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런데, 이 양산 같이 생긴 노란 꽃이 뭐지?"
" 마타리꽃."

소녀는 마타리꽃을 양산 받듯이 해 보인다.
-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에서


광대울 넘어가는 고갯길에서 처음 보았다. 생긴 것은 어린 시절, 인왕산 자락에 붙어 살 때, 바위 틈에서 피어나는 뱀도랒과 비슷하니 생겼고, 키는 껑충하니 크면서 꽃을 피우기 전에는 그 게 거기 있었는지도 모를 만큼 평범하기 그지없다.

▲ 광대울의 마타리꽃
ⓒ 이형덕
도감을 뒤져 보니, 마타리꽃이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대번에 가슴이 울렁거린다. 여드름이 돋아날 무렵, 배운 황순원님의 ‘소나기’에 나오는 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국어시간에 배운 구개음화며, 자음접변은 다 잊어 버려도, ‘소나기’라는 단편소설의 감동은 기억할 것이다.

▲ 마타리꽃
ⓒ 이형덕
너무나 반가워, 한 포기 마당에 옮겨 심어보려 캐본다. 그런데 그걸 들고 오는데 어디선가 고약한 냄새가 풍긴다. 어디 똥이라도 묻었나 싶어 손이며 발이며 살펴 본다. 없다. 냄새를 따라가 보니 마타리꽃 뿌리에서 나는 냄새였다.

생김새와 달리 마타리꽃의 뿌리에서는 된장 썩는 냄새가 나서, ‘패장’이라는 고약한 별호까지 붙어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아마 황순원 선생도 이 냄새를 맡지는 못한 듯하다. 이슬처럼 고운 소년과 소녀의 사랑에 이런 고약한 냄새나는 꽃을 끄집어 낸 것을 보면…. 키가 껑충하니 큰 꽃들이 대개 그러하듯, 마타리꽃도 떼를 지어 피어난다. 뒤늦은 늦장마의 비바람에 서로 기대며 살아남기 위한 지혜인 듯하다.

▲ 가까이서 본 마타리꽃
ⓒ 이형덕
올 가을도 광대울 고갯길에는 노란 마타리꽃이 떼를 지어 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캐내는 짓은 두 번 다시 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그대로 놓여 있을 때, 몇 발자국 떨어져 바라볼 때, 그것은 아름답다. 사람도 이와 같아 몇 발자국 떨어져 서로를 바라볼 때, 아름다운 그리움을 느끼나 본다.

사랑은 그렇게 그리움을 견디는 것,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적당한 비밀을 남겨 두는 것. 낱낱이 캐어 내어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생각지도 않은 고약한 냄새에 멀어지게 된다는 것을 일러 주기 위해, 황순원님은 이 마타리 꽃을 소나기처럼 짧고도 슬픈 사랑의 이야기에 등장시킨 것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형덕(이시백)기자는 남양주 물골에 살며, 보고 겪은 이야기를 모아 '시골은 즐겁다'(향연) 산문집을 펴냈습니다.
이 기사는 '남양주뉴스'에도 실립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