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1. 못 말리는 김영선, '최초의 40대 여성 당 대표' 행보 만끽

▲ 김영선 한나라당 대표.
ⓒ 오마이뉴스 이종호
'40대 독신'으로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의 연령을 큰폭으로 낮춘 신임 김영선 대표의 '튀는 행보'가 당 안팎에서 화제다.

지난 16일 퇴임한 박근혜 전 대표를 승계한 김영선 대표의 임기는 전당대회가 열리는 7월 11일까지 불과 24일이다. 그러나 김 대표는 19일 취임 이후 전직 총재들 예방에서부터 재난예방 안전대책 점검 및 전방부대 방문에 이르기까지 하루 24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며 '최초의 40대 여성 당대표'로서의 행보를 만끽하고 있다.

김 대표는 취임 다음날인 20일 신한국당 총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을 예방한 데 이어 21일에는 이회창 전 총재를 찾아가 당대표 '취임신고'를 했다. 신고식만 한 것은 아니다. 이날은 당대표 취임 이후 처음으로 이종석 통일부장관으로부터 북한 미사일 위기 상황에 대한 현안보고를 받기도 했다.

김영선 대표는 22일에는 민생현장 방문의 일환으로 경기도 소방재난본부를 방문해 장마철을 앞두고 재해·재난 예방 및 안전대책을 점검하고, 일선에서 수고하는 소방공무원들을 격려했다. 김 대표는 이미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 "당 대표로 있는 동안에 발로 뛰는 한나라당, 국민 속으로 들어가는 한나라당의 임무를 충실히 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이어 23일에는 육군 제5사단 대대OP를 방문해 부대장으로부터 GOP경계 현황 등을 브리핑 받고서 GOP철책선 1.2km를 도보로 순찰하고 장병 생활관(구 내무반)을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했다. 김 대표는 이날 40여명의 장병들과 부대식으로 오찬을 함께 하고 장병들의 요청에 따라 박세환 비서실장과 함께 노래 '젊은 그대'를 합창하며 기념촬영도 했다.

김 대표는 이미 박세환 의원을 자신을 24일 동안 보좌할 비서실장으로 새로 임명했다. 몇몇 의원들이 비서실장직을 권유받았지만 고사했고, 결국 박 의원이 '24일 비서실장'직을 떠맡게 됐다는 후문이다. 이런 넘치는 의욕 때문인지 주변에서는 "이러다가는 당대표 자격으로 부시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미국을 방문하려고 하지 않을지 모르겠다"는 농담까지 나온다.

그러나 이런 의욕적인 행보 덕분인지 김 대표는 최근 한 여론조사기관의 국회의원 선호도조사에서 7위를 기록하며 톱10에 처음 진입했다. 김 대표의 이런 못말리는 행보에 대해 너무 의욕이 앞서 튄다는 지적도 있지만, 한나라당의 변화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 장기적으로 한나라당에 플러스라는 의견이 더 많은 듯하다.

# 2. 동문서답 YS "노무현, 누가 지지해서 18% 나오는지..."

▲ 김영삼 전 대통령.
ⓒ 오마이뉴스 이종호
김영선 대표는 20일 서울 상도동 자택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을 예방해 이번 지방선거와 차기 대선, 그리고 사학법과 북한 미사일 문제에 이르까지 20여분 동안 폭넓은 대화를 나누었다. 다음은 한나라당이 공개한 김 대표와 김 전 대통령의 대화 내용이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영어 약칭은 둘 다 'YS'이다. 편의상 YS(여)와 YS(남)으로 표기한다.

YS(여) "지금 북한 미사일 문제도 있는데 이 문제는 어떻게 보시나."

YS(남) "북한이 능력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찰기로 사찰한 것으로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을 것이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 능력은 없으나 미국이 정찰기로 사찰한 결과이니 미사일 발사 움직임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는 얘기인데, 결국 앞 뒤 말이 모순되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다. 다시 두 YS의 대화가 이어진다.

YS(여) "사학법이 날치기 통과되어서 지금 6월국회에서 내용을 다듬자고 하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야당과 합의하라'고 하고 여당은 안받고 여야가 제대로 합의 못해 처리 못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YS(남) "법을 통과시킬 때 무리한 방법으로 물의를 일으킨 것으로 어느 나라 국회에서도 문제가 있으면 재론이 있다. 노무현 정권은 국민의 신뢰를 전혀 못 얻는 정권인데 누가 지지해서 18%가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 지지한다고 들어본 적이 없다."


사학법 문제를 물어보는데 노무현 정권을 누가 지지해서 국정운영 지지도가 18%가 나오는지 모르겠다는 엉뚱한 소리를 한다. 그러고는 누가 근황을 묻지도 않았는데 다음주에 몽골을 방문한다는 얘기를 꺼낸다.

