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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등산 용추폭포가 만든 세상은 투명한 얼음으로 만든 동화의 세계였습니다.
ⓒ 서종규
폭포는 겨울에 얼음 구슬을 만듭니다. 수많은 얼음 구슬들이 몽글몽글 얼어 있습니다. 때로는 귀엽기도 하고, 때로는 매끌매끌, 조약돌처럼 손에 쥐어 보기도 하고, 구슬 한 개 쥐어뜯어 입안에 넣어 보기도 합니다. 물이 떨어진 자국마다 수많은 구슬들이 이루어 놓은 보석 알갱이들이 물그림자에 어른거리면서 투명한 동화의 세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폭포는 겨울에 거대한 고드름을 만듭니다. 고드름은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의 추억을 한아름 되새기게 합니다. 처마 밑 고드름을 따기 위하여 작대기까지 들고 휘두르다보면 어느새 등에 차가운 고드름이 떨어져 있어서 화들짝 놀라 나자빠지던 추억, 가장 긴 고드름을 따 들고 칼싸움에 열중이다가 퍼렇게 차가워진 손을 사타구니에 넣고 비비던 일….

▲ 물기둥이 그대로 고드름이 되었네요.
ⓒ 서종규
폭포는 어느 새 겨울을 이겨내고 봄소식을 전합니다. 때로는 물방울 한 방울도 볼 수 없이 덕지덕지 얼음 덩어리로 뒤덮여 있던 폭포에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사방에 퍼집니다. 지난 12월의 그 추웠던 날씨가 조금 풀리면서 얼어붙은 얼음이 녹고, 가는 물줄기가 떨어지면서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어 퍼집니다. 얼음 구슬 밑으로 흐르는 물줄기도 개울 아래로 흘러갑니다.

폭포에서 만난 얼음의 경이가 오늘 산행의 즐거움에 흠뻑 젖게 합니다. 겨울 산행은 주로 산 정상 상고대에 핀 눈꽃의 장관을 만나 감탄을 연발하거나, 구름이 나무에 얼어붙어 만드는 얼음꽃에 튀기는 햇살의 반짝임이 가슴 철렁이게 하는 아름다움을 찾아 떠나지요. 물론 순백으로 가득한 눈세계에 빠져드는 신비도 맛보구요.

▲ 투명한 세상을 꿈꾸는 생명수
ⓒ 서종규
그동안 따뜻했던 날씨였는데 내일이 소한이라고 추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지난 12월 내내 내렸던 눈은 아직도 그대로 인데, 차가워진 날씨로 눈이 얼어 밟아도 발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 네 명이 1월 4일(수) 오후 1시20분에 무등산 증심사 버스 종점에서 출발하였습니다.

항상 그러하듯이 무등산을 오르는 길이 여러 갈래여서 늘 새롭습니다. 봉화대를 거처 중머리재에 올랐습니다. 오르는 길엔 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습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길이어서 길바닥은 얼음 덩어리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추운 날씨 탓에 길은 그리 미끄러지지 않았습니다.

▲ 투명한 저 얼음의 세계
ⓒ 서종규
산엔 많은 나무들이 부러져 있었습니다. 지난 12월 3주 동안 내렸던 폭설로 나무들이 피해를 당한 것입니다. 특히 상록수인 소나무의 피해가 심했습니다. 활엽수들은 모두 나뭇잎이 없어서 눈이 많이 쌓이지 않았지만 소나무는 그 많은 폭설을 온몸으로 맞아내어 그 힘을 지탱하지 못하고 허리까지 부러져 있는 나무들이 많았습니다.

항상 등산을 하면서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라도 손상되어 있다면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 아쉬움이 가득했었는데, 사방 군데군데 소나무들이 부러진 상태로 있으니 아쉬운 마음이 쓰리고 아프기까지 하였습니다. 더구나 등산로로 쓰러진 소나무들은 어쩔 수 없이 그 위를 넘어 가거나 잎사귀를 밟고 지나가야만 했기에 더욱 안쓰러웠습니다.

