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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개관한 <대추리 주민역사관> 제막식 직후 한 주민이 돋보기를 들고 이웃들의 사진첩에서 나온 옛 사진들을 흥미롭게 들여다보고 있다.
ⓒ 문만식
미군기지 확장 예정터인 평택 대추리에 주민들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다룬 역사관 <대추리 사람들>이 들어섰다. 대추리에서 문화예술인들의 공연이나 전시, 설치작업 등은 수시로 있었지만 소형 박물관 규모의 역사관이 들어서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농촌 마을에서 그 마을과 주민들을 소재로 한 역사관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지만 미군기지 확장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수용 예정터 한복판에 개관했다는 점도 적잖은 의미를 가진다.

이윤엽(39)씨 등 예술인과 지킴이들, 미군기지확장반대 팽성대책위(위원장 김지태)는 공동으로 19일(토) 오후 5시 <대추리 사람들> 개관식을 가졌다. 개관식 자리에는 주민 30여 명을 포함해 50여 명이 참석해 제막식을 갖고 역사관 내부를 둘러봤다.

역사관으로 탈바꿈하기 전 건물은 국방부와 협의매수하고 지난 6월말 이주해나간 한 주민의 2층짜리 빈집이었다. 빈집은 한 달 동안 방치되다가 7월말부터 청소와 설치작업을 거쳐 이날 개관했다.

▲ 이윤엽씨 등 역사관을 기획하고 개관 작업에 참여한 미술가들과 지킴이들, 그리고 개관식에 참가한 주민들이 제막식을 갖고 있다.
ⓒ 문만식
역사관 내부에는 빈집들에서 수거한 농기구가 주민들이 내놓은 오래된 사진들과 함께 전시됐다. 역사관은 가마니를 짜는 틀인 바디, 갈아놓은 논바닥을 판판하게 고르는 기구인 써레, 벼를 훑는 데 쓰는 도급기 같은 요즘 보기 드문 농기구들도 한데 모았다. 사진은 약 스무 가구에서 수백 점을 빌어 스캔을 받은 뒤 버려진 서랍을 벽에 걸고 그 안에 붙였다. 또 이윤엽씨의 목판화와 노순택씨의 사진도 걸었다. 다 대추리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다. 지난 2004년 이후 현재까지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팽성 주민들의 투쟁을 담은 사진도 따로 전시했다.

건물 외벽에는 이윤엽씨와 미술가 강현화(38)씨가 작업 기간 동안 새로 그린 회화 작품들 10여 점이 걸려있다. 함석을 겉에 댄 문짝을 빈집에서 가져와 페인트와 아크릴 물감 등으로 그림을 그렸다. 고물상이 철제난간을 떼어가 썰렁하고 위험스럽던 2층 베란다에는 버려진 자전거들을 뒤집어 가로로 이었다.

개관작업이 한창이던 이달 초 방문자들이 남기고 간 여러 메시지들은 2층 거실 벽을 장식하고 있다. 2층의 작은 방에 붙인 대추리 관련 <오마이뉴스> 기사들과 얼마 전 간행된 김지혜 작가의 <공공일기: 대추리민들의 기록>을 낱장으로 뜯어 붙인 벽면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역사관을 기획하고 연출한 사람은 목판화가 이윤엽씨다. 지금은 잔해만 쌓여있는 대추초등학교 건물에 지난 2월 주민 초상화를 그린 것을 시작으로 대추리를 테마로 작업을 계속해왔다. 팽성대책위가 기획과 연출에 참여하고 작업을 지원했다.

이윤엽씨는 개관식 자리에서 인사말을 통해 "주민 초상화를 그린 게 예술이 아니라 못 쓰는 땅을 곡식이 자라는 땅으로 어르신들이 만든 게 예술이라고 지난 2월에 말씀드렸던 게 생각난다"며 역사관 건립의 공을 주민들에게 돌렸다. 그는 또 "국방부가 빈집을 철거한다고 할 때 그것은 빈집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다른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역사관을 만든 계기를 설명했다.

▲ <대추리 주민역사관>을 기획하고 연출한 목판화가 이윤엽씨가 전시된 농기구들을 가리키며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 문만식
이윤엽씨와 함께 작업한 미술가 강현화(38)씨도 같은 마음이다.
"집 하나를 재건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농기구처럼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물건을 한데 모아놓고 주민들이 옛 시절을 회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봐요."

주민들이 역사관을 잘 관리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역사관이 "오래 가면 좋겠고 안 부서지면 좋겠다"는 마음은 비단 강씨의 소망만은 아니다.

