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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는 고유가 행진에 지겨워진 사람들이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는 작은 증거다.
ⓒ 유신준
'자출사'라는 인터넷카페가 있다. 이른바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인터넷 세상엔 별의별 모임이 다 있지만 이런 카페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작은 카페도 아니고 회원이 5만명에 육박하는 초대형 카페. 기름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일이 반복되면서 고유가 행진에 지겨워진 사람들이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는 작은 증거다.

이곳에는 자전거 구입에서 수리, 안전운전에 이르기까지 자전거 출퇴근에 관한 다양한 정보가 넘쳐난다. 내가 휴양림 '자출'을 결심하게 된 동기도 실은 이곳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자출사에 가입하고 활동 중인 멤버들의 하루평균 주행거리가 40km를 넘어서는데 비해, 나는 출퇴근 왕복을 따져도 고작 10km에 불과하지 않은가. 수많은 자출사 게시글에서 힘을 얻어 시험운행을 시도하고 즉시 '자출모드'에 돌입했다.

보이는 '라이더'와 보이지 않는 '라이더'

자전거로 출근을 하려면 평소보다 30분쯤 일찍 집을 나서야 한다. 정확하게는 자전거로 걸리는 시간+α가 필요하다. +α는 느긋한 기분으로 자전거를 즐기기 위한 시간이다. 자출을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이 의관정제. 안전을 위한 필수장비 헬멧을 쓰고 눈에 잘 띄는 셔츠를 입는다. 때로는 얼굴을 반쯤 가리는 '버프'라는 천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자전거 복장이 울긋불긋 화려해지는 것은 자동차 운전자들의 눈에 띄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해를 마주보고 달려야 하는 경우라면 눈부심을 방지하기 위한 고글도 필요하다. 저녁 늦게 퇴근하다 보면 심심치 않게 날벌레의 기습을 받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에 빼놓을 수 없는 장비이기도 하다.

'라이더(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를 보이는 라이더와 보이지 않는 라이더로 나눈다고 한다. 보이는 라이더는 최대한 자신의 존재를 노출시켜 남(운전자)이 배려할 수 있도록 하여 안전을 도모하는 쪽이다. 보이지 않는 라이더는 자신의 몸을 튀지 않게 감추는 대신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책임지는 부류다. 나는 눈에 띄어 운전자들의 배려를 받는 '보이는 라이더' 쪽을 택했다.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라이더에게 호의적이다. 자전거가 흰색선 바깥을 달리고 있는데도 크게 부채꼴을 그리며 피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끔 덤프트럭이 빵빵거리지만 그다지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다. 최소한 그들이 나를 발견하고 나서 보내는 신호일 테니까.

1km 가까이 계속되는 오르막 구간, 자출 최대 '난코스'

▲ 자전거를 타는 건 어쩌면 아침 출근길에서 몸으로 느끼는 산들바람의 유혹 때문이리라.
ⓒ 유신준
일단 자전거를 타고 차도에 들어서면 역주행은 금물이다. 차선이 구분된 도로에서 역주행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역주행을 한 자전거의 과실로 보기 때문이다. 자전거는 도로교통법 제2조 16호에 의거 '차'로 정의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자전거가 도로에서 받는 대접에 비한다면 형평이 맞지 않는 일이지만, 자전거 운전자가 자전거 운행 중 사고를 유발한 경우 자동차와 동일한 법의 기준안에서 처벌받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거리에 나서면 입추를 지난 날씨답게 아침공기가 제법 선선하다. 아직 따가운 햇볕이 좀 남아 있긴 하지만 바람이 많이 달라졌음을 피부로 느낀다. 자전거를 타는 건 어쩌면 몸으로 느끼는 바람의 유혹 때문이리라.

서정주 시인은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라고 고백했지만 내 생각에는 라이더를 키운 8할이 바람이다. 라이더들은 알 것이다. 차안에서 느끼는 에어컨 공기와 바깥에서 맨살로 맞는 아침 바람은 절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청양-대치간 도로는 대체로 가벼운 오르막이다. 기어를 약간 낮춰주고 페달을 부드럽게 굴려주면 무리 없이 진행된다. 가끔 초등학교 앞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아침인사도 싱그럽다. 더러는 루프캐리어에 자전거를 세워 싣고 가는 승용차를 만나기도 한다. 손을 번쩍 들어 아는 체하면 백미러로 보았는지 20~30m쯤 지나간 지점에서 후미등을 몇 번 깜박이며 호응한다. 점조직 혁명동지들끼리의 은밀한 접선. 차를 탔다면 만날 수 없는 작은 기쁨들이다.

