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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헤드윅>의 여장을 하고 열창하는 지원자. 이날 지원자들은 'Tear me down'과 'Midnight Radio' 등 2곡의 지정곡과 한곡의 자유곡을 불렀다
ⓒ 제미로
영화 <헤드윅>, 드디어 국내 뮤지컬 무대에

지난 1월의 마지막 날, 대학로 라이브 극장 무대. 심사위원과 기자들, 그리고 마니아들을 관객 삼아 자신의 꿈을 펼쳐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뮤지컬 <헤드윅>의 공개 오디션에 응시한 사람들.

뮤지컬 <그리스> <캣츠> <오페라의 유령> 등을 만든 제미로(zemiro)는 오는 4월 12일 뮤지컬 <헤드윅>을 무대에 올린다. 그리고 그 주인공인 헤드윅과 이츠학(헤드윅의 남편 역)을 공개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다.

그날은 바로 헤드윅과 이츠학 오디션이 있었다. 오디션 지원자는 총 112명. 그 중 62명이 서류 심사를 통과했고 헤드윅 역에는 45명이 지원했다. 지원자 대부분은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서 활동하는 배우와 TV 탤런트 등 이른 바 '쟁쟁한' 경력자들이었다.

<헤드윅>이 우리 나라에서 뮤지컬 무대에 올려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헤드윅>(원제 Hedwig and an Angry Inch)이 한국에 소개된 것은 2002년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였다. 이후 이 영화는 열혈 마니아를 양산하며 알 만한 사람들을 다 아는 문화적 신드롬이 되었다. 수많은 추종자들을 낳은 <헤드윅>은 과연 어떤 이야기일까.

이 이야기의 배경은 통일 독일 전. 동베를린에서 엄마와 둘이 살고 있던 한셀은 미군 라디오 방송을 즐겨 들으며 데이빗 보위, 루 리드 등의 팝 음악에 심취해 보내고 있다. 때때로 좁은 오븐 속에서 현실과 떨어져 지내기도 하지만 그것조차 그에게는 즐거움이다.

▲ 심사위원들이 지원자들의 열의에 흐뭇한 웃음을 띠고 있다
ⓒ 제미로
'앵그리 인치'의 헤드윅, 그의 인생역정

어느 날, 따스한 햇볕 아래 나체로 누워 자연을 받아들이던 그에게 미군 병사가 다가온다. 그는 한셀에게 사랑한다며 미국으로 함께 갈 것을 제의한다. 하지만 조건은 '완벽한' 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 이에 한셀은 남자에서 여자가 되기 위한 성전환 수술을 받는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한 실패. 가슴은 여성의 그것을 만들지 못했고, 남자의 성기만 '1인치' 남아 버린 것이다. 바로 이것이 영화의 원제인 '앵그리 인치(Angry Inch: 성난 인치)'다.

결국 흑인 남편은 캔자스시티에 그를 남겨 두고 떠나 버린다. 그녀의 이름은 어머니의 이름을 딴 '헤드윅'이 되었고, 신체의 일부분을 딴 '앵그리 인치'는 그녀의 밴드 이름이 됐다.

그리고 헤드윅은 새로운 사랑에 빠진다. 보모 일을 하던 집의 둘째 아이 토미를 만나 것이다. 헤드윅은 토미를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토미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 토미를 뮤지션으로 길러내고 곡을 만들어 준 것이다.

하지만 이런 그녀에게는 배신만이 돌아온다. 토미는 '어정쩡한 트랜스젠더'인 그녀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런 토미 앞에서 헤드윅은 자신을 사랑한다면 자신의 '그것'마저도 사랑해 달라고 절규한다. 하지만 냉정히 떠나 버린 토미.

헤드윅을 떠난 토미는 그녀가 만든 곡으로 스타로 발돋움한다. 전국 콘서트를 개최한 토미, 헤드윅은 그가 공연하는 공연장 옆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공연을 한다. 자신을 보기 위해 찾아온 관객 앞에서 노래를 통해 자신이 걸어온 길을 이야기 한다.

