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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처럼 공주님 옷을 입은 안나는 할로윈 데이가 마냥 즐겁기만 합니다.
ⓒ 이효연
지난 금요일, 저와 딸아이는 할로윈 파티에 초대를 받아 가게 되었습니다. 토요일에 유치원에서 공식적으로 열리는 파티를 앞두고 몇몇 학부모들이 주관한 비공식적인 할로윈 축제였습니다.

사실 처음에 참여 여부를 물어왔을 때에는 좀 망설여져서 몇 날 며칠을 두고 고민을 무척이나 많이 했습니다. 난생 처음 할로윈데이 파티에 참석을 한다는 것이 적잖이 부담이 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마음에 걸렸던 것은 '명분'이었습니다.

지금껏 살면서 모든 일에 '명분'과 '논리'를 따져가며 똑부러지게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 있었을 때부터, 도대체 왜 '서양 귀신들의 잔치'에 옷까지 사 입고 기운 빼 가며 놀아야 하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가 도무지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상 초대받은 날 아침에 아이 아빠와 대화를 나누던 중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비록 우린 할로윈데이와 전혀 상관이 없는 한국사람이지만 우리가 나와 살고 있는 홍콩이란 곳은 서양문화가 한동안 지배적으로 우세했던 곳이다. 그리고 지금도 역시 그 영향을 받고 있으며 어차피 외국에 나와 사는 입장에서 색다른 문화 체험을 한 번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제 귀가 얇은 것인지, 아니면 홍콩이라는 장소가 사고를 말랑하게 해 준 덕분인지 '서양 귀신에 홀린 듯' 한국에서 가져온 드레스와 헤어밴드로 아이를 '변장'시키고 모임 장소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말도 일리가 있었구요. 아무튼 아이에게 재미있는 추억거리를 만들어준다는 차원에서 어떻게들 즐기고 노는지 나가 구경이나 해 보자는 생각이 들어 파티에 참석하기로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에게 입힌 옷이 할로윈 파티에는 전혀 걸맞지 않는 복장이란 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옷까지 사 입혀 데려갈 마음은 들지 않았기에 그냥 모르는 척 하고 있었습니다.

▲ 아이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과자를 받으러 가는 모습입니다.
ⓒ 이효연
시간이 되자 특색 있는 복장 차림의 아이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고, 아이들이 아파트 단지 안을 돌면서 'Trick or Treat'를 외치면 미리 순번을 정해 각자의 위치에 대기하고 있던 엄마들이 준비한 과자를 나눠주는 형식의 간단한 퍼레이드 겸 놀이가 시작되었습니다. 퍼레이드가 끝나면 맥도날드에 가서 햄버거로 저녁을 같이 먹는 순서가 준비되어 있었구요.

한 가지 깜짝 놀랐던 것은 의외로 아이들이 입은 할로윈 복장이 소박하고 단순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백화점이며 완구점에 구입한 할로윈 파티용 옷은 어쩌다 한두 명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대부분 간단한 가면을 만들어 쓰고 나왔거나, 아니면 평소 가지고 있던 옷 가운데서 좀 특별한 옷을 챙겨 입고 나왔던 것이었어요. 엄마들이 준비한 과자도 50달러(약 6500원) 한도 내에서만 사도록 하는 원칙이 있었구요.

▲ 아이들이 주문을 외치면 엄마들은 준비한 과자를 한 사람씩 나누어줍니다.
ⓒ 이효연
맥도날드에서 저녁으로 세트메뉴를 주문해서 먹은 것까지 합하면 이날 할로윈 파티를 즐기면서 사용한 액수는 1만원이 채 안 되는 돈이었습니다. 행사에 참여한 아이들 모두 더운 오후 볕에도 불구하고 뺨이 발그레 상기되어서 기쁜 표정으로 과자를 얻어 갖고, 햄버거를 먹으며 저녁시간을 즐겁게 보냈구요. 약간은 날선 마음으로 행사를 지켜보았던 것이 머쓱하고 무색할 정도로 그냥 싱겁고 조용하게 축제는 끝났습니다.

