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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다들 독도가 외로운 섬이라고 생각한다. 이름이 독도(獨島)이어서일 수도 있고, 본토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쉽게 접근할 수 없어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두 가지 다 틀렸다.

외로운 섬이어서 독도가 아니다. 돌(암석)로 된 섬이어서 독섬 또는 돌섬이라고 부르던 것이 조선 말기 행정구역으로 등재할 때 독도라는 엉뚱한 이름을 얻었다. 멀고 접근하기 어렵다니... 노래에 나오듯이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200리’ 약 90km 에 위치하고 있으니, 강원도 묵호에서 울릉도가 160km 떨어진 것을 합치면 본토에서 겨우 250km에 위치하고 있다. 서울에서 대전을 조금 더 지나 옥천 정도에 있다고나 할까?

삼국사기에 '우산국이 신라에 속했다(지증왕 13년, 서기 512년)‘라는 기사로 보아, 그 이전부터 우리 조상님들이 부지런히 독도 근해를 다녔던 사실을 유추할 수 있는데, 이로보아 열악한 장비와 불충분한 항해술로도 독도는 그리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는 곳이니, 접근의 어려움을 탓할 수도 없는 셈이다.

어쨌든 독도는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울릉도에서 뱃길 따라 가는 200리는 파랗다 못해 검은 빛깔인 듯하다. 쾌속정으로 두 시간 반 남짓 달렸을까. 잠시 후면 독도에 닿는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맑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멀리 한 점인 듯 두 점인 듯, 섬이 조금씩 다가왔다.

지난 9월 26일 바르게독도대책위원회(공동대표 박강수)는 400명의 전국 대표단을 2진으로 나눠, 1진은 포항 후포항에, 2진은 동해 묵호항에 집결, 독도 사수에 대한 비장한 결의를 다지는 출정식을 거행한 후, 울릉도로 출항했다.

바르게독도대책위 회원들과 일반 시민들을 가득 실은 쾌속정은 동해의 푸른 물살을 시원하게 가르며, 거침없이 내달았다. 항구는 생각보다 작았다. 하선하는 승객, 육지에서 싣고 온 생필품 등 화물을 나르는 사람과 차량으로 선착장은 북새통을 이뤘다. 바르게독도대책위원회 울릉군협의회 회원들과 울릉군수님이 우리 일행을 맞이해주었다.

군수님은 우리를 보자, 마치 선거 유세를 하듯, 독도의 지정학적 위치, 중요성, 역사 등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우산도(于山島)-삼봉도(三峰島)-가지도(可支島)-석도(石島)-독도로 변천된 명칭과 동경 131도, 북위 37도의 지정학적 위치, 그리고 약400만년 전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지질학적 역사, 물 아래 면적이 제주도보다도 더 크다는 놀라운 사실까지를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그 묘사가 얼마나 세밀하고, 열정적이었는지 눈앞에 독도가 그려졌다. 그날 우리는 울릉군민회관에 모여 독도 바르게지킴이 결의대회를 치렀다.

▲ 울릉군민회관에서 열린 독도수호 결의대회
ⓒ 김종호
지원 차 나온 울릉도의 관계 인사들은 그 광경을 보면서 군민회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다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울릉도의 밤이다.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1박을 하고, 내일 독도로 갈 예정이다. 울릉도의 밤하늘이, 도심 촌사람들을 한 없이 유혹한다. 가슴이 울렁거려 울릉도라 했던가? 오징어도 풍년이었고, 인심도 풍년인 울릉도의 밤이 독도에 대한 설렘 때문인지 더욱 시리다. 유치환님의 싯구가 귓가를 스친다.

동해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금수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의 멧부리 방울 뛰어

동해 쪽빛 바람에
항시 사념의 머리 곱게 씻기우고

동해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 유치환 <울릉도>


독도로 출항하는 날이다. 독도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한 번에 입도할 수 있는 인원이 200명이내로 제한되어 있다. 우리 일행은 1진, 2진으로 나누어 시차를 두고 독도로 가야한다. 박강수 상임대표와 이근규 집행위원장이 이끄는 1진이 먼저 출항했다. 모두가 초행길이기에, 다들 들떠있었다.

선내에서는 독도를 소개하는 비디오가 돌아가고 있었고, 창밖으로는 파도가 선체를 때리면서 흩뿌려지는 물보라가 창문을 적셨다. 쾌속정으로 한참을 달려도 창밖은 온통 넘실거리는 푸른 물결뿐이다. 가끔 배가 파도에 부딪혀 요동친다. 뱃길이란 원래 험하고 외로운 것이겠지만, 오늘의 현대식 배도 이런데, 우리 선조들은 작은 무동력선으로 어떻게 이 험한 길을 오고 갔을까?

아주 외로운 뱃길일거라고 생각하며 무심히 창밖을 보노라니, 갑자기 커다한 군함이 지척간에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화면으로만 보던 해군경비함이다. 비로소 이곳이 한일간의 영토분쟁이 진행 중인 독도해역이라는 사실이 실감났다. 아름다운 물길이 한없이 펼쳐져 있고, 물새 떼는 평화로이 날건만, 실상 긴장의 파고는 두 나라를 덮칠만한 높이였던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일촉즉발의 전장 앞에 선 듯 긴강감이 온몸을 감쌌다. 이 바다에서 일본이 러일전쟁을 일으키고, 러시아 함대와 전투를 벌였던 것이 고작 100여년 전 아니었던가?

