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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29세의 청년 권용목은 한국노동운동의 살아있는 신화였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상징이자 민주노총 초대 사무총장을 지냈던 권용목씨가 이끄는 '뉴라이트 신노동연합'이 23일 출범한다.

아직 구체적인 노동조합 가입이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전직 위원장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노조단체를 만든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할 권리는 자주적 단결권으로서 천부의 인권이기 때문이다.

지난번 노동부·경총·한국노총의 합의를 '야합'이라고 하는 주요 이유는 노동자들의 자주적 단결권을 무참히 짓밟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이 맞는 노동자들끼리 모여 노조(단체)를 결성하는 것은 스스로의 권리를 행사한 것이고 매우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자주적으로 단결한 노동자들의 결사조직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보다는 자본의 공격 수단으로 활용된다면, 이는 자본가들보다 더 반노동계급적이며 반역사적인 집단이 되고 말 것이다.

20일자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는 권용목씨 인터뷰 기사와 함께 '뉴라이트 신노동연합'을 대서특필하였다. 안 그래도 민주노총을 죽일 실탄이 필요했던 판에 매우 좋은 무기가 마련된 셈이다. 그동안 민주노조운동 특히, 민주노총을 질근질근 씹어오던 수구보수 자본 언론들에게는 금상첨화다.

노동운동가를 탄압하거나 회유하는 것이 자본운동

그리고 15년 뒤... 2002년 11월 국민통합21 노동특위 발대식에 참석한 권용목 민주노총 전 사무총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뉴라이트 신노동연합'은 자본가와 기업인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아온 노동자들의 의식을 바꾸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자들이 정말 자본가와 기업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아 20년 동안 투쟁했더라면, 벌써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이 쟁취되었을 것이다.

1987년 당시 권용목씨가 현대엔진에서 중장비를 끌고 공장 밖으로 몰려나왔을 당시에 노동자들의 요구는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그리고 산업재해와 노동강도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단상에 올라가 선동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재벌 타도"를 외쳤다.

사실 한국의 노동자들이 자본주의를 타도하기 위해 투쟁해온 것이 아니라 한국의 자본가들이 노동운동과 노동운동가를 타도하기 위해 투쟁해온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운동은 본질적으로 자본운동에 대응하는 운동이다. 또 자본운동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운동이고, 이를 가로막는 노동운동을 제거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노동운동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핵심 운동가를 탄압하거나 분리시켜 회유하고 자본의 편으로 끌어들인다.

권용목씨 역시 한국의 재벌과 자본 그리고 국가권력에 의해 타도된, 한때 영웅대접을 받았던 노동운동가일 뿐이다. 그가 이제 10년 만에 돌아와서 자본과 권력의 전위대가 되어 민주노총을 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비루먹은 말 위에 앉은 돈키호테는 민주노총을 결코 공격할 수 없을 것이다. 민주노총이 현재 조직적으로 많은 문제를 가지고 현장의 노동자들로부터 혁신을 요구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본의 공격에 대해 방어할 잠재적 동력까지 사라지지 않았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87년 패러다임에 머무르는 쪽은 누구인가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10여년 동안 투쟁해 온 노동자들 앞에서 '1987년 패러다임의 노동운동'을 운운하는 모양새가 이미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누구는 1987년의 패러다임에 머물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이 땅의 자본이 아직 당시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억압과 착취구조를 재생산하고 있다. 게다가 개방화에 따른 초국적 금융투기자본의 지배가 강화되면서, 1970년대 전태일 열사의 시기처럼 노동자들의 기본권조차 지킬 수 없는 시대로 역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987년 패러다임이 노동자들의 최저생계비를 확보하기 위한 임금인상투쟁이었고 지금은 아니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이나 공공사무전문직 일부 노동자들을 제외하고 시간급 3400원에 머물러 있는 최저임금노동자가 180만명에 달한다. 1천만명에 육박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절반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다. 200여 만명에 이르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억지 '사장(자영업자)'이 되어 노동자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

포항건설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보듯이 200여만 명의 건설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도 제대로 적용받지 못하고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및 중대재해로 목숨을 잃고 있다. 자본가들은 이들 노동자들의 절박한 투쟁을 불법으로 내몰고 있다. 이런데도 '1987년 패러다임' 운운하는 데에는 전율마저 느낀다.

▲ 지난 8월 19일 오후 경북 포항에서 열린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한 노조원들이 고 하중근씨의 영정사진을 들고 포스코 본사로 향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지난 20년, 노동운동 때문에 일자리가 줄었나

자본을 적으로 만들지 않아야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전태일 열사가 분신했던 시기 600만 노동자이던 것이 지금은 1700만 노동자 시대다. 노동자들이 자본가들과 치열하게 투쟁했던 지난 20여 년 간 이 땅의 일자리는 줄어든 것이 아니라 반대로 급속하게 늘어났다.

노동자들이 국내자본이 해외로 모두 이전되고 실업이 늘었다는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니다. 이 말이 사실이려면 국내에서는 투자가 줄어 고용인구(노동자)가 줄고 국내총생산(GDP)이 감소했어야 했다.

그런데 정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국내자본이 더 낮은 임금을 찾아 다른 나라로 이전한 만큼 외국으로부터 자본이 들어왔고, 국내 설비를 포함한 생산시설을 모두 해외로 이전하지 않는 한 국내에서의 투자와 생산은 계속됐다.

