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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풍토가 인걸을 기를까? 나는 이 사실을 엉뚱하게 인도네시아의 제3의 도시 반둥(Ban Dung)에서 믿게 되었다. 풍토에 의해 길러진 인걸은 다시 그 산천을 더욱 빛나게 한다는 사실도 반둥에서 명징하게 확인을 했다. '자바섬의 파리'로 불리는 인도네시아의 반둥과 반둥이 키운 조각가 뇨만 누아르따(Nyoman Nuarta)를 통해서다. 그야말로 인니어로 '쪼쪽(Cocok, 아주 잘 어울림)'인 산하와 인걸이었다.

인니의 대표적 평론가 짐 수빵깟(Jim Supangkat)은 "그 만큼 대중적 유명세를 자랑할 수 있는 인도네시아 조각가는 없다"는 말로 간단히 누아르따를 소개한다. 그리고 "뇨만 누아르따가 확실하게 증명한 것은 그의 예술이 세계 작가들의 분위기와 작품을 흉내냄이 없이, 인도네시아의 정체성과 현실, 그 자신을 글로벌적으로 토론할 수 있게 한다"는 말로 누아르따의 예술을 대변한다.

▲ The Fighter/ 뇨만 누아르따/ 1989/ Copper & Brass/ 80×78×95cm
나는 위 짐의 말을 전적으로 인정한다. 반둥의 풍정과 그의 작품을 보면서 확신했다. 반둥의 산하와 거기에서 오랜 세월 동안 기르고 가꾸어진 전통과 문화, 즉 총체적 풍토와 누아르따의 직관과 실천력의 조화로 이루어진 놀라운 결과물들을 보면서 단숨에 확신한 것이다.

바로 그 확신이 내게는 화두가 되었다. 세계 최고의 휴양지로 꼽히는 환상의 섬 발리, 그 발리 출신 누아르따가 약관의 나이에 그의 천재성을 받쳐줄 여건 하나로 반둥을 점찍은 직관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반둥의 무엇이 누아르따를 그렇게 간절히 이끌었을까? 그리고 오늘날 인니의 얼굴로 키워냈을까? 또한 누아르따는 무엇으로 어떻게 반둥을 빛내고 있는가?

내가 자카르타로 이주를 앞둔 어느 날이었으니 2003년 봄이다. 송별연 자리에서 만난 경기대 문창과 조영숙 교수는 상기된 목소리로 반둥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반둥은 여행자들에게 영원히 미지의 땅이 될 것이다. 거기에 사는 초록 공기와 초록 바람은 신비다. 어떤 방문자에게도 실망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 번이라도 다녀간 사람들의 가슴에 반둥은 오래오래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을 것이다. 반둥은 오직 사랑의 반둥이다."

사랑의 반둥이었다. 반둥공대(ITB)의 미술과 디자인 학부에서 조각을 전공(1973~79)한 누아르따가 그의 많은 작품의 모티프가 된 아내 아디위나따를 얻은 사랑의 반둥이었다. 누아르따가 아내와 또 한 명의 친구와 함께 스튜디오를 설립한 마을을 조각공원화하고 싶어 했고, 오늘 날 반둥의 자랑인 누아르따 조각공원(Nuarta Sculpture Park)이 된 것도 다 사랑의 반둥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에서부터 소개를 받은 반둥임에도 나는 두 번째 여행 때 까지 겨우 '새롭다' 또는 '좋다'라는 느낌 더 이상이 아니었다. 함부로 속내를 내어줄 반둥이 아님을 안 것은 세 번째 방문을 통해서다. 작심하고 2박 3일을 훑고 나자 반둥 또한 내 가슴속에 통째로 사랑으로 들어앉아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어느 사이 반둥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 반둥 남부의 한 카페에서 서북쪽을 향해 한 컷
ⓒ 손인식
웅장하게 뻗어 내린 끝을 모를 산맥과 산맥, 자락과 자락, 그 사이를 잇는 천길 계곡의 유장함, 그 속에 묻힌 도시는 도시가 아니었다. 언뜻 내려다보면 길도, 오가는 차량도, 사람도 숲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그냥 초록색의 향연 안에 아득히 펼쳐진 정적의 도시였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이사이로 수많은 차량이 오가고 삶을 토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있는 꿈틀거리는 역동의 도시였다.

