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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7.19 대학로에서 합류한 수천명의 노동자, 학생이 평화행진을 하려고 경찰의 봉쇄 풀리기를 기다리다 끝내 풀리지 않아 분영히 일어나 싸울 것을 결의했다. 7월 노동투쟁은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 연합뉴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은 한국 자본주의의 축적구조가 그 이전 30년 동안의 그것에 비해 질적으로 달라졌음을 선언한 것이었다. 그리고 80년대 말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는 세계화로 표방되는 신자유주의적 국제경제질서의 확립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80년대 말 이러한 대내외적 축적조건의 변화는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한 시대가 마감되고 새로운 시대가 준비되어야 할 필연성을 의미한다.

그러면, 대내외적 축적조건의 변화에 직면해 국내 지배 블록(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은 어떠한 내용의 축적전략 변화를 계획하였고 또 실제로 진행시켰는가? 그리고 이러한 축적조건의 변화에 대응하여 진보진영은 어떠한 내용의 대안을 제시하고 또 실천하였는가?

유감스럽게도, 90년대 한국 자본주의의 질서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다. 5·16 군사쿠데타 이래 30여년간 유지되었던 한국 자본주의 질서(정부주도·재벌중심·노동배제·대외의존적 질서)는 이미 낡은 것이 되었음에 불구하고, 이를 대체할 새로운 질서 형성과 관련하여 국내의 그 어떠한 세력도 주도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예전의 질서는 낡았고, 새 질서는 오지 않았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10년간의 한국 자본주의 역사는 이미 생명력이 고갈된 낡은 질서를 억지로 끌고 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의 대표적 사례가 바로 1996년 말 노동관계법 날치기 전후의 전개과정이다.

참여와 협력의 새로운 노사관계 구축'을 표방하였던 김영삼 정부도,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획책하였던 독점재벌도, '노동악법의 개폐'를 요구하였던 노동운동세력도 모두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지 못하였다.

노동관계법의 날치기 처리로 정부와 독점재벌은 노사관계에서 주도권을 획득하기는커녕 절차적 민주주의의 명분마저 상실했다. 노동운동세력은 두 달간의 총파업을 통해 날치기 법률의 폐지에는 성공했으나, 사실상 동일한 내용의 법률안이 또다시 입법되는 것을 막지는 못하였다. 결국 모든 사회세력이 정치적 패배자가 되고 말았다.

▲ 1996년 12월 새벽, 신한국당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오세응 부의장의 사회로 본회의를 열어 7분만에 노동관계법 및 안기부법 개정안을 기립표결로 기습처리했다.
ⓒ 연합뉴스 김영철

1997년 경제위기는 단순히 경제위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정치위기이기도 하다.

재벌은 독점자본으로서의 경제권력을 확립하였지만, 천민자본으로서의 속성을 탈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강화할 뿐이었다. 정부는 자본에 대한 절대적 권위를 상실한 지 이미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축적조건을 정비하는 총자본으로서의 기능과 관련해서도 재벌과 끊임없이 마찰을 빚었다.

이러한 지배블록 내부의 균열은 결국 노동대중과 시민사회에 대한 헤게모니 상실로까지 이어졌고, 사회통합력은 완전히 마비되었다.

한편 노동대중과 시민사회는 1987년 이후 한국 사회의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였지만, 객관적 조건의 악화와 주체적 역량의 미성숙으로 인해 대안세력으로 결집되지 못하였다. 1997년 경제위기는 그 모순의 폭발일 뿐이다.

경제위기 이전의 10년, 이후의 10년

어떠한 계층계급도 사회통합의 주체로 기능할 수 없을 정도로 낡아버린 기존 질서에 대해 1997년 경제위기는 IMF라는 외적 강제를 통해 한국 자본주의를 새롭게 재편하는 계기가 되었다.

재편의 기본방향은 IMF가 대변하는 앵글로색슨식 경제질서, 즉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를 확산시키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그 과정은 과거 기득권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수구적 노력으로 크게 왜곡되었다.

