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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22일 오후 서울 내곡동 국정원에서 부일장학회 헌납과 경향신문 매각 의혹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국정원 과거사건을 통한 진실위원회(위원장 오충일, 이하 국정원 진실위)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중앙정보부(국정원의 전신)에게 지시해 강제로 부일장학회를 헌납받았고, 경향신문을 매각해 사유화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국정원 진실위는 특히 김지태 부일장학회 창립자가 중정에 의해 구속된 상태에서 강제로 재산을 헌납받은 사실을 숨기기 위해 '기부 승낙서'를 작성한 날짜를 변조한 사실도 확인했다.

경향신문 강제매각 사건의 경우 당시 이준구 사장을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시킨 뒤 사형을 구형받은 상황에서도 신문사를 포기하지 않자 이 사장의 부인인 홍여수씨에게 "이준구를 사형시킨 후에야 정신을 차리겠냐,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기도 했으며, 이 사장에게 살인혐의를 씌우면서까지 공작해 무릎을 꿇게 했다.

결국 국민의 눈과 입이라고 할 수 있는 언론을 강탈하기 위해 조작간첩사건까지 동원됐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땡전 한푼 없이 당시 권력을 이용해 언론사 사주들을 간첩 혹은 범법자로 몰아 재산을 빼앗았으며, 4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 재산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등 '박정희 일가·측근'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원 진실위는 22일 오후 1시 서울 내곡동 국정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 같은 내용의 '부일장학회 헌납 및 경향신문 매각 사건에 따른 의혹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부일장학회 헌납사건 : 박 전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에 지시

부일장학회 헌납·경향신문 매각 사건은?

부일장학회 헌납사건은 62년 김지태가 석방의 대가로 자신 소유의 부산일보,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의 주식과 부일장학회 장학사업을 위해 준비해둔 토지 100,147평을 강압적으로 국가에 '기부'토록 한 사건이다. 박정희 정권은 '기부'받은 재산을 토대로 5.16 장학회를 설립했다.

경향신문 매각 사건은 언론 장악을 기도해 온 박정희 정권이 65년에서 66년에 걸쳐 중앙정보부를 내세워 경향신문 이준구 사장을 간첩사건 연루혐의로 구속한 상태에서 은행대출금을 회수하여 강제로 공매처분한 사건이다.
진실위는 "58년 설립된 부일장학회 헌납과정에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개입된 사실을 찾아냈다"며 "김지태 창립자의 재산헌납이 표면상으로는 자발적으로 기부된 것으로 보이나 사실은 그의 구속수감 중에 강압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했다.

당시 김지태는 자신이 소유한 언론사(부산일보·부산문화방송·한국문화방송)와 부일장학회 명목의 토지를 박정희 정권에게 자진 헌납할 의사가 전혀 없었고, 오히려 강압적으로 탈취 당했다고 생각해 석방 이후 62년 재산반환을 주장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럼에도 박 전 대통령은 중앙정보부를 이용해 부일장학회를 헌납 받았고, 이를 5.16장학회의 기본재산으로 삼았다. 그 중 평가액상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토지는 국방부에 무상으로 양도시키기도 했다.

국정원 진실위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5.16장학회 설립을 지시한 것은 물론이고 장학회 설립 이후에도 이사진을 직접 선임하는 등 장학회 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장학회의 이사진과 장학회 소유 언론3사의 사장에 주로 대구사범 출신 측근들과 친인척 등을 임명했고, 박 대통령 사후에도 유족들이 영향력을 행사해왔다는 것이다.

5.16장학회는 82년 1월 박정희의 '정'과 육영수의 '수'를 따 정수장학회로 개칭됐고, 95년 9월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장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이사장에 취임해 9년여간 재임하다가 올해 2월에야 이사장 직에서 사임했다.

올해 3월부터는 박 전 대통령의 의전비서관 출신으로 2002년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한 바 있는 최필립 전 뉴질랜드 대사가 이사장에 취임했기 때문에 사실상 62년 김지태가 부일장학회를 강제로 빼앗긴 이후 43년간 '박정희가와 측근'의 소유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22일 오후 서울 내곡동 국정원에서 부일장학회 헌납과 경향신문 매각 의혹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구속시켜놓고 재산 헌납받아내

진실위는 이날 김지태가 62년 6월 구속상태에서 작성한 기부승낙서 기부날짜가 원래 6월 20일에서 6월 30일로 변조됐다는 의혹도 밝혔다.

국정원 진실위 측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해 기부증서 등 문건 7건 원본에 대한 필적 동일성과 기부일자 변조여부를 감정한 결과, 기부승낙서는 김지태 본인을 포함한 3명이 서명했고, 기부승낙서 상의 날짜도 한자 '六月 二十日'에 한 획을 가필해 '三十'으로 변조한 것이 사실이라고 발표했다.

당시 김지태가 구속된 상태에서 강제헌납한 재산은 주식 총 5만3100주(평가액 3487만6096원), 부동산(부일장학회 명목 토지) 10만147평(253필지)이다.

