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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이 오는 17일 사임을 앞두고 <오마이뉴스>에 청와대를 떠나는 심정을 담은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주>
▲ 지난해 봄 노무현 대통령과 산행에 나선 조기숙 수석.
ⓒ 청와대
며칠 전 수석보좌관들과 저녁식사를 하던 중 노무현 대통령이 갑작스런 질문을 했다. "조 수석, 내가 요즘 제일 해보고 싶은 게 뭔지 아세요?"

대통령의 답변은 뜻밖이었다. "야당." 나는 순간적으로 소리쳤다. "저두요. 비판 좀 한 번 해봤으면 좋겠어요." 대통령의 다음 발언은 더 뜻밖이었다. "아주 멋지게 한 번 밀어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야당의 발목잡기를 당하고서도 되갚아주고 싶은 마음보다는 멋지게 밀어주고 싶다는 대통령. 너무도 대통령다운 발상이라 사실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증오와 갈등의 정치를 마감하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대연정을 통해 권력을 나누어야 한다는 대통령에게는 충분히 가능한 상상이다.

최근 취임한 김용익 사회정책수석이 두번째 수석보좌관 회의를 마치며 질문한다. "여기에서는 이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며 토론하는 내용이 밖에만 나가면 왜 모든 것이 정략으로 탈바꿈되는 걸까요?" 결국 참여정부의 홍보가 실패한다는 말이다.

대학에서 오랫동안 여론을 연구하고 홍보를 가르쳤기에 참여정부의 홍보를 맡게 되면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과 이론의 간극은 생각보다 컸다. 홍보이론이 대부분 1980~90년대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우리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홍보이론은 기본적으로 민주정치체제를 가정한다.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의 장, 진실이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곳에서만 홍보이론이 통용된다.

비탈길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참여정부

참여정부 홍보에 가장 큰 장애물은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독재시대의 문화유산이다. 우리 사회는 국민이 엘리트보다 앞서나가 있다. 소위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문화지체 현상이 심각하다.

이런 수구 엘리트들이 의사소통 수단을 독점하고 이를 통해 의제를 주도한다. 모든 권력을 나눠준 분권형 대통령을 권모술수에 능한 독재자처럼 묘사하며 매일 터무니없는 의혹과 음모를 제기한다.

독재시대 권력을 누렸던 일부 야당인사들은 참여정부가 자신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통치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렇게 믿기 때문인지, 단순한 정치공세인지 궁금하다. 분명한 것은 적지 않은 국민이 그런 문화에 수십 년간 젖어있다 보니 그것이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참여정부는 비탈길 운동장에서 축구경기를 하고 있는 것과 같다. 참여정부의 골대를 언덕 위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최초로 민주개혁세력이 이룩한 단독정부였기에 기대가 높은 것이 한 이유다. 정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으니 무한검증을 해야 한다는 것이 다른 이유다.

게다가 정치권력 외의 다른 권력은 기득권이 쥐고 있으니 게임의 룰이 불리하기 짝이 없다. 심판이 우리 선수를 위해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참여정부는 아무리 힘껏 뛰어도 언덕 위의 골대에 공을 차넣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쩌다 골이 들어가는 듯 하다가 다시 튀어 나오기 일쑤다. 이런 상황에서는 열심히 축구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어진 틀을 깨뜨리는 노력이 더 절실하다.

대통령은 경기의 장을 평평하게 만들기 위해 불도저 하나 없이 삽으로 상처를 입으면서 비탈길을 평평하게 만들고 있다. 정권엔 동참하지 않겠다던 내가 인맥도 없이 맨손으로 동참하게 된 것도 힘든 대통령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공정한 경기장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없는 선수들이 있다. 자기 발 아래만 내려다보니 경기장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공을 차야 하는데 운동장 고르기나 하고 있는 홍보수석이 거추장스럽다. 여당 의원조차 홍보수석이 홍보는 안 하고 왜 언론과 싸움이나 하느냐고 묻는다.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는데 응원전만 열심히 펼친다고 경기에 이길 수 있습니까?"