문제는 장곡사 입구 3거리를 지나면서 1km 가까이 계속되는 오르막 구간. 아무리 기어를 저단변속해도 숨이 차오르는 곳이다(처음에 몇 번은 자전거를 끌고 오르기도 했다). 게다가 오르막에서 힘겨운 트럭들이 뿜어내는 매연도 장난이 아니다. 휴양림 자출 최대의 난코스가 바로 이곳이다.

인생의 온갖 '묘미'가 다 숨어 있는 '자전거 출퇴근'

▲ 서울의 라이더를 생각하는 오르막 길... 힘내라, 오르막 다음에는 반드시 내리막이 있다.
ⓒ 유신준
나는 이곳에서 늘 서울지역의 라이더들을 생각하며 위안을 얻는다. 하늘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지독한 매연 속에서도 열심히 자전거생활을 구가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 이 나라에서 자전거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 서울 아닌가. 그래도 내 '자출길'은 푸른산 맑은 물을 자랑하는 청정청양, 그중에서도 달착지근한 숲향기 솔솔 풍겨오는 칠갑산 자락임에야...

힘겨운 페달링으로 긴 언덕배기를 다 오르면 휴양림 입구를 표시하는 안내판이 보인다. 이제 비로소 힘든 구간이 모두 끝났다. 노란기둥의 휴양림표지판을 지나면 초록색 별천지가 펼쳐진다. 자전거출근의 클라이막스-휴양림 진입로 숲길이다. 약 1km가량 숲길이 이어지는 이곳은 휴양림 자출의 백미다. 이른 아침의 상쾌한 숲 향기가 늘 매혹적인 곳. 지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곳 숲길이 있기에 아침마다 자출을 계속할 힘을 얻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뒤돌아보면 길지 않은 5km의 자출코스 속에 인생의 온갖 묘미가 다 숨어 있는 듯하다. 평지가 있는가 하면 오르막의 난코스가 있고 어려운 코스가 끝나면 오르막의 땀방울을 한꺼번에 보상하는 싱그러운 숲길도 이어지고... 설상가상, 고진감래가 한꺼번에 펼쳐진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땀을 빼고 나니 기분이 상쾌하다. 경험으로 보건대 몸이 힘들면 정신이 더 맑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법이다. 이런 기분으로 아침을 시작할 수 있다면 좋은 하루는 이미 보장받은 거나 다름없다. 그러니 자출은 내게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중요한 행사인 셈이다. 사람을 대하는 '서비스업'이 주 업무인 이곳에서 밝은 얼굴은 필수일 테니까.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를 타자

▲ 이른 아침의 상쾌한 숲 향기가 늘 매혹적인 곳 - 휴양림 진입로 숲길이다.
ⓒ 유신준
자출 한 달여. 이젠 자전거 타는 일에 제법 재미가 붙었다. 처음에는 무거운 추라도 매단 듯 어렵던 페달링도 다리에 힘이 붙어 많이 가벼워졌고, 멀게만 느껴지던 휴양림 자출거리도 지척간이다. 자전거를 생활 속에 들여놓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자동차에서 벗어난 생활이 얼마나 여유롭고 느긋해지는지 차를 놓고 다녀본 사람만이 아는 비밀이다.

전형적인 미국 남성이 자신의 차를 위해 소비하는 시간은 연간 1600시간이라는 통계가 있다. 여기에 포함되는 시간은 자동차를 주행과 차에 관해 직접 소비하는 시간뿐 아니라, 자동차 값과 기름값, 보험료와 세금, 교통 위반 시 벌금 등을 내기 위해 필요한 재원을 모으는 시간까지 포함한 것이다.

하루 5시간 이상을 직·간접으로 '자동차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뭔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자전거에 눈을 돌려보시라. 물론 하루아침에 자동차를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를 타자는 이야기다.

환경문제를 생각한다면 자전거는 할 말이 많다. 그렇다고 자전거 타는 일에 지구환경을 위한다는 거창한 모토까지 달 필요는 없다. 무슨 일이든 의무가 되면 즐겁지 않을 테니까. 건강을 위해 하루 30분쯤 헬스클럽에 등록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한다고 생각하시라.

막무가내로 당할 수밖에 없는 기름값의 공습에 '똥침'이라도 한방 놓는 일이라고 느낀다면 더 유쾌하다. 왜 바빠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늘 바쁜 생활에 쉼표 하나 찍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왠지 즐거워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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