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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협상이 시작된 5일 시위대가 'FTA 반대'를 외치며 협상장 근처 거리를 걷고 있다.
ⓒ 강인규
▲ 초를 든 참가자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 강인규

워싱턴 현지시간으로 5일. 한미 자유무역협정 본협상이 처음 열리는 날이었다.

시위대는 오전 8시 반에 협상장소인 미국무역대표부(USTR) 건물 앞에 집결했다. 시위대는 농악대 연주에 맞추어 FTA 반대 구호를 외치며 한국 협상단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09:30] 이역만리에서 마주 선 한국 시위대와 한국 대표단

▲ 협상장을 나서는 김종훈 FTA 수석대표가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를 외면하며 걷고 있다.
ⓒ 김지형
▲ 시위대가 협상대표단에게 대화를 요구하며 차를 둘러싸고 있다.
ⓒ 김지형
오전 9시가 지나자 김종훈 FTA 수석대표를 비롯한 협상대표단이 미국무역대표부(USTR) 건물 앞에 도착했다.

시위대는 구호를 외치며 격렬히 항의했고, 협상대표단은 시위대를 외면하면서 서둘러 협상장 안으로 들어갔다. 시위대는 협상이 진행되는 오전 내내 무역대표부 건물 앞에서 북과 꽹과리를 울리며 'FTA 반대'를 외쳤다.

오전 11시 30분. 한국 대표단이 건물 밖으로 나와 검은 승용차에 올라탔다. 시위대는 김종훈 수석대표에게 대화를 제의하며 차에서 내려달라고 요구하며 차량을 둘러쌌다.

시위대 가운데 한 명은 승용차가 진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 차 앞 도로에 드러눕기도 했다. 일순간 긴장이 감돌기도 했으나, 시위대는 곧 차의 통로를 열어주었고, 협상대표단을 실은 자동차는 곧 시위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15:00] '반 FTA' 건너 '동성결혼 인정' 옆에 '반전'... 특별해진 공원

▲ 백악관 앞에서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시위대의 모습.
ⓒ 강인규
오후에 시위대는 구호를 외치면서 도로를 행진해 라파예트 공원으로 들어갔다. 전날 문화행사를 가졌던, 백악관이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공원이다. 시위대는 백악관 근처로 한 바퀴 돌며 'FTA 반대,' '부시 반대'를 외친 후 잔디밭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이후 일정을 준비했다.

사흘째 빈틈없이 짜여진 일정을 소화해 낸 시위대는 다소 지친 듯 했지만, 좀처럼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시위대가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며 쉬고 있을 때, 잔디밭 건너 길가에는 10여명의 소녀들이 모여 "동성결혼 인정"을 외치면서 원을 그리며 돌고 있었다. 그 앞쪽으로는 공원에서 26년째 상주하며 반전 시위를 하고 있는 할머니가 관광객들에게 말을 거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다른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별다른 시설도 없는 라파예트 공원을 아주 특별한 곳으로 만들고 있었다.

[19:30] 워싱턴을 밝힌 '종이컵 램프'

▲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초에 불을 붙이고 있다.(왼쪽) 잠시 쉬며 땀을 식히고 있는 시위대.(오른쪽)
ⓒ 강인규
본래 저녁 7시 반으로 예정된 촛불문화제는 해가 길어지면서 늦추어졌지만 그 자리는 연대와 교류의 시간으로 채워졌다.

미국에서 잘 알려진 운동가이며 앤서 연대(A.N.S.W.E.R Coalition) 간사인 새라 슬론(Sarah Sloan)이 먼저 환영과 연대의 인사를 전했다. 그녀는 한미자유무역 협정과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확산을 함께 막아내자고 제안했다.

어스름해진 저녁 잔디 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말하기보다는 행진하는 게 더 편한' 수줍은 교포 여학생마저 연단 위로 불러내기에 충분했다.

제법 하늘이 어두워졌을 때 몇개의 초에 불이 당겨졌고, '종이컵 램프'의 수는 하나 둘 늘어났다.

시위대는 촛불을 든 채 대열을 맞추어 'NO FTA'라는 글자를 만들었고, 잔디밭 위에 함께 둘러앉아 나직하게 '함께 가자 이 길을'을 부르기도 했다. 꽤 시간이 흘러 "이제 그만 불을 끄고 행사를 마치자"는 진행자의 주문이 들려왔다. 그러나 촛불들은 아쉬운 듯 쉽게 꺼지지 않았다.

"FTA, 경제만 망치는 게 아니다"
원정 시위대, 워싱턴 현지에서 특별 기자회견

▲ 전국기자협회 건물에서 있었던 방문시위대 특별기자회견.
ⓒ 강인규

이날 시위대 일부는 미 전국기자협회(National Press Center) 건물에서 특별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전 9시 30분에 시작된 기자회견에는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 김태일 민주노총 사무총장, 이흥세 한국농업경영인 대표, 박혜정 재미위원회 의원, 오종렬 한미FTA 반대투쟁단장, 강내희 교수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미국언론인들에게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문제점을 분야별로 조목조목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는 ▲한국 노동자의 생존권 ▲농업 및 식량주권 ▲문화적 다양성 ▲세계평화에 한미무역협정이 미칠 영향이 구체적으로 논의되었다.

"한국 민중 뿐 아니라 미국 민중에게도 해악"

먼저 기자회견문에서 이들은 "이미 실패한 나프타(NAFTA) 모델에 기반한 한미자유무역 협정은 한국 민중 뿐 아니라 미국 민중들에게도 해악"이라며 협정이 미칠 영향을 원점에서 엄밀히 재평가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이들은 "현 한미무역협정이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비밀협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소수기업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 국민들의 근로환경·건강·공공서비스·환경·공정한 경제발전을 희생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양국 정부에 대해 "협상을 즉각 중단하고 국민 여론수렴 과정을 통해 처음부터 다시 투명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뒤를 이어 강기갑 의원은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세계화가 빈부간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은 환경·교육·의료·문화 등 경제 이외의 분야에까지 공세를 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태일 사무총장은 외환위기 이후 한국 노동자들은 직업을 잃거나 비정규직으로 전락했으며, 한미 FTA는 기업주의 이익만을 위해 '고용유연화'를 강요함으로써 외환위기보다 근로환경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흥세 대표는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한국 농가당 빚이 3000만원으로 늘어난 상태에서 FTA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강내희 교수는 FTA로 강요된 스크린쿼터 축소가 문화적 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끝으로 박혜정 재미위원회 의원은 이라크 파병부터 한미무역협정에 이르는 한국정부의 반인류적이고 무비판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도높게 비난했다.

"경제 뿐 아니라 환경·교육·의료·문화도 희생"

회견장을 채운 미국언론의 기자들은 기자회견을 경청한 후 사안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다.

한 기자는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상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미국정부의 입장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겠느냐고 물었다. 다른 기자는 FTA 이후 정부의 농업 보조금 문제에 대해서 묻기도 했다. "이번 미국시위가 과거 홍콩 시위와 유사한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은 없느냐"는 질문과 더불어 "한미무역협정을 저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목표냐"고 묻는 질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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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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