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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방 삶아낸 메주콩을 남편에게 맛 보이고 있는 아내
ⓒ 이화영
전통방식으로 장을 담그는 농가가 있다고 해 오락가락하는 가랑비를 맞으며 충북 음성의 한 시골 농가를 찾았다. 메주를 만드는 비닐하우스 안은 가마솥에서 막 꺼내온 메주콩의 구수한 향내와 더불어 모락모락 올라온 기운으로 뽀얗다.

'수정산 농원'이라 이름 붙여진 이곳은 초등학교 동창인 강혁희(55)씨와 남궁영자(54)씨 부부가 운영하는 곳으로 9년 전인 1998년 아내가 먼저 내려와 터를 잡았고, 도시생활을 정리한 남편이 1년 6개월 전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농촌 생활에 접어든 귀농 농가였다.

남편 강씨는 건설도급순위 20위 안에 드는 건설회사에서 대규모 아파트 건설현장 소장을 맡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건축사였단다.

귀농했을 때 힘들었지 않았냐고 묻자 "3500평에 콩뿐만 아니라 복숭아와 사과 농사도 짓고 있는데 아는 것이 없어서 주변 농민들께 물어물어 농사를 짓느라 여간 어려웠던 것이 아니었다"며 "지금도 농사가 어설퍼 배우면서 하고 있다"는 고충을 털어놨다.

▲ 콩을 삶기 위해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있다.(사진 위), 물에 불린 콩에서 이물질을 골라내고 있는 시골 아낙(사진 아래)
ⓒ 이화영
▲ 삶은 콩을 뒤집고 있는 '수정산농원' 농장주 남궁영자씨
ⓒ 이화영
▲ 삶아진 콩을 작업장인 비닐하우스로 나르고 있는 남편 강혁희씨
ⓒ 이화영
가마솥에서 장작불에 6시간 정도 삶은 메주콩이 남편에 의해 비닐하우스로 옮겨지자 아내와 동네 아낙들이 분쇄기에 넣어 갈기 시작한다. 곱게 갈린 메주콩은 일정한 틀에 담겨 사각형의 메주로 만들어졌다.

아내에게 맛있는 장 담그는 비결을 묻자 불쑥 손을 내민다. "손맛이 제일 중요하고 정성을 다해 장을 담가야 제 맛이 난다"며 "우리 입맛에는 우리 콩으로 담가야 하고 2모작으로 재배한 콩보다는 1모작으로 재배한 콩으로 장을 담가야 감칠맛이 난다"는 비법을 소개했다.

콩은 보통 6월에 심어 그해 10월경에 수확을 하는데 2모작 콩은 옥수수나 담배를 심어 수확을 하고난 자리에 8월경 심어 1모작 콩과 같은 시기에 수확한다. 햇볕을 보고자란 기간이 짧아 알이 단단하지 않고 영양분도 덜하다는 평가다. 남편은 같은 양의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도 1모작 콩에 비해 2모작 콩이 양이 적다고 밝혔다. 이곳에선 엄선된 1모작 햇콩만을 사용해 장을 담근다고 귀띔했다.

▲ 남궁영자씨가 분쇄기에 삶은 메주콩을 넣고 있다.
ⓒ 이화영
▲ 일정한 크기로 만들어진 메주를 단단해지도록 매만지고 있다.
ⓒ 이화영
메주가 완성되자 이를 황토 흙으로 지어진 건조공간에서 말리기 위해 남편이 짚을 엮기 시작했다. 그의 손놀림에서 새내기 농부임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일을 어떻게 시작했냐고 묻자 아내가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해 서울 생활을 할 때도 청국장이나 된장을 직접 담가 먹었다"며 "많이 할 때는 친구들이나 이웃과 나누어 먹었는데 주변에서 맛있다며 부탁을 받았던 것이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아내는 또 "시골에 내려온 첫해에 지인으로부터 콩 한 가마니를 구입해 청국장을 만들어 친지들과 친구들에게 보내 줬더니 맛있다고 너무 좋아했다"며 "이듬해에 3가마니가 되고 해가 거듭할수록 양이 늘어나 공짜로 얻어먹던 분들이 부담스럽다며 사먹겠다고 해 지금에 이르게 됐다"고 소개했다.