이러한 이중적 모순의 결과 노동대중은 더욱 열악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으며, 시민사회의 에너지는 분산된 반면, 삼성그룹을 핵으로 한 소수의 거대재벌은 보다 근대화된 독점자본으로서 경제영역을 넘어 정치사회적 영역으로까지 그 지배력을 확장했다.

정치권력(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은 그 주관적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 모든 과정의 충실한 집행자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 결과가 현재 우리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산업·기업규모·고용형태·소득별 심각한 양극화 현상이다.

그렇다면 경제위기 이후의 구조조정을 통해 한국사회에는 새로운 안정적 질서가 확립되었는가?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지배구조가 안정화되었는가? 결코 그렇지는 않다.

최근 한국사회가 급격하게 보수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노무현 대통령도,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도, 소위 조·중·동도, 민주노총도 한국사회의 미래를 자신의 의도대로 기획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대안이 없다'라는 위기감이 진보진영에 깊게 드리워져 있는 것만큼이나, 기득권 세력도 내일을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 1996년 12월 26일 국회의 노동관계법 날치기 통과에 반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근로자들이 오후부터 파업을 시작하면서 현대자동차의 로보트 자체 생산공장의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 연합뉴스

2006년은 1996년과 다르지 않다

한국사회의 어떤 세력도 자신의 의도를 다른 세력들에게 강제할 수 있는 권위는 갖고 있지 못하지만, 모든 세력이 다른 세력들의 의도를 좌절시킬 수 있는 거부권(veto power)은 확실히 갖고 있는, 그 결과 어떠한 변화도 불가능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사회 제세력들이 모두 불만족스러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 동력에 의해서는 그 어떤 변화도 불가능한 상황, 바로 10년 전에 경험했던 그 최악의 사회구조가 지금 재현되고 있다.

한미 FTA 추진이라는 '외부 충격요법'을 통해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적 변화'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한 노무현 정부의 절망적 선택이 현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경제위기 이후 10년 동안 한국사회는 결코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는 비가역적 변화(irreversible changes)를 경험하였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그렇다. 그러나 과거의 낡은 질서는 이미 사망선고를 받았지만, 새로운 질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 와중에 현재의 고착화된 이해관계 구조를 벗어날 수 없는 최악의 불안정 균형 상황이 만들어졌다. 혁신을 위한 내부 동력을 창출할 수 없다면, 이는 위기의 징후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6년은 1996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진정성은 있는데, 지리멸렬한

경제위기 이후 10년이 경과한 현재까지 한국사회는 여전히 통합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양극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통합의 새로운 조정메커니즘을 모색하는 것은 진보진영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아직도 과거 개발독재시대에 대한 향수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보수세력에게서 새로운 변화의 동력을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여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결코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 동안의 진보진영의 노력이, 그리고 지난 4년 동안의 노무현 정부의 노력이 사실상 아무런 성과를 낳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통합의 새로운 조정메커니즘은 선험적 설계의 대상만은 아니다. 계몽과 설득에 의해 사회통합의 설계도가 현실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의 지리멸렬함은 그 '진정성'의 부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통합은 다양한 이해관계자 사이의 권리와 의무를 재정의하는 문제이지만, 동시에 그 권리와 의무가 이행되는 과정을 변화시키는 현실의 문제이다. 따라서 통합을 촉구하는 사회적 담론이 선험적 당위성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로 인한 실패의 경험은 오히려 새로운 대안에 대한 신뢰를 잠식할 뿐이다.

김근태 의장의 뉴딜 제안은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지금 한국의 진보진영에게 가장 결여되어 있는 것은 '대안' 그 자체라기보다는 '결코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는 작은 성공 경험들의 축적, 그로 인한 대안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다.

▲ 지난 8월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경제 5단체장 간담회`에 참석한 인사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봉균 정책위의장, 강신호 전경련회장, 김근태 의장, 손경식 상공회의소 회장, 이수영 경총 회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부족한 것은 '대안'이 아닌 '믿음'

사회통합, 즉 협력 게임(cooperative game)이 비협력 게임(non-cooperative game)보다 우월한 균형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경제학에서 널리 인정되는 명제이다. 노무현 정부의 과제는 협력 게임의 우월성을 논증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경제주체들이 협력 게임의 규칙을 충실히 준수하도록 유도하는 제도와 관행을 확립하는 데 있다.