YS(남) "다음주에 몽고에서 초청해 UN 산하 국제회의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한다. 대사가 대통령 만나는 것을 요구해 만날 예정이다."

YS(여) "대통령께서 (저를 국회의원으로) 발탁한지 10년만에 대표가 되었다."

YS(남)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 클린턴 대통령은 8년 하고 부시 대통령이 되고 그렇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제일 큰 발전이다. 한 정권이 계속하는 것은 독재이다. 이번에 갈아보자, 바꿔보자, 못살겠다는 말이 나오게 돼 있다."


역시 '동문서답'의 달인이다. 한나라당은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3번이나 집권했으면서 헌정 사상 첫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를 이룬 민주당이 두 번 집권한 것은 독재라는 궤변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자화자찬'이라면 은근슬쩍 할 것은 다한다.

YS(여) "당내에도 이회창 총재, 최병렬 대표도 있었고 이번에 새 대표가 나오게 돼 있어 당 분위기가 많이 바뀌는 것 같다."

YS(남) "한나라당은 사실상 여러 가지 만든 것에 시조가 되다시피 돼 있다. 이재오 대표도 내가 공천했다. 김문수 지사, 손학규 지사, 이명박 시장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발탁한 인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YS(여) "민주주의를 이룩하신 뜻을 생각하고 시대에 맞게끔 노력하는 중이다."

YS(남) "잘 해야 한다. 아마 의원 중에 제명된 사람은 나뿐이다. 야당 총재 시절에 제명되었다."


민주화투쟁을 이끈 '민추협' 지도부 중 감옥 안 간 사람도 YS뿐

자신이 국회에서 '제명' 당한 것을 늘 빛나는 반독재민주화투쟁의 훈장으로 자랑하지만, 반독재민주화투쟁을 이끈 '민추협' 지도부 중에서 감옥에 안 간 사람도 YS뿐이다. 그 이야기는 왜 안하는지 모르겠다. 폭압적인 군사정권에 의해 수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DJ(김대중)와 투옥과 고문으로 점철된 동교동계 정치인(권노갑·김상현·김옥두·한화갑 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상도동계 정치인(최형우·김동영·김덕룡 등)들도 상당한 고초를 겪었다. 그런데 유독 YS만은 옥사(獄事)와 '인연'이 없었다.

YS가 겪은 신체적 자유의 억압은 87년 6월 항쟁 시절에 잠시 경찰 '닭장차'에 모셔진 것이 고작이다. 그래서 그 때의 경험이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그의 유일한 어록으로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다.

YS(여) "국민들이 말로 하는 정치에 호감을 갖는 경향도 있고 대선에서 그런 능력보다 공약 등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데 해야 할 일이 많은 사회이다."

YS(남) "노무현 대통령 같은 사람을 별로 못 봤다."


다시 엉뚱하게 노무현 대통령 얘기를 꺼낸다. 그런데 노 대통령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 시절에 '03시계'를 차고 상도동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내가 노 후보를 처음 정치에 입문시켰다"고 자랑했으면서 그 얘기는 쏙 빼놓는다. 아니 그는 아예 "노무현 대통령 같은 사람을 별로 못 봤다"고 모른 체한다.

YS(여) "대통령께서 당수가 되실 때 나이는 얼마였나."

YS(남) "46세였다."

YS(여) "제가 46세다."

YS(남) "(그런 기록은) 역사에 별로 없다. (나는) 정치 시작은 26세에 했다. 누구도 기록을 못깼다. 3대 (국회의원)부터 9선을 했다."


그 새를 못 참고 또 자화자찬이다. 그러나 김 대표는 3선 의원답게 '영광된 자리'라고 YS를 추켜세우면서 옆에 있는 비서실장에게 덕담을 한다. 그런데 YS는 생뚱맞게 결혼 이야기를 꺼내며 여전히 동문서답이다.

YS(여) "박세환 비서실장도 영광된 자리에 함께 했으니 9선까지 하기를 기원한다."

YS(남) "김 대표는 결혼을 해야 하는데, 남자나 여자는 결혼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결혼을 일찍 했다. 서울대 다니던 23세에 했다. 집사람을 들러리들이 감춰줘서 결혼했다. 그 때 빠졌던 것 같다."


# 3. 추락하는 노무현, YS 4∼5년차 여론지지도 침몰 직전과 흡사

▲ 노무현 대통령.
ⓒ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무현 대통령이 20일자로 대통령비서실 비서관 6명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2명은 전임자의 승진 및 원대복귀에 따른 것이고, 4명은 개인적인 사유로 사의를 표명한 데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관심을 끈 것은 개인적인 사유로 사의를 표명한 이근형 여론조사비서관 후임에 조용휴 전 폴엔폴 대표이사를 기용한 점이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해온 이근형 전 여론조사비서관은 참여정부 출범 당시 임명된 비서관 중에서 최근 물러날 때까지 현직에 남은 유일한 비서관이었다. 따라서 이 전 비서관이 교체됨에 따라 참여정부 출범 당시 직책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청와대 비서관은 단 한 명도 안남게 되었다.

