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전직 경찰청장, 치안총감 전시 작전통제권 이양 반대 지난 11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미동맹 파괴음모 반대' 기자회견에서 전직 경찰청장과 치안총감을 역임한 경찰 출신 원로들이 정부의 한미작전권이양 반대를 주장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황광모/
ⓒ 연합뉴스 황광모
전직 국방장관 전시 작전통제권 이양 반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관련한 전 국방장관들의 모임이 지난 8월 10일 오전 서울 신천동 향군회관에서 열렸다. 전직 국방장관들은 회의를 마친 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언제라도 좋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결코 이 발언에 동의할 수 없다"는 등의 내용이 들어간 성명서를 발표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때 아니게 '전직'들이 맹활약을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전직 국방장관들이 몰려가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반대한다며 현직 국방장관을 몰아붙이더니, 어제는 전직 경찰총장과 전직 외교관들이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반대를 외치고 나섰다.

이러다가 전직 국정원장(중앙정보부장, 안기부장), 전직 대통령비서실장, 전직 국무총리, 전직 대통령 경호실장들까지 나서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다 끝내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등 전직 대통령들까지 나서면 아마도 가관이 그런 가관이 없을 것이다.

노구를 이끌고 집단행동에 나선 '전직'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왜 갑자기 '전직'들께서 노구를 이끄시고 이렇게 나서고들 있느냐는 것이다. <조선일보> 같은 신문들은 "원로들의 말씀을 들어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지만, 이런저런 과거 재직시의 흠결로 이들 중에 진정으로 존경받는 원로라 할 만한 사람은 드문 실정이다.

표면적으로는 전시작전통제권에 관한 의견의 차이다. 그런데 지난 2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개최한 사학법 재개정과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논의 중단을 요구하는 대규모 기도회와 집회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은 사학법 개정이나 과거사 정리 문제에 대해서도 사사건건 정부와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집단 행동을 서슴지 않고 있다.

결국 이들이 원하는 것은 모든 변화를 거부하고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다. 그런 경향을 '수구'라는 단어 외에 적절하게 표현할 길이 없을 것 같다. 결국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는 수구친미세력들을 집결시키는 아주 적절한 계기가 된 것이다.

사학법 개정이나 과거사 정리 등의 문제와는 달리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는 국민들의 안보 불안 심리를 자극하여 여론상의 우위를 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번 작전통제권 문제가 이들의 뜻대로 된다면, 수구적 경향이 보다 심화할 것이며 이것은 어떤 면에서 수구친미세력의 정치적 승리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이제껏 존경받는 '전직'이 거의 없었다. 어찌됐건 적어도 국가에서 국방장관이나 경찰청장이나 외교관 등 중요한 직책을 역임한 '전직'이라면 나름대로의 명예나 부를 누린 사람이며 나라로부터 혜택을 받은 사람이다.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며 팻말 들고 구호를 외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그들의 명예에 걸맞게 조용히 국가와 사회를 위해 여러 방면에서 봉사하고, 조심스럽게 조언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는 것인가? 어쩌면 우리사회의 척박한 '은퇴 후 문화'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사회에는 원로들의 조언을 경청하고 존경하는 풍토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이 이른바 높은 자리의 '전직'들이라고 해서 원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 원로라면 과거의 것을 고집하지 않고 사회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경륜에서 비롯된 오랫동안의 치열한 고민과 깊은 성찰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를 사회에 조건 없이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친미와 반공으로 '전직'의 영예를 누린 현재의 그들은 현직 때와 똑같은 언어를 토해놓고 있으며, 오히려 과거 현직 때의 정치적 영향력을 기대하고 정치적으로 첨예한 사안에 대해 집단행동에 나서는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솔직히 그들이 팔을 치켜올리며 구호를 함께 외치는 모습은 보기가 민망할 지경이다. 이것은 '노추'라고 볼 수밖에 없다.

지적활동 마감한 원로, 리영희 교수

얼마 전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가 그 동안의 왕성한 지적 활동을 마감하였다. 그는 <경향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 개인에게는 무한한 욕심과 집착을 버려야 할 시기가 있는데 그 시간이 온 것 같다"며 "지금까지 쓴 글들을 묶은 저작집 출간으로 지적 활동, 50여년간의 연구와 집필생활을 마감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등 현실의 문제에 대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한계를 깨달을 때 이성적 인간이라 할 수 있고, 마치 자기가 영원히 선두에 서서 깨우침을 줄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오만"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왜 존경받는 '전직'을 찾기 어려운 것인지, '원로'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전직'들이 리영희 교수의 말을 깊이 새겨서 스스로에게 되물어봐야 할 것이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