유감스럽게도, 지난 4년 동안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그 반대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경기침체를 빌미로 한 재벌들의 사보타주와 관료들의 책임회피에 밀려 구조개혁의 과제는 방기되었다.

정부정책은 경제주체들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외생변수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로비의 대상으로 전락했을 뿐이며, 규칙을 준수하는 것은 바보와 같은 일로 치부되기에 이르렀다.

사회통합은 규칙위반에 대한 제재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다. 노무현 정부가 사회통합의 새로운 조정메커니즘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규칙 위반에 대한 엄정한 제재의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개별 경제주체가 협력 게임의 규칙에 충실하고자 하는 유인(incentive)은, 협력으로부터 나오는 추상적 이익(benefit)을 선언함에 의해서 아니라, 협력 게임으로부터 이탈했을 때의 구체적 불이익(cost)을 보여줌으로써 생성되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기업지배구조 개선(재벌개혁과 금융개혁)은 통합의 새로운 조정메커니즘 구축을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결코 생략할 수 없는 필요조건이다.

재벌개혁과 금융개혁은 과거 개발독재시대 이래 고착화된 권리와 의무의 불균형을 시정(불특정다수 이해관계자의 권리를 강화)하고, 그리고 그 권리와 의무의 집행과정의 왜곡을 개선(감독기구와 사법기구 등 국가관료기구의 민주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특히 재벌개혁과 금융개혁은 노동대중과 시민사회의 주도하에 구체적 성공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그럼으로써 진보적 대안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축적할 수 있는 과제이다.

재벌개혁·금융개혁부터 시작하자

서구 자본주의의 역사에 비추어본다면, 재벌개혁 및 금융개혁(즉 시민적 권리의 강화 및 국가기구의 민주성 확립)은 진보진영의 과제라기보다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과제이다.

그러나 과거 한국 자본주의가 실현하였던 '압축과 비약'의 성장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과제를 생략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고, 그 결과로서 형성된 현재의 지배블록(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은 여전히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자신의 과제로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다.

또한 진보진영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부르주아의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나아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진전이 신자유주의적 지배질서의 강화로 귀결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과제로 설정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정치적·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실질적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다. 한국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대통령의 집권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가장 보수화되었다. 정치적 집권세력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경제정책의 결정권은 관치경제의 화신인 관료집단이 장악하고 있다.

소재부품산업과 중소기업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산업·기업간 연관관계를 더욱 약화시키는 재벌 보호정책, 아니 재벌총수 보호정책이 득세하고 있다. 노동대중의 절망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노동자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통제하는 분리지배 전략은 더욱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시민단체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시민운동가의 인적 역량의 재생산 기반은 더욱 척박해지고 있다.

▲ 지난해 6월 이건희 삼성 회장이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전경련 회장단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나

무엇이 진보적 과제이고, 무엇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과제인가? 한국의 진보진영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 기준은 무엇인가?

지금 한국의 진보진영에 대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거대담론은 과잉이다. 진보진영의 모든 세력들이 하나의 대안에 합의하지 못한다고 해서 위기라고 말하면 안된다. 진보의 과제는 다양하며, 우리의 지척에 널려 있다.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진보의 설계도를 다 완성한 다음에 실천에 나서야 하는 것도 아니다.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진보의 과제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우선이다. 분업과 협업의 원리를 통해 진보진영의 전체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작은 성공 경험이 축적되어 갈 때, 진보의 큰 그림은 발견될 것이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20년, 30년 후의 추상적 목표를 던져놓고서는, 5년 후의 구체적 성과에 집착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무능하고 부패한 보수세력이 거부하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진보진영의 과제이다. 그것이 어떠한 변화이든 간에…. 지금은 실패의 경험이 아니라 성공의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대안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 김상조 교수는 경제개혁연대 소장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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