▲ 얼음 구슬 밑으로 흐르는 물줄기의 속삭임
ⓒ 서종규
중머리재에서 용추계곡으로 내려갔습니다. 용추계곡 일대는 지난 96년부터 5년간 자연 휴식년에 들어간 뒤 최근에 해제되었습니다. 훼손되었던 계곡의 자연이 되살아나 무등산에서 생태계의 보고로 손꼽고 있는 곳이랍니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광주의 제2수원지가 나오는데, 무등산 세인봉의 능선의 바위들이 웅장함으로 다가옵니다.

용추계곡은 무등산 남쪽으로 흐르는 계곡으로 중머리재에서 장불재에 오르는 계곡의 '샘골'에서 물이 솟아나 흐르기 시작합니다. 이 계곡의 물은 치마바위를 거쳐 용추폭포의 절경을 이룹니다. 계속 아래 계곡마다 조그마한 웅덩이들이 이루어지고, 웅덩이에는 버들치가 헤엄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무등산엔 폭포가 많지 않은데 중머리재 아래 용추계곡에 있는 용추폭포입니다.
ⓒ 서종규
무등산에 폭포가 많지 않은데, 이 용추폭포는 높이 9.8m의 그리 높지 않은 폭포입니다. 1936년 일제가 용추계곡 아래 제2수원지를 만들면서 폭포수를 맞으러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상수원이 오염된다고 폭포 윗부분을 폭파하였답니다. 더구나 겨울철 물이 많지 않은 계절이어서 물이 그리 많지가 않았습니다. 폭포의 규모도 초라하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물이 풍부한 여름철엔 웅장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우리가 다가갔을 때 폭포는 아름다운 얼음의 동화나라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지나간 발자국도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절벽에는 커다란 고드름이 거대한 기둥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 어느 큰 대궐 지붕의 망새 같은 모습의 얼음이 얼어 있었고, 방울방울 튀는 물들이 매끌매끌 조약돌이 되어 흩어져 있었습니다.

▲ 폭포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만들어낸 장관
ⓒ 서종규
물줄기도 고드름처럼 군데군데 걸려 있었는데, 꿈 속 동화의 세계가 한 눈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얼음 속에는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얼음 밑으로 물살이 흐르면서 계속 어른거린 것입니다. 물이 튀는 곳엔 가느다란 고드름 줄기들이 어느 석회석 동굴의 환상처럼 펼쳐져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그 아름다운 세상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았습니다. 산을 오르는 즐거움을 다시 만끽하였습니다. 요즈음은 산에 오르면서 사진기를 잘 꺼내지 않습니다. 여러 번 산행기를 쓰다 보니 새로운 모습이 눈에 띄기 전까지는 카메라를 배낭 속에 그냥 넣어 두기 때문입니다.

▲ 아 우리들의 어린 시절엔 고드름이 너무 좋았는데
ⓒ 서종규
무등산의 절경을 벌써 여러 차례 표현하여 기사화했습니다. 그런데 무등산에 오를 때마다 다가오는 무등의 모습은 늘 새롭고 신선한 것입니다. 아마 우리나라의 모든 산에서 느낄 수 있는 기쁨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또 산을 찾곤 한 것이겠지요. 우리나라의 어떤 산이라도 늘 새롭고 아름다운 모습이 다가오곤 합니다.

무등산 용추폭포를 지나 화순방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화순 수만리라는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무등산 백마능선 아래 유명한 염소 목장과 식당이 있는 곳이랍니다. 옛날 같으면 차가 다니지 않은 오지이겠지만 요즈음은 도로가 나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의 명소가 된 곳입니다.

▲ 고드름이 만들어 낸 세상
ⓒ 서종규
염소 목장을 지나 오후 4시30분, 화순 만연산(668m) 올랐습니다. 줄기 줄기 끝없이 펼쳐진 무등산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보통 무등의 모습은 사방에서 바라보아도 모두 비슷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펼쳐진 무등의 능선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가지를 쳐 뻗어가는 모습이 웅장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또 야간 산행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화순읍까지 내려가는 길도 한 시간이 넘게 걸리기 때문입니다. 산에 오를 때마다 늘 가슴 가득히 담아 오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우리들은 화순읍의 불빛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 2006년엔 폭포가 만든 투명한 세상이 가득하길
ⓒ 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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