▲ 가방 가득 얻은 과자를 보고 너무나 뿌듯해하는 딸아이입니다.
ⓒ 이효연
집으로 돌아온 딸아이는 퍼레이드를 돌며 쇼핑백 가득히 수거해 온 과자, 사탕을 보면서 너무나 행복한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머리맡에까지 가져다 둡니다.

"엄마, 그런데 '치꼭티'(Trick or Treat)가 뭐야?"(아이가 아직 어려서 영어 발음이 몹시 서툽니다.)

오후 내내 외치고 다녔지만 아직은 그 의미를 모를 수밖에 없는 딸아이가 던진 질문입니다. 내일쯤 인터넷을 찾아 알기 쉽게 설명해주면 아이는 이제 할로윈이 무엇인지, 그 기원은 어떻게 되는지, 서양에서는 그날 어떤 식으로 축제를 즐기는지를 알게 되면서 새로운 지식을 하나 얻게 되겠지요.

아이를 재우고나서 가만 돌이켜보니, 오늘 있었던 할로윈 축제도 그저 다른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는 하나의 기회였을 뿐인데 참석의 명분을 찾으려 며칠씩 고민을 했었던 것이 허무하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요즘 쓰는 말로 '오버'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저녁에 퇴근한 남편이 "그래, 서양 귀신 파티는 어땠어?"라고 묻기에 생각보다 조촐해서 부담도 없었고 아이에게도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고 대답해주었습니다.

다행히도 이번에 참석했던 할로윈 파티는 아이에게 좋은 추억과 경험을 선사한 축제였습니다만, 앞으로 한국에 돌아갔을 때에는 어떤 할로윈데이가 우리 아이를 기다리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조금은 불안한 마음도 듭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영어유치원 등을 중심으로 외국문화 맛보기 학습의 일환으로 할로윈 축제를 많이들 준비한다고 하던데 국제화시대를 이끌어나갈 우리 아이들에게 다양한 문화체험의 기회를 주는 것은 참으로 필요하면서도 바람직한 일이겠지요. 그러나 간혹 보도되는 것처럼 그것이 얄팍한 상혼에 물들어 소비를 부추기는 데만 이용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비싸고 화려한 의상이나 고급 호텔의 파티가 주가 되어 버리는 할로윈데이. 의미 있는 문화체험의 기회로 자리잡지 못하고 상혼에 휩쓸려 표류하다가는 발렌타인데이에서 나아가 화이트데이, 블랙데이까지 등장한 것처럼 서양귀신에 이어 동양귀신, 전세계 온갖 잡귀신이 나오는 축제가 줄줄이 등장할까 겁난다는 남편의 우스갯소리가 자꾸만 귓전에서 맴돕니다.

덧붙이는 글 | '멋대로 요리' 이효연의 홍콩 이야기 http://blog.empas.com/happymc

 올해가 지나면 작아져 못 입을 드레스를 입은 안나는 그날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치꼭티'(Trick or Treat, . '먹을 것을 주시겠어요, 아니면 좀 당하시겠어요?'라는 뜻이라네요)란 주문을 외우면 과자며 사탕이 줄줄이 쏟아지는 멋진 경험을 했으니까요. 얼마나 크면 'Trick or Treat!'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또박또박 설명할 수 있을 지 자못 궁금해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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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방송에 홀릭했던 공중파 아나운서. 지금은 클래식 콘서트가 있는 와인 바 주인. 작은 실내악 콘서트, 와인 클래스, 소셜 다이닝 등 일 만드는 재미로 살고 있어요. 직접 만든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고 피아노와 베이스 듀오 연주를 하며 고객과 공감과 소통의 시간을 가질 때의 행복이 정말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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