이런 반둥의 풍정은 누아르따로 하여금 그의 작품의 상징이 되어버린 그물과 산화된 청동의 녹색을 떠올리게 하는 절대적인 선물을 했을 것이다. 그의 많은 작품에는 그물과 청동의 이미지가 압도를 한다. 특히 그물이 지닌 상징과 이미지는 누아르따가 "오랜 공허를 거쳐 발견한 소재"답게 천변만상으로 그의 작품에 드러난다.

가려진 것이면서도 들여다보이는 그물의 속성, 그것은 때로 시대와 철학을 표현하고 아픔을 이야기 하며 작품이 지닌 내면을 절실하게 도출해내고 있다. 어찌 산천을 숨쉬게 하는 바람 의 그물 또한 아니겠는가.

자카르타에서 동쪽으로 약 2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반둥(Bandung)은 해발 700m 고원에 위치해 있다. 연 평균 섭씨 22~25도의 시원한 기후는 자랑이 아니다. 그냥 자연일 뿐이다. 인접한 자카르타와 이리 다를 수가 있을까 신비롭기까지 하다. 그 청아함은 꽃으로 피고, 연중 꽃이 지지 않는 도시임을 꽃으로 보여 주면서 반둥의 진가를 서서히 드러낸다.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자연과 이념을 담은 대형 작품들을 꽃처럼 피워 내어 서서히 자기의 진가를 인니의 진가로 드러낸 누아르따의 모습이 거기에 있다.

반둥 북부의 조용한 마을에 위치한 누아르따 조각공원(Nuarta Sculpture Park)은 시에서 모든 운영을 맡아 줌으로써 이미 반둥의 상징이요 한 축임을 증명하고 있다. 빼어난 건축양식과 함께 격조 있는 실내 전시장, 드넓은 야외 공원 곳곳에 자리한 많은 숫자의 작품, 한 점 한 점의 작품 완성도,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의 작업실, 정취의 카페와 웅장한 자연 폭포를 내장한 공원의 넓이 등 한마디로 대단한 곳이었다. 실내외를 막론하고 알맞게 디스플레이 된 작품들은, 이르는 곳마다 그 유장함에 얽히고 성형된 장대함이 억장가슴에 스미고 또 파고들었던 산천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고래로 산하의 유려함이나 한 작가의 진솔한 작품이 뭇 사람의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은 수많은 경우를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대개 미지가 벗겨지고 나면 설레던 감정도 조금은 사그라지는 것이 보통이 아니던가. 그러나 반둥의 풍정과 누아르따의 작품은 쉬 방문자의 마음을 놓아줄 줄을 몰랐다. 인니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고 예술가들이 많이 산다는 것이 어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랴.

▲ Maya/ 뇨만 누아르따/ 1990/ Copper & Brass/ 165×69×129cm/ 댓잎을 배경으로 야외에 설치되어 작품의 이미지를 더욱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는 누아르따의 작품
ⓒ 손인식
속된 말로 오버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작가가 작품으로 표상한 한 민족의 정체성과 사회현상을 그에게 바탕이 되어준 고장의 특징과 대비해면서 조망하겠다는 당초의 목적을 잊고 있음이 아닌데, 나 자신 한 사람의 작가로서 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기 어렵다. 하여 에라, 모르겠거니 감정 낭비 좀 한다. 누가 읽더라도 붉어져 버린 가슴 털어놓는 이 유치함을 이해하시기를 바라면서.

반둥의 풍정과 누아르따의 작품을 돌아보면서 느껴지는 것은 근엄함과 활력이다. 곳곳에 버티어 서서 교육 도시임을 알리는 30여개의 대학이 그렇고, 세계적 규모와 유물을 보유한 지학(地學)박물관을 비롯해 산재한 각종 박물관들의 클래스가 있는 반둥, 인니 대표적 예술의 도시, 격조의 반둥임을 느긋하게 나열한다. 어찌 누아르따의 작품들이 그 기운을 닮지 않았겠으며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하지 않겠는가.

