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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은 밖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다. 매주 수요일이면 성미산이나 월드컵공원 등으로 바깥나들이를 떠난다.
ⓒ 도토리 제공
우리 집 둘째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던 해, 난 이사를 해야 했다. 넉넉하지 않은 돈으로 구미에 맞는 집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였고 또 맘에 드는 동네를 구하는 건 더 어려웠다. 그래도 한 가지 원칙을 정한 것이 있다면 가능하면 마당 있는 집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대학에 다니러 처음 서울로 와서 외할머니 집, 정확하게는 외할머니 아파트에서 살 때는 이 쾌적한 공간이 그렇게 마음에 들 수가 없었다. 그렇게 20년을 살았다. 그동안 결혼하고 아이를 둘 낳았지만 내 아파트 생활은 계속 이어졌다.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한 까닭

아이 둘을 키우면서 나는 비로소 다양한 환경에 대해 관심 두기 시작했다. 그 관심의 폭은 자연생태계에서 교육환경, 주거환경까지 넓어졌다. 그래서 오랜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주택을 구하자는 생각을 하게 된 셈이다.

드디어 망원동으로 이사했다. 망원동으로 이사한 여러 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가 교육환경이다. 공동육아협동조합이 많다고 알려진 이 동네로 이사하면서 중학교 갈 큰 애는 어쩔 수 없지만 초등학교 입학할 둘째에게는 그 새로운 교육환경 속에서 지내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런 생각 끝에 '도토리 방과후 협동조합(www.dotori.wo.to)' 조합원이 되었다. 이곳은 지금 초등학생 17명이 방과 후에 오후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도토리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도토리 방과후는 학교가 마친 후에도 아이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부모와 교사가 함께 출자하여 설립하고, 꾸려가고 있는 동네 속 아이들의 조그만 공간입니다."

여기 부모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건강과 안전한 공간이다.

▲ 흙마당 한켠에는 모래까지 있어서 아이들은 언제든지 이 흙과 모래 위에서 옷이 엉망이 되건 말건 상관없이 온몸으로 논다
ⓒ 도토리 제공
마음껏 뛰놀 흙마당이 있는 곳

처음 초등학교 1학년인 우리 딸을 데리고 그곳에 들어섰을 때를 돌아본다. 일단 대문을 들어서면 넓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겐 충분한 놀이공간이 되는 흙마당이 우리를 맞는다. 이 흙마당 한켠에는 모래까지 있어서 아이들은 언제든지 이 흙과 모래 위에서 옷이 엉망이 되든 말든 상관없이 온몸으로 논다.

현관을 들어서면 마루 한쪽에 옷걸이가 있고 그 옆엔 아이들 놀잇감이 있다. 나무젓가락으로 만든 산가지들, 구슬들, 바둑알들이 잔뜩 쌓여 있고 한쪽엔 엄청난 카프라(나무 장난감)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곧 아이들이 들어서면 이 많은 나무토막들을 절대 제자리에 두지 않을 것이다.

▲ 그림을 그려도 절대 그냥 그리지 않고 다양한 놀이를 생각해내고, 카프라 하나로도 아이들은 도미노 외에도 수십 가지의 놀이를 생각해 내기 때문에 절대 심심할 일이 없다.
ⓒ 도토리 제공
방이 5개. 그리고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다락이 있다. 그 가운데 꼬꼬방이라고 불리는, 4명만 들어가면 꽉 차는 아이들의 비밀공간이 있다. 그래서 방 입구에는 현재 그곳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적어놓는 칠판이 걸려있다.

방마다 가득한 것은 각종 종이와 그림도구들이다. 이 종이와 그림도구들도 마루의 놀잇감과 마찬가지로 좀 있으면 순전히 아이들 마음에 따라 여기저기 흩어져 갈 것이다.

이런 눈에 보이는 것들만으로 이곳 생활을 점칠 수는 없다. 모든 것이 교사와 아이들의 회의를 통해 상상을 초월하는 생각들로 꽉 채워진다. 그림을 그려도 절대 그냥 그리지 않고 다양한 놀이를 생각해내고, 카프라 하나로도 아이들은 도미노 외에도 수십 가지의 놀이를 생각해 내기 때문에 절대 심심할 일이 없다. 그것이 바로 이곳의 가장 큰 자랑거리다.

▲ 물놀이 하는 아이들.
ⓒ 도토리 제공
교실을 벗어나 자연을 느끼는 아이들

아이들의 공간이 이 터전 하나뿐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이들은 밖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다. 가끔 연극이나 영화를 보러 갈 때도 있지만 매주 수요일이면 성미산이나 월드컵공원 등으로 바깥나들이를 떠난다.