그리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 성적 소수자의 이야기이기에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는 와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얼핏 보면 <헤드윅>은 드랙퀸(여장 남자)을 다룬 영화처럼 보인다. 혹은 다른 트랜스젠더들이 등장하는 영화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남자냐, 여자냐 혹은 이성애자냐 동성애자냐, 헤테로냐 게이냐는 이분법을 뛰어 넘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진다.

▲ 심사위원이 가발까지 준비한 지원자의 성의에 감탄한 듯 질문을 하고 있다.
ⓒ 제미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노래의 힘 <헤드윅>

영화 <헤드윅>은 대사보다는 영화 속에 펼쳐지는 노래를 통해 관객들과 대화한다. 자신의 앵그리 인치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에 대해 때로는 고함으로 때로는 따스한 목소리로 보듬어 가며. 때문에 영화뿐만 아니라 뮤지컬 <헤드윅>에서도 노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히 크다.

<헤드윅>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곡은 'The Origin of Love(사랑의 기원)'. 이 노래는 오래 전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갈라지기 전 하나의 쌍으로 이루어진 완성체였다고 말한다. 그땐 세가지의 성(性)이 있었다며, 영화에서는 소년과 소녀, 소년과 소년, 소녀와 소녀가 하나로 붙어 있는 모습이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진다.

'Wig in a Box' 같은 곡에선 멋진 화장을 하고 <미녀삼총사>의 '파라 포셋'의 가발을 쓰는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 낸다. 헤드윅은 '자연스럽게' 여성의 몸을 지니고 태어난 이들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Angry Inch' 라는 곡에선 여성과 남성, 어느 한쪽에도 온전히 서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자신의 그것을 '바비 인형의 그것'에 비유하며 이름마저 바꾸어야 했던 기억을 말한다.

'Midnight Radio'에서는 가발을 거부하며 사랑이 주는 자유를 외치고, 세상의 모든 록커들에게 어두운 밤을 밝히는 라디오 전파 같은 빛이 되라고 노래한다.

이처럼 <헤드윅>에 삽입된 노래는 그 하나 하나가 자체로 빛을 발하는 뮤직 비디오다.

"나는 오롯이 헤드윅이 되고 싶다"
[미니 인터뷰] 헤드윅을 꿈꾸는 사람들

▲ <헤드윅> 오디션장에서 만난 사람들. 왼쪽부터 오만석, 이정열, 송용진씨.
ⓒ나영준

"우리 뮤지컬 무대에 이렇게 멋진 작품이"
<미니 인터뷰> 헤드윅을 꿈꾸는 사람들 1 - 오만석씨


오디션장에서 만난 오만석씨는 '사랑은 비를 타고', '그리스', '달고나' 등에서 이미 연기 경험을 갈고 닦은 뮤지컬 배우다. DVD로 <헤드윅>을 접했다는 그는 "인간 내면의 깊은 곳에서 자기 성찰을 하는 모습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좋은 작품이 올려진다는 것에 대해 너무 기쁘다"는 그. 자신 있느냐는 질문엔 슬쩍 웃으며 꼬리(?)를 내리기도 했다.

" 헤드윅, 백번도 더 봤지요"
<미니 인터뷰> 헤드윅을 꿈꾸는 사람들 2 - 송용진씨


오디션에서 '헤드윅'의 안무를 거의 완벽하게 재현해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끌었던 송용진(30)씨. 아니나 다를까 마니아 중에서도 '왕' 마니아였다. 헤드윅을 백번도 넘게 봤다고. "헤드윅 역은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며 자신감을 나타냈지만 막상 오디션에 임하자 "떨린다"며 긴장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가수 이정열이 아닌 뮤지컬 배우로 거듭나다
<미니 인터뷰> 헤드윅을 꿈꾸는 사람들 3 - 이정열씨


오디션을 보러 온 이들 중에 기자의 시선을 잡아끈 이가 있었으니 바로 가수 이정열씨였다. '그대 고운 내사랑' 등의 노래를 부른 가수로 더 알려진 그이지만 이미 여러 편의 뮤지컬에서 '배우'로서 입지를 다져가고 있는 실력파 뮤지컬 배우이기도 하다.