헌납된 김지태의 재산 중 부산 시내에 있는 토지 253필지는 부일장학회의 기본재산이었으나, 5.16장학회는 이 토지를 기본재산으로 보유하지 않고 63년 7월25일 국방부에 양도했으며 국방부는 63년 10월21일 김지태에게 토지 기부출원에 대한 감사공문을 보냈다.

국정원 진실위는 이 사건의 결론으로 중앙정보부의 국가재건최고회의 등 국가 주요기관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고 내리고, 중앙정보부는 수사권을 남용해 재산헌납을 강요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등 재산헌납과정에 개입했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매각의혹사건 : 눈엣가시 <경향> 사장 '간첩사건'에 연루 발표

국정원 진실위는 경향신문 매각의혹사건도 부일장학회와 마찬가지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중앙정보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했던 사건이라고 발표했다.

진실위는, 64년 8월 박정희 정권은 정국혼란의 책임이 '일부 언론의 무책임한 선동' 때문이라며, 경향신문의 '허기진 군상' 시리즈를 매우 불편하게 생각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당시 경향신문의 '허기진 군상'은 가난한 농촌과 영세민의 궁핍한 삶을 생생히 고발해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나, 이 같은 비판은 경향신문과 박정희 정권의 관계를 악화시키는데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중앙정보부는 눈엣가시였던 이준구 경향신문을 사장을 겨냥해 남파간첩 이문백과 이형백 간첩사건, 윤우현 경향신문 동경지사장 월북사건을 묶어 발표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이 사장도 간첩에 의해 포섭된 인물로 부각시킨 뒤 경영권을 포기토록 압박하려 했다고 전했다.

국정원 진실위는 김형욱 등 중앙정보부 간부들은 이준구를 반공법으로 구속시킨 뒤, 부인 홍연수에게 부산일보 김지태가 징역 7년을 구형받자 5.16장학회에 재산을 헌납했던 사례를 들며 빨리 경향신문을 넘기라고 종용했던 것도 확인했다.

▲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22일 오후 서울 내곡동 국정원에서 부일장학회 헌납과 경향신문 매각 의혹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경향> 사장을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시킨 뒤 경영권 포기 압박

당시 홍연수는 남편을 무죄로 석방시켜 준다면 주식을 양도하겠다고 했고, 김형욱은 먼저 주식을 넘겨주면 석방시켜 주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며 4개월여를 끌었고, 이 기간에 김형욱 부장과 수사국 이외에 서울분실·감찰실 등 중정 내 다양한 부서가 동원돼 전방위적 압박을 가한 사실도 찾아냈다고 진실위 측은 공개했다.

이준구 사장을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시킨 다음, 중앙정보부는 66년 1월 25일 박정희 대통령과 동향인 기아산업 김철호 사장을 단독 입찰케 한 뒤 2억1804만원에 낙찰되도록 했다.

국정원 진실위에 따르면, 당시 기아산업은 산업은행의 법정관리를 받고 있어 경향신문을 인수할 여력이 전혀 없었다.

당시 타사에 비해 경영난이 양호했던 경향신문을 법정관리를 받고 있던 기아산업에 넘긴 뒤에 경영사정이 악화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74년 이환의 문화방송 사장에게 경향신문과 통합하라고 지시하고, 결국 경향신문도 5.16장학회 소유가 됐다는 것이다.

국정원 진실위는 "당시 중정 직원들도 사건의 정황상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중정의 전 부서가 동원돼 처리한 것이라고 진술해왔다"며 "부일장학회와 마찬가지로 경향신문 매각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정수장학회 사회환원과 <경향> 적자 손실 보전 방안 마련해야"

국정원 진실위는 부일장학회 및 부산일보·부산문화방송·한국문화방송과 경향신문이 중앙정보부의 강압에 의해 헌납 또는 매각됐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에 합당한 시정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정원 진실위는 "김지태가 재산의 사회환원 의사를 밝혔던 부일장학회는 당연히 공적으로 관리되고 운영되어야하나 실제로는 5.16장학회를 거쳐 정수장학회로 이어져 왔으며 그 과정에서 사유재산처럼 관리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국정원 진실위는 이어 "그동안 이사진도 대체로 박 전 대통령에 의해 선임되었고 그의 사후에도 유족을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으므로 이러한 문제점을 시정해야 한다"면서 "사회환원이라는 김지태의 유지를 되살릴 수 있도록 쇄신해야 한다 "고 밝혔다.

국정원 진실위는 또 "당시 군사정권을 비판하다가 정권의 탄압을 받아 매각당한 경향신문의 언론활동을 재평가하고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언론인들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명예를 회복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신문사와 건물의 부지를 보유해 경영상 큰 어려움이 없던 경향신문사가 강제매각과 통폐합 과정에서 심각한 적자를 보았기 때문에 이같은 손실을 보전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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