공동육아 하는 사람들이 아이들 놀이에 이토록 관심 두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우리 동네의 자연을 만끽하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하나같이 다른 아이들은 잘 모르는 많은 것들을 안다. 철마다 성미산에 무엇이 자라는지, 그곳에서 자라는 수많은 풀들과 곤충, 나무들의 이름을 아이들은 줄줄 꿴다.

어린 시절을 놀면서 보낸 우리 세대들이 이미 잊은 지 오래된 그 많은 이름들이 아이들 입에서 술술 나오는 것을 볼 때마다 신기해하는 분들을 많이 봤다. 우리 아이들, 구구단을 잘 못 외우고 받아쓰기 100점은 절대 불가능이라고 믿는 우리 아이들은 그 대신 훨씬 더 많은 것들을 가슴에 품고 산다.

환경호르몬 걱정 없는 천연 장난감들

둘째, 공장에서 나오는 상품들, 특히 망가질 염려가 없다는 이유로 양산되는 장난감들이 모두 다 석유 찌꺼기인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은 확실히 관리하거나 놀기에 편리한 점이 있다.

플라스틱에 비하면 자연에서 나오는 놀잇감들은 훨씬 덜 안정적이다. 천연 놀잇감은 쉽게 부러지고 때로 손가락에 나무 가시가 박힐 때도 있다. 때로 흙이 입 안이나 눈에 들어가는 때도 많다. 옷을 더럽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 그 편한 플라스틱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그것들이 공장에서 화학 처리 과정을 거친 탓에 피부나 입, 코, 눈 등을 통해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 도토리 제공
그래도 우리가 그 편한 플라스틱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그것들이 공장에서 화학 처리 과정을 거친 탓에 피부나 입, 코, 눈 등을 통해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진 환경호르몬은 단지 열에 의해서만 검출되는 것은 아니다. 염분, 지방분 등을 통해서도 검출된다. 그러니 아이들 손이 소금기 하나 없고 기름기 하나 없이 완벽하게 세척된 상태에서 노는 것이 아니라면 결국 환경호르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친환경 먹을거리에 정성은 덤

이곳의 두 번째 자랑거리는 아무래도 먹을거리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참 운이 좋은 편이라 교사 가운데 꼭 한 명은 요리에 일가견이 있다. 그래서 그 정성이 아이들에게 온전히 전해진다. 사실 급식까지 학교에서 하고 오는 아이들은 오후 4시쯤에 한 번 먹는 간식이 터전에서 먹는 유일한 먹을거리다.

▲ 원료는 거의 모든 것을 생활협동조합(생협) 매장에서 구입한다. 되도록 친환경 농산물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 도토리 제공
우선 원료는 거의 모든 것을 생활협동조합(생협) 매장에서 구입한다. 되도록 친환경 농산물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리고 교사들이 손을 내어 직접 조리한다.

간식 식단을 보면 아이들이 얼마나 잘 놀고 잘 먹는지를 알 수 있다. 국수, 수제비 등 거의 한 끼 식사는 될 듯한 먹을거리가 거의 매일 나온다. 때로 빵이 나오더라도 그냥 빵이 아니다. 그 속에 뭔가를 넣거나 변화를 준, 교사들의 정성 가득한 먹을거리다.

과일이나 매실, 오미자 등 교사들이 직접 만든 음료수도 항상 빠지지 않는다. 덕분에 엄마들은 아이들이 저녁을 잘 안 먹으려고 하니 간식 좀 적당히 잘 먹이라고 항의 아닌 항의를 하기도 한다.

조금 더디 가더라도 안전하게 지냈으면...

세상은 다양한 위험들에 둘러싸여 있다. 집 밖에만 나가면 자동차나 다른 위험들에 항상 노출되게 마련이고, 집 안 놀잇감이며 먹을거리들도 공장을 거쳐 나오면서 온갖 오염물질로 뒤범벅이라 한다.

그래도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엄마, 아빠들의 바람이 이곳 '도토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국어 수학 좀 못해도, 조금 더디 가더라도 아이들이 그 나이에 누려야 할 것들을 모두 누리면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바로 이곳 터전에 고스란히 스며 있다. 이곳 도토리에서 우리 딸이 행복하듯이, 모든 아이들이 행복한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 그릇 만들기 체험하는 아이들
ⓒ 도토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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