강 대표의 '문제적 행동'은 '구조적 폭력'이라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걸 느낀다.

폭력이 구타, 살인, 학대, 전쟁 등 물리력을 수반하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초등학생도 다 알고 있다. 우리는 이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신이나 타인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물리력을 동원한 것 외에도 수십 가지에 이른다는 것을 시시각각 일상에서 되새기고 있다.

일상에서 가장 흔하게 일어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인식하는 것은 언어폭력이다. 사실 평균적으로 높아진 인권과 평등의식, 교육수준 등으로 자식이나 손아래 사람에게조차 막말하는 시대는 지났다.

그런데 제1 야당의 대표가 자신이 주재한 모임에서 한 성희롱성 발언은 누가 봐도 명백한 언어폭력이다.

그것은 사실 강 대표가 공인이고 전 국민을 상대로 하는 직업임을 감안한다면 그 자리에 참석했던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뉴스를 듣고 불편함을 느꼈던 모든 사람에 대한 언어폭력이다. 하지만 너무 넓게 나가는 것은 그만두고 일단 현장에서 벌어진 일에만 초점을 맞춰보자.

강 대표의 발언은 분명한 언어 성폭력

'평화'의 개념에 반하는 '폭력'의 개념은 참으로 넓다. '구조적 폭력(structural violence)'이란 개념을 창안한 요한 갈퉁(Johan Galtung)에 의하면 구조적 폭력은 개인이 자기 계발이나 권리 신장을 꾀할 수 가능성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말한다.

물리력은 동원되지 않지만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구조 때문에 개인이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없도록 만드는 모든 상황이 바로 구조적 폭력이다. 대부분의 복지정책이나 약자 지원정책은 이러한 구조적 폭력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리기 위한 노력이다.

하지만 그런 큰 틀의 구조적 폭력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이와 지위를 강조하는 가정, 회사, 각종 집단의 구조가 개인의 자유로운 표현과 의견 개진을 가로막는다면 그것 또한 구조적 폭력이다.

풀어 말하자면 구조적 폭력은 정당한 것인데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고, 내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거나 싫은 것을 싫다고 하지 못하게 만드는 모든 상황을 일컫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희롱'과 '성폭력'을 구분해서 쓰고 있지만 사실 넓은 의미에서 이 모두는 구조적 폭력이다. 상대적으로 힘이 강한 사람이 약한 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그 힘의 합법성은 사회, 문화, 정치, 경제 구조에 의해 부여되기 때문이다.

언어폭력 또한 구조적 폭력의 한 행태이며 나이와 지위에 기초한 질서, 그리고 가부장적 문화를 강조하는 한국문화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폭력의 유형이다. 한국문화에서 언어폭력은 세대 사이의 갈등을 가장 많고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정말 어린 사람들 앞이어서 편하게 얘기한 거라면, 사태는 더 심각

강 대표의 발언은 그 자리에 있었던 여성들은 물론 그 발언을 불편하게 들으면서도 제재할 수 없었던 모든 사람들에 대한 폭력이었다. 강 대표의 발언에 대해 여성 기자들만, 또는 여성 의원들만 불편함, 또는 분노를 느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현장에 있었던 대부분의 남성들이 그러한 발언을 편하게 들을 정도로 상식을 벗어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강 대표가 그런 발언을 한 이유가 상대가 '어린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면 이건 그 자리에 있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에 대한 구조적 폭력이다.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제1 야당의 대표라는 지위와 힘은 물론 나이라는 것 때문에도 강 대표의 성희롱성 언어폭력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강 대표는 김영선 의원의 주장대로라면 나이, 지위, 정치권력 등 모든 것을 동원해 각종 구조적 폭력을 자행한 셈이다.

성희롱 발언에만 맞춰도 충분히 논란거리인데 너무 확대시킨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문화에서 나이를 고려해 "편하게" 한 그 정도 행동은 김영선 의원의 주장대로 그냥 넘어가도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부쩍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성추행 발언이나 행동들이 "어린 사람들이라 편하게"라는 의식에 기대 더욱 양산되고 있다면 이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고, 많은 성폭력이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게 가해진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김 의원의 발언은 김 의원 본인은 물론 최근 성폭력 사건들의 주인공이 된 국회의원들의 문제점을 하나 더 시사해 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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