장 담그는 기술을 교육 받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 "특별히 교육받은 적은 없고 친정어머니께서 음식 솜씨가 좋아 장을 집에서 담가 먹었는데 옆에서 돕다보니 자연스럽게 어깨 너머로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 남궁영자씨가 짚으로 엮은 메주를 들어보이고 있다.
ⓒ 이화영
▲ 2년간 숙성된 된장 맛을 보고 있는 남궁영자씨
ⓒ 이화영
남편이 장을 보여주겠다며 장독대로 안내했다. 된장은 3년 묵은 장이 가장 맛이 있고 사람 손에 의해 직접 빗어진 항아리라야 제대로 된 장맛을 낼 수 있다고 소개했다. 장독대에는 투박한 항아리 속에서 2-3년이 묵은 된장과 간장이 농익어가고 있었다.

이곳을 직접 방문해 장을 사가는 사람들은 장독에서 직접 장을 퍼서 내주고, 택배 주문이 들어오면 택배 차량이 싣고 다니는 동안 맛이 변할까봐 맛을 유지시키기 위해 저녁 무렵에 장을 떠서 용기에 담아 택배회사로 직접 가져다준다고 밝혔다.

어떤 사람들이 구입하느냐고 묻자 아내가 "대부분 먹어본 지인들이 구입을 하고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고 알게 된 사람들이 주문하고 있다"며 "90%는 서울에서 소비되고 제주도에서도 구매요청이 들어온다"고 답했다.

남편에게 아내가 만들어준 장맛이 어떠냐고 싱겁게 질문을 하자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전국에 잘 한다는 집을 일부러 찾아가 맛을 봤는데 집사람도 잘하는 축에 들더라"는 싱거운 답이 돌아왔다.

남편은 이어 "우리가 여기 정착하고 나서 근동에서 콩 농사짓는 농민들이 판로를 걱정하지 않게 됐다"고 말하고 "장을 구입하는 지인들이 장뿐만이 아니라 고추며 참깨, 과일 등 다른 농산물 구입도 우리에게 부탁해 경제적으로 도움은 안 되지만 매일 바쁘게 산다"며 웃어보였다.

부부는 취재를 마치고 일어서는 기자에게 "외국산 농산물들이 범람하는 이 시기에 우리 농업과 농민을 살리는 길은 국민들이 우리 농산물을 많이 이용해 주는 길밖에 없다"며 "언론에서도 우리 농산물의 우수성을 국민들에게 알려 많이 소비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 농산물을 소중히 여기는 부부의 마음과 정성이 녹아 있어 이곳의 장맛이 일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어두운 미래를 걱정하는 농민들을 떠올리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 올해 농사지어 수확한 햇콩(사진 위)과 3년을 숙성시킨 된장(사진 아래)
ⓒ 이화영
▲ 간장 항아리 속에 담긴 부부(사진 위), 오래된 간장독에서 볼 수 있는 결정체(사진 아래). 된장, 청국장의 구수함과 간장의 담백함 만큼이나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시길...
ⓒ 이화영
남궁영자씨가 소개한 맛있는 장 담그는 방법

1. 1 모작으로 재배된 국산 햇콩을 준비한다.

2. 콩을 깨끗하게 씻어 반나절 정도 물에 담가둔다.(묵은 콩은 불리는데 오래 걸리지만 햇콩은 씻는 과정에서도 불기 때문에 오래 담가두지 않도록 주의한다.)

3. 장작불로 가마솥에서 6시간 정도 삶는다.(불에 고구마나 감자를 구워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또한 갓 삶아낸 콩은 맛이 고소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먹고 또 달라고 조를 경우 '메주콩 많이 먹으면 설사를 한다'는 핑계를 대 주지 않는다. 달라는 대로 다 줄 경우 메주를 만들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

4. 메주콩을 맷돌이나 분쇄기를 이용해 잘게 부숴 일정한 크기로 만든다.

5. 메주를 짚으로 엮어 황토방에서 1달간 건조시킨다.

6. 황토방에서 1달간 건조된 메주를 햇볕이 잘들고 통풍이 잘 되는 장소에서 다시 1달간 건조 시킨다.

7. 염도 16-18%인 소금물에 메주를 담근 상태에서 50-60일 정도가 지나면 간장이 만들어진다.(항아리는 손으로 빚은 전통 항아리여야 깊은 맛을 낸다. 장독대는 햇볕이 잘드는 장소를 택한다.)

8. 간장을 떠내 다른 항아리에 담고 메주는 곱게 으깨서 다시 항아리에 담아둔다. 이것이 바로 된장이 되는 것이다.

9. 간장은 오래 묵을수록 깊은 맛을 내고, 된장은 3년 숙성시킨 것이 제일 맛있다.

* 보관할 때 갓(애벌레)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한다. / 이화영

덧붙이는 글 | * 이화영 기자는 공무원노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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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이 세 아이가 학벌과 시험성적으로 평가받는 국가가 아닌 인격으로 존중받는 나라에서 살게 하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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