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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신문
칠레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으로 주목받고 있는 여성은 두말할 나위 없이 미첼 바첼레트(55)이다. 3월 11일 대통령에 취임한 그는 국내외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전직 소아과·공공보건 전문의였고, 5개 국어에 능통한 그는 2000년에 보건장관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민간인 여성으로서 국방장관을 역임했다. 그의 국방장관 취임은 군사 잔재 청산과 민·군 관계 개선이 최대 정치적 쟁점이던 시기에 국민 화합의 상징적인 인물로 떠올랐다. 스스로 성격이 매우 강하고 완고한 편이라고 평가하는 그는 카리스마가 넘치고 서민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첼레트의 정치적 입문은 그의 유·청년기를 통해 나타난 리더로서의 자질과 가족사를 통해 이미 예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선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합창단, 발리볼, 연극반 등 다양한 특별활동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교내 뮤지컬그룹을 이끌기도 했으며, 학생회장으로서도 상당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70년 칠레대학교 의학부에 입학한 뒤 사회학과 경제학에도 상당한 열의를 보였다. 73년 이전까지 인민연합정부 시기에 학생회장을 지냈으며, 사회주의 청년단에 입단하여 활동한 바 있다.

공군 소장 출신인 그의 부친은 아옌데 정권기의 정부 요직을 맡고 있다 군사쿠데타 이후 '국가반역죄'로 지목되어 체포되었다. 고문으로 아버지가 사망한 뒤 그는 학생 신분으로 사회당 유지와 관련한 활동을 지속했으며, 정치적 수배자들을 돕는 활동을 했다. 이로 인해 3개월간 국가 정보국에 체포되었다가 국외로 추방당해 호주와 독일 등을 전전했다.

79년 독일에서 귀국한 뒤 칠레대학교에서 의학 공부를 다시 시작해 82년에 외과전문의가 되어 공공보건의를 신청했으나 '정치적인 이유'로 거부 당했다. 바첼레트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다양한 정치활동에 참여했다. 당시 그의 정치활동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 비상사태에 의한 피해아동 보호단(PIDEE)' 활동이었다.

바첼레트는 90년대 중반부터 칠레 민주주의가 자리잡는 과정에서 민·군 관계의 완전한 정상화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제도, 정치, 문화가 안보정책들과 어떠한 상호관계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했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국립정치·전략연구아카데미에서 군사전략 과정을 수료했다. 97년에는 대통령장학생으로 뽑혀 미국 워싱턴의 미주안보학교(Colegio Interamericano de Defensa)에서 1년간 수학했다. 이러한 경력은 그를 최초의 민간인 여성 국방장관으로 만들었다.

일부 언론들은 그의 정치적 삶이 '극좌'에 가깝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은 '민주주의자'이며 '민주주의'에서는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고 그러한 점이 '극좌'와의 차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70년대에는 '사회주의자'였지만 현재는 '사회민주주의'에 가깝다고 말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대표성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 더 포괄적이 되어야 한다. 사회적 통합성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모든 부문을 통합하는 것 외에는 왕도가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는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에 따른 시장의 강화는 시민들에게 매우 가혹한 것이라고 전제하고 이를 완화하기 위해 정부의 사회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바첼레트의 여성정책은 'Plan M as mujeres para Chile'(칠레를 위한 더 많은 여성계획)로 압축된다. 이 계획은 ▲교육의 질 향상을 통해 여성을 위한 더 많은, 더 나은 일자리 창출 ▲여성의 평균수명을 고려한 연금 및 사회보장제도 개선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가족 ▲여성에 대한 폭력근절 ▲교육, 노동,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여성차별철폐 ▲여성건강 증진 및 섹슈얼리티 등을 세부내용으로 하고 있다.

칠레의 여성 가장은 전체 가구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바첼레트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이는 그가 다양한 가족형태에 따른 정부의 다양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직접적인 배경이 되고 있다. 칠레 의회는 2004년 1월에야 이혼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낙태 및 피임에 대해서도 매우 보수적이다. 바첼레트는 이에 대해 정부는 가톨릭 교회의 의견 표명과 상관없이 국민에게 실질적으로 가능한, 국민 개개인의 신념과 의지에 따라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대안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바첼레트는 낙태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모성 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대신 사후 피임약을 사용하는 것은 '낙태'가 아니기 때문에 찬성하고 있다. 섹슈얼리티와 관련해 책임 있는 정책과 교육 및 보육정책에 있어 취학 전 아동에 대한 100% 무상교육 실시와 교육의 질 향상을 공략으로 내세웠다.

덧붙이는 글 | [이순주/ 부산외대 이베로아메리카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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