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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현재의) 여소야대 구도로는 국정이 원활히 돌아가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생산적인 정치를 위해서는 무언가 대안이 나와야 한다"면서 그 대안의 하나로 '연정'을 제시했다.

노 대통령은 연정을 해서라도 여소야대 구도를 타파해야 국정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주장의 논거로, 우선 대통령제 하에서 여소야대 구도가 비정상적인 한국적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노 대통령은 "88년 13대 총선 이래 선거만 하면 여소야대 국회가 된다"면서 "세계 여러 나라를 보아도 이런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현실과 국민의 견제심리를 노 대통령은 "법 위에 군림하던 대통령 시대는 이미 지나갔는데도 대통령 권력에 대한 견제심리는 그대로 남아있는 결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국민의 정치의식이 정치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노 대통령은 또 "거의 모든 나라에서 정부 수반은 여당의 지도자로서 제도적인 권한을 가지고 당을 이끌어 간다"면서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 수반은 당권을 가질 수 없도록 했다"고 말해 불합리한 현실을 개탄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역대 대통령들의 당에 대한 막강한 권한 때문에 질식해버린 당내 민주주의를 살리기 위하여 당정분리를 제도화한 것"이라며 "대통령이 여당에 대해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는 아무런 지렛대도 없으니 어느 나라보다 힘없는 정부 수반이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당·정 분리 원칙을 내세워 당권을 당에 돌려준 것은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라 노 대통령 그 자신이다. 그리고 노 대통령은 당정분리라는 정치개혁을 참여정부의 핵심적인 '업적'으로 자부해왔다.

그래서인지 노 대통령도 "그 나름의 연유가 있기는 하지만 힘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심지어 "여당에게조차 단합된 지원을 얻기 위해선 '선처'를 구하는 길 이외에는 별다른 수단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야당의 공세에도 국정 수행의 책임을 돌렸다. 노 대통령은 "이런 대통령에게 '야대' 국회는 각료 해임건의안을 들이댄다"면서 "각료들이 흔들리고 결국 대통령의 영이 서지 않게 된다"고 호소했다. 노 대통령은 "역대 정권에서 정부 관료들의 반대와 무성의로 개혁이 좌절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면서 "대통령이 흔들리니 개혁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또 "미국의 여소야대를 말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미국과 우리의 대통령제는 제도와 문화가 전혀 다르다"면서 "우리나라 국회의원에게는 당적 통제가 아주 강하고 자유투표가 거의 불가능하여 미국처럼 대통령이 개별 의원을 설득하거나 협상할 여지가 없다"고 호소했다. "우리는 대통령이 야당의원을 만나는 것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이어 "(사정이 이런 데도) 대통령에겐 국회 해산권이 없다"면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몰리니 국정이 제대로 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런 힘 없는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큰' 기대심리도 '비정상'이라고 지적하면서 "비정상적인 정치를 바로 잡아야 국정이 제대로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국민은) 대통령에게 법도 고치고 정부를 통솔하여 경제도 살리고 부동산도 잡고 교육과 노사문제도 해결하라고 한다"면서 "이 모두가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현재의 여소야대 구도로는 국정이 원활히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여소야대를 타파해야 하며, 연정을 하면 여소야대라는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또 "이 문제에 관하여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 어느 학자의 글도 읽은 적이 있다"면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놓고 지금부터라도 건설적인 논의가 시작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노 대통령의 한국정치 현실에 대한 이와 같은 인식과 진단은 당위론적으로는 옳은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무책임하다'는 지적을 면하기가 어렵다.

우선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윤광웅 장관 해임건의안을 제출한 것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이 주도권을 잡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고 주장하고, 이 글에서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몰리니 국정이 제대로 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김대중 정부에서는 야당의 국무위원 해임 건의안이 16건 발의되었고 참여정부에서는 이제 2건이 제출되었을 뿐이다.

또 역대 국회 중에서 여야 타협에 의해 가장 많은 법안을 통과시킨 생산적인 국회는 노 대통령의 정치적 사부(師父)인 김원기 국회의장이 제1야당 평민당의 원내총무를 하던 13대 국회이다. 당시 노 대통령은 제2야당인 민주당 소속 의원이었고 물론 그때도 여소야대 상황이었다. 물론 노 대통령도 여소야대 구도였던 13대 국회가 가장 생산적인 국회였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런데 당시 집권여당인 민정당은 이런 여소야대 상황을 인위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김영삼 민주당 총재 등과 연합해 거대 여당인 민자당을 탄생시켰으며, 당시 노무현 의원은 이를 '3당야합'으로 규정하고 합류하지 않았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야당과의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상생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은 채 너무 쉽게 연정의 길을 택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노 대통령이 거명한 책은 <한국의 정치개혁과 민주주의>

노무현 대통령이 5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기고한 '한국정치, 정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거명한 '학자의 글'은 강원택 교수(숭실대 정치외교학과)의 <한국의 정치개혁과 민주주의>를 지칭한다.

강 교수는 이 책에서 1987년 이후 괄목할 만한 민주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여전하다고 전제하고 이에 대한 원인으로 '후진적인 정치관행과 제도'를 지적하고 있다.

강 교수는 특히 "현행 대통령 선거는 지지자보다 반대자가 많아도 당선될 수 있는 구조다"면서 "과반수 이하의 지지로도 당선되는 '단순 다수제'는 대표성과 정당성이란 측면에서 큰 결함을 갖는다"고 지적하고, 민주주의 원칙에 더 합당한 '결선 투표제'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또 국회의원 선거제도와 관련해서는 정당명부 의석과 지역구 의석을 50대 50으로 선출하는 '혼합형 비례대표제'를 제안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노 대통령이 강원택 교수의 글을 언급한 배경은 현재의 한국정치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진단' 부분에 공감해서 그런 것이지 강 교수가 제시한 '대안'과 일체화시킨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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