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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 시내에서 외곽으로 조금만 나가도 쪼그만 아이들이 수레에다 커다란 물통들을 싣고 낑낑거리며 가고 있는 모습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무엇을 하나 살펴보면 모두들 동네우물가에 가서 물을 떠오려는 것으로, 낮에 어른들은 일하러 나가서 바쁘므로 온가족이 쓸 물을 떠오는 것은 아이들의 몫입니다.

측은한 마음에 주민들과 공무원들에 물어보니 심각한 물부족 현상은 몽골의 큰 사회문제였습니다. 상수도를 설치할 재정이 없으니 방법은 지하수를 파서 관정을 끌어올리는 것이나 물탱크를 설치하여 매번 물을 날라다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물이 부족하니 깨끗이 씻고 다니기를 기대하는 것은 애초 무리이고, 이런 기본적인 생활조건부터 개선하지 않고서는 인간적인 삶이 되지를 않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다가 마을공동우물을 만들어주는 사업을 생각해내게 되었습니다.

지난 6월 9일 저녁 7시, 마을공동우물 앞에서 마을회의를 열었습니다. 20여명 남짓한 수흐바타르구 16동 마을주민들이 참석해주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나가 일하기 때문에 저녁 늦게야 들어오고 이 날 모인 것은 주로 마을에 남아 있는 노인과 부녀자였습니다.

▲ 마을회의를 하는 16동 주민들
ⓒ 지구촌공생회
제가 먼저 인사말을 시작하고 지구촌공생회 몽골 지부장인 에르딘 볼간씨가 통역을 해주어 회의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지구촌공생회가 어떤 단체인지를 소개하고, 지구촌공생회의 대표이신 송월주 스님께서 울란바타르시 엔크볼드 시장과 협력하여 몽골지원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하고, 엔크볼드 시장이 수흐바타르구 촉졸마 구청장을 소개해주어 이곳 수흐바타르구 16동 마을에까지 와서 지원사업을 확정하게 된 일련의 과정을 소개했습니다.

16동 마을에서 지구촌공생회가 하려는 일은 고장난 우물을 고치는 것입니다. 몽골의 전체 인구는 250만명인데 그 중 100만명이 현재 수도인 울란바타르시에 몰려와 있습니다. 잦은 이상기후와 자유시장경제의 도입 등으로 유목생활을 포기하고 도시로 몰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울란바타르시 외곽은 거대한 빈민촌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새로 도시로 몰려온 사람들은 대개 전기, 전화, 수도 등 생활기반시설이 전혀 없는 시외곽 평지에 몽골식 전통텐트집인 '게르'를 짓고 살거나, 조금 여유가 있으면 판자집을 만들어 살고 있습니다. 일단 정부의 지원으로 곳곳에 나무 전신주가 설치되어 전기는 들어가고 있으나 상하수도 시설은 전혀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이주민들의 집성촌에서는 군데군데 있는 마을 우물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1인당 하루 5리터 정도의 최소한의 식수와 생활용수 밖에 공급받을 수 없는 실정입니다. 사정이 좋은 곳은 자동펌프로 지하수를 끌어올려 물탱크에 저장했다가 필요한 만큼 물을 공급하고, 지하수가 없는 지역엔 물탱크만 설치하여 식수차가 정기적으로 오가며 물을 채워주고 있습니다.

▲ 새로 설치하는 수중모터
ⓒ 지구촌공생회
몽골의 마을공동우물은 겨울에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는 강추위에 동파를 막기 위하여 겨울 24시간 내내 난방을 해주어야 하고, 물탱크는 만들 때부터 건물을 만들어서 그 안에 넣어야 하기 때문에 건축비용과 관리비용이 많이 드는 편입니다.

16동 마을의 마을공동우물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 UN의 지원을 받아 어느 스웨덴 관정회사가 우물을 파고 핸드펌프를 설치하여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핸드펌프가 설치되자 마을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핸드펌프 위에 벽이 두꺼운 건물을 엉성한 관리동을 지어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렇지만 손잡이를 위아래로 흔들면서 지하에서 물을 끌어올려야 하는 핸드펌프는 여러모로 불편할 뿐만 아니라 펌프가 한번 고장나면 가난한 사람들이 돈을 들여서 고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대개 방치되곤 합니다. 16동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여서 이 곳 핸드펌프도 수 년째 방치되어 오고 있다가 저희들의 눈에 띄게 된 것입니다.