저 멀리 괭이갈매기가 날고 있다. 독도가 가까워 온 모양이다. 청명한 초가을,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배가 접안시설로 서서히 접근했다. 모두들 창가로 가서 한시라도 먼저 독도를 보려고 서성거렸다.

뱃전에서 바라본 독도는 한 폭의 수채화다. 검은 암석이 솟아 있는 사이로 초록의 풀과 흰나래를 편 괭이갈매기가 암청색 하늘을 날아다니는 독도는 수채화 그 자체다. 독도에 내린 회원들은 감격에 겨워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탄성을 보내느라 시간가는 줄 모른다. 20분밖에 주어지지 않는 아주 짧은 시간에 평생의 감동을 느끼는 순간이다. 영접 나온 독도경비대장과 함께 독도바르게 지킴이운동의 결의를 다지는 행사를 치르고 각 지역별로 기념촬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승선하라며 뱃고동이 울린다.

독도는 두개의 주요섬인 동도와 서도 그리고 몇 개의 암초로 이루어졌는데, 눈에 들어오는 곳이면 어느 곳이나 절경 그 자체였다. 호기심과 기대에 들뜬 회원들은 동도와 서도 사이에 건설된 접안 시설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독도경비대와 이야기도 나누고 절경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 동도와 서도 연결 접안시설
ⓒ 이규희
바람이 거셌다. 저 멀리에는 해군경비함이 천천히 바닷물을 가르고, 동도 정상에는 흰색의 경비대 초소와 군사시설이 솟아 있어서, 만만치 않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누가 이 아름다운 섬에 그늘을 드리우는가?

낯익은 바위, 풀, 괭이갈매기 하며 그 모든 것이 독도가 우리땅임을 말해준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보았다. 수신가능지역을 알리는 표시가 뚜렷하고,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우스갯소리로, 한국핸드폰이 되는 곳은 한국땅, 일본핸드폰이 되는 곳은 일본땅이라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어찌 이 낯익은 곳을 남에게 내어줄 수 있단 말인가? 어찌하여 대나무 한그루 없는 이 섬을 일본인들은 다케시마(竹島)라고 우기면서, 영유권을 주장하는가? 다케시마가 어디에 붙어있는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이곳, 이 섬 독도는 우리땅이다.

한반도 모양을 닮은 지도바위, 독립문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인 독립문 바위, 가제바위, 탕건봉, 삼형제 굴바위, 숫돌바위, 동키 바위... 하나하나가 기암이요 절경이다. 코끼리 바위와 넙덕 바위는 또 어떠한가? 동도 정상의 하얀 등대는 가슴 설레게 하고, 암벽 중턱의 빨간 우체통은 이곳이 틀림없이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 1번지’임을 증명하고 있다.

회원들이 각자 협의회별로 가져온 현수막을 펼치면서 셔터를 눌렀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 지역협의회 이름은 서로 달라도 현수막 내용은 모두 ‘독도는 우리땅’이다. 망망대해에 솟아 있는 국토의 막내를 지키고자, 비바람 눈보라를 맞으면 얼마나 애를 썼을 것인가? 독도경비대장님과 대원들은 긴장감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본토에서 온 방문객을 친절히 안내한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질문에도 지친 기색이 없다. 그러면서도 국토방위의 최전선에 서 있다는 자부심과, 영토분쟁 지역에서 한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결의감이 온 몸에 배어 있다. 바르게독도대책위 박강수 상임대표가 회원을 대표하여 독도경비대에 위문품을 전달하고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 독도경비대와 함께
ⓒ 김종호
우리는 구릿빛으로 그을린 경비대원들의 살결을 보면서, 조국의 동쪽 끝단을 지키는 대원들에게 거듭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독도에서의 감격도 잠간.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체류시간은 짧았지만, 그 어느 곳에서 보다 더 길게 국토의 향내음을 맡은 기분이었다. 암벽에 새겨진 ‘한국령’이라는 글자를 다시 돌아보면서, 경비대원들의 전송을 받으며 뱃머리에 올랐다. 독도를 다녀 온 사람들이 왜 그렇게 독도를 사랑하게 되는지, 우리 선조들이 험난한 물길을 헤치고 이곳으로 와서, 왜 이 섬을 굳건히 지켰는지 비로소 알 것 같다.

독도는 외로운 섬이 아니다. 오징어, 꼴뚜기, 대구, 명태, 거북이, 연어알, 물새알 그리고 괭이갈매기, 잠자리, 집게벌레, 해국, 개까지수영, 민들레, 솔패랭이, 도깨비고비가 가득한 생명으로 충만한 섬이요, 민족의 정기가 가득 살아있는 섬이다.

새가 되어 하늘을 날아 찾아가야 할 곳이요, 물고기가 되어, 물 속을 헤엄쳐서라도 찾아가야 할 곳이요, 죽어서 넋이 되어서라도 찾아가야할 조국의 산하다.

배는 달린다. 우리의 마음은 아름다운 독도에 남아있건만,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가 뱃길을 재촉한다. 1박 2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바르게독도대책위원회 회원들에게 이번 독도 탐방은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소중한 일정이었다. 모두가 독도의 아름다움을, 독도에 대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나누느라 고단함도 잊고 있다. 창 밖 저 멀리 오징어잡이 배들의 불빛이 환하다.

그 옆으로 보일 듯 말 듯 해군 경비함이 물살을 가른다. 독도를 어떻게 지키는 것이 바르게 지키는 것일까? 바르게독도대책위원회 회원들 마음속에 커다란 화두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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