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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중순의 어느날, 오후 3시가 가까워 오자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조금 일찍 온 아이들은 책을 읽기도 하고 곧장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달려가는 아이도 있다. 마치 내 집인 양 자연스럽고 익숙한 모습이다.

아이들이 방과 후 찾아드는 이곳은 남양주시 오남읍 양지바른 언덕 위에 위치한 살렘교회로, 지역아동센터 '푸른학당'을 운영하고 있다. 학교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저 멀리 아래로부터 장난치며 올라오는 모습을 다정하게 바라보다 반갑게 맞이하는 김동문(목사 42)·신광숙(37)씨 부부. 아이들은 언젠가부터 이들 부부를 아빠,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아이들이 행복하면 그만이죠"라고 말하는 김동문 목사와 신광숙씨 부부.
ⓒ 방춘배
"아이들이 행복하면 그만이죠"

"큰 가정 작은 학교라고 생각해요. 이곳에선 모두가 가족이에요."

아이들에게 기꺼이 '아빠·엄마'가 되어 주는 이들 부부가 생각하는 '푸른학당'의 모습이다. 처음 지을 때부터 교회기능보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직접 설계하고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게 넓은 잔디마당도 만들었다. 요즘엔 관사로 쓰고 있는 집까지 아이들 공간으로 사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단다. 학교공부를 마치고 찾은 방과 후 공부방이 집과 같으면 아이들이 더 편안해 할 것이라는 것이 김 목사의 생각이다. 쉽지 않은 결정일 텐데 "아이들이 행복하면 그만이죠"라고 말하는 김 목사.

푸른학당은 김 목사와 부인 신광숙씨를 비롯해 4명의 교사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독서와 독후감, 영어, 수학, 한문을 비롯해 비트 공예, 학습지 보는 것을 지도한다. 뿐만 아니라 주말에는 놀이와 현장학습을 위주로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 오는 아이들은 흔히 저소득층이라 부르는 가정의 아이들이다. 김 목사는 아무리 중산층이라도 학교가 끝나고 아이가 집에 혼자 있어야 한다면, 그 아이는 '소외된 아이'라고 말한다.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이 필요한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 자체가 목적이에요. 씨를 뿌려놓으면 언젠가 누군가는 거둬들이겠죠."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며 웃음을 짓는 김 목사.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 얼굴을 모른다. 고아로 자란 그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사회생활을 시작해 철공, 목공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루 천원을 벌기 위해 몸이 아파도 참아야 했던 시절, 중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아무리 둘러봐도 주변에는 그의 찬바람을 막아줄 보호막이 보이지 않았다. 김 목사는 외로움에 많이도 울었다고 고백했다.

"부모님과 사회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어요."

삶의 희망이 등을 돌렸다고 생각한 순간, 그는 자살을 결심했다. 끓어오르는 분노로 죽음과 마주치려는 그 순간, 그의 마음에 한 줄기 햇살이 들었다.

"하나님은 너를 그렇게 기다리신다."

예전에 누군가에게 같은 말을 듣고 '웃기고 있네'라고 비웃었던 그 말이, 김 목사를 번개처럼 때렸다. 그는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은 내 인생이 얼마나 기구한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삶의 의욕을 주셨으니 나와 같이 고달픈 아이들을 돌보며 평생을 살겠습니다."

"제가 지금 그렇게 하고 있잖아요... 전염병처럼"

▲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걸었다고 말하는 김동문 목사
ⓒ 방춘배
삶이 미소 지으며 자신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하자 김 목사에게 '천사'가 찾아왔다. 새문안교회 김수경 권사가 바로 그 주인공.

"아낌없이 주실 뿐 바라는 것이 없는 분이셨어요."

깊게 패인 분노와 상처를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으로 치유해 준 김 권사는 김 목사에게 한없이 넉넉한 품을 가진 어머니와 같은 존재가 돼 주었다. 김 권사의 격려와 뒷받침 속에서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마치고 김 목사는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방황하며 1년간 연락을 하지 않았지만, 김 권사는 그를 묵묵히 기다리며 지원의 끈을 놓지 않았고, 건강이 좋지 않아 고생하는 김 목사에게 한약을 지어 먹이고 따뜻한 방도 내주었다.

