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竹島』표지
ⓒ 김점구
지난 7일 <산잉신문(山陰中央新報社)>은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을 설명한 자료집<竹島>를 발행했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독도로부터-진정한 일한친선을 향하여(発信竹島-真の日韓親善に向けて)>이다.

<竹島>는 시모조 마사오(下條正男, 다쿠쇼쿠대학 국제학부 교수)가 2005년 7월 25일부터 11월 7일까지 <산잉신문>에 연재한 내용을 담고 있다.

<竹島>는 '1장 안용복-에도시대', '2장 칙령 vs 각의결정-메이지시대', '3장 과거청산-쇼와부터 헤이세이', '4장 남겨진 과제-현대부터 미래로' 등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내용을 비판적으로 점검해보자.

은주시청합기는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증거

1장은 에도시대의 도해면허와 안용복의 도일 활동 등을 담고 있다. 시모조 마사오는 독도를 일본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거로 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를 예로 들었다.

은주시청합기는 이즈모(出雲, 현재 시마네현 인근 지역)의 관리인 사이토 호센(齊藤豊仙)이 1667년 8월부터 약 2개월 동안 은주(隱州, 현재 오끼섬)를 시찰하며 보고(視) 들은(聽) 내용을 기록(合記)한 보고서이다.

일본 외무성은 1952년 평화선 선언에 항의하며 보낸 구상서에서 독도가 일본 영토임을 증명하는 자료로 이 은주시청합기를 제시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마네현 독도 홈페이지 '돌아오라 다케시마'(かえれ!竹島), 외무성 홈페이지 '다케시마문제'(竹島問題)에서 이 자료가 거론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은주시청합기가 '독도는 한국 땅'임을 증명하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사이토 호센은 은주를 중심으로 각 지역을 방향과 거리로 나타냈다.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은주에서) 서북쪽으로 이틀 낮과 하룻밤을 가면 송도(松島, 독도)가 있고, 또 하루를 가면 죽도(竹島, 울릉도)가 있다. (중략) 두 섬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중략) 그런즉 일본의 서북한계는 이 주(州)로 한다."

이 주(州)는 은주, 즉 오끼섬이므로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의 경계에서 벗어나게 된다.

칙령 41호의 석도(石島)는 독도(獨島)

2장은 대한제국이 1900년 10월 25일 제정한 '대한제국 칙령 제 41호'를 반박하는 내용이다.

칙령 41호는 1905년 2월 제정된 시마네현 고시를 부정하는 가장 확실한 자료로 평가받는 문서다. 칙령 41호 제2조는 '군청 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전도와 죽도(竹島) 석도(石島)를 관할케 한다'라고 돼 있다. 여기서 석도(石島)가 바로 독도(獨島)이다.

그러나 시모조 마사오는 석도에서 석(石)을 전라도 방언으로 '독(獨)'으로 표기한다는 한국의 주장은 통용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석(石)과 독(獨)의 관계는 한국의 어문체계이므로 시모조가 반박하기 위해서는 학문적인 차원에서 반박을 해야 함에도 시모조는 어문학적으로 반박하지 못하고 있다.

칙령 제정당시 석도가 독도였다는 것은 우리 지명을 한문으로 표기하는 사례와 일본의 기록 등을 통해서도 증명 가능하다.

1883년 울릉도를 재개척하기 이전부터 울릉도엔 사람이 살았다. 주로 전라도 사람들이었다. 전라도 방언으로 돌(石)을 '독'이라 부르는데 대한제국 정부는 의역하여 석도(石島)로 썼고 음역하여 독도(獨島)라 썼다. 울릉도에서 전라도 방언이 통용되었던 이유는 울릉도 주민의 대다수가 전라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1882년 이규원 검찰사의 보고에 따르면 조선인 141명 가운데 전라도 115명, 강원도 14명, 경상도 11명, 경기도 1명으로 조사되었다. 1883년 4월 울릉도 재개척 당시 54명이 새로 이주했으나 여전히 전라도 출신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도 돌(독)을 석(石)과 독(獨)으로 표기하는 사례는 전라도를 중심으로 많다. 완도 고막리 석도(石島), 충도리 석도(石島), 고흥 남양면 독도(獨島), 무안 청계면 석곡(石谷), 장흥 장흥읍 독곡(獨谷)등이다.

석도가 독도였다는 것은 1904년 9월, 일본 군함 신고호(新高號) 항해일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독도라는 명칭이 기록된 최초의 기록이다. 이때 신고호는 독도에 망루를 설치하기 위한 조사를 하고 있었다. 이 배의 항해일지에는 "한인들은 독도(獨島)라 쓰고 일본은 리앙코도라고 부른다"고 돼 있다.

<竹島>, 한국인을 위한 독도 교과서
<竹島>는 이 밖에 안용복의 도일 활동, 도해면허, 시마네현 고시, 평화선 등에 대한 일본의 주요 주장을 담고 있다. 기존 일본의 주장에서 새로운 것은 없으나 일본의 일반적인 주장을 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사례별로 반박하지 못하고 망언이나 허구로 규정한다고 해서 일본의 주장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에서 <竹島>와 같은 주장이 머지않아 일반적인 상식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일본 중학교 3학년의 76%가 <竹島>에 담긴 것과 같은 내용의 수업을 받기 시작했고 내년부터 고등학생 전체가 배우게 된다.

'시마네현 고시'를 알지 못하면 '다케시마의 날'을 부정할 수 없다. 언제까지 '신라장군 이사부, 지하에서 웃는다'는 노래만 부를 수는 없다.

시모조 마사오는 누구?

▲ 시모조 마사오
ⓒ산잉신문
시모조 마사오는 한국에서 18년 동안 살면서 독도문제를 연구했고, 한국의 논리를 가장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다케시마의 날 제정 조례안’에 따라 시마네현이 설립한 ‘다케시마문제연구회(竹島問題硏究會) 회장을 맡고있으며, 독도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 5월 30일에 한국연구자와 토론을 하자는 제안을 했고, 8월에는 울릉도 현지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토론회는 7월 23일부터 시마네현에서 진행되며 최장근 교수(대구대 일본학)가 참여한다.

일본의 주요 독도 홈페이지

▷ 산잉신문 홈페이지 -시모조 마사오 연재물
http://www.sanin-chuo.co.jp/tokushu/modules/news/index.php?storytopic=145
▷ 시마네현 홈페이지 - かえれ!竹島
http://www.pref.shimane.lg.jp/soumu/takesima/
▷ 외무성 홈페이지 - 竹島問題
http://www.mofa.go.jp/mofaj/area/takeshima/index.html
▷ 주한일본대사관 - 竹島問題
http://www.kr.emb-japan.go.jp/other/other_111.htm
(외무성 홈페이지의 한글판 ) / 김점구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독도수호대 대표, 독도의용수비대동지회 사무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독도수호대는 일본인과 전세계인을 상대로 독도를 바로 알리는 '독도운동의 세계화-안용복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2000년부터 칙령 41호 제정일인 10월 25일을 '독도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www.tokdo.co.kr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도수호대 대표, 문화유산 해설 기획과 문화유산 보존활동을 하고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