대추리 정태화(70) 노인회장은 "미군기지 확장으로 마을을 포기하고 뿔뿔이 헤어질지도 모르는 기로에 선 지금 역사관의 의미가 가슴에 와 닿는다"며 "780년 전에 조성됐다는 대추리가 앞으로 780년이 가도록 지킴이와 주민들이 함께 지킬 것을 약속하자"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그는 다른 한편 "오늘도 신문을 보니까 8월말 9월초에 빈집 때려 부수러 들어온다고 하는데 항상 두렵고 안타까운 심정"이라며 "그래도 오늘 여기를 둘러보니 마음이 굉장히 편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방부는 8월 14일자로 주민들에게 발송한 '공가 철거 및 영농금지 안내문'을 보내 "이사한 빈집에 대해 조만간 철거공사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또 이주하지 않은 세대에 대해서도 "인도 소송 및 강제집행 등 법적 조치와 함께 철거를 할 수밖에 없다"며 지난 4월 이래 네 번째로 조속한 이주를 경고했다. '조만간'은 8월말이나 9월초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 <대추리 주민역사관> 개막식 뒤 개관작업에 참여한 미술가와 지킴이들, 주민이 한데 모여 음식을 나누는 모습.
ⓒ 문만식
노심초사하며 몸과 마음이 두루 고통받는 주민들이지만 역사관 문에 첫 발을 들여놓으면서는 시름을 잊은 듯 "와, 잘 해놨네"하고 감탄사를 쏟아냈다. 고장 난 작업공구를 수리하는 등 개관작업에 많은 편의를 제공한 주민 홍민의(48)씨는 "이사 나가고 고물장사들이 와서 폐허로 만든 집이었다"며 "상당히 장한 일을 했다"고 작업자들에게 고마워했다.

그는 "역사관을 한다는 소릴 듣고 '대충 몇 개 걸어놓고 말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해놓을 줄은 몰랐다. 이게 보존이 되면 문화마을로 지정이 될 것 같다"고 감탄했다. 그는 또 "우리에게 길이 남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더 있겠냐"면서 "어디 가서도 "우린 이렇게 싸웠노라"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고 기뻐했다.

역사관 내부를 둘러본 뒤 몇몇 주민들은 자신이 보관하고 있는 물건을 가져오거나 가져오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정태화씨는 주민들의 옛 사진을 감상하면서 "내 사진도 당장 갖다놔야겠다"고 말한 뒤 앨범 속 사진들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민강(67)씨는 "안에 진열된 농기구들을 보니 없는 것도 있더라"면서 "우리 집에 가래도 있고 도끼도 있는데 가져올까?" 하고 말하기도 했다.

역사관은 마을 주민과 지킴이가 직접 재배하고 말린 무공해 허브를 제공하는 찻집도 운영할 계획이다. 또 팽성 주민들의 육성이 담긴 인터뷰 책자인 <들이 운다>와 각종 안내 책자, 쌀과 보리, 콩 등 작물도 비치 또는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대추리를 찾는 많은 시민들에게 한 가지 더 반가운 소식이 있다.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올해 농사를 못 지은 주민들은 찾아오는 시민들에게 그전처럼 무한정 식사를 대접할 수 없었다. 공동식량도 바닥난 지 오래고 논일이 없어 품앗이가 없으니 공동식사도 뜸해졌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고심하던 한 지킴이가 역사관 개관에 맞춰 마을 초입에 <밥 사먹는 집>을 차렸다.

▲ <대추리 주민역사관> 개관을 이틀 앞둔 지난 17일 목판화가 이윤엽(왼쪽)씨와 미술가 강현화씨(가운데) 등이 역사관 건물 앞에서 작업 도중 기념촬영에 응했다.
ⓒ 문만식

"싸우는 진짜 이유 보여주고 싶었다"
<인터뷰> 대추리 주민역사관 기획연출한 목판화가 이윤엽씨

▲ 이윤엽씨
- 주민역사관을 기획하고 작업도 주도했는데 어떤 계기였나?
"사람들이 되게 오래 싸웠지 않나. 그러면서 지치고 주민끼리 갈등도 많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싸우는 이유들이 점점 없어져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마을에 공권력이 들어오기 이전 사진들을 보면 알겠지만 사람은 행복할 때 사진을 찍는다. 백일이나 돌, 놀러가서 찍은 사진들이 많다.

