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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하는책
역사의 주인공을 보면서 '그때, 만일 그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안타깝게 물어 볼 때가 있다. 인간적이고 치열한 삶을 살다가, 미처 그 뜻을 다 펼쳐보이지도 못하고 아쉽게 꺾이고 말았다면 그 안타까움은 더욱 크고 깊다. 요즘 자꾸 나를 붙들고 있는 한 사람을 둘러 싼 무수한 물음이 있다. 홍경래와 홍경래를 둘러 싼 역사적인 사실들이 그렇다.

'만일, 홍경래의 난이 성공했다면 지금 우리들은 어떤 역사를 기록하고 있을까?'

이 물음에 답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200여 년 전 당시에 여러 갈래의 큰 영향을 끼쳤으면서도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역사의 뒷전에서 묵묵히 잊혀지고 있는 홍경래를 소설로 만나게 해준 작가의 의중을 알아보면 조금은 도움이 될까?

왜 하필 홍경래인지, 홍경래를 소재로 책을 펴낸 작가에게 물어 보았다.

"홍경래는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반역자의 우두머리라는 얘기 그 이상으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홍경래의 난이 일어난 시기는 사회적으로는 에너지가 충만한 상태였는데도 기득권층은 그 에너지를 옛 악습으로 억누르려고만 했습니다. 특히 평안도 지방은 많은 부(富)에 비해 지역차별로 인해 관직에 오르지 못한 지식인들의 불만이 쌓여 있었습니다. 홍경래는 이런 사람들의 중심에 서 있었고 일종의 기폭제 구실을 하게 된 것인데요. 성공하지 못함으로서 조선왕조가 몰락하는 계기를 가져오게 됐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결국 일제치하라는 굴욕을 당하게 된 맥락을 따라가 보면 홍경래의 난이 그 시작인데도 일반적으로는 무시당하고 있더군요. 그렇기에 홍경래의 이야기를 택하게 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됐던 <홍경래의 난>을 책으로

<홍경래의 난>은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시민기자 최항기의 역사소설로, 10년을 준비 끝에 봉기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 지금과 크게 닮은 당시의 정치·사회적 문제점 등이 읽는 내내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하였다.

'내가 200여 년 전 그때 핍박받는 하층민으로 태어났다면 나는 어떻게 하였을까?' '내가 홍경래였다면?'… 나아가 <홍경래 난>을 통하여, 당시의 지배층의 부패에서 오는 사회계층간의 갈등과 시국적인 고민이 지금 우리들의 절실한 문제들과 다르지 않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홍경래와, 홍경래로 대표되는 많은 사람들의 고민을 좀더 진지하게 들여다볼까?

소설을 통하여 만난 홍경래는 정치적인 야욕이 큰 인물은 결코 아니다. 나처럼, 이 시대 많은 사람들처럼 그저 평범한 사람일뿐. 홍경래의 바람도, 봉기에 참여한 대다수의 바람도 누구나 평등한 처우를 받는 것과 땀 흘린 대가를 인정받는 것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지배세력의 패권싸움은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무관하다. 백성을 위한 정치요, 백성을 위하여 존재하는 왕과 벼슬아치지만, 그들의 싸움은 배부른 밥그릇 싸움이기 예사요, 자신들만의 안위가 먼저지 민초들의 허덕이고 주린 배는 알바 아니었다. 자신들의 싸움이 잦을수록 상대적으로 극심해지는 백성들의 황폐함을 헤아린다면 그럴 수는 없을 터. '백성들을 위하여!'는 음흉한 속셈을 위장한 위정자의 허울이기 예사였다.

세도정치, 매관매직, 지배층의 세력다툼, 부를 거머쥔 사람들의 하층민에 대한 횡포… 지배층의 부패는 더욱 심해지고 가뜩이나 핍박받던 민중의 삶은 송두리째 뽑힐 지경에 이른다. 게다가 홍경래는 중앙 지배세력들에게 이유 없이 멸시받고 배척당하는 서북출신이었다. 당시 서북 사람들은 뜻이 높고 능력이 있어도 결코 관직에 나가지 못했다. 이런 사회에서 뜻이 좌절당하고 삶이 핍박받는 사람들이 비일비재했다.

핍박받는 하층민 대다수와 뜻이 꺾인 선비들이 마음속에 뜻을 두었다. '세상을 뒤집어야 해. 사람답게 살아야 해. 많은 것을 얻길 바라지 않아. 특별한 것도 바라지 않아. 그저 모두가 똑같은 대우를 받으면 그걸로 족해….' 이렇게 시작된 봉기였다.