여론조사비서관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등 여론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물론 '관리'가 '조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노 대통령은 국정운영 지지도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가 떨어지면 여론조사비서관에게는 바늘방석이다. 그래서 여론조사 담당자는 여론조사 방식에 변화를 주거나 여론조사 타이밍을 조절하는 등으로 '주가 관리'하듯 대통령에 대한 국정운영 지지도 등 '여론 관리'를 한다. 이 전 비서관은 노 대통령의 낮은 국정운영 지지도와 관련 사석에서 힐문을 당하자 '관리가 안되는 대통령'이라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신임 조용휴 여론조사비서관은 민주당 대통령후보 시절부터 노 대통령과 '죽이 맞는' 여론조사 전문가이다. 리서치&리서치 선임연구원, 정우컨설팅 조사분석실장, 민주당 정세분석국 부국장, 그리고 여론조사 기관인 주식회사 폴엔폴의 대표이사를 거치면서 여론조사에 대한 전문성과 식견을 길렀다.

노 대통령은 특히 그의 정치적 안목과 균형감각을 높이 사 참여정부 출범 초기부터 그에게 청와대에 들어와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 비서관은 "밖에서 돕겠다"며 청와대 입성을 완곡하게 사양했다. 그래서 그런 그가 '별볼일 없는' 참여정부 말년에 청와대에 들어간 것에 대해 의외라는 반응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그가 단순한 '여론 관리'를 위해서 청와대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신당 창당 정지작업을 위해 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그에게 신당 창당의 동력이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신당 창당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라면 굳이 청와대 안에 있을 필요도 없다는 지적도 설득력이 있다.

노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 12.4%

그의 역할이 무엇이든, 노 대통령 임기말 국정운영 지지도는 이미 '여론 관리'의 수준을 벗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천하에 없는 여론조사 전문가가 '관리'해도 반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최근 한 토론회에서 발표한 '여론추이로 본 민심'을 통해 "6월 9∼10일 한길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국정운영 지지도는 5점척도 기준으로 12.4%"라면서 "현재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은 여론조사 상으로 매우 우려스런 수준이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를 묻는 방식으로는 ▲매우 잘한다 ▲잘하는 편이다 ▲못하는 편이다 ▲매우 못한다는 4개 항목을 보기로 해서 질문을 하는 4점척도와, 4점척도에 ▲보통이다라는 평가항목을 중간에 묻는 5점척도가 있다. 그런데 5점척도로 묻게 되면 '보통'이라는 응답으로 몰리는 경향이 생기면서 국정수행 지지도는 대개 20% 내외로 나타나게 된다. 이에 비해 4점척도를 쓰면 지지도가 더 올라간다.

미국에서는 CNN, CBS, 뉴욕타임스 등이 주로 4점척도를 사용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도 김영삼 대통령 임기말부터 미국의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와도 비교할 수 있도록 4점척도 조사결과를 사용해왔다. 그러나 5점척도를 적용하면 그렇지 않아도 낮은 YS 임기말의 지지도가 바닥을 기기에 '여론 관리' 차원에서 4점척도를 사용하게 된 측면도 있다.

홍형식 소장에 따르면 5점척도 조사를 기준으로 YS·DJ 시절의 지지도와 비교했을 때 노 대통령 지지도는 YS 4년차(노동법 날치기 파동 직전 21.0%)에서 5년차(1월 9.9%)로 넘어가며 여론의 지지도가 침몰하기 직전의 수준과 흡사하다.

▲ 김대중·김영삼·노무현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 추이. 도표에서 MH는 노무현 대통령의 약칭이다(출처 :한길 리뷰 71호)
5점척도 조사결과에 따르면, DJ는 두 아들 비리 개입에도 불구하고 임기중에 국정운영 지지도가 20% 이하로 떨어진 적이 한 번도 없으나 YS는 임기초 90.0%에서 임기말에는 8.2%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이미 임기 1년차에 16.5%까지 떨어진 뒤에 3년 동안 계속 16∼20%선을 오르내리다가 최근 12.4%를 기록했다.

더구나 노 대통령과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의 관계는 서로 언제 탈당과 결별을 단행할지 모를 만큼 불안한 동거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임기말 IMF 외환위기 사태로 '정치적 식물인간'이 된 YS가 세운 기록을 깰지도 모른다.

오죽했으면 YS가 20일 자신을 예방한 김영선 한나라당 대표에게 "내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 (노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노무현 정권은 국민의 신뢰를 전혀 못 얻는 정권인데 누가 지지해서 18%가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한탄했을까 싶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