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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의 한 교수가 최근 한 인터넷 웹진에 올린 글에서 그동안 교과서 등에서 통용돼온 위안부·강제 연행자의 숫자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교수의 주장은 최근 미묘한 한일관계와 맞물려 일부 네티즌들의 반발을 예고하고 있다.

이영훈(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 23일 웹진 '뉴라이트'(www.new-right.com)에 기고한 글에서 최근 북한 유엔대표부 김영호 서기관이 제네바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위안부의 수가 20만, 강제 연행된 인구가 840만이라고 언급한 것과 우리 고등학교 교과서에 위안부 수를 '수십만'으로, 강제로 끌려간 사람을 650만으로 기술하고 있는 사실을 들어 이런 숫자들에 "찬성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1940년 국세조사에 의하면 당시 20∼40세의 조선인 남자의 총수는 321만명이었는데 그 나이의 남자들을 모조리 다 끌고 가도 반을 채울 수 없는 숫자가 교과서에서 가르쳐지고 또 국제회의에서 거론된다면 그것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당시 16∼21세의 조선 여자는 125만 명이었다"이라며 '위안부 20만'과 '강제연행 600만'을 하나의 '신화'로 규정했다.

이 교수는 징병·징용자 유해들의 국내 봉환이 시급한 과제라며 "할 일이 많고 급하기만 한데, 자꾸 허수를 지어내고 그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추궁하기만 한다면, 그것이 진정 올바른 방식의 과거사 청산이냐"고 반문했다.

이 교수의 글은 다음과 같다.

북한 외교관과 남한의 교과서가 빠져 있는 허수의 덫

위안부와 징용자의 숫자는 얼마쯤일까
할 일 않고 허수에 매달리는 현실이 역사가를 시름짓게 해

구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조선여자들의 수는 얼마쯤이었을까? 또 징용이나 징병 등으로 끌려간 조선남자들의 수는 얼마쯤이었을까? 4월 21일자 보도에 의하면 북한 유엔대표부 김영호 서기관은 제네바유엔인권위원회에서 위안부의 수가 20만이었고, 강제 연행된 인구가 840만이라고 주장하였다.

한편 이에 관한 남한의 고등학교 교과서를 보면 위안부의 수를 ‘수십만’으로,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을 ‘650만’으로 가르치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한 남북한의 주장에는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숫자들은 얼마만큼 정확한 것일까? 교과서와 독도 문제를 계기로 일본인들의 역사인식에 대한 한국인들의 비판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렇지만 전체 분위기가 그렇다고 해서 정확하지 않은 숫자를 아무렇게나 거론하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는 비판이다.

위안부의 숫자를 둘러싸고는 연구자들 간에 구구한 추측과 주장이 있다. 당시 일본과 중국과 동남아 등지에 주둔한 일본군은 총 280만 정도였다. 일본군 수뇌는 병사 150명에 1명의 위안부를 충원하라는 지령을 내린 적이 있다. 이에 근거하면 위안부의 총수는 대략 2만이 된다.

반면에 이 수는 너무 작은 것이며 실제로는 병사 50명에 1명으로서 대략 6만 명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이 편이 사실에 더 가까울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런 주장들은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며, 추정은 항상 틀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2만이든 6만이든 또는 20만이든 그것의 민족별 구성이다. 주로 한국의 연구자들은 조선여자가 대다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일부 일본 연구자는 일본여자가 가장 많았다고 주장하면서 1940년에 이루어진 만주를 포함한 중국 전역에 분포한 일본인과 조선인의 직업조사 결과를 들이대고 있다. 다른 한편 중국 연구자들은 중국여자가 가장 많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여러 추정치가 난무하고 있지만 조선여자만의 위안부가 20만이라는 김영호 서기관의 주장이나 그보다 더 많았을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한국교과서의 ‘수십만’이란 숫자에 대해서는 찬성하기 힘들다.

20만이란 숫자가 최초로 거론된 것은 1969년 국내 모일간지에서라고 알려져 있다. 그에 의하면 1943년과 1945년 사이 “정신대로 동원된 조선과 일본 여성은 전부 대략 20만으로서 그 가운데 조선 여성은 5만-7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하였다. 여기서 정신대는 위안부가 아니라 군수공장 등으로 동원된 근로여성을 가리킨다.

그런데 1984년 송건호는 그의 책 <일제 지배하의 한국현대사>에서 “일제가 정신대의 명목으로 연행한 조선인 여성은 어느 기록에 의하면 20만이고 그 가운데 5만-7만이 위안부로 충원되었다”고 썼다. 이렇게 20만과 5만-7만의 같은 숫자가 인용되고 있지만 뜻이 달라지고 있음을 독자들은 간파할 수 있다.

그런데 송건호까지만 해도 20만이란 숫자는 위안부가 아니라 정신대를 가리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양자가 전면적으로 혼동되면서 20만이란 숫자가 조선여자 위안부의 총수로 바뀌는 것은 1984년 이후 지금까지의 일이었던 셈이다.

징용이나 징병으로 강제 동원된 남자가 650만 또는 840만이었다는 주장도 비슷한 과정을 통해 생겨난 것이다. 그에 관한 최초의 추정은 1965년 재일사학자 박경식에 의해서였다고 필자는 기억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1939-1945년간 일본으로 징용된 자가 100만, 조선국내에서 동원자가 450만, 군인·군속이 37만, 도합 약 600만 명이 강제동원되었다.<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

이 숫자들이 얼마나 정확하고 어떤 성질인지에 대해서는 검토의 여지가 많다. 그렇지만 이렇게 생겨난 600만이란 숫자는 지난 40년간 인용에 인용을 거듭하면서 남한에서는 650만으로, 북한에서는 840만으로 부풀려졌다. 내용도 모두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간” 자로 바뀌었다.

1940년의 국세조사에 의하면 당시 20-40세의 조선인 남자의 총수는 321만이었다. 그 나이의 남자들을 모조리 다 끌고 가도 반을 채울 수 없는 숫자가 교과서에서 가르쳐지고 또 국제회의에서 거론된다면 그것은 문제이지 않은가?

참고로 당시 16-21세의 조선여자는 125만이었다. 필자가 조선여자 위안부가 ‘수십만’ 또는 ‘20만’이나 되었다는 설을 믿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를 독자들은 짐작할 수 있으리라.

필자는 작년에 쓴 한 논문에서 한국의 국사교과서가 지난 40년간 일제가 토지의 40%를 수탈하였다고 가르쳐 온 것이 사실이 아님을 지적한 바 있다.(<시대정신>28) 그 숫자는 1967년 어느 무책임한 역사학자가 아무렇게나 지어낸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지난 40년간 국사교과서는 줄기차게 그 가공의 숫자를 인용해왔다. 그와 꼭 마찬가지로 지난 20년간에는 ‘위안부 20만’과 ‘강제연행 600만’이라는 또 하나의 신화가 슬슬 만들어져 온 셈이다. 한국과 일본간의 과거사에는 청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무엇보다 이역만리 먼 곳에서 떠도는 징병·징용자들의 유해를 수습하여 국내로 봉환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이다. 할 일이 많고 급하기만 한데, 자꾸 허수를 지어내고 그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추궁하기만 한다면, 그것이 진정 올바른 방식의 과거사 청산일까. 역사가의 시름은 깊어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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