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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들레 국수집 전경
ⓒ 이명옥
민들레 홀씨가 날아가 삭막한 시멘트 사이에서 환상적인 노란 꽃을 피운 것을 본적이 있는가? 여기 마음이 얼어붙은 사람들 사이에 홀씨 하나로 아름다운 사랑의 꽃을 피워내는 이가 있다.

인천시 동구 화수동 266-61번지에 3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출소자들과 노숙자들을 VIP로 모시며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언제든지 몇 번이고 와서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민들레 국수집’이라는 밥 나눔의 집을 운영하는 서영남 수사가 그 주인공이다.

그곳에서는 누구나 밥을 무료로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먹는 것은 허기진 배를 채우는 한 끼의 식사가 아니라 사랑과 관심, 존재감을 일깨워주는 서 수사의 따뜻한 사랑이었다.

그를 만나는 1시간여 동안 열댓 명이 넘는 식구들이 왔다갔다. 식사를 하고, 천원, 혹은 이천원의 음료 값(사실은 소주 값)을 빌려가고, 꽁초를 주워 피는 분들에게 한 두 개비를 나눠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서 수사는 식사를 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나지막한 음성으로 면도한 모습을 알아보고 말을 건네거나, 옷이 너무 얇지 않느냐, 아픈 곳은 나았느냐,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러주며 근황을 물으며 상을 차리고 따뜻한 미소를 국과 밥에 덤으로 얹어 준다.

10살이 좀 넘어 보이는 소년, 26살이라는 청년부터 73세라는 분까지 어느 구석에도 그늘이나 주눅 든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식구가 많은 대가족이 자신들의 시간에 맞추어 편하게 아무 때든 식사를 하는 모습이 마치 한 지붕 한 가족처럼 보였다.

▲ 서영남 수사와 자원봉사자
ⓒ 이명옥
민들레 국수집은 서영남 수사 개인의 주머니와 이웃들의 작은 나눔의 정성으로 꾸려진다. 국수집 소식에는 박카스 한 병, 소주 한 병, 설거지 도우미 까지 세심하게 후원과 봉사로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보자.
○○ 할머니= 무 6개. 박○○님= 귤 조금, 음료수 3병, 소주 5병 담배 1갑. 김○○님=붕어빵 1봉지. 양○○님=담배 2갑. 동네 아주머니=양미리 조금, 조개젓 조금. ○○ 할머니=무3개, 시래기나물, 물김치. 민○○님=김 1통. 용원약방=김치, 조개젓. 노점하시는 아주머니=무, 배추 15통.

송현교회 청년부=청소 반찬 만들기. ○○학생과 어머니=설거지와 반찬만들기. 예쁜 딸=설거지 그런 방식이다.

민들레 식당에서 봉사를 시작한지 6개월이 넘었다는 한 봉사자는 정부 지원을 받는 단체나 매스컴서 식사 한 끼를 드리면서 식판을 들고 줄을 서거나 준비된 양만큼 식사를 배급하는 모습에서 부끄러움을 많이 느꼈다고 한다. 한 끼 식사를 제공하면 그 뿐, 인격적인 배려가 전혀 없거나 결여된 것을 보며 저것은 아니다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은 오시는 분들 성함, 근황, 형편을 세세히 알고 한분 한분께 관심을 가져주기 때문에 그분들은 자기를 지켜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세가 달라져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머리를 감고 오시기도 한다.

민들레 집은 노숙자분을 한 개체로 인정해 주며 사회 구성원으로의 소속감을 심어 준다는 것이다. 여기 오시는 분들은 경제 구조 속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분들이다. 그분들이 관심과 사랑을 통해서 자존감을 회복하고 사회 구성원으로 소속감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은 밥 한 끼 보다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정부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수사님이 좋아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계산이 없이 의무가 아닌 사랑으로 최선을 다해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노숙자들이 최대한 보온을 하고 오셔서 식사를 마치고 단추를 다 풀어 놓고 얼굴에 홍조가 돌며 포만감을 느끼면서 돌아가는 모습에서 보는 사람들이 같이 행복감을 느낀다.

▲ 함께 사는 분이 시금치를 다듬고 있다.
ⓒ 이명옥
사회복지시설이나 복지 단체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이 있었고 결벽증도 심한 편이던 그가 민들레 국수집서 봉사를 하면서 그런 선입견을 벗어버리게 되었고 봉사를 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봉사를 받고 있다며 감사해 했다.

서 수사는 교도소 사목 생활을 25년간 하며 오갈 데 없는 출소자들의 뒷바라지를 해 온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2년 전 평신도로 돌아왔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수사라고 부른다). 출소자들의 자립 기반을 마련해주려 시작했던 집수리 센터는 사목길만 걸어온 그가 넘볼 일이 아니었다. 그가 사업에 망한 후 그와 함께 사는 출소자들 밥도 해 먹이면서 노숙자들에게 국수라도 한 끼씩 대접하자 싶어서 국수집을 만들었는데 며칠씩 허기진 그들의 위를 달래기엔 국수가 역부족이어서 한 달 만에 밥집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민들레 국수집이란 이름을 바꿀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여기에 오는 배고픈 노숙자들이 다 자립을 하고 제자리를 찾아 밥은 질려서 싫어요, ‘국수 주세요’ 하는 그날이 오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특이한 사실은 민들레 국수집의 간판에 대한 철학이다. 민들레 국수집 간판은 흰 바탕에 노란글씨여서 잘 보이지 않는다.

그는 자본주의의 꽃인 광고의 자본주의적 특성을 모두 뒤집고자 한다. 자본주의는 드러나게 광고를 하고 광고를 통해 얻은 소득을 자본가가 챙길 뿐, 노동자나 빈자와 나눌 줄을 모른다. 그는 안 보이는 광고를 만들어서 자본주의의 특성인 나눌 줄 모르는 금기를 깨고자 했으며 노숙자들이 언제든지 편안하게 들어와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 3평 공간 한켠에 놓인 연탄난로
ⓒ 이명옥
목돈의 후원금이나, 많은 양의 음식물을 건네는 이들이 아닌, 김치 한보시기, 나물 한 그릇의 나눔으로 하루 100여명이 넘는 노숙자분들이 따뜻한 밥과 국을 먹을 수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 홀씨가 피워 낸 기적이 아니면 그 무엇이랴.

덧붙이는 글 | 대자보에 송고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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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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