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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향이 서울이다. 그래서 누가 혹여라도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마치 심지 빠진 뭐 모양으로 허전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어떤 분이 예의 고향에 대한 질문에 '꼭 내가 태어난 곳만이 고향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의 고향, 그러니까 선조님들이 계신 곳이 너의 진정한 고향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 조상님들이 대대로 나고 자란 곳이 바로 내 고향이 아니고 어디이겠는가. 단지 어디에서 태어만 났다고 해서 그게 다 나의 고향은 아닐 터이다. 그럼, 내 마음의 고향으로 자리 잡은 곳도 바로 내 고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내 마음의 고향 괴산 읍에는유~. 몇 십년을 두고 정말 변한 것이 거의 없는 곳이다. 굳이 변한 것이 있다면 터미널이 있는 큰 길이 좀더 넓게 뒤로 물러났다는 것을 빼고는. 그런 내 마음의 고향 괴산읍을 소개하고자 한다.

▲ 괴산 읍 전경
ⓒ 염종호

넓어진 중앙로 앞 터미널 옆에는 차부 식당이라는 올갱이국집이 여직 있다. 여기서는 터미널이라고 하지 않는다. 차를 부리는 곳이라 그렇게 불렀는지 터미널을 차부라고 부른다. 그래서 식당 이름도 올갱이집이라는 간판은 놔두고 차부 식당이라 부른다. 70년대 초에 생겨나 여직까지 하나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그래서 늘 같은 맛으로 터미널에서 구수한 올갱이 국밥으로 허기를 채우는 그 맛이란.

▲ 터미널과 문 하나를 사이에 둔 올갱이 국밥 집인 차부 식당
ⓒ 염종호

그리고 어슬렁거리며 읍사무소 쪽으로 발길을 돌리다 보면 지나는 길에 술 익는 양조장이 또 나를 부여잡는다. 이곳 역시 일전에 한 번 소개했지만 창업 한 세기가 가까워 온다. 그러니 여기서 나고 자란 어린아이들이 한 번쯤이라도 막걸리 심부름을 하지 않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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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딱 가서 막걸리 한 되 받아 오니라~"

▲ 사시사철 술 익는 내음이 동하는 괴산 막걸리 발효 모습
ⓒ 염종호

조금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읍 사무소를 앞에 두고 괴산 도서관을 품은 커다란 느티나무와 조우한다. 그 느티나무는 수령이 780년이나 된다. 그러니까 내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이곳에서 맴을 돌며 양반놀이를 하거나 자치기라도 하며 자란 곳이다. 그렇게 읍내에는 유서 깊은 명소가 아직도 남아 있다.

▲ 괴산 도서관 앞 느티나무는 여전히 할머니의 품같이 포근하다.
ⓒ 염종호

그뿐인가 그 뒷길을 돌아 목재소 쪽으로 가다 보면 대폿집이 나온다. 대폿집, 도심에서는 찾아볼 수도 없는 6-70년대나 있었던 그 대폿집이 여직 여기에는 있다. 그곳에는 시간 많은 어르신들께서 소주나 막걸리 한잔에 안주로는 무우 쪼가리나 삶은 계란으로 입맛을 적시는 그런 곳이다. 칠순을 훨씬 넘으신 주인 할머님 하시는 말씀 왈, "내가 이 나이에 돈보고 장사 하남유~ 사람 기경하려고 하지유~"하는 그런 정겨운 대폿집이다.

▲ 어르신들의 쉼터인 대폿집
ⓒ 염종호

그 길을 다시 돌아 나오면 괴산 오일장이 서는 곳이요, 또한 그 안에는 포목점을 하는 상점들이 있다. 대를 이어 가업을 물려 받기가 그리 쉬운가. 그러나 이곳에서는 흔하다. 세 곳이나 한 곳에서 이 대에 걸쳐 포목점을 열고 있으니.

그래서일까 이곳 괴산은 충효의 땅이다. 굳이 진주대첩의 명장 김시민 장군을 모신 충민사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곳 괴산읍에는 효자각이 4개나 된다. 괴산군 전체를 보면 무려 26개나 된다. 읍내는 물론이고 군내 곳곳에 효자각들이 있으니 예서 나고 자란 이들이 무엇을 배웠는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 효자 박상진의 정려각
ⓒ 염종호

또한 괴 강을 끼고 올라 앉아 있는 애한정은 또 어떠한가. 여기서 국민학교를 다닌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친구들 손잡고 선생님 따라 마실 가듯이 애한정에 올랐을 것이다. 굽이치는 괴 강을 보기도 하고, 읍내를 관망하며 선생님께 애한정을 지은 박지겸의 얘기를 듣는 것 또한 정감이 넘쳐 나지 않았겠는가.

▲ 유학자 박지겸이 지은 애한정
ⓒ 염종호

그런 아이들이 자라 중학교에 가면 석조 건물인 돌 집에서 수업을 받았다. 6.25가 끝나고 급하게 지은 건물이라 하지만 돌 집에서 공부를 했다는 추억은 이곳에서 졸업한 사람들이 고향에 대하여 묻는 첫번째 질문으로 그 돌로 된 교실이 아직 남아 있냐는 것이었으니 그들에게 얼마나 깊은 기억으로 각인되었으면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이 또한 이곳의 명소가 아닐까.

▲ 괴산 중학교의 명물인 석조 건물
ⓒ 염종호

마지막으로 읍내에서 조금을 더 나아가면 고산정과 제월대가 있다. 그곳에는 벽초 홍명희의 괴산에 대한 애절한 시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벽초의 고향도 이곳 괴산이기에.

▲ 벽초 홍명희 문학비
ⓒ 염종호

벽초 생각

괴 강에 뜬 별을 잊었을까
제월리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 주고 간
끝이 안보이던 땅쯤이야 잊었겠지만
느티나무 근처에 모여 살던 사람들이야 잊었을까
제월대에 앉아 쉬다 강물로 내려가
물소리와 함께 가던 밤바람이야 잊었을까
아아, 저 밤 강물에 몸을 씻던 별들이야 차마 잊었을까.


고향의 명소란, 유명한 관광명소도 있겠지만 내가 자라면서 보고 느끼고 깨치게 했던 여직 그렇게 손 때가 묻어 있는 한 그루의 나무나 다 낡아 창문이 숭숭 뚫린 빛 바랜 양조장 건물 같은 오래된 가옥과 비각들, 어눌하지만 인정 많은 장터 곳곳이 다 진정 우리 마음의 명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덧붙이는 글 | 내 아버지의 고향은 국보 제6호인 중원탑평리7층석탑이 있는 충주시 가금면이다. 괴산하고는 불과 한 시간 내에 거리를 두고 있어 그래서 더 더욱 정이 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글과 사진은 올 3월부터 7월까지 오르락내리락하며 직접 찍고 기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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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브리태니커회사 콘텐츠개발본부 멀티미디어 팀장으로 근무했으며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스마트스튜디오 사진, 동영상 촬영/편집 PD로 근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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