마을회의 시간에 마을주민들에게 지구촌공생회에 요청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부탁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물을 고쳐줄 거면 편리하게 고쳐주세요. 핸드펌프는 더 이상 안되고 다른 마을들처럼 전기로 끌어올릴 수 있게 해줘요."
"우물건물 지붕을 새로 해야돼요. 천정의 나무가 썩어서 구멍이 뚫려서 비가 새고 그러면 난방도 제대로 안돼요."
"우물건물 바닥도 새로 해야해요. 핸드펌프 쓸때는 물이 넘쳐서 겨울이면 바닥에서 그냥 얼어붙어버려요."

우물 공사업자도 덩달아 요구합니다.

"물탱크를 설치해야 합니다. 안그러면 전기식으로 했을때 물 10리터 받으려고 그때마다 모터를 틀면 금방 고장납니다. 평소에 물을 모아둘 수 있는 물탱크를 설치해야 합니다."

▲ 기존 관리동을 부수고 새로 건물을 짓는 모습
ⓒ 지구촌공생회
자그마한 우물 하나를 두고 여러 가지 요구사항들이 나왔습니다. 모든 의견을 다 들은 후 예산의 범위 내에서 최대한 수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만드는 김에 정말 도움이 되는 우물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마을회의 다음날부터 공사를 바로 시작하였습니다.

예산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최대한 비용을 줄이면서도 마을주민들의 요구를 최대한 들어줄 수 있는 방향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공사업체에 맡기지 않고 저와 몽골지부장인 에르딘이 직접 다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일이 바빠졌습니다.

일단 우물을 고치고 전기식으로 교체하는 것은 우물공사업자를 만나서 계약을 했습니다. 몇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수중모터를 달고 고장 나더라도 수리하기 쉽게 수중모터를 끌어올릴 수 있는 철선을 연결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수중모터가 고장 나더라도 줄만 당겨 모터를 뽑아내고 고장난 모터만 교체해서 다시 넣으면 됩니다.

다음으로 우물관리동을 새로 짓기로 했습니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인건비가 너무 비싸 마을동장님에게 부탁해서 마을사람들을 인부로 고용했습니다. 아무래도 자기 마을 우물이니 열심히 하겠지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건장한 청년들은 모두 도시로 돈을 벌러 나갔기 때문에 인부로 온 마을사람들은 일을 아주 잘 할만한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인부로 온 사람은 15살짜리 소년, 17살짜리 소년, 동사무소 직원 아줌마(공사기간 내내 동사무소에는 출근안하고 공사장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었음), 다리를 다친 아저씨, 그리고 그나마 믿을만한 기술자 아저씨 한 분. 이렇게 다섯 명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팀장 아저씨가 이런 공사는 3일이면 다 마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제가 한국에 돌아가기 전까지 완벽하게 마쳐놓겠다고 장담은 해놓았는데, 실제 공사가 끝난 것은 9일 후였습니다.

▲ 새롭게 완성된 마을공동우물의 전경
ⓒ 지구촌공생회
인부를 구했으니 이제 공사자재를 대줘야 합니다. 그때부터 에르딘 볼간씨와 저는 부지런히 시내에 있는 건축자재시장을 뒤지면서 필요한 자재를 날라야 했습니다. 시멘트, 모래, 자갈, 목재, 페인트, 철판, 문짝, 창문, 게다가 필요한 공구들까지 이 모든 것을 상점마다 돌아다니면서 하나하나씩 사줘야 했고, 물탱크를 준비하고, 전력회사에 가서 전기가설 신청하고, 인부들 간식도 사다줘야 하는 등 부지런히 뛰어다녔습니다. 공사에 쓰이는 전기스위치, 호스, 못 하나 자질구레한 것까지 모두 챙겨야 하는 게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공사를 방해하는 장애들은 이런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공사를 시작한 다음날부터 3일 연속 비가 내렸습니다. 장마가 없는 몽골에서는 드문 기상현상이라고 합니다. 동행한 에르딘도 이런 날씨는 처음 본다며 걱정을 합니다.

