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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장례식 광경 일제의 고문에 의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9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한 윤동주 시인의 장례식 광경(1945년 3월 6일 용정 자택)
ⓒ 독립기념관

명동학교 시절의 나운규 1918년 명동학교에 입학한 나운규의 교복 입은 모습.
ⓒ 독립기념관
'서시'의 윤동주 시인의 장례식 모습, '아리랑'의 나운규 감독의 명동학교 시절, 그리고, 통일운동가 고 문익환 목사의 간도 은진학교 시절의 사진 등이 최초로 공개된다.

독립기념관(관장 김삼웅)이 여든 여섯 번째 3·1절을 맞아 '북간도 명동촌, 그 삶과 독립운동'이라는 주제로 특별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독립기념관은 3월 1일 낮 12시30분 제1전시관(민족전통관)에서 특별전 개막식을 연 뒤 4월 29일까지 2개월 가량 전시한다. 이날 개막식에는 자료기증자 김재홍씨와 고 문익환 목사의 부인 박용길 장로와 문 목사의 아들 영화배우인 문성근씨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특별전시회에서 공개되는 사진자료 가운데는 북간도 명동촌 지도자였던 김약연 선생을 비롯해 문재린과 그의 아들 문익환 목사, 윤동주 시인의 장례식 장면, 명동학교 시절의 나운규 감독의 모습이 최초로 공개된다. 이와 함께 용정 3.13만세시위 당시 일본경찰이 발포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현장인 오층대 건물의 당시 모습도 함께 공개된다.

이 전시회는 명동촌의 지도자였던 김약연 선생의 증손인 김재홍씨의 기증에 의한 자료전이다. 독립기념관은 김씨가 20여년 동안 북간도 현지를 수십 차례 방문하고 관계자를 만나 수집한 300여점 가운데 북간도 독립운동과 이주한 조선 민중들의 삶이 잘 나타난 170여점을 선별해 전시한다.

북간도 명동촌(明東村)은 독립운동가와 일제에 농토를 빼앗긴 민중들의 이주에 의해 조성된 항일독립운동의 기지였으며 명동학교를 비롯한 여러 교육기관이 설립돼 윤동주 시인 등을 길러냈다.

화보 '북간도 명동촌, 그 삶과 독립운동'

3.1절부터 독립기념관에서 전시될 '북간도 명동촌, 그 삶과 독립운동' 특별전시회의 일부 사진을 독립기념관 협조로 독자들에게 먼저 공개한다.

윤동주 시인과 문익환 목사 1930년대 평양 숭실중학교 시절 교복을 입은 윤동주(뒷줄 오른쪽)와 문익환(뒷줄 가운데) 모습.
ⓒ 독립기념관


김약연과 명동교회 교인들 명동교회의 1910년대 모습. 당시 명동교회의 교인들은 5백명이 넘었다고 한다.
ⓒ 독립기념관


명동학교 제17회 졸업생 기념 촬영(1931. 3. 20)
ⓒ 독립기념관


김약연의 장례식 광경 명동촌 지도자였던 김약연 선생의 장례식(1942. 10). 기독교식 장례장면이 이채롭다.
ⓒ 독립기념관


거룻배를 탄 구례선 목사 일행 1910년대 선교활동을 위해 거룻배를 타고 두만강을 건너는 구례선 목사 부부.
ⓒ 독립기념관


오층대 건물 1919년 3.13 만세시위 당시 일본 총영사관을 향하던 조선 민중들을 향해 일본경찰이 발포해 사상자가 발생한 오층대 건물의 옛 모습.
ⓒ 독립기념관


명신여학교 수업 광경 1930년대 명신여학교의 가사 수업으로 재봉틀을 돌리는 학생들의 모습.
ⓒ 독립기념관


해방 후 명동학교 동창회 해방 이후 명동촌 출신 인사들이 동국대학교에서 모임을 갖고 있는 모습. 정재면, 문재린, 문익환, 김기섭, 윤영춘, 윤영규의 모습이 보인다.
ⓒ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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