우리 편이 오랫동안 골을 넣지 못하니 선수들도 지치고 관중들도 떠나간다. 화가 난 선수들은 감독을 원망하며 수시로 교체한다. 정치인은 관중의 인기를 먹고 산다는 점에서 운동선수와 별반 다르지 않다. 초조해진 나머지 자책골을 넣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어용 콤플렉스를 벗어라

1년 전 임명장을 받기에 앞서 대통령과 함께 오찬을 함께 했다. "홍보를 하지 않는 것도 좋은 홍보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몸을 던졌으니 열심히 하고 싶었다. 브리핑 횟수도 늘리고 기자들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었다. 몇번의 브리핑과 언론 인터뷰를 해본 다음에 대통령의 말뜻을 깨달았다. 어떤 발언도 꼬투리잡힐 수 있고 아무리 A라고 우겨도 B로 전달된다는 사실을. 청와대에 관한 대다수 문제기사와 칼럼은 춘추관 기자들이 쓰지 않는다는 것도 새로 배운 사실이다.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옳은 말을 옳게 하면 언론은 무관심하다. 옳은 말을 싸가지없게 해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청와대 홈페이지를 열심히 보는 사람은 우리가 얼마나 눈물겹게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유시민 의원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하자 여당 의원이 나서서 반대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반대하는 이유가 "옳은 말을 싸가지 없게 하기 때문"이란다. 그들에겐 '옳지도 않은 말을 싸가지 없이 하는' 야당 사람이나 수구 논객은 보이지 않는지. 야당과 수구언론의 부당한 공격으로부터 여당 의원 중 누가 자신의 몸을 던져 대통령을 옹호해주었나.

유시민 장관이 적지 않은 수의 유권자를 열광시키는 반면 대통령에 맞선 '신 40대기수론'은 왜 감동이 없을까. 독재시대에는 대통령에 맞선다는 사실만으로 스타가 되었다.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대통령에 맞서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구시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아직도 대통령에 맞서는 것이 용기인줄로 착각한다. 시대가 변했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는 사고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진정한 용기는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 맞서는 것이다. 정치인은 포퓰리즘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하고, 언론인은 사주나 광고주에 맞설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감동을 준다.

이런 변화를 인식하지 못한 일부 여당 의원이 홍보수석에게 용비어천가 좀 그만 부르란다.

"언론인, 학자, 시민단체 모두 '어용' 소리 들을까봐 대통령이나 정부 칭찬하면 큰 일 날 줄 아는데 홍보수석마저 대통령의 업적을 홍보하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홍보를 합니까. 누가 홍보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홍보의 핵심은 진실입니다."

많은 이들이 수구언론이 만들어 놓은 틀에 갇혀있는 것은 슬픈 일이다. 상상력이 빈곤한 탓이다. 그 틀을 깨지 않고는 진보도 없다.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모순된 구조는 단단해서 여럿이 힘을 합쳐 깨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4전5기 끝에 이루어진 대통령의 민생탐방

지난 대선 당시 박재동 화백이 그린 TV 만화 광고가 생각난다. 노무현 후보가 수레를 밀며 언덕길을 힘들게 올라간다. 국민들이 하나둘 모여 뒤에서 수레를 밀어주니 쉽게 언덕에 오른다.

참여정부는 이렇게 탄생했다. 공동체의 이익을 일신의 영달보다 먼저 생각하는 민초들이 자발적으로 돼지저금통을 모았고 노무현후보를 당선시켰다. 이 때문에 참여정부에 대한 기대는 하늘을 찌른다.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해 놓은 일도 정말 많다.

그런데 사방을 둘러보아도 불평 뿐이다. 참여정부가 무엇을 잘못했느냐고 물어보면 정확한 답도 없다. 단지 인상적이고 감정적인 불만들이다. 불평만 늘어놓는 그들에게 다시 되묻는다. "대통령만 덜렁 뽑아 놓고 당신은 무엇을 했습니까?"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었다. 주인이 된 국민이 권력을 행사해야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운동의 열정이 사라진 이 땅엔 이기주의만 남았다. 시민단체는 자신의 선명성을 증명하기 위해, 의원은 자신의 용기를 과시하기 위해, 학자와 언론은 어용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저마다 이유는 다르지만 모두 과도한 대통령비판에만 열을 올린다. 모두 비판만 하면 공동체의 이익은 누가 지킬 것인가.

일부 언론이 지속적으로 나쁜 이미지를 만들어내니 대통령에게도 이미지 전환을 위한 홍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건의가 네번째 묵살되었을 때 작정을 하고 다시 말씀드렸다. "국민이 행복하다면 하겠습니다."

나는 그 때까지도 대통령이 어떤 분인지 잘 모르고 있었던 것같다. 대통령은 이미지 제고를 위한 행사는 하지 않는다. 행사를 해야 하는 이유를 잘 못 설명했던 것이다.

"네. 잘 알겠습니다. 국민을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겠다는 말씀이시지요?"

4전5기 끝에 대통령의 세밑 민생탐방이 결정된 순간이었다.

▲ 조기숙 수석
언젠가 진실은 반드시 통한다

"진실만이 정답이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철학이다.

모든 사람을 일시적으로 적은 사람을 영원히 속이는 것은 가능해도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링컨의 말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진실이 통한다고 믿기에 후회나 아쉬움은 없다. 희망의 끈을 잡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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