반둥은 1954년 4월 제1회 아시아․아프리카 회의, 반둥회의로 인해 반식민지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인니 독립운동의 주체와 민족주의자들을 대거 배출한 자긍심을 지닌 역사의 숨결이 스민 고장이다. 이 특징은 오롯이 누아르따의 작품으로 또 다시 살아나온다.

침략자들에게 짓밟힌 여성의 아픔과 민족 정신과 국토의 물질을 수탈 당한 한(恨)이 청동빛으로 깎여져 나오는가 하면, 군부 독재에 항거한 학생들의 정신이 작품 속에 의인화되어 등장한 동물을 통해 절절하게 배어 나온다. 아울러 인니가 자랑하는 항공기 제조 공단을 보유한 반둥공대의 그 규모와 첨단 이미지 또한 크기와 빈틈없는 구성력을 자랑하는 작품 속에 형상화 되어 분출된다.

▲ 미인의 고장 서부 자바 아가씨의 미소
ⓒ 손인식
놀랍고 설렘이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반둥은 한 마디로 아취의 고장이다. 반둥에 가면 조용조용히 말하고 품위 있게 행동 하라했다. 예의바르고 온후하며 웃음이 그치지 않는 성품을 지닌 사람들의 고장이기 때문이다. 부익부일까? 부함에 걸맞은 구색일까? 이 무엇이 부족해서 신은 반둥의 산하에다가 또 다시 미인을 얹었을까?

반둥은 북 술라웨시의 마나도와 더불어 미인이 많은 곳으로 정평이 나있는 곳이다. 어찌 방문자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특징이 아니랴. 아 그런데 나는 소문에 듣던 미모를 넘어선 미의 절대 요소 하나를 거기에서 확인했다. 그들이 지닌 순백의 웃음덩어리 때문이다. 감정이 있을 수 없고 스스럼없는 순간의 웃음이기에 그리 하얄 수 있을까? 누가 '자바의 파리 반둥'이라 했을까? 오직 '반둥은 세계 유일의 반둥'일 뿐인 것을.

반둥이 가슴에 들고나니 조각가 누아르따의 작품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몇 번에 걸쳐 책과 자카르타 시내 중심가에서 그의 작품을 대하면서도 그저 참 좋은 작품이구나라는 감정 그 이상이 아니었는데 그를 도운, 그가 선택한 풍정을 흠씬 맛보고 나니 그의 작품을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반둥을 선택한 그의 직관과 혜안에 감탄을 하고 또 할 수밖에 없었다.

▲ 누아르따의 작품에 담긴 포즈를 따라 한 컷.
ⓒ 손인식

누아르따의 작품은 인도네시아에 사는 사람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누구든 볼 수 있는 장소 곳곳에 있다. "그 만큼 대중적 유명세를 자랑할 수 있는 인도네시아 조각가는 없다"는 말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수도인 자카르타뿐만 아니라 제2의 도시 수라바야, 세계인의 휴양지로 알려진 발리와 반둥 등 공공성과 역사가 어린 장소에 많은 대작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신화와 현실, 전쟁의 참상, 정치적 갈등, 자연재해 등이 바로 인도네시아 인과 함께 누아르따의 메시지로 살아있다. 이 강렬한 메시지는 앞으로도 새롭게 창조될 것이며 마음을 여는 많은 감상자들에게 그 생명력을 자랑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누아르따 조각공원 통신처 

Jl. Setra Duta Kencana 11 No.11 Bandung 40151 - Indonesia Tel 62-22-201-7812
r-mail : nuart@bdg.centrin.net.id  Website : www.nuart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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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2015년 5월 인사동에서 산을 주재로 개인전을 열고 17번째 책 <山情無限> 발간. 2016, 대한민국서예대전 심사위원장 역임. 현재 자카르타 남쪽 보고르 산마을에 작은 서원을 일구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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