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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원
상태가 좋지 않고 또 작지만 사진을 자세히 봐 주십시오. 사진 가운데 흰 두루마기를 입은 분이 세계적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입니다. 민비 살해를 돕고 일본으로 도망간 부친과 일본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분이지요. 부친의 매국을 사죄하고자 말년에 귀국, 원예기술원을 만들어 한국 원예육종학을 한단계 발전시킨 분이지요.

우 박사님 오른쪽으로 군복 같은 옷을 입고 계신 분이 농진청에서 원예육종을 연구하던 전 선생님이고 뒷줄 왼쪽에서 두번째 꺼벙 머리에 작업복을 입으신 분이 역시 농진청에서 육종을 연구하신 고 박사님 입니다.

뒷줄 맨 왼쪽에 계신 분이 원예기술원에서 우 박사의 조교노릇을 하시며 창경원 식물원장을 지내셨던 제 부친 방원 이성찬 선생이십니다. 가벼운 풍을 맞으셨는데 사진 인물 중 유일한 생존자입니다.

뒷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흑색 두루마기를 입고 수염을 기르신 어른이 제 부모님을 결혼시키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한국 정부로부터 때늦은 독립운동 훈장을 수여받은 지운 김철수 선생이십니다.

일제시대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내시고 해방을 맞으신 분입니다. 일본 와세다 대학을 나온 분으로 동아일보 주필을 지내신 양운모 선생 등과 동창이시기도 하지요. 지운 선생은 한국민족이 바르게 사는 길을 사회주의에서 찾으셨던 분입니다. 동양 3국 중 공산당 활동을 조선에서 가장 먼저 시작하신 분이지요. 조선노동당 2차 전당대회 책임비서를 지내신 분으로 소련 코민테른의 조직자금을 들여와 독립운동자금으로 전용한 분이기도 하구요.

일제시대 이승만의 목숨을 살려준적이 있어 군정 이후 이승만 정권당시 지방 일간지에 정치 은퇴선언을 하는 조건으로 정권의 보호를 받은 유일한 사회주의 계열인사입니다.

북에 있는 자제분들 중에는 부상, 그러니까 남한으로 치면 장관을 지낸 양반이 2분이나 계십니다. 그 덕에 지운 선생은 해방이후 외국 나드리 한번 못하시고 아흔 셋 평생을 남한땅 부안 백산에 손수 지은 운막에서 칩거하며 보내셨습니다.

바로 이 분 때문에 이 사진도 오랜세월 은밀하게 숨겨져 있어야 했습니다. 친분관계만으로 북한 간첩으로 몰릴 수 있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이씨 조선 이후 일제시대 지식인들은 그 어떤 이상주의적 사회주의를 꿈꾸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쩌면 한국 사회의 지향점도 유럽식 사회주의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아직 어느것이 최고다 단정할순 없지만 지운 선생같은 사상적 행동가들이 있어 한국 사회가 그나마 평등성을 향해 나갈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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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잡지연구소 연구원 근무하다 버지니아텍에서 농공학을, 브라운대학에서 지질학을 공부했으며 노스이스턴 공대 환경공학석사와 로드아일랜드대학 토목환경공학박사를 취득했다. 플로리다주 리 카운티 공무원을 시작으로 미연방공무원으로 국방성에서 근무했으며 현재는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에 근무하고 있다. 2003년 한국정부로부터 5.18 민주화유공자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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