기자에게 그는 "오디션 당락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며 다른 일정과 겹쳐 뮤지컬 준비 일정에는 합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되고 안 되고'를 떠나 이렇게 좋은 작품이 있다면 당연히 참여를 하는 것이 배우로서 가져야 할 기본 자세죠."

그는 <헤드윅>을 영화로 보지는 않았지만 음악만으로도 깊이 빠져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음악 때문에 이번 오디션에 지원했다고 한다.

이정열씨는 현재도 <하드 락 카페>에 '준'으로 메인 캐스팅되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뮤지컬도 하는 가수'로 남기 보다는 오히려, '뮤지컬 배우이며 가수'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 나영준 기자

앵그리 인치의 헤드윅, 어떤 모습으로 재창조될까

그리고 영화는 이야기한다. 인간이란 불완전한 존재이며 자신을 채워 줄 반쪽을 찾아 헤매는 것이야말로 지극히 '인간적' 임을. 그리고 오히려 그 대상이 이성이어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만들어 놓은 허상이라고.

물론 헤드윅의 메시지에 동의하고 하지 않고는 관객 각자가 판단할 몫이다. 하지만 헤드윅의 이 외침은 잔잔한 감동을 낳는다. 그것은 헤드윅이 성을 바꾼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욕망과 꿈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의 노래는 단지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가 아닌 이 세상의 모든 소수자들에게로 향하고 있다.

이 메시지가, 이 외침이 94년 미국 뉴욕의 허름한 바에서 시작된 작은 공연이 오프 브로드웨이로 옮겨지고 영화와 뮤지컬로 제작되게 한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전히 전 세계 수많은 비평가와 관객들로부터 격찬을 받으며 영화화되고 뮤지컬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헤드윅>의 진정한 미덕은 보잘 것 없는 한 인간의 보잘 것 없는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열린 마음에서 나온다. 관객 또한 그 자세를 견지할 때 그 감동을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스크린을 떠나 뮤지컬로 간 <헤드윅>. 대중적이지 않은 소재에 만만치 않은 메시지를 지닌 '앵그리 인치'의 헤드윅이 어떤 모습으로 '트랜스'할지 지켜 보자.

"헤드윅, 우리는 이미 공연했지요"
오디션장을 찾은 <헤드윅> '열혈' 마니아들

▲ 오디션장을 찾은 헤드윅 코리아 회원들
ⓒ나영준

이날 오디션장에는 심사위원과 관계자들 이외에도 10명 가량의 젊은 남녀들이 자리를 지켜 눈길을 끌었다. 스스로를 '헤드윅 마니아'라고 자처하는 이들은 헤드윅 코리아(www.hedwigkorea.com)의 회원들. 단순히 보고 즐기는 차원을 넘어 이미 자체적으로 <헤드윅>을 공연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회원 백희숙(24·대학생)씨는 2004년 이미 두번의 자체 무대를 올린 경험을 자랑하며 헤드윅의 매력은 "자아와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그로 인해 얻어지는 진정한 사랑에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회원 백원기(22·학생)씨는 '헤드윅 코리아'뿐만 아니라 여타 포털 사이트에도 많은 헤드윅 마니아 모임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뮤지컬 막이 오르기 전 자체 상영회를 가질 계획이며 파티 형식으로 열릴 3월 제작 발표회 때도 회원들이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헤드윅의 모습에 대해 박유희(22)씨는 "트랜스젠더나 성에 대한 편견을 제거하고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보아 달라"며 "다른 나라에서도 무대에 올려질 때마다 큰 반향을 불러 온 작품이 드디어 한국에서도 공연된다니 많은 기대가 된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 나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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