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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일 선생님 동상
ⓒ 박하용
8월초 하계 휴가차 충남 태안의 구례포 해수욕장에서 즐겁게 지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태안군 신두리 입구 도착하기 전 우측에 어디에서 본 듯한 초가(草家)가 있어 찾아가 보았다.

그 곳에는 3·1운동 때 자신의 인쇄소인 보성사에서 직접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이종일 선생님의 동상이 서있다. 한참 둘러보다 보니 선생님께서 3·1운동으로 투옥됐다가 출옥하자마자 3·1운동 3주년이 되는 날(1922년 3월 1일)을 기해 보성사 직원들과 함께 제2의 3·1운동을 벌이기 위해 작성한 '자주독립선언문'이 거기 있었다. 마침 8·15 광복절을 앞두고 있어 그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민중각자는 짚단 위에 잠자고 창을 베개로 하여 끊는 물 속이나 불 속의 형세라도 흔쾌히 뛰어 들어 온 누리가 자주독립되게 하여 일월이 다시 밝아지면 어찌 한나라에 대한 공로만을 그리겠는가, 후세에 이 말을 반드시 전하여 훌륭한 조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이종일 선생 사당.
ⓒ 박하용
삼문을 들어가니 사당은 산언덕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사당 우측으로는 생가가 보존되어 있다. 선생님의 생가는 1986년에 선생의 생가 터에 복원한 것인데, 6칸 겹집의 ㄴ자형 평면을 가진 초집이다.

▲ 이종일 생가 전경.
ⓒ 박하용
건물을 둘러보니 들어가는 대문이 사주문위 초가지붕으로 아름다우며, 건물은 자연석 1켜 외벌대 쌓기를 하였다. 주초는 자연석을 이용하였고, 기둥은 사각형 목재기둥이고, 벽의 마감은 외엮기위 재사벽 바르기로 마감했다. 마루는 우물마루이고, 방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은 아자형 쌍문과 두 짝 지게(세살)문이 있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지붕은 전형적인 우진각 지붕으로 초가이엉 얹기를 하였다.

▲ 이종일 생가 내부.
ⓒ 박하용
▲ 이종일 생가 뒤 굴뚝.
ⓒ 박하용
▲ 이종일 생가 사주문위 초가.
ⓒ 박하용
건물 뒤편에는 나지막하게 굴뚝이 돌과 흙으로 맞담 쌓기로 만들어졌으며, 건물의 담장도 맞쌓기 위에 초가이엉 얹기를 하였다.

이종일 선생님의 생가는 기념물 제85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이 선생님은 독립운동가로 2세 교육에 힘을 썼다.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의 민족대표 33인중 한사람이다.

▲ 이종일 생가 담장. 돌과 흙으로 맞담쌓기를 하고 위에 초가이엉얹기를 하였다.
ⓒ 박하용
생가 답사를 마치고 나오니 보지 못한 곳이 있어 가보았다. 이곳은 6·25전쟁과 월남전에서 자유와 민주를 수호하기 위하여 전투 중 산화하신 전몰군경과 국토방위를 위하여 헌신하신 순직군경 등 호국영령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자유수호희생자위령탑과 충령사이다. 이곳은 1997년도에 태안군에서 건립하였다고 한다.

▲ 충령사 건물.
ⓒ 박하용
▲ 자유수호희생자위령탑.
ⓒ 박하용

덧붙이는 글 | 코리아넷, e조은뉴스, 국정불로그에도 송고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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