서울의 서초동과 도곡, 강남에서 목회 활동을 시작한 김 목사가 화려한 길을 미련 없이 정리하고 지금의 오남읍에서 아이들과 함께 밥 먹고 공부하며 하루하루 행복을 일궈가는 것은 그 옛날 김 권사로부터 받은 사랑때문임은 당연할 터.

"제가 지금 그렇게 하고 있잖아요… 전염병처럼."

지금은 누구보다 오남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그지만 처음 오남에 왔을 때는 문화적인 충격이 컸다. 그는 곧 삭막해 보이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교회에 영상과 컴퓨터 시설을 갖췄다. 또 교회를 종교법인으로 등록한 뒤 24시간 개방했다. 그런 그에게 주변에서는 '이단'이라는 말까지 했다.

그러나 김 목사는 주위의 눈치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교회는 제 것이 아니에요. 오남리 전체의 것이지요."

지키고 싶은 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신도수를 늘리는 경쟁에서 초연해지려 노력한다.

"아이들을 수단 삼으면 교회부흥은 빠를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은 그 자체가 목적이에요. 어른이 덜 와도 아이들이 행복하면 그만이죠."

요즘 그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간 과감한 꿈을 키우고 있다. 아침 9시에 하는 일요일 유초등부 예배를 11시로 옮기는 일이다.

"아이들도 일요일엔 늦잠을 자야되지 않겠어요?"

어른 중심의 문화를 아이들 중심으로 변화시키자는 것이다. 또 지나친 지성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감성과 지성을 함께 키우는 대안학교도 만들 생각이다.

"아동복지는 가정복지로 이어지고 가정복지가 곧 사회복지 불러"

아동복지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남양주의 복지 현실은 여전히 팍팍한 황톳길이다.

"복지와 교육은 당장은 고비용 저효율이에요. 가장 열악한 곳에 예산이 우선 쓰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요."

천억을 들여 대규모 문화회관을 짓고 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작은 마을회관이나 주민자치센터 등에서 몇 사람이라도 내 집처럼 드나들 수 있는 복지시스템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 아이들이 자라며 변화되는 모습을 보며 김 목사의 뜻에 공감하게 됐다는 부인 신광숙씨는 “끌기도 밀기도”하며 김 목사와 함께 푸른학당을 운영하고 있다
ⓒ 방춘배
"남양주는 30~40대 유입인구가 많다고 하는데 이는 아동수가 늘어난다는 얘기지요."

김 목사는 아동복지는 자연스럽게 가정복지로 이어지고, 가정복지는 곧 사회복지를 불러온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걸었다는 김 목사가 지역사회의 정서와 문화에도 관심을 소홀히 하지 않는 이유이다. 이를 위해 지역아동복지센터들의 네트워크 형성에도 열심이다.

"얼마 전 푸른학당 아이들이 한자급수시험을 봤는데 우리 아이가 떨어지고 다른 아이들이 다 붙었어요. 속으로 '감사합니다' 그랬어요."

이렇게 말할 때 김 목사는 두 아이의 아버지이지만 동시에 많은 아이들의 아버지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그에게 가장 큰 힘이 된다는 부인 신광숙씨. 처음엔 힘든 몸으로 끌려갔지만 이제는 조언도 아끼지 않고 때론 앞에서 끌기도 한다.

아이들의 간식을 손수 만들어 먹이고 비트공예 등 수업에도 열심인 신씨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변화되는 모습을 보고 김 목사의 뜻에 '전염'됐다고 했다. 이제는 오던 아이들이 하루만 안 보여도 애가 타고 걱정이란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며 돌아본 살렘산, 김 목사가 지었다는 그 이름(살렘은 히브리어로 평안, 번성을 의미)처럼 그의 품에 안기는 아이들이 평안한 마음으로 자라 '전염병'처럼 남을 위해 사는 삶으로 번성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다가, 문득 교사로서 동네 아버지로서 평생 외길을 걸었던 페스탈로찌의 말이 떠올랐다.

"올바른 사회는 오직 어린이들에게 참다운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역인터넷신문 '남양주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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