공사현장에 가보니 기존의 우물관리동은 부셔져 버렸고 인부들은 비를 피할 곳이 없어 자재로 준비했던 철판 밑에 쪼그려 들어가 비를 피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밤에는 사람들이 이 자재들을 훔쳐갈까봐 팀장님이 매일 저녁 비를 맞으면서 그 철판 밑에서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빗발이 조금 약해지니 마을인부들은 다시 일을 시작합니다. 비를 맞으면서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 새우물에서 마을주민들이 줄을 서서 물을 받는다.
ⓒ 지구촌공생회
그런데 마을인부들이 악천후 속에서도 공사를 열심히 했지만 또 다른 문제들이 생깁니다. 우리가 사왔던 시멘트는 가짜 시멘트였습니다. 중국에서 시멘트를 들여와서 포장을 뜯고 시멘트를 꺼낸 뒤 이상한 것들을 섞고 나서 몇 포대 더 만드는 수법입니다. 그러다보니 공사할 때는 시멘트가 평소보다 많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불량목재도 문제입니다. 목재 9개가 한 묶음인데 9개 묶음 중 한가운데 들어간 목재는 100% 못쓰는 목재입니다. 가져온 모든 묶음에서 그런 목재가 섞여 들어가 있고, 파는 사람한테 그건 빼고 바꿔달라고 하면 절대 팔지 않습니다. 이럴 땐 그냥 울며 겨자먹기로 9개 값으로 8개를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막판에는 페인트가 문제였습니다. 불량 페인트인데 이 페인트는 벽에 칠해도 색깔이 안나옵니다. 인부들 말로는 가짜들은 가짜 나름대로 쓰는 방법이 있다고 하는데, 이 페인트는 그런 방법도 통하지 않는 가짜 중에 진짜 가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늦어지는 공사 속에 처음 말씀 드린대로 3일만에 완성을 장담하던 공사는 9일째가 되어서야 끝났습니다. 결국 저는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 날짜에 쫓겨 완성된 모습을 보지는 못하고 에르딘 지부장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돌아왔습니다.

▲ 새로운 우물관리동이 완성되기 직전 마을인부들과 함께
ⓒ 지구촌공생회
얼마 전 에르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6월 20일 오후 5시 울란바타르시 수흐바타르구 부구청장님을 비롯하여 지역의 고위 공무원들과 유지들, 마을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증식이 열렸다고 합니다. 지구촌공생회가 수흐바타르구 16동 주민들에게 이 우물을 기증한다는 현판이 내걸리고, 구청에 관리를 위탁한다는 협약서에 사인하고, 테이프 커팅식이 있었다고 합니다.

호스를 통해서 물이 뿜어져 나오자 마을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고 합니다. 그날의 기증행사를 통해 지구촌공생회가 만든 마을공동우물은 울란바타르시 수흐바타르구 16동 마을주민들 손으로 돌아갔습니다. 지구촌공생회가 고친 그 우물관리동에는 그 동네에서 가장 예쁜 창문에, 가장 좋은 문짝, 그리고 가장 예쁜 빨간 지붕까지 들어갔습니다. 건축 아마추어인 마을주민들이 직접 한 것이라 아주 멋진 건축물은 아니지만 그 동네 분위기에 맞는 멋진 새 건물이 들어선 것입니다.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그 우물관리동에서 구멍가게를 차리자는 의견도 나온 모양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지구촌공생회의 작지만 첫 번째 몽골지원사업은 시작되었습니다. 이후로 지구촌공생회는 몽골에서 유치원, 문화센터 등의 사업을 계속해나갈 예정입니다. 역사는 계속 만들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김동훈: 지구촌공생회 기획과장. 지구촌공생회(www.gongsaeng.org)는 2003년 10월에 창립된 국제구호단체로 라오스, 캄보디아, 몽골, 러시아, 북한에 대한 지원사업을 해오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쌍문동노인복지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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