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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춘식씨가 사고 장소를 찾아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경찰의 잘못된 교통사고 조사로 벌금과 면허정지를 받았던 택시기사가 나홀로 소송 끝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기사는 경찰의 잘못으로 인해 피해가 컸다며 손해배상과 함께 사고 장소의 도로 차선 색깔을 바꾸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10년 넘게 개인택시를 몰았던 김춘식(50)씨는 2003년 11월 24일 경남 마산시 합성동 철길시장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던 70대 노인과 접촉해 전치 6주의 부상을 입히는 사고를 냈다. 김씨는 철길 직전 모퉁이에서 손님을 내려 준 뒤 유턴하다가 자전거를 타고 철길시장 골목을 나와 역주행하던 70대와 부딪친 것이다.

▲ 김춘식씨는 사고가 발생할 당시 중앙선은 '황색점선'이 아닌 '흰색점선'이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사고 뒤 2003년 12월 21일 촬영한 사진 속에 보면 흰색점선으로 보이고(왼쪽), 김씨가 경찰서 항의 뒤 나흘만에 도색했을 때는 황색점선으로 선명하게 보인다(오른쪽).
ⓒ 김춘식
사고 지점은 철길 바로 앞으로 약간 모퉁이다. 도로 중앙에는 황색점선이 그어져 있었지만, 사고가 났을 당시에는 황색이라기보다 흰색에 가까웠다. 이는 사고 뒤인 2003년 12월 21일 김씨가 촬영한 사진 속에서도 나타나 있다(사진 참조).

해당 경찰서는 사고의 원인을 중앙선 침범이라고 봤으며 검찰 조사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약식명령서를 보면 "피의자는 황색점선의 중앙선이 설치된 도로에서 회전을 하다 반대편 진행 자전거를 받아 일어난 사고"라고 되어 있다. 이로 인해 김씨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으로 벌금(200만원)과 면허정지(45일) 처분을 받았다.

경찰 조사에서 '안전운전불이행' 정도로 생각했던 김씨는 '중앙선 침범'이라는 조사 내용에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이에 경남지방경찰청에서 재조사까지 벌였지만 마찬가지였다. 이에 김씨는 택시영업도 그만두고 혼자 관련 자료를 찾아 법적 대응에 나섰던 것.

경찰은 사고 직후 70대 노인의 아들에게 진술서를 받았는데, 여기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이 진술서에는 '자전거가 역주행했다'는 내용이 없었던 것. 경찰에서 추송서가 검찰로 넘어간 뒤, 그리고 사고 발생 45일만에 노인이 직접 쓴 진술서가 나왔다. 노인은 철길시장 골목을 나와 오른쪽 도로로 가지 않고, 반대편 도로에서 역주행하다 사고가 났다고 진술 한 것.

김씨는 사고가 났을 당시 도로는 '황색점선'이 아니었다는 주장을 폈다. 관련 기관에서는 황색점선을 그어놓았지만 색깔이 변해 흰색이나 마찬가지였다. 김씨는 2004년 3월 3일 해당 경찰서 시설 담당자를 찾아가 황색점선이 아니었다는 주장을 폈고, 나흘 뒤 해당 도로는 황색으로 다시 도색되기도 했다.

김씨는 당시 사고가 경찰의 업무태만 때문이라는 주장을 폈다. 그는 "2000년 경찰청 업무편람을 보면, 3거리 교차로이거나 편도 1차로일 때는 노선을 없애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면서 "사고 지점은 이 기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데, 경찰에서 제때 고치지 않고 방치해 두어 사고가 났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 김춘식씨가 2003년 11월 24일 자전거를 타고 역주행하던 70대 노인과 접촉사고가 났던 경남 마산시 합성동 철길시장 앞 도로. 사진 속 붉은 색 원안이 사고장소.
ⓒ 오마이뉴스 윤성효

정식재판 신청해 항소심 통해 '무죄' 받아

사건 경과(2003년~2005년)

- 2003년11월24일 : 철길시장 앞 노상 사고 발생
- 2004년 1월 6일 : 재조사
- 2004년 2월17일 : 추송서(교통사고특례법 위반)
- 2004년 3월 2일 : 검찰 지시로 피해자 직접 진술 받음
- 2004년 3월12일 : 약식명령(벌금2백만, 면허정지45일)
- 2004년11월12일 : 1심 선고(벌금 20만원)
- 2005년 1월26일 : 2심 선고(원심판결 파기)
- 2005년 9월29일 : 경찰 교통안전규제심의위원회 개최
김씨는 정식재판을 요구했다. 그리고 창원지법 1심 재판부는 벌금 2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도 받아들일 수 없어 항소했으며 올해 1월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판결을 파기한다'고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고 장소에 설치된 황색점선의 중앙선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이를 알아보기 어려웠고, 피고인이 유턴할 당시 피해자가 자전거를 타고 역주행하여 진행하다가 사고가 난 것이므로 이를 중앙선 침범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김씨는 법원 판결로 억울함이 풀렸지만 이것도 부족했다. 택시영업도 그만두고 잘못된 교통사고조사를 바로 잡기 위해 '나홀로 소송'에 매달렸던 것이다. 이에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으며, 사고 장소의 황색점선을 개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씨는 "그동안 생활비도 빚을 내서 썼고 심지어 큰 애가 영양결핍으로 눈이 나빠지기도 했다"며 "수입이 없어 가정파탄 지경까지 가다보니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김씨는 사고장소인 마산 합성동 철길시장 앞 도로 중앙선은 '황색점선'이 아닌 '흰색점선'이거나 중앙선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는 "지난 9월 29일 교통안전규제심의위원회가 열렸는데 그대로 황색점선을 두기로 결정했다고 한다"면서 "잘못된 도로시설물은 빨리 바로잡아주는 게 사고를 줄이고 억울한 시민을 만들어 내지 않는 길"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그동안 청문감사실과 이의신청반, 경남경찰청대화방, 경찰청장대화방의 감사 등을 거쳤지만 모두 형식적이었다"며 "어느 한 단계에서라도 진정한 조사를 했더라면 긴 법정소송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항소심 판결 이후 해당 경찰서를 찾아가 사과와 함께 손해배상을 요구했지만 들어주지 않고 있다"면서 "일단 사고가 났기에 형사합의금이 필요했고, 재판을 진행하면서도 비용이 들어갔으며 무엇보다 택시운전도 못했기에 실질적으로 들어간 돈만 따져도 많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조만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기로 하고 소장 작성을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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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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