일자리가 줄어든 것은 자본이 낮은 임금을 찾아 해외로 이전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산업구조의 변화와 이에 따른 신기술의 도입에 노동자들이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권용목씨가 민주노총 사무총장을 그만 두고 노동운동을 떠났을 1996년 당시에도 삼성은 세계경영으로 나아갔다. 더 낮은 임금을 찾아 해외로 나갔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당시 삼성의 시간당 평균임금은 말레이시아에서 3달러, 한국과 스코틀랜드에서 10달러, 바로셀로나에서 13달러, 베를린에서는 23달러였다. 이는 자본은 임금이 낮은 곳으로만 이동하는 것이 아님을 말해 주는 증거라 할 것이다.

자본은 자신의 필요성 즉, 가격과 기술경쟁력이 맞으면 언제든지 이동하지만, 생산근거를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삼성은 한국을 완전히 벗어나서 무작정 전세계를 상대로 투자·경영을 하지는 않는다. 임금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아프리카·동남아시아·중남미로 자본투자를 이전시키지 않는다. 미국·유럽·일본 역시 무조건 낮은 임금을 찾아서 투자를 해외로 이전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여러 통계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임금이 낮은 지역으로 투자를 이전시키면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논리는 노동에 대한 자본의 상투적인 협박이다. 노동자들의 요구와 투쟁을 약화시키고 노동운동을 무력화시키는 전통적 수법이다.

몰락한 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다

▲ 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노사정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사 로드맵 3년 유예 협정식.
ⓒ 연합뉴스 황광모
권용목씨는 포항건설노동자들의 투쟁처럼 불법 폭력적인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특히 한두 사람의 분신으로 문제가 해결되던 시대는 지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신 지역적 노사정 협의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분신이라도 하던 시기는 그래도 노동자가 공격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노동자·농민·도시빈민들이 국가권력의 경찰 폭력과 자본의 구사대나 용역깡패에 의해 백주대낮에 폭력 살인을 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노사정 대표자회의가 정부·자본·한국노총의 기만적인 야합으로 파탄났음을 볼 때, 노사정협의체는 그야말로 2차대전 직후의 구시대적 낡은 체제일 뿐이다.

세계화된 총자본과 국가권력이 결합하여 노동자를 탄압하는 신자유(자본)주의 세계화 체제에서 지역적 노사정협의체를 말하는 것은 "노동운동 그만 문 닫자"는 뜻이다. 최근 포항건설노조 투쟁처럼 자본과 국가권력의 합작으로 이루어지는 탄압은 노사정 대타협 구조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민주노총은 노사정 파기 선언을 하고 '노무현 정권 퇴진 한국노총 해체투쟁'을 결의하였다. 이에 뉴라이트 세력들은 "민주노총이 원칙에만 사로잡혀 있으니 노동운동이 문제"라고 자본의 목소리를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상대가 칼을 들고 휘두르는데 갑옷을 벗고 심지어는 방패나 칼을 내려놓으라고 협박하는 셈이다.

지난 10년 동안 현장에서 투쟁했던 노동자들과 함께 하기는커녕 여기저기 세상을 떠돌며 권력을 기웃거리던 자들이 민주노총을 공격하며 화려하게 수구보수자본언론에 얼굴을 드러냈다.

목숨을 걸고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비웃으며 '신노동운동'을 주창하는 뉴라이트세력들은 "1989년 소련사회주의의 몰락에서 교훈을 얻었다"며 286 수준의 낡은 레코드판을 틀어대고 있다. 이것은 정말 구린내나는 소음이다.

몰락하여 해체된 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스탈린주의이며, 사회주의를 가장한 교조주의적 전체주의였을 뿐이다. 아직 지구상에는 진정한 사회주의는 실현되지 않았다. 권씨가 지난 7년 동안 구사회주의권을 돌면서 보았다는 실업자들의 한숨과 비탄의 절망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신자유(자본)주의의 현실이다.

일자리 없이는 노조 없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 지난 2002년 11월 권용목씨는 국민통합21 노동특위의 정책위원을 맡았다. 과거 자신과 '적'이었던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의 '지지자'가 된 것이다. 사진은 당시 특위 출범식에서 정 후보와 인사하는 권용목씨.
ⓒ 오마이뉴스 이종호
뉴라이트는 "일자리 없이는 노조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는 지난 수십년 동안 "회사 없이는 노조 없다"고 외쳤던 기업노조 의식의 연장이다. 자본의 지배질서에 복종하며 연명하는 노동자들의 숙명과도 같은 노예의식이다.

지금 일자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고용 창출이 아니라 고용의 안정성과 질이다. 고용이 불안해지고, 특히 전체 노동자 중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1989년 20%대의 조직율이 현재 10%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노조조직율 속도보다 노동자수 증가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뉴라이트가 말하는 일자리가 있으면 노조가 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님을 말해 준다.

자본은 일자리를 늘려가되 노조를 파괴하거나 무력화시킨다. 지금 뉴라이트의 논리는 노조를 무력화시키는 논리다. 그런데도 권용목씨는 10년 동안 노조만 커졌다고 말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그는 현재의 투쟁이 '밥그릇 끌어안고 투쟁만 외치는 1980년대 운동방식'이라면서 신노동연합을 발족시킨다고 한다. 그러나 자본의 이윤확대와 지배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밥그릇조차 빼앗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죄인의 목은 치되 밥그릇은 빼앗지 않는다는 봉건적 지배질서보다 더 혹독한 자본의 지배질서와 자본독재가 강화되는 시점에서 '뉴라이트 신노동연합' 출범의 의미는 무엇인가?

일단은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자본과 권력을 상대해온 민주노총 앞에 또 하나 대립세력이 추가됐다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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