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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발매된 <시사저널>에 실릴 예정이었던 삼성 관련 기사가 <시사저널> 경영진에 의해 삭제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21일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삭제된 기사는 삼성 그룹의 인사 문제를 다룬 것으로 '이학수 부회장 권력, 너무 비대해졌다'는 제목으로 나갈 예정이었으나, 16일 저녁 심상기 회장이 주재한 간부회의를 거쳐 인쇄 직전에 빠졌다고 한다.

이와 관련 이윤삼 편집국장은 기사 삭제에 반발해 19일 사표를 냈고 편집국 기자들은 21일 비상총회를 열어 이 국장의 복귀와 금창태 사장의 퇴진, 최고경영진의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 삼성인사 기사가 삭제돼 발매된 <시사저널> 870호.
이번 사태는 재벌과 언론사 경영진에 의한 명백한 편집권 침해, 언론자유 침해 행위이다. 지난 15일 삼성그룹 측은 기사가 나간다는 사실을 접하자마자 <시사저널>로 찾아가 기사를 빼줄 것을 요구하는가 하면, 이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같은 요구를 했다고 한다.

삼성 측은 '정당한 기업홍보 활동' 정도로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하는 모양이지만, 기사에 사실이 아닌 부분이 있다면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고 반론할 대목이 있다면 반론하면 될 일이다.

삼성그룹이 내부의 인사 문제를 지적하는 정도의 언론 보도까지 막겠다고 나서는 것은 한마디로 거대 자본의 횡포이자 재벌기업으로서 최소한의 사회적 감시와 비판도 받지 않겠다는 오만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재벌의 부당한 외압으로부터 편집국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시사저널> 경영진이 보인 태도 역시 상식 밖이다. <시사저널>의 금창태 사장은 기사를 쓴 기자와 편집국장에게 "기사를 안 내보내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가 하면, 심상기 회장도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사기업의 인사 내용이라면 기사화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등의 말로 사실상의 기사 삭제를 압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편집국장이 경영진의 이 같은 요구를 수용하지 않자, 경영진은 회의를 열어 기사 삭제를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원고가 인쇄소에 넘어간 상태에서 기사를 빼고 광고를 넣어버렸다고 한다.

우리는 대표적인 시사주간지 가운데 하나인 <시사저널>에서 사이비 언론사에서나 벌어질법한 노골적인 편집권 침해가 벌어졌다는 사실에 대해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나아가 한국사회 '최고권력'이 된 삼성그룹의 언론통제 시스템, 사회통제 시스템으로부터 어느 곳도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만약 문제의 기사가 '삼성'을 다룬 것이 아니라면 경영진이 그토록 무리하게 기사를 뺄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올 초 삼성그룹은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하고, 불법 대선자금 제공,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안기부 엑스파일 파문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점을 사과한다며 ▲총 8천억 원 상당의 사회헌납 ▲공정거래법 헌법소원 등 취하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 운영 ▲구조조정본부 축소를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삼성그룹이 진정으로 국민들에게 사과하는 마음이 있다면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을 따로 만든다며 생색을 낼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 대한 언론들의 일상적인 비판 활동을 받아들고 수용하는 자세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재벌의 외압으로부터 편집국을 보호하기는커녕 기사 삭제에 앞장선 <시사저널> 금창태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들에게 촉구한다. <시사저널> 경영진들의 일방적인 기사 삭제는 언론사 경영자로서 결코 용납 받을 수 없는 편집권 침해행위일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발행하는 잡지의 권위와 신뢰를 스스로 추락시키는 '제 발등 찍기'나 다름없다.

우리는 <시사저널>에서 물러나야 할 사람은 외압을 거부한 편집국장이 아니라 언론사 사장으로서 자격이 없는 금창태씨라고 판단한다. 따라서 일선 기자들의 요구대로 이 국장이 복귀하고 금 사장이 사퇴하는 것만이 이번 사태를 더 악화시키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만약 <시사저널> 경영진이 끝까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언론계 전체와 시민사회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을 것이며, 독자들의 신뢰도 잃어버리게 된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시사저널> 경영진의 삼성관련 기사 일방 삭제와 편집권 침해에 대한 민언련 논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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