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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태뒷간 입구
ⓒ 정상혁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지리산 자락 구산선문 최초 사찰인 실상사를 찾았습니다.

여느 사찰과는 달리 평지에 조성된 평지가람이어서 다리 하나를 건너 시골길 걷듯이 5분쯤 걸어가면 다다를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만난 '생태뒷간'이라는 이름의 색다른 화장실은 여느 곳의 하얀 색으로 깔끔하게 포장된 'Toilet'하고는 사뭇 분위기가 다릅니다.

일주문에서 연방죽이 있는 쪽으로 가다보면 왼편에 생태뒷간이 있습니다.

입구에는 민망스럽지 않게 발이 쳐져 있습니다. 날씨가 후텁지근했던 것에 비하면 냄새는 코를 의심할 정도로 거의 나지 않습니다.

▲ 근심걱정 푸는데 어디가 좋을까요?
ⓒ 정상혁
조금만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는데 바로 아래쪽이 바람이 통하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재래식 화장실이면서 똥을 가둬놓는 곳일수록 냄새는 더합니다. 발상을 전환하면 이렇게 결과가 정반대가 될 수도 있는 거죠.

뒷간을 들어서면 일을 볼 수 있는 칸막이가 나옵니다.

어느 곳에서 볼일을 볼까 둘러보니 장애우를 위한 뒷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생태뒷간에도 이렇게 장애우를 배려한 공간이 있으니 돈많이 들여 짓는 도시의 화장실에는 당연히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 왼쪽부터 장애우를 위해 줄을 매달아 놓았습니다. 두 번째 사진은 해우소 앞 손을 씻을 수 있는 물 흐르는 멧돌. 세 번째 사진은 퇴비를 만들기 위해 쌓아둔 톱밥, 네 번째 사진은 변기의 오줌받이 입니다.
ⓒ 정상혁
뒤는 급했지만 호기심에 열어본 장애우용 뒷간은 이용을 쉽게 하기 위해 줄이 매달려있고 '쪼그려 쏴' 변기가 아니라 '앉아 쏴' 변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특별한 뒷간이다 보니 사용법도 남다르겠죠?

앉아서 급한 용무를 해결하고 나니 글귀가 눈에 들어옵니다. 한줄 한줄 읽어가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게 되지요.

볼일을 다 마쳤다고 그냥 가면 안됩니다. 뒤처리는 하고 가야죠.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고 생태뒷간을 이용했으면 게임의 법칙 정도는 지켜줘야겠습니다.

▲ 생태뒷간 이용법입니다.
ⓒ 정상혁
톱밥이라고 써 있지만 사실은 쌀겨입니다. 한 바가지 퍼다가 일 본 자리에 슬쩍 덮습니다. 덮으니 미관상도 좋고 또 발효되어 거름이 된다니 한편으로 뿌듯합니다.

수세식 화장실은 물을 내리지만 이 곳은 쓸데없이 물 낭비를 하지 않아 좋습니다.

뒷간을 나서면 손을 씻어야겠죠?

이 곳을 만드신 분의 세심함과 배려가 드러납니다. 뒷간을 나서자마자 손 씻을 곳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시원스레 흘러내리는 물에 손을 씻으니 개운하고 참 좋습니다.

역시 뒷간 가기 전과 뒷간 다녀온 후는 다른가 봅니다.

일 보러 급하게 들어가느라 놓쳤던 생태뒷간 설명문이 이제서야 들어옵니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에야말로 정말 무엇이건 간에 그냥 버리는 것이 없었습니다. 쓰레기라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자연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똥도 오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더러우니 밀폐된 곳에 모았다가 처리하는 것이 현대적인 것이 아니라 이렇게 적극적으로 자연으로 되돌려 보내 순환하게 하는 것이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실상사를 나서는 길에, 논에 심어놓은 자운영 꽃이 만발한 이유, 바로 생태뒷간에서 나온 거름 때문은 아닐까요?

▲ 자운영 꽃이 참 예쁩니다.
ⓒ 정상혁

덧붙이는 글 | 보기에 좀 그렇지 실제로 냄새가 거의 나지 않습니다. 실상사에 가시거든 일부러라도 한번 사용해 보세요.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참, 순천 송광사에도 비슷한 뒷간이 있는데 그곳은 마른 짚을 이용해서 발효를 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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