'홍경래의 난'이 성공했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역사를?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홍경래로서는 두 번의 큰 패배가 못내 아쉬웠으나 그조차도 봉기가 실패한 대답으로서는 뭔가 부족했다. 10여년을 준비해 오면서도 뭔가 자신이 깨닫지 못한 부족한 면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민심은 천심이라 하지 않았나! 난 민심을 따랐는데 왜 하늘은 나를 저버리려는 것인가?' 홍경래는 그간 자기가 걸어 왔던 길을 죽 돌이켜 보았다. '난 혹시 진짜 민심을 몰랐던 것이 아닐까? 지금의 실패는 하늘이 이를 깨우쳐 주려는 것이 아닐까?' - 책 속에서

봉기 초기에는 승산이 있었지만 주저앉게 된 정주성에서 홍경래는 끊임없이 고민한다. 심지어 임종직전의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하고, 봉기를 함께한 사람들 중에서도 관군에게 항복하기를 권유한다. 한편, 정주성을 둘러 싼 수많은 관리들은 이들이 봉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생각할 가치도 없이 어떻게든 눈에 띄는 공을 세워 출세하기 위해 앞 다툴 뿐이다. 작가는, 봉기의 실패로 좌절하고 있는 정주성에 독자들을 오래 머물게 하면서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못하게 한다.

지금의 우리들처럼 지극히 평범하게 태어나 평범한 꿈을 꾸지만 그것마저 꺾여 버린 홍경래와 대다수 봉기군의 꺾여버린 꿈에서 200년이나 훌쩍 지난 우리시대 대다수 우리들의 아픔을 보는 것은 무리일까?

작가는 역사적인 사실은 최대한 배제,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 위한 최소한의 역사만 들려줄 뿐이다. 비록 묻혀지고 있지만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홍경래의 난'을 둘러싼 질문들이 다양한 편이며 지금 우리 사회와 당시는 놀랍도록 비슷하다는 점에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이 필요하다. '홍경래의 난'에 대해 잘 몰랐는데 이 책 덕분에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인 문제들을 아울러 알게 됐다. 이것이 역사소설의 또 다른 매력 아닐까?

'만일 그때 홍경래의 난이 성공하였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역사를 살아가고 있을까? 작가의 말대로 일제치하의 굴욕을 따라가 보면 홍경래의 꿈이 꺾인 채 멈춰 있을까? 상인 임상옥과 홍경래의 교차하는 인연의 진실은? 10년이란 오랜 세월의 준비 끝에 일어난 봉기였는데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홍경래의 난이 성공하였기를 200년이 훌쩍 지나 부질없이 바라본다. 어리석은 줄 알면서….

물 흐르는 듯 잔잔하게 읽었는데 책을 덮고 보니 그 파도가 거칠고 크다.

"역사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인물 골랐다"
[미니인터뷰] <홍경래의 난> 펴낸 최항기

ⓒ오마이뉴스 심은식
저자 최항기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2003년 '고주몽'을 시작, <오마이뉴스>에 꾸준히 역사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그간 저자가 연재해 온 것으로는 '소설 고주몽' '홍경래난' '산대놀이'가 있으며 최근 '사금파리 부여잡고'를 연재, 2006년 1월 마감하였다. 이중 '소설 고주몽(함께 읽는 책)'이 앞서 책으로 나왔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역사가 좋아 역사소설을 쓰며 역사적 사실과 흥미중에서 역사적인 사건에 우선하여 역사소설을 쓴다고.

"홍경래나 고주몽을 주인공으로 선택한 이유는 이야기 거리가 많은 주제인데도 도외시 당한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소설에서 다룰 만큼 다룬 인물이라면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지 않는 한 주인공으로 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자료를 모아나갔고 이야기 거리가 될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책은 '홍경래의 난'이라는 홍경래의 행적을 즐기면서 썼습니다. 제가 쓴 <홍경래의 난>에서 홍경래는 결코 영웅이 아닙니다. 그 점을 염두에 두시고 <홍경래의 난>을 만나주셨으면 합니다."

당시의 사회적 배경 중에, 변방이라는 것과 성리학적 배경으로 중앙지배층으로부터 멸시당하고 배척받던 서북지방이었다. 이것은 '홍경래의 난'이라는 봉기의 이유중 하나가 되기도 하고 '평안도 출신의 민란 지도자 홍경래'. '홍경래난의 배경 서북지방'이 된다. 그렇다면 북한에게 남다를 법한데?

"북한에도 리유근이라는 분이 쓴 '홍경래'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전 이걸 구해서 예전에 읽어 보았는데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충실하려고 애를 쓴 기색이 너무 뚜렷합니다. 즉, 계급투쟁적 논리로서 홍경래를 바라보고 있더군요. 군데군데 맛깔 난 표현도 있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분노와 투쟁을 앞으로 내세우고 있었습니다. 이 책으로 판단하건데 북한에서는 홍경래를 인민해방의 선봉장이자 영웅쯤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제 책에서는 홍경래가 큰 싸움에 진후 뒤늦게야 백성을 위한 투쟁을 깨달아 가는 것으로 얘기되어지고 있지요." / 김현자

덧붙이는 글 | <홍경래의 난>은 함께 읽는 책에서 2006년 2월에 나왔으며 값은 9500이다.


홍경래의 난

최항기 지음, 함께읽는책(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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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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