결국 행복하게 사는 건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열심히 일하고 먹고는 인생 사이사이에 있는 거다. 그런 행복 때문에 자기 땅에서 살고자 싸우는 거다. 주민들이 스스로 사진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면서 왜 싸워야 되는지 확인이 될 거라고 본다. 국방부가 빈집을 철거하러 온다는 말을 들은 것도 역사관을 생각해낸 계기다. 빈집은 그저 빈집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이다. 그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해 싸우는 것 아닌가.
"맞다. 저 사진들을 들여다보면 사람 사는 거 별 거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행복한 계기들 때문에 사는 거다. 그런데 나라가 관리를 하면 공권력이 튼튼하게 보호하는 게 아니라 더 해체한다. 반대로 돈 없고 권력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FTA가 큰 링이라 치자. 권력자들은 충분히 준비된 자기들 싸움판으로 사람들을 자꾸 몰아간다. 사람들이 당연히 지게 돼 있다. 대추리도 그 테두리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 대추리 사람들에게 어떤 게 행복이라고 생각하나.
"사진도 보면 알지만 큰 뷔페 같은 호화찬란한 데서 밥 먹고 좋은 차를 타서 사람이 행복한 게 아니다. 사회라는 데서 자꾸 그런 걸로 엮어가는 거다. 없이 살면 자꾸 움직여야 된다. 대추리에서 땅 없이 자기 집만 있는 사람도 있다. 4천만 원짜리 집 한 채 가진 주민도 있다. 가격을 떠나서 집 한 채 가지고 대추리에서는 행복하게 산다. 여기 있다는 것이 행복이다. 돈으로 바꿔서 나가 살면 얼마나 불행하겠나.

미군기지 확장 문제로 3년 싸우면서 농사지은 사람도 있고 싸우느라 안 지은 사람도 있을 거다. 2-3년 농사 안 하다가 다시 농사짓기 힘들다. 사람들이 도시로 나가면 대체로 음식 체인점을 한다. 5천에서 1억 들인다. 장사가 안 된다. 그럼 2-3억 까먹는 건 우습다.

소도시만 가도 문만 열면 미니스톱에서 맥주 사먹어야 되고 노래방 가야 되고 양파도 사먹어야 된다. 돈 10만원 금방 깨진다. 놀 때는 몇 억 별 것도 아니다. 제대로 놀지도 못해보고 그렇다. 그것도 사기 안 당했을 때 문제다. 어떤 의미에서는 세상이 그런 걸 요구를 한다. 점점 뭐든지 경쟁적으로 얘기를 하지 않나. 그리고 자꾸만 그 싸움의 장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 역사관 소장품을 안내해 달라.
"1층 현관은 미군기지 싸움 이전을 콘셉트로 잡았다. 빈집에서 가져온 농기구들과 주민들 장롱 속 앨범에서 꺼낸 사진들을 섞어놓으면 주민들의 삶의 흔적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용과 아름다움의 조화도 고려했다.

1층 작은방은 내가 만든 판화를 전시했다. 리플릿이나 책자, 판매용 곡물도 들여놓을 생각이다. 큰방은 싸움을 시작하면서부터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보여준다. 1층 작은 거실 벽에는 버려진 서랍을 걸고 그 안에 사진을 붙였다. 서랍을 열어 지난 시간들을 뒤져 본다는 의미다. 노인들을 위해 돋보기도 비치했고 관람객들이 쉬면서 보도록 영상자료도 가능하면 들여놓을 계획이다. 2층 거실은 메시지의 방이다. 경찰 검문 때문에 자주 오지 못하는 방문자들이 편지를 남길 수 있다. 그 메시지들은 벽에 부착한다."

- 전체적인 콘셉트는 뭔가.
"이곳 싸움이 커지면서 어르신들은 힘들어하시고 외지인들은 TV에서 주민들이 욕하고 투쟁하는 모습만 본다. 그 뒤에는 주민들이 왜 싸우는지에 대한 감춰진 이야기가 있다. 그 감춰진 것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그 수단으로 그들이 썼던 노동의 흔적인 연장과 농기구를 놓고, 앨범 속 돌, 환갑, 놀러간 사진들을 놓으면 주민들이 싸우는 이유를 잘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여기에 온 사람들이 총체적으로 대추리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란다."

- 쌀 포대로 벽과 천정을 장식했는데.
"이곳이 농사짓는 마을이다. 농부의 느낌이 와 닿게끔 전체적인 분위기를 잡았다.. 편리하기도 하고 동네에서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이기도 했다. 쌀 포대가 얼추 200여 장 들어갔다. 글씨가 